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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꾸는 사람
1. 나를 비싸게 팔 수 있게 만들기
연공서열에 의해서 월급을 받던 시절은 사라져 가고 점점 연봉제에 의해 월급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결국은 월급 몇 푼에 나를 팔고 있는 셈이다.
[내가 1년에 얼마를 받기로 하고 나의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겠습니다]하고 서약을 한 셈이지 않는가? 그러기 때문에 내 몸값을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누구라도 그런 방법으로 더 받고 싶어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연봉제 시대에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가 있는 것인가?
우선 연봉 협상에서 우리한 조건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유리한 조건이 무엇일까? 가장 확실한 협상 조건이라면 그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사람]은 바로 [VIP]가 아닌가? 그런데 일반 사원이 어찌 [VIP]가 될 수가 있다는 말인가?
[VIP]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사전적인 의미의 [귀빈]이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에서는 회사에서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바로 이런 사람이 된다면 어느 회사에서라도 연봉협상에서 귀한 대접을 하게 될 것이고, 내 몸값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지 않겠는가 ?
이렇게 VIP가 될 만큼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것이 필요할 것인가? 여기에는 몇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성과를 얼마나 올릴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회사에서 맡은 일에 대해서 큰 성과를 올려서 회사에 이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면 별 소용이 없는 일이다. 멋진 아이디어로 회사의 이익에 성과를 거두었거나, 맡은 일을 잘 처리하여서 회사에 공헌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회사에서 그 만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일이다.
두 번째로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이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자격증이 가장 확실한 조건이다. 회계 사무를 담당하는 사원이라면 옛날에는 주산 능력, 부기 능력 등이 필요했지만, 요즘에는 전산회계자격증이 더 효과 있는 자격증이다. 모든 일을 전산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전산능력이 필요한 것과 같이 해당 분야에 대한 자격증이 있으면 가장 확실한 협상 카드가 아닐까 싶다.
세 번째는 현재 근무하는 부서에서 인정을 받았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능력은 우수하지만 부서 안에서 별로 인기가 없고, 일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부딪쳐 잡음을 내는 사람은 환영을 받지 못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일도 잘하지만 어느 정도 인간관계를 잘하느냐는 그 사람이 직장 내에서 얼마나 잘 적응하고 발전해 나가는데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물론 다른 동료들의 눈에 띄게 상사에게는 아부하고, 부하 직원들에게 군림하는 전형적인 아부 파라는 소문이 돌게 되면, 그 사람은 인격까지 의심을 받는 그런 경우가 되어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상사나 동료, 부하직원들까지 모두 친절하고 유능하다는 평을 받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사람은 남다른 능력을 인정받아서 먼저 승진도 할 수 있고 연봉 협상 등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흔히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을 평가할 적에는 능력보다는 인간관계를 얼마나 잘 하느냐가 더 높은 평가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심지어는 10%의 능력과 90%의 인간관계를 능력으로 판정하는 회사도 있다. 주로 대인 관계를 해야하는 부서에서는 당연한 평가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능력을 갖추었더라도 예의 바르고 겸손한 사람이라면 더욱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고, 또한 자신을 더 좋은 조건으로 연봉협상을 얻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 나를 가꾸어야 하는 까닭
그렇다면 왜 나를 가꾸는 일이 필요한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기 마련이다. 우리 속담에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아무리 재주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자기 자신을 보호하거나, 자기가 먹고살기 위한 한 가지 정도의 재주는 타고난다는 말이다. 보잘것없는 굼벵이도 굴러서 자기 몸을 피하는 재주를 타고나서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어찌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려는 재주를 가지지 않았겠는가? 다만 이웃이나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의 그런 능력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점점 노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또한 전 세계적인 경향이 [평생교육]이라는 명제 앞에 모두 한 가지로 달려가고 있는 세태이다. 이런 세계적인 움직임에 발 맞추어서 우리도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가꾸어 가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평생을 배워도 다 못 배운다]는 말과 [손자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말을 한번 되새겨 보자.
이렇게 평생을 가꾸어 가야할 내 자신을 일찍부터 바르게 알고 가꾸어 간다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자신을 올려놓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자기 자신을 남보다 나은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고, 남에게 부림을 당하는 위치가 아닌, 남을 부리는 그런 위치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부림을 당하는 위치와 부리는 위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관리자 지상 주의가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사람이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오르고 싶고 명예를 가지고 싶은 것이 기본 욕망이 아닌가? 그렇다면 어떻게든지 남보다 더 나은 위치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일찍부터 내 자신을 가꾸고 길러서 남보다 뛰어난 위치에 오르라는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6학년 졸업 때가 되어오면 그 교실에 들어가서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자기 자신을 가꾸어 가라는 이야기를 꼭 해주곤 한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하고자하는 일이 무엇이며, 장차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를 적어 보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작성 된 자신의 앞날에 대한 계획서를 보고, 그 사람이 장차 이루어낼 일을 축복하는 시를 만들어서 코팅까지 하여 졸업장과 함께 나누어주고 있다. 이미 5년 동안 이렇게 졸업생 전원에게 장래를 축원하는 시를 남겨 주는 일을 하는 동안에 우리 어린이들이 지난날과는 달리 정말 진지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옛날은 장군, 대통령, 국회의원, 과학자, 이런 식이고 가장 정확하게 정한 것이 교사 정도 이었지만, 요즘 어린이들은 교사도 초등교사, 유치원교사, 학원강사, 태권도 사범, 이런 식으로 구체적이고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있다. 요리사, 헤어 디자이너, 웹 디자이너, 수의사, 애견센터, 이렇게 자기가 갈 길을 정확하게 정하고 자신의 취미와 특기를 살려 보겠다는 것이 요즘 어린이들의 생각이다.
