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 치고 가재 잡고
글-德田 이응철(春川産)
몇 년 전이었다. 퇴직을 앞두고 한줄기 소망은 무엇인가! 그래, 퇴직을 하면 학원을 하나 차리자, 독서 학원-. 그 학원에 가면 200편의 장, 단편 소설은 의무적으로 읽는다는 확신을 학부모께 심어주어 독서의 붐을 일으키면 어떨까하는 바람이었다.
문학과 그림을 평생 벗하며 욕심을 탐한 그 때를 돌아본다. 서점이 사라지고 책보다는 인터넷에 더 가까운 작금의 세태를 글쟁이가 쏘아올린 방책이었으리라
타는 듯이 무더운 삼복염천(炎天)인 어제였다. 아파트에서 지척의 경로당을 가던 할머니가 중환자실에 입원한 두려운 대낮에 88점의 답안지를 들고 활활 타는 무더위 속으로 나는 달려간다. 살인적인 더위마저 이젠 일상처럼 느껴진다.
이 무더운 염천지절을 견디어 내는 피서법은 무엇인가? 단편문학의 폭포에 빠져 누렇게 퇴색된 책장을 넘기며 문제를 출제하고 기다리는 수험자를 찾아가 채점한 답안지를 돌려주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단골로 등장한 문학작품들을 다시 읽으며 협소해진 내 문학의 도랑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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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편의 단편소설로 도랑을 치며 가재를 잡는다. 어제 20회의 문제를 출제했다. 그래! 김유정의 봄.봄, 산골나그네가 4월이었으니 다섯 달이 벌써 족히 되어간다. 내 고장 단편문학의 거장 김유정의 작품을 우선 권했다. 토속어에 매료되어 쉽게 진입한 그는 매주 흥미롭게 답안지를 기다리었지-.
작품 산골나그네를 보자. 객관식 18문제, 주관식 7문제였다. 처음엔 4지 선다형으로 작품을 읽지 않으면 답할 수 없도록 출제하였다. 그리고 뒷부분에 작가에 대한 연구와 이 소설의 특징을 조목조목 제시해 문학의 감칠맛을 더했다.
본업과 거리가 먼 생뚱맞은 문제를 매주 달게 받고 답안지를 작성하는 수험생은 오늘도 부지런히 문학의 숲을 서성인다. 이 고장 김유정작품 20편을 거의 다 읽어내고 이제 이효석, 조세희, 김동인, 계용묵작품으로 보폭을 넓혀간다. 넉 잠을 자고 소나기처럼 소리 내 던져준 뽕나무 가지를 왕성히 먹어 치운한마리의 누에다.
그는 이효석의 대표작이 메밀꽃이 피는 벌판위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예술로 펼쳐지는 글로 영원히 묻어둘 문외한이다. 소위 가방끈이 짧아 성실하게 손기술로 생을 살찌워 온 그는 부와 자식농사로 풍년을 일군 성공한 삶이지만, 아다다처럼 물질적인 오욕에서 눈을 돌리려 안간힘을 쓴다.
직업상 그는 많은 이야기들을 접한다. 그러나 한 줄의 글로 표현하기에는 기회도 없었고 피력할 용기 또한 없다. 문학의 초인종을 누르고부터 그 누구에게도 느낄 수 없는 환희와 보람들을 엿볼 수 있다.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 탐스러운 독서의 싹을 키울 수 있었던 그 해 여름이었다.
독서의 길목에서 조력을 위한 나의 작은 배려가 벌써 20회를 넘어선다. 사람의 생애는 하나의 기다림이라고 했다. 기다리는 곳을 찾는다. 늘 나는 그에게 정독은 나무요, 다독은 숲이라고 일갈(一喝)한다.
정독을 권한다. 한 줄 한 줄 문학의 사래밭을 겨리로 경작한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무려 67문제를 만들어 왼손잡이 동이처럼 문학의 등에 그를 업힌다. 다독은 독서의 왕이다. 초보자인 독자에게 정독만큼 문학의 만남을 맛남으로 느끼는 것은 없으리라.
고장난명(孤掌難鳴)-.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 법, 독서에 대한 제시와 충실한 과제수행이 맞아 떨어진 그 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문학체험을 성숙시키는 데는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니, 하나는 많이 읽어내는 다독이요, 문학의 본질과 특성을 개념적으로 잘 이해하는 정독이 다른 하나가 아닌가!
