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의 '자전거 출타'는 초반 '상주 가서 전 서방 찾기'로 보냈고,
그 뒤로 '문경' '안동' '영양' '동해안'에 닿는 행로였는데요,
이런 저런 일도 제법 많았기에 할 말 역시 많지만, 어쩐지 다 풀어가기엔 힘도 부치고 해서,
그 중 좀 특별했던 두어 가지만 간략하게 소개하는 걸로 마무리를 짓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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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가난한 나그네에겐...)
'문경'에서 아침에 출발해 저녁 무렵 지친 몸으로 '안동'에 닿았는데,
(특히 막바지에 넘은 가파른 고개는 너무 힘들었다.)
내 짧은 입맛은 그런 와중에도 아무 거나 덥석덥석 먹으려 들지를 않았다.
그러니 고생이지......
그래도 어쨌거나 찜질방을 찾아가기 전에 뭔가를 먹어야겠기에, 늘 그렇듯 시장통을 찾아 갔는데,
어딜 가서 뭘 먹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가능하면 싸면서도 맛있는 걸 먹고 싶은데, 그런 게 있기나 할지, 또 뭘 알아야 찾아갈 텐데......
그래서 일단 시장을 한 바퀴 돌며 탐색을 했는데 맨 '돼지 국밥' 같은 것들만 있는 등 난감해서, 한 코너에 과일점 아주머니가 앉아 있기에 무작정,
"저, 아주머니... 여기 시장통에서, 어딜 가서 식사를 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내 행색을 훑어보더니,
두 군데를 알려주면서, 시장통보다는 거리에 있는 곳(시장 밖)부터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식당을 찾아갔더니, 그 날은 장사를 않는 모양으로, 문이 닫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시장통으로 돌아와 두 번째 식당에 갔는데, 거기도 뭔가 시원찮아 보였다.
식당은 맞은 것 같은데, 여인이 식당 입구에 앉아 뭔가 다른 걸(토란대를 다듬어 말리는) 하고 있었고, 식당 안에 좌석도 없었고, 깔끔하지도 않아 보여서,
이런 곳에서 뭘 먹으라고? 하다간, 그래도,
"아주머니, 여기도 식사가 됩니까?" 하고 물었더니,
"밥이 없는데예."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까 과일점 여인이, "그 식당에 가면 국수도 끓여주는데......" 했던 말이 떠올라,
"국수도 끓여준다면서요?" 했더니,
"어떤 국수를 원하시는데예?" 하기에,
"제가 뭘 알아야지요. 주는 대로 먹겠지요." 하고 나는 마치 남 얘기하듯 답을 했는데,
"잔치국수도 괜찮아예?" 하고 묻기에,
"알아서 해 주시면......" 하자,
"배 고프신 거 같은데, 국수 가지고 되겠어요?" 하고 다시 묻는 것이었다.
"예, 배는 고픈데... 하는 수 없지요." 했더니,
"그럼, 양을 많이 해서 드리지예..." 하면서 하던 일을 멈추더니, "거기에 앉으세요." 하기에,
자전거는 그 옆 공터에 세워놓고, 나는 식당 밖 파라솔 탁자에 앉았다.
지친 몸에 그렇게 멍하니 앉아서 한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식당 부인이 내온 국수는 정말, 보기만으로도 푸짐한 '곱빼기'였다. 아니, 그 보다 많은 양이었다.
그저 별 기대도 않고 있었던 나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국수 양이 많은 것도 그랬지만, 그 식당 부인의(70은 돼 보였는데...) 인정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활기를 찾으며(흥이 올랐기에 내 자신의 사진을 찍을 의욕도 생기는 것이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 듯' 그 국수를 다 먹어 치웠다.
양은 많았지만, 그 정도를 못 먹을 나는 아니었다.
하루 종일 가래떡 두 가닥(어제 사서 먹고 남았던)에 초콜릿 하나 먹은 게 전부였던 나는,
후룩 후루룩... 국물도 남기지 않고 그 많은 국수를 다 먹어치웠던 것이다.
그러면서 축 늘어지는 몸으로 가격을 물으니 5천 원이라기에(원래 그 집의 국수값이 얼만지는 모르고 있었다.),
7천 원을 드렸다.
그러자 깜짝 놀란 여인이 나를 바라보기에,
"제가 곱빼기를 먹었는데, 그 정도는 드려야하지 않겠어요?" 하고 웃었더니,
"그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하기에,
"저는 아주 잘 먹었거든요? 아주머니께서 넉넉하게 주셨는데, 보시다시피 제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서... 더 드리는 것도 주제 넘을 것 같아, 그 정도만을 드렸을 뿐입니다." 하자,
"고마워예......" 해서,
그걸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렇게 허기를 채웠으니 이제 떠나려고 가방을 챙기는데,
"이 것 좀 드시고 가세요." 하면서 뭘 내오는 게 아닌가.
"예? 아, 예......"(그 순간, 내 입이 귀에 걸렸을 것이다.)
'식혜'에, '구운 밤, 고구마'였다.
아무리 국수가 곱빼기였지만 그래도 뭔가 심심한 느낌이었었는데,
(나는 먹기 전에 그 사진도 한 장 찍어두었다.)
식혜도 맛있었지만(사실, 막걸리라도 한 잔 하고 싶던 참이었는데, 그 대신 마실 수 있었던 식혜는 너무 시원하고도 맛있었다.), 구운 고구마도 밤('산 밤'었다.)도 너무 맛있어서...
나는 거기에 한참을 앉아(그 걸 다 먹고 싶었지만, 체면 상 반절만... 더구나 앞니가 없다 보니(임시 틀니는 벗어놓고 먹었다.) 칼로 밤을 잘라, 역시 칼로 파먹었다.) 그걸 먹는 기쁨을 만끽했다.
근데, 스스로도 좀 우습긴 했다.
다 늙어 이제는 이빨까지 빠진 노인네가 시장통에서(남들이 다 보고 지나다니는) 체통머리 없이 이게 무슨...... 하는 생각이 아니 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나에겐 삭막하기만(친지거나 지인 하나 없는) 한 이 부근의 큰 도시인 안동인데, 그래서 찜질방을 찾아가 잠만 자고 떠나면 그 뿐일 곳에서, 이 정(情)의 기억 하나 만을 가지고 돌아가도 성공(?)일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안동역 부근의 '찜질방'을 찾아간다고 하자, 그 여인이 거기는 취침이 불가하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는데, 그래도 내가 직접 찾아가 물으니(아주 큰 건물 벽에 커다란 글씨로 '25시 찜질방'이란 안내까지 버젓이 내건 찜질방), 그 아주머니 말이 사실이어서, 하는 수 없이 시 외곽에 있는 허름한 찜질방까지 찾아가야만 했고, 그렇게나마 찜질방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