이런 어린이들에게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마음먹었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얼마나 잘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어떤 일에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으려는 생각이 없이는 어떤 일도 잘 이루어 내기는 어렵다. 가령 여러분이 한 덩이의 흙이라고 생각을 해보자. 그 흙이 어디에 쓰였는가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것 아니겠는가?
가령 그 흙을 화분에 넣는 흙보다는 화분을 만든 흙이 더 값진 것이 되고, 그 보다는 옹기를 만들었다면 조금이라도 더 값비싼 것이 될 것이며, 그것으로 사기 그릇을 만들었다면 옹기보다는 더 비싼 것이 될 것이다. 만약 그 흙이 도자기가 되었다면 더욱 값비싼 것이 될 것이지만, 만약 청자가 되었다면 그것도 고려 청자가 되었다면 그 값은 수억 원이 될 것이다. 같은 크기의 흙 한 덩이는 몇 십원 어치도 못되는 것에서부터 수억 원에 이르기까지 갖가지로 달라질 수 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어떤 그릇으로 만들고 싶은가? 그렇게 비싼 청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만큼 노력을 하고 자기가 잘 하는 것을 갈고 닦아서 남다른 무엇을 가질 때에야 보석처럼 빛나는 삶을 살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각자가 앞으로 이루어 낼 일을 축원하는 시를 안겨 주었으니, 이들이 자라서 정말 멋진 삶을 꾸려 갈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이들에게 희망을 걸어 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평생교육의 시대이다. 누구나 어디서든지 배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자신이 게을러서 못하지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길을 열려 있다. 사이버학습이나 각 대학의 평생교육원의 프로그램을 보면 정말 욕심이 나는 그런 과정이 얼마든지 있다. 내 자신을 갈고 닦는 길, 나를 가꾸는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을 어떨지?
3.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의 능력을 지녀
모든 사람에게는 나름대로의 능력이란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이론이다. 물론 그 능력이라는 것이 정말 남다른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고, 정말 한 부분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숫자에는 뛰어난 사람이 글자를 못 읽는 경우도 있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겪은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70년대 초반, 우리 교육이 갑작스런 팽창으로 교사가 부족하여 야단이던 시절에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10여 년이나 선배가 되는 분이 계셨다. 어찌된 일인지 해마다 꼭 1학년 담임만 하는 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은 그 선생님이 구구단을 제대로 못 외운다는 것이었다. 사실인지는 확인이 안 되어 알 수 없고 설마 그러랴 싶었지만, 어찌되었건 2학년을 맡았다가 구구단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는 1학년만 맡는다고들 수군거렸다. 그런데 내가 본 그분은 대단한 수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무렵에 한 창 유행하던 계를 많이 운영하던 그분은 이 방면에는 도사 중에 도사였다. 몇 명이 얼마를 목표<백만원짜리>로 월이자 몇 %로 계를 꾸미려고 한다고만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1번부터 끝번까지 월납액을 줄줄이 외는데 받아쓰기가 바쁠 정도였다. 더 놀랄 일은 이 방면에 별로 경험이 없는 우리는 주산을 동원하여서 밤새껏 해보아야 정확하게 맞추기가 어려운데도 이분은 이렇게 정확한 숫자가 나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람이란 어느 분야에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태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이를 잘 이용하지 못하고 썩이고 말기에 불행한 것이다.
