"우리는 듣기를 통해 사물의 혼적 본성에 들어가고 열 한 번째, 열 두 번째, 열 세 번째 감각을 통해 사물의 영도 관통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인간, 혼, 영에 관한 지헤, 2023, 43)."
사실 그동안 인류가 인간의 정신에 관한 모든 것을 지웠기 때문에 우리는 정신에 관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뭔가는 있는듯 한데, 그것이 '정신(영)'인가, 아니면 '영혼'인가 정도 생각할 뿐이다. 그렇다면 정말 '그렇게 생각해도 될까'란 의문이 든다. 먼저 말하면 그렇게 생각하면, 인간의 정신이 사라지기 때문에 인간의 진화, 인간 정신의 발달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가벼운 여담으로 인간 정신을 배제한 결과의 예이다.
필자는 3주 예정으로 아이슬란드 여행을 가기로 했다. 가기 전에 같은 방을 쓰는 여자를 만나서 여러가지 의논을 했다. 필자보다 나이는 9살 정도 어렸지만, 젊을 때 네팔의 안나푸르나봉을 갔을 정도로 등산, 여행을 많이 한 여자였다. 요컨대 걷기에 아주 적합한 몸으로 근육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문제가 있다면, 첫째 다른 사람에 대한 방어 기제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 말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봤거나 아니거나 그래서 피해를 보지 않겠다는 마음이 온 몸을 꽉채우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늘 온 신경이 곤두서야 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필자가 그 여자를 보는 순간 그 여자 몸 안의 모든 에너지(정신, 육체 모두)가 거의 고갈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그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 자신을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보면은 자신의 에너지는 고갈된다. 낮동안 인간은, 인간이 눈을 뜨는 순간 대상을 보므로, 타인에게 집중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밤에 잠을 자면서 다시 에너지가 보충되는 것이 통상이다. 인간이 대상에게 집중한다는 자체가 자신의 에너지를 쓰는 일이므로 낮에도 온전히 대상에게 집중할 경우, 자신의 에너지는 점점 더 고갈이 된다. 그래서 낮에도 자신에게 어느 정도(6:4 정도에서 자신에게 6정도)는 집중해 주어야 자신의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지 않는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우리가 지적으로 집중할 경우에는 몸의 에너지를 쓰므로 잠이 오고, 이 경우에는 흥미를 가져야 피로가 덜하다. 육체적으로 일을 할 경우에는 정신의 에너지를 쓰므로 자신이 하는 육체적인 일에 집중을 해야 능률이 오른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는 자신의 에너지를 쓰면서 살아간다.
둘째, 그렇게 타인을 볼 경우 상대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는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자신을 보지 못하므로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한다. 요컨대 자신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다는 사실, 이는 자신의 몸이 망가졌다는 사실인데 이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신이 고갈되면 음식으로도 에너지가 채워지지 않는다.
셋째, 또 이렇게 피해를 보지 않을려고 상대를 볼 경우, 이는 상대에 따라서 자신이 변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 예컨대 좋은 사람을 만나면 다행이지만, 만약 자신보다 더 이기적인 사람을 만날 경우 자신은 그 사람보다 더 이기적이 되어야 한다. 그런 자신을 보지 못하면, 결과는 자신이 점점 더 피폐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을 보면, 자신이 타인에 의해서 점점 피폐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므로 방어를 해서 막을 수는 있다.
넷째,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정신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인간에게는 정신이 있어서 그 정신이 자신을 만들고 성장시킨다는 사실, 물론 그 정신이 자신을 망가뜨린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이것이 그 사람 개인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에게 정신은 있는가'. 또 있다면 그 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가 궁금하다. 알아야 자신의 정신을 발달시킬려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내용이 인간의 혼과 영의 작용이고, 위 문장이다. 우리가 사물의 혼적 본성에 들어가고, 나아가 인간의 감각(열 한 번째, 열 두 번째, 열 세 번째 감각)을 통해 사물의 영도 관통한다는 것이다(슈타이너의 주장). 그래서 현재(?)의 인간은 자신의 혼도 파악하지 못하는데, 과연 혼에서 영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에 대한 슈타이너의 강의가 1909년, 1910, 1911년 3년에 걸쳐 베를린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인간에 관해서는 인간의 감각(13가지로 감각을 나누었지만 점차 12감각으로 정리했다)을, 혼에 관해서는 혼의 작용, 호불호와 추론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그리고 의식이 이루어지는 상황,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의 만남과 자아의 상태, 역할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그리고 혼에서 영으로 나아가는 상황, 그 관통이 상상- 열한 번째 감각, 영감- 열 두번째 감각, 직관- 열세번째 감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이 혼에서 영으로 나아가는 것이 열 한번째 감각으로, 열 두번째 감각으로, 그리고 열 세번째 감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혼에서 영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그 결과가 인간의 진화라는 것이 슈타이너의 주장이다.