그가 인지하는 소설이란 무엇인가? 은밀한 곳에 숨겨두었던 특별한 언어들이 별똥별처럼 빛을 내며 하늘에서 툭 떨어진 보따리로 인식했던 모양이다. 두부는 콩으로 만들어진다. 독서를 하면서 인간의 존재 모습이 바로 문학의 밭임을 이제 느낀다. 알알이 터지는 픽션들 모두 가정사라는 범주에서 피부로 맛을 본다.
고귀한 체험만이 문학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곳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저마다의 삶들이 글감임을 누누이 강조한다. 거기엔 피치 못할 운명론도 있고, 상놈이 저지르는 짐승만도 못한 엄청난 몸짓들이 서려있음을 그는 터득한 여름이다.
우리 집에서 반시간 거리에 그의 일터가 보인다. 오늘도 맛있는 새참을 광주리에 이고 논둑에 펴 논 예전 어머니가 된다. 문학서적과 문제지를 맛깔스럽게 펴놓고 오면, 어찌나 맛있게 섭취하는지 고득점의 범주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옛 선인들의 피서는 무엇이라고 했는가? 독서라고 했다. 찜통더위로 산이나 바다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폭염을 떨치기 위해 야단법석인 한 여름을 우리는 독서로 이겨내고 있다. 늦게 찾아온 기쁨은 쉬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순(耳順)에 당도했지만, 매주 새벽이면 서면을 돌아오는 마라토너가 뒤늦게 문학의 맛을 당긴다.
오늘도 제시된 문제를 연필로 답을 달고 확신이 서면 지우개로 지우고 볼펜으로 답을 써서 제출하는 신중함에 그저 흐뭇해 박수를 보낸다. 신비스러운 몸짓의 작은 짐승 같아 정이 간다. 올여름 결실이 좋다. 김유정작품은 거의 섭렵하고 이제 내로라하는 한국단편소설들을 폭식한다. 그는 누구인가? 정년을 모르는 기능인이다. 서점이 사라지고 독서인구가 급감하는 세태에 한 명의 독자를 키워낸 그 해 여름은 아름답다.
삶의 길목에서 두리뭉실로 막힌 문학의 도랑을 치면서 인생의 참맛을 문자로 직조하며 삶을 훨씬 드넓은 안목에서 바라보는 가재를 잡은 여름이다. 매미가 어림도 없는 자시(子時)에도 울어대는 수상한 세월이지만, 달고 시원한 문학의 바다로 독자 한 명을 안내한 올여름은 진정 값지고 보람차다.(끝)16매
첫댓글 대단한 열정에 박수를~~~~```
오늘이 말복. 더운 여름을 값지고 보람차게 보내는 덕전님 부럽습니다.
휴-육수가 줄줄 등줄기로 흐르는 여름날 건강하시지요.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생명수같은 이슬을 식물에 주시는 보리님-.
열려라, 보리의 건필을 ㅎ
이 무더위에도 문학을 위한 봉사에 힘쓰는 덕전님께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네 ㅎ 단 한사람이지만 때문에 고모라성이 망하지 않겠지요.
독서-,맛깔스러운 글은 현대보다 근대가 더 빼어난 것 같아요.
조각은 중세, 철학은 고대가 더 위대한 것 처럼 ㅎ 감사
가장 좋은 피서법을 다시 상기시켜 주셨네요. 그런데 요즘은 마음따로 몸 따로 ㅎㅎ
정말 손꼽아보니 벌써 5개월 처음엔 진도가 우보같았지요.ㅎ
어쩜 그리도 적극적인지요. 제가 처삼촌이지요.벌초도 하지 않는-.
이런 식으로 열명만 문제를 내고 책을 읽고 답을 달아제출하면 점수를 메기고
그런 독서지도도 괜찮은 듯-.마당쓸고 동전줍고 ㅋ 일거양득의 여름이었지요.ㅎ 감사
그런 흔적들이 강원수필방에 보면 김유정코너가 있어요.문제가 아까워 거기에 20회를
올려 놓았더니 추천이 되어 메밀꽃필무렵의 문제가 인터넷에 선정, 한번 쳐보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