태종 이방원이 군사를 기르고 힘을 키워나가고 있을 때, 어느 날 시골에서 한 젊은이를 만났는데, 듬직하게 생긴 것이 어디 쓸만하겠다 싶어서 물어보니 가진 재주가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보아도 아까운 젊은이라고 생각한 이방원이 따져 물으니 딱 한 가지 재주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목청이 어찌나 큰지 동네에서는 아무도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만큼 큰 소릴 지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방원은 그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그리고 몇 년 후 왕자의 난이 일어나서 피난을 가게 되었을 때, 강을 건너야 하는데 저 건너편에 사공이 배를 대고 있었다. 이 때에 그 젊은이가 큰 목소리로 사공을 불러서 방원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게 되었고, 위험을 피하게 한 큰공을 인정받게 되어 큰 벼슬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처럼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서 버려지고 마는 재주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얼마나 다양한 재주를 가지고 살아가는 시대인가? 자기가 가진 나름의 재주, 능력을 잘 발휘만 하면 얼마든지 유명인이 되고, 명망을 얻어서 멋진 삶을 살아갈 수도 있는 시대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제주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우선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알아보아야 한다. 무엇인가 잘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더 발전 시켜서 남다른 재주로 발전을 시킬 수가 있는지를 판단해 보아야 한다. 물론 남다른 점이기는 하지만 별로 이용가치가 없는 일일 때는 그것에 대해 미련을 버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일을 내가 어느 정도까지 발전을 시켜서 무엇을 얼마만큼 만들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 보다 더 발전적인 능력을 지녔다면 나는 1등이 아닌 2등 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서는 크게 빛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내가 1등 보다 더 멋진 기록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따져 보고, 더 계속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남다른 재주로 전국에서 1등이 되었을 때는 무엇인가 앞길을 열어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4. 타고난 재능을 멋지게 활용한 사람들
우리 국민은 전 세계에서 독일의 게르만 민족, 이스라엘의 유태인종과 더불어 가장 재능이 있는 민족으로 손꼽히고 있다. 지금까지 기능을 가지고 노벨상을 받은 경우가 없다고는 하지만 요즘에는 노벨상의 후보로 충분히 지명을 받을 만한 업적을 가진 우리 한국인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과학 분야만이 아니라 음악이나, 체육, 무용 등에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활동을 하는 사람이 상당수에 이른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과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일까? 물론 어느 민족이 조금은 더 나은 경우는 있지만 반드시 다른 민족보다 우수한 민족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는 다른 민족에서 볼 수 없는 몇 가지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우선 남다른 손재주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음식 문화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음식을 먹으면서 사용하는 젓가락질은 우리민족의 손에서 미세한 손가락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훈련 시켜 왔었고, 그래서 어느 민족 보다 뛰어난 손재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기능 올림픽이다. 66년 처음으로 가입을 하여 75년에 처음으로 종합 2위를 기록한 다음 77년부터 91년까지 무려 12번이나 종합 우승을 하는 전대 미문의 기록을 가진 나라이다. 어느 나라도 손재간을 겨루는 기능올림픽에서 우리가 우승을 하기 시작하여 12회를 거듭하도록 까지 단 한 번도 우리를 이긴 나라가 없다는 말이니, 얼마나 우수한 손재간인지는 분명한 일이다.
또한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인 줄기세포 연구의 선두주자 황우석 교수는 전세계 모든 과학자들에게 당당하게 [우리의 줄기세포 연구가 성공을 하게 된 것은 이 젓가락으로 단련된 미세한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는 손재간]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우리 젓가락을 한 보따리씩 싸들고 나가서 실제로 연습을 시켜 보기도 하고 이걸 과학자들의 자녀나 손자들에게 주는 멋진 선물로 주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의 손재간을 거기에서 그친 게 아니다. 요즘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박세리, 박찬호, 미셀 위 같은 운동 선수들, 전세계 음악계를 흔들어 놓은 어린 천재 소녀 장한나, 먼 옛날부터 널리 알려진 피아니스트 백건우, 삼남매 음악천재 정트리오<정경화, 정명화, 정명훈> 등 손재간으로는 어느 나라에 지지 않는 훌륭한 음악가 스포츠스타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목소리로 세계를 제패한 성악가 조수미, 요즘 한 창 뜨고 있는 천재소녀 [보아] 같은 경우를 보라. 어린 나이에 움직이는 기업이라고 부를 만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 판매고를 올리기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만약 이들에게 이런 세계적인 재능과 특기를 길러 주지 않고, 우리 나라의 대부분의 청소년들처럼 열심히 공부하여서 서울대학에 들어가기만 바라고, 과외 공부로 시간을 보냈다면 과연 어찌 되었을까? 그들이 지금 저렇게 찬란한 빛을 발하는 멋진 스타가 되어 있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이렇게 모든 국민이 다 매달려서 선두를 빼앗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공부보다는 남들이 별로 하지 않는 운동이나 예술, 또는 다른 어떤 기능을 개발하여 나가는 길이 훨씬 더 빠르고 확실한 길이 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다만 그런 경우를 보면서도 그렇게 힘들게 노력하는 자녀들이 안쓰러워서, 또는 부모님의 욕심에 차지 않는다고, 기어이 공부를 하는 쪽에다가 줄을 세우고 억지를 부리고 있지는 않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5. 내가 제일이라는 자부심을 길러주자
나는 지금 교직생활 42년째로 마지막 1년을 남기고 있다. 41년 11개월 14일이 내가 교직에 몸담아온 모든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남은 시간은 11개월 14일이 남은 셈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교직에 몸담아 오면서 나는 한 가지 교직관을 정립하여 지켜오고 있는데, 그것은 [억지고 가르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다.