사실 이를 믿기는 어렵다. 그리고 슈타이너의 모든 주장이 그렇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만약 이를 경험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래서 슈타이너 책은 여러 번 꼼꼼히 읽어야 한다.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 삼아서 슈타이너를 공격하고 그를 불신하는 것이다.
필자 역시 참 신기한 경험을 하였다. 이렇게 경험하면 슈타이너 책을 계속 읽게 된다는 것이 마치 마법과 같다. 물론 이것 또한 정신의 속성이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게서 듣기 싫은 음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렇게 필요한 주의를 자신에게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은 이러한 방식으로 점차 자신에 대한 고차 -영감 인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도달 할 것입니다(인간, 혼, 영에 관한 지혜, 2023, 279)." 먼저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중에서 자신이 듣기 싫은 음을 찾아야 한다. 다음은 그 '실험'이다.
인간은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자아를 본다. 이는 인간이 보는 자아가 상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자아는 거울 뒤에 있다는 의미도 된다. 거울을 치워야 자아가 드러나겠지만, 거울 뒤에 있는 자아를 불러내도 -자아를- 만날 수가 있다. 그렇게 불러 낸 자아를 가만히 보면서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를 해보는 것이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도, 레, 미까지는 자신 안에 위치하고, 파는 몸과 바깥의 경계에 위치한다고 한다. 솔, 라, 시는 바깥의 정신세계에 위치한다. 여기에서 도는 자아 자신이다.
그렇게 해 보니 파가 가장 듣기 싫었다. '파'음이 듣기 싫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몸서리가 쳐질만큼 듣기 싫었다. 너무나 신기했다. 그래서 여러 번 해 보았더니, 도,레, 미까지는 그 음이 필자의 몸안에 위치해 있었지만, 그렇게 듣기 싫지는 않았다. 파에서는 아주 아주 듣기 싫었다. 솔, 라, 시는 필자의 몸 바깥에 위치해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부르거나 들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슈타이너에 따르면 듣기 싫은 음이 아름다운 음으로 변했을 때 '더 깊은 자아', 고차- 영감으로 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혼에서 영으로 가는 길로,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 간다. 열 한번째, 열 두번째, 열 세번째 감각이 그 통로인 것이다.
열 한번째 감각은 인간의 미간 부분에 만들어지는 연꽃(챠크라)이고, 열 두번째 감각은 인간의 후두 부분의 연꽃, 챠크라이다. 그리고 열 세번째 감각은 인간의 심장에 만들어지는 연꽃, 챠크라이다. 이 챠크라는 아스트랄체의 촉수가 바깥을 향해 나아가면서 만들어진다고 한다(슈타이너의 주장). 요컨대 이 감각은 인간의 아스트랄체가 강화되어서 만들어진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이므로 인간의 감정, 호기심, 사랑, 열망, 인내 등등이 강화되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혼이 영으로 상승할려면 이와 같은 감정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만약 정신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감정을 관찰해서 이와 같이 고차- 감각으로 누구나 나아갈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나아가면 자신의 정신이 진화하는 것이지만, 이는 결국 자신의 몸도 치유하게 된다. 필자는 듣기 싫은 음이 아름다운 음으로 조금씩 변하자. 몸도 조금씩 치유되는 경험을 하였다. 위에서 만난 여자를 살펴보면 호흡이 조금 거칠었고 뇌파도 조금 강했다. 외부에 집중하다보니 힘이 들었고, 결국 자신의 뇌파가 강하게 변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마지막 슈타이너는 이런 사실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가 참 궁금하다. 이 책을 여러 번 읽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기 떄문이다. 물론 처음 읽을 때에도 이런 사실들이 책에 적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보지 못헸다. 그래서 정신은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경험해야 정신을 이해하고 또 경험한 만큼 정신이 발달한다. 물론 필자는 앞으로 얼마나 나아갈 지도 가늠하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정신이 물질을 인도하고 안내한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삶을 살고자 하지 않아도, 나의 몸은 정신에 따라서 변화하고 또 상하므로 자신의 정신을 파악해서 발달시켜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