1967년 당시에는 중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러야 하던 시절이었다. 교직 생활 4년 차인 나는 6학년을 맡게 되자 정말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아이들에게 매달렸었다. 스파르타식으로 두들겨서라도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하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젊은 혈기로 멋지게 한 번 제자들을 가르쳐 좋은 성적을 거두어 보고 싶은 욕심에서 앞섰던 것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밤 11시까지 공부를 시키고 나서 교실에 잠자리를 펴고 잠이 들었다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운동을 시켜서, 아침 공부를 한 시간 하고 나서, 아침밥을 먹으러 보냈다. 아침밥은 집에서 먹지만 점심과 저녁밥을 싸 가지고 와서 온 종일 참고서와 수련장, 일일시험지와 싸우는 공부를 전기도 아닌 호롱불 밑에서 밤 새워 가면서 한 것이 5월 15일부터 11월 30일까지였다. 6개월15일 동안 에어컨 바람이 불어 시원하거나 난방기 바람으로 따뜻한 것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자연 상태의 맨 교실에서 합숙을 한 것이었고, 그 결과는 제법 좋은 것이었다.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군내 4개 중학교에서 각 각 1,2,3등 안에 들었던 아이가 8명이었다. 읍내 여자 중학교에서 1등, 남자중학교에서 2, 3등 면내 사립 중학교에서는 1등부터 4등까지 모조리 휩쓸었고, 학력 인정을 받는 고등공민학교에서는 1등부터 7등까지 모두 휩쓸었으니 괜찮은 성적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그렇게 강하게 지도를 하지 않으니까 풀려서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이들이 고등학교 입시에서는 1차에 여자만 단 2명이 합격을 하였을 뿐, 남자들은 모두 낙방을 하는 초라한 결과를 보고 나서야 나는 이렇게 깨달은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억지고 가르치는 교육이 아닌, 스스로 노력을 하여서 자신의 앞날을 개척해 가게 만들어 주자는 생각으로 [나를 가꾸는 사람]이 되게 하자는 교육목표를 세우고 노력을 하게 된 것이다.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 되어 보려고 노력을 하여서 자기 자신을 무엇인가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정말 어려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렇게 너무 철학적으로 생각을 하자면 한이 없다. 그래서 실천 방향을 우선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 지를 찾게 만들어 주기로 하였다. 그런 기회를 주기 위해서 학교에서는 매 분기별로 [으뜸 자랑대회]를 가진다. 자기만이 잘 할 수 이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그것을 신청하여서 다른 아이들과 겨루어서 자신이 1등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해주자는 것이다. 흔히 공부 잘하는 아이들 앞에서 주눅이 들던 아이들이
"너는 공부를 잘하지만, 나는 달리기를 잘하고, 영주는 윗몸 일으키기가 일등이야."
하고 자기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같은 일등 짜리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 앞에서 감히 생각지도 못하던
"누구나 자기가 잘 하는 게 있는 것이니까 남을 깔보지 마."
라고 말하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자신감을 가진 아이들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욕심을 가지게 되고, 그리하여 당당하게 세상을 자신 있게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한 가지에 자신감이 생기면 모든 일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고,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보게 되면서, 이제 자신도 남을 무시하지 않게 되어서 남을 존중하고 누구나 기죽지 않으며, 남을 기죽이지도 않는 자세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자기 자신의 재주를 더욱 발전시키고 키워나간다면, 이 아이들 중에서 제2의 [보아]나 [미셀 위], [박찬호], [김영욱] 등 전세계적인 인물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6. 아까운 재주를 살리지 못하는 일 없게 하자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지니고 나온 재주를 잘 살려서 세상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천재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그 천재들이 일생 동안 내내 천재성을 발휘하여 정말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보다는 오히려 일찍 시들어 버리는 경향이 더 많다.
그렇다면 왜 이런 천재들이 자라면서 그 천재성이 퇴색하고 마는 것일까? 여기에는 지나친 광고로 인하여 그에게 지워진 주위의 무거운 천재로서의 기대가 큰 부담이 되었을 R서이라는 것이다. 너무 어려서 어린아이에 걸맞지 않는 천재성을 가지고 적어도 성인도 이룩하지 못할 만한 엄청난 어떤 것을 요구하는 그런 사회에서 잘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1960년대 초 나이 네 살 밖에 안 된 아이가 4개 국어를 구사하고 미적분을 풀어 '천재 소년'으로 불렸던 우리 나라의 김웅용(金雄鎔)씨가 있다. 그의 IQ는 210으로 측정되어 현재 살아 있는 인물 중에서 세계 최고의 아이큐로 인정받고 있다.] -엠파스 검색-
물론 이것은 기네스 북에 올라 있는 사실이다.
[일본 속담에 '열 살에 신동(神童), 열 다섯에 재자(才子), 스물에 평범(平凡)'이라는 말이 있다. 김웅용 소년에게 해당됐던 말인지도 모른다. 올해 53살인 과거의 천재는 당시의 대단했던 기대와는 달리 지금은 모 대학의 평범한 교수로 살아가고 있다.]--엠파스--고 한다.
이 김웅용의 부모는 당시 서울 시내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 정도면 평범한 가정도 아니고 넉넉히 뒷바라지를 해줄만한 능력을 갖춘 집안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천재 김웅용이 18세에 예비고사에 낙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질 정도로 천재성을 잃고 말았다는 소식이다. 이 말이 사실인지는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아무튼 천재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만 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뛰어난 천재가 그 빛을 잃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무리 천재라도 모든 면에서 모두 천재성을 지닌 인간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른 일반 사람들의 지나친 기대는 아마도 무척이나 천재를 힘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주위의 요구에 걸맞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억눌림은 스스로를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비하하게 만들고 결국은 자기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고 좌절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영재 교육을 주도하는 것은 특수 목적고등학교로 육성되고 있는 과학고와 외국어고, 그리고 민족사관고 등이 있지만 보다 더 어린 시절에 이들의 천재성을 길러줄 그런 교육기관은 없다. 다만 요즘 각 교육청 단위로 영재교육원을 만들어서 나름대로 영재를 발굴 키워 나가고 있지만 아직은 초보단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우리의 경우 가장 빛나는 자원이 이적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세계적인 지적 수준과 교육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런 국가 최대 자원인 인재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에 국가 차원의 준비와 방안이 마련되고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 저야 할 것이다. 5%의 천재가 온 국민을 먹여 살린다고 하지 않는가?
천재를 천재답게 기르는 것은 국가의 숙원 사업이어야 한다. 요즘 가계 각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하고 잇는 젊은이들에게 천편일률적으로 대학 입시 공부만 시켰었다면 과연 그들이 지금처럼 자기 영역을 개척하여 빛나는 스타의 자리를 굳히는 일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나라의 장래를 위해 그리고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며,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살펴서 자기 영역을 개척하여 갈 수 있도록 밀어 주고 북돋아 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 싶다.
7. 뒤늦게야 재능을 찾아낸 사람들
우리가 위인전을 읽어보면 대부분의 위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남다른 재주나 어떤 가능성을 타고났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위인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기 나름의 재주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버려 둔 채 헛된 욕심만 부리다가 일생을 망치고 마는 일이 많아서 그런 것이지, 누구나 다 뛰어난 재주나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재능을 살리기만 하면 틀림없이 남다른 삶을 살아 갈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걸 모르고 살고 있는 게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럼 그런 재주나 재능은 과연 어떻게 찾을 것인가?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위인이나 훌륭한 일을 한 사람들 중에서 아주 뒤늦게 서야 자기가 잘 할 수 잇는 일을 찾아서 잘 개척해 나간 사람들이 무척 많다.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4대 성인이라는 분들도 어려서부터 훌륭한 사람들이고 성인이었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늦은 나이에 출발한 분이 있다. 예수는 젊은 시절에 일찍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활동을 하신 것으로 되어 있지만, 동양의 성자 공자는 나이 40이 훨씬 넘어서까지 인정을 받지 못해서 이 나라 저 나라로 밀려다니면서 혹시 어느 나라에서 자신의 정치철학을 받아 줄 곳이 없을까 헤매 다니면서 온갖 수난을 다 당하였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분 중에 한 분이지만 나이 쉰 한 살이 되어서야 겨우 작은 나라의 서울 시장이 되었고, 벼슬이 날로 높아져서 지금의 장관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겨우 5년만에 결국은 쫓겨나고 만다. 다시 자신을 받아 줄 곳을 찾아서 14년 동안이나 더 떠돌다가 일흔 한 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가장 훌륭한 정치를 펴서 바른 정치의 본을 보이고 세상을 바로 잡아 가는 데 앞장을 섰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결코 화려한 것도 멋진 풍요로움도 모른 채였다. 그렇게 살았지만 그의 생각을 쓴 책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책이고, 성전으로 존경과 숭배를 받는 성인 대접을 받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아직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헤매 다녀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헤매임도 자기 자신을 정말 자신의 삶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결코 헛된 것일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그렇게 헤매 다니다가 일생을 마치고 마는 사람에게는 일생 동안 내내 헛된 길을 걸어왔다는 후회만 남을 것이니까 너무 허망한 것이 될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 어린이들은 일찍부터 자기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정말 하고 싶은 것인지? 내가 평생을 해도 결코 싫지 않은 일이 무엇일까 를 생각해보고, 그런 일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찍부터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서서 열심히 해보면 20년 30년이 지난 다음에는 그 방면에서 큰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잇고, 혹시 그런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 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멍청하게 손을 내젓고 헤매 다니는 것보다야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노력을 해보고, 자신의 일생을 바쳐 열심히 노력을 해봤다는 자랑이나마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면 하기 싫은 일을 일생 동안하고 살았던 것보다는 훨씬 더 보람이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자, 이제 내가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내가 일생을 바쳐서 노력을 해도 조금도 헛수고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 볼 것인가? 그리고 끝내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자기 자신을 던지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것만이 자기의 일생을 허송하지 않고 보람있게 잘 사는 길이라고 권하고 싶다.
8.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빛나는 진주들
지난날의 위인전에서 흔히 발견하는 것이 어려운 여건을 이겨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라던 시절에는 비교적 부족함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친구에게 장남 삼아서
"너는 위인이 될 자격을 갖고 태어나지 못했다."
"위인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하고 놀리기도 하였었다.
왜냐하면 위인이란 그렇게 어려운 여건을 이겨낸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미 너는 가질만큼 갖고 태어났으니, 어려움을 이겨내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은 이미 위인이 될 한 가지 요건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쩜 어린 시절의 우리의 생각은 진리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것이 요즘 나이 들어서 생각해 본 위인들의 모습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사실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이라는 말 자체가 상당한 매력이 있고, 또한 그러한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의 어려움도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사람들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과 같이 어려웠던 시절을 망각하고 자기가 아주 따에서 솟은 사람이거나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인척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자기가 자라면서 겪은 일들을 잊을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생활을 하면서 남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그건 미덕을 보일 때 정말 위대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남들 보다 훨씬 더 이해심이 있고, 남들에게 친절하며 교만하지 않는 분이라는 칭송을 듣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나라의 경우가 아닌 미국의 한 사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미래의 창이란 책의 주인공인 데이브 롱거버그는 오하이오의 시골마을 출신이다. 가난한 집안의 12남매 중 다섯 번째로 태어나 여러 장애로 인해 21살에야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남자였다. 그가 자기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사람은 롱거버그 자신 이외에 누가 있었을까?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를 두고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아이'라고 평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바구니 사업을 일으켜 연 매출 7억 달러 규모의 기업을 만들었다. 게다가 그는 오하이오주에서도 가장 낙오된 그의 고향 드레스덴 마을을 유명한 관광지이자 가장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었다. 가장 평범한 사람조차도 성공에 이를 수 있음을 가르쳐 주는 감동적인 자서전이다.]
라고 소개 된 이 롱거버그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러분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리더라도 한 가지만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나 같은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이 성공할 수 있다면, 열심히 일할 의지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생의 대부분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면 쉽게 만들 수 있다. 여러분의 결심만 굳건하다면 성취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 없다." ]
고 자기 자신의 삶에 비추어 모든 사람들은 성공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그 성공 여부는 오직 <열심히 일할 의지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고양시에는 나이 60대에 들어서 등단하신 분이 한 분 계신다. 물론 60대라고는 하지만 등단 한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 분은 농협중앙회시지부 앞에서 날마다 남의 신발을 닦으시는 일을 하시면서 이런 일을 하시는 분이라는 게 눈에 띄는 분이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온 분이라는 것은 그분의 하시는 일이 남다르다는 점과 그런 속에서도 시심을 일깨워 오셨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날마다 가판대 같은 부스 안에서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일을 하는 분, 차분하게 생각할 겨를도, 남처럼 한가한 시간도 없는 분, 그리고 남들처럼 여유가 있어서 문학을 여흥쯤으로 생각할 그럴 위치에 있지도 않은 송병무님은 길가에 뒹굴다가 바람에 쓸려 가는 쓰레기 속에서 한 장의 종이를 발견하면 시심을 일깨우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의 발 뒷축을 보면서도, 발자국 소리에도 남 다른 감각으로 느끼는 그런 마음들을 키워내신 것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1996년 12월 5일, 빌 클린턴 2기 행정부에서 미국 최초의 국무장관을 지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자신의 자서전 <매들린 올브라이트(황금가지)>에서 나치와 공산당을 피해 체코, 스위스, 파리, 런던을 옮겨 다닌 유년시절, 세 번째 아이의 죽음, 갑작스러운 남편의 이혼 통보, 뒤늦게 유태인임이 밝혀지면서 불거진 논란 등 순탄치 않았던 개인적인 삶을 밝히고 있다.
정치인의 자서전이란 대개 치장이 많다. 공(功)은 더욱 드러나게, 과(過)는 되도록 숨겨 버리는 것이 정치인들의 자서전이다. 그러나 이 자서전이 가진 큰 매력 가운데 하나는 너무나 인간적인 면까지 자신의 고뇌를 낱낱이 기록하였다는 점이다. 이처럼 정직하게 글을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유엔대사와 국무장관으로 지내는 동안 국제 사회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코소보 사태, 소말리아 내전, 미얀마 사태, 보스니아 내전, 유엔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활동 등 굴직굴직한 사건들 마다 그녀는 현장의 주역으로 활동하게 된다.
독자들은 서른 아홉 살이 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기까지 공직 생활을 전혀 해 본적 없던 사람이 이혼이란 상처를 딛고 자신의 길을 굳굳히 걸어가는 이야기에서 큰 감동을 받을 것이다. 독자들 가운데 '나는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단정해 버린 사람이 있다면 그녀의 삶으로부터 커다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이 떠나가 버린 빈 공간을 둔체 정상을 향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전진해 가는 그녀 역시 이혼의 충격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는 한 친구로부터 불현 듯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매들린, 당신은 모든 것을 다 가졌잖아요. 비결이 뭐예요?" 나는 깜짝 놀랐다. 그때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잃어버린 것에만 초점을 맞춘 채 자기 연민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 매들린 울브라이트의 정신적인 2막 인생이 개막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영원한 여성임에 틀림이 없다.
9. 지난 날을 벗고 새로운 삶을 찾은 사람들
10. 공부는 못했어도 돈 버는 재주는 있었다.
1968년 봄에 나는 내 교직 생활에 맨 처음으로 내가 맡아서 가르친 아이들을 졸업을 시켰었다. 흔히 초등학교 6학년을 다니는 동안에 6년 동안 가르쳐 주신 모든 분들이 은사이고 담임이지만, 그래도 가장 늦게까지 담임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6학년 담임이라고들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첫 제자들을 가르친 셈이다. 나는 이 첫 졸업생의 담임을 하면서 당시에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던 시절이라서 요즘 고3교실과 다를 바 없는 1년을 보냈다. 아니 그 보다 더한 시간이었다고 해야 하겠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이라고 시골 학교에서 간단한 다과회를 마치고 나서 오후 늦은 시간에 아이들이 학교로 몰려들었다. 바로 그 날 밤부터 학교에서 어린이들과 합숙을 시작하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교실에서 냉난방이란 말조차 모르던 시절이었으니 밤이면 모기들과의 싸움만도 보통이 아니었다. 모기약이라는 것이 석유 냄새 풀풀 나는 유리병에 들어 있는 농약과 석유를 섞어 만든 것이 전부이었고, 어둠을 밝히는 등이라는 것이 아주 조그만 초롱불이었다. 각자가 가지고 자기 책상 위에 불을 켠 유리 초롱을 놓고 공부를 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지 거의 매일 밤에 호롱을 떨어뜨려서 깨지고 소란이 일어나는 그런 속에서 11월 말일까지 6개월 15일 동안 그러니까 꼭 200일 동안을 교실에서 합숙을 한 셈이다.
이렇게 하여서 약 30여명이 중학교에 합격을 하여서 진학을 하였지만, 1년 내내 합숙에도 나오지 않고 중학교에 갈 형편이 못 된다고 내 팽개쳐져 있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지진아<늦게 따라오는 아이라는 말이지만 사실은 학력이 낮은 아이>가 상당한 숫자이었다. 중학교 입학 시험에 대비해야 하는 관계로 부진아를 가르쳐서 글자나마 알게 하려는 노력 같은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기에 그냥 내팽개쳐 버린 아이들이었다.
이 중에서 한 아이는 자기 집이 가난하여서 길가에 주막집을 열고 막걸리를 팔아서 연명을 하고 있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는 6년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글자조차 깨치지 못해서 자기 집에 걸려 있는 [ 0 0 주조장술]이라는 여섯 글자조차 익히지 못하고 졸업을 하였다. 참으로 어설픈 교육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졸업을 한지 20여 년이 지난 뒤에는 가장 돈을 많이 벌어서 잘사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이 아이는 졸업을 한 뒤 동네에서 어정거리면서 땔나무나 하는 머슴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할 일이 없어서 일찍부터 담배나 피우고 술을 입에 대는 그런 생활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사건은 우연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이 동네 부근에서 장날 소를 팔아 가지고 산길로 재를 넘던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소를 판 돈을 몽땅 빼앗겨 버리는 사건이 발생 한 것이었다. 이 무렵만 해도 인권이라든가 뭐 그런 것은 생각지도 못하던 1970년대 초의 일이었다. 강도를 당한 사람은 두들겨 맞느라고 정확한 인상착의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다만 그 무렵 젊은 아이들이 많이 하던 유행 헤어스타일인 스포츠타입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이 마을 부근의 스포츠머리를 한 젊은 아이들이란 모두 범죄인 취급을 받았다 몽땅 끌려가서 취조를 받았고, 우물쭈물 하면 똑 바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두들겨 맞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몇 대씩 얻어맞고 나서 겁에 질린 아이들은 그 무렵에는 으레 하던 닭서리를 한 사실들을 털어놓았었다.
" 00월 0일에 친구 누구 누구와 같이 어느 마을에 가서 닭을 몇 마리 잡아다가 삶아 먹은 사실이 있다." 라고 털어놓은 아이들은 그냥 그대로 유치장에서 삼 사일씩 구류를 살고 나오게 되었다. 순박한 농촌 마을에서는 이 아이들이 구류를 살고 나온 것을 그렇게 문제삼지 않았다. 그 무렵에야 닭서리 안 해보고 자란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일반화되어 있던 장난이었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본인으로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죄를 지어서 감옥살이를 했다고 생각한 아이들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눈길이 자기들을 죄인 취급을 하는 것으로만 보였고, 이런 사람들의 눈길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며칠을 동네에서 숨어서 살다시피 하던 아이들은 아무래도 부끄러워서 동네에서 살수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마을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리하여 단 돈 몇 천 원씩을 가지고 기차를 타고 무작정 서울로 도망을 나오고 말았다.
천리 타향 서울에 온 아이는 자기가 가진 기술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처지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선가 밥이라도 얻어먹으면서 무엇이든지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리 저리 다니다가 여러 가지 일들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서울에서 좀 떨어진 부천으로 가게 되었고, 원체 배운 것이 없는 어린 아이라서 우선 밥을 얻어먹는 조건으로 철물점의 점원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말이 점원이지 아주 완전히 심부름꾼이었다. 온갖 잡일을 다하면서 여기 저기 배달도 다니고, 물건을 사가는 분들을 따라서 물건을 날라다 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철물점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생활하기 20년쯤이 되었을 무렵에는 이제 철물점의 모든 일에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글자를 모르던 아이였지만, 현장에서 필요하니까 금새 글자도 알게 되고 신문을 보면서 세상물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제는 이 고장에서 가장 오래 배달을 하면서 익힌 지리 때문에 언제 어디라도 금새 달려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철물점의 물건에 대해서도 이제는 사장님 보다 오히려 더 잘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무렵에 부천시내에는 신도시 바람이 불어서 중동 신도시 건설이 시작되면서 이제는 돈을 벌려면 신도시 쪽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사장님은 이제 신도시 쪽에 새로운 가게를 내고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에 시작했던 철물점은 더 이상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에 사장님은 구 가게를 이 아이에게 맡기면서
"이제 이; 가게는 네 것으로 주게다. 그 대신에 한 삼 년 걸쳐서 조금씩 갚아라. 많이 받지 않겠다. 이 가게를 일군 공이 너에게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파는 값의 반만 받겠다."
사장님은 이제 청년이 된 아이에게 가게를 넘겨주었습니다. 삼 년이 아니라 단 일 년 만에 모두 갚아 드리고 이제는 어엿한 철물점의 사장님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조그만 것이 아니라 부천 구 도시 내에서는 손꼽히는 큰 철물점의 사장님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1990년대 초반의 돈으로 20억 이상을 가진 부자가 된 것입니다. 학교 다닐 적에 친구들에게 늘 핀잔이나 듣고 살아온 천둥이가 아니라 서울에서 상대를 나온 젊은이를 사무원으로 거느리고 당시 국내에서 가장 고급인 [그렌져] 승용차를 운전기사가 끌고 모시는 그런 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자신이 자란 환경을 잘 아는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면 반드시 차를 골목 입구나 마을 입구에서 내려서 걸어오곤 하였습니다. 돈이 좀 생겼다고 뻐기고 싶고,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겠지만, 이 친구는 반드시 이렇게 하므로 해서 친구들에게 무례한 짓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늘 겸손하고 자기는 아직 멀었다고 하는 모습으로 친구들에게 어설퍼 보이지 않도록 노력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늘 다가온 기회는 있다고 합니다. 그런 기회를 이렇게 잘 잡아서 성실하게 일한 사람은 나름대로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알고 잘 가꾸어 내려는 마음이 바로 자기의 일생을 옳고 바른 길로 안내를 하게 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함부로 날뛴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 다가온 불행에 후회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선생님들에게 말한다. 아이들이 공부 못한다고 무시하지 말고, 그 아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 지를 찾아 주어야 한다고, 그리고 우리 교사들이 가장 해야 할 일이라는 게 바로 이렇게 자기가 가진 재능을 일찍 찾아서 발굴해 주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첫댓글 누구신진 모르지만 작문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아들놈에게 이 글을 꼭 읽히렵니다 감사 합니다.
장문의 글이었지만 끝까지 읽어본 보람이 있습니다. 제가 살아가는데 자식을 가르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오랫만에 글 올리셨군요..오늘 저는 선생님께서 올려주신 희망의 메시지를 거울삼아 현재의 저를 더 비싸게 팔릴수 있도록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해 나가렵니다..항상 건강 하십시요...
어휴~오빠 장문의글을 올리셨네요.내일 차분히 볼께요 죄송해요..오빠 쬐끔 짤막한 글이 읽기가 더 편해요..~바쁜 동문들이 긴글을 정독 하기란 쉽지만은 않을거예요.업무에 지치기도 하고 다른 방을 돌다보면 시간이 부족해서 소중한 글 다 읽지도 못하고 나갈겁니다.내일 차분하게 읽어 볼께요 오빠 죄송!!!
인생의 바이블입니다. 스승님의 제자사랑이,저희까페사랑이 흠뻑베어있는 인생의 지침서 입니다
학생들에게 자신의앞날 계획서를 제출 하도록 하여 장래를 축원해주는 시를 졸업장과 함께 만들어 주는그 학교의 아이들은 선택 받은 아이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시간 관리를 잘 하며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지침서가 되겠지요..시간은 곧 인생이고 되돌릴수도 대체 할수도없으니시간 관리와인생목표를갖고 인생의주인이
될 수 있는 나의 지침서를 시스템을 개발하여 인생을 즐기고 나를 가꾸어 나가도록 해야겠지요..^^세계의1위 자리를 거머쥔 거부 빌 게이츠처럼 늘 노력하고 연구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그런 인생을 살도록 해야겠습니다.....오빠 구구 절절 놓치고 싶지않은 보석 같은 글 다시또 읽고 새길께요...~~
선생님! 잘 읽고 가슴깊이 새깁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성해봅니다.인간의성공을 돈으로 평가하진못하겠지만 내 자신의 가치를 최고의 값으로 올리고자하는 노력은 사는이들의 모든 과제겠죠. 선생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안녕 하십니까. 저 정옥애 입니다. 몰라 뵈서 죄송 합니다. 그동안 평안 하시고 건강 하시죠? 여기서 뵈니 옛날 보성 어떤 동산으로 백일장 대회를 선생님과 함께 갔던 일이 생각 납니다. 상은 못 받았지만 제 인생의 한 장으로 기억이 됩니다.뵙고 싶습니다 어디에 살고 계신지요. ?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