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을 맞으며
세상의 나이를 잊으며
저벅저벅 당신에게 걸어가
기다림의 사립문을 밀고 싶습니다
겨울밤 늦은 식사를 들고 있을 당신에게
모자를 벗고 정중히 인사하고 싶습니다
우리들 해묵은 안부 사이에
때처럼 곱게 낀 감정의 성에를
당신의 잔기침 곁에 앉아 녹이고 싶습니다
부당하게 잊혀졌던 세월에 관해
그 세월의 안타까운 두께에 관해
당신의 속상한 침묵에 관해
이제 무엇이든 너그러운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첫눈을 맞으며
세상의 나이를 잊으며
저벅저벅 당신에게 걸어가
당신의 바람벽에 등불을 걸고 싶습니다
겨울 편지 / 박세현
연애 시절 그때가 좋았는가
들녘에도 바닷가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있던 시절
사시사철 바라보는 곳마다
진달래 붉게 피고
비가 왔다 하면 억수비
눈이 내렸다 하면 폭설
오도 가도 못하고, 가만있지는 더욱 못하고
길거리에서 찻집에서 자취방에서
쓸쓸하고 높던 연애
그때가 좋았는가
연애 시절아, 너를 부르다가
나는 등짝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다
무릇 연애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기에
문득문득 사람이 사람을 벗어버리고
아아, 어린 늑대가 되어 마음을 숨기고
여우가 되어 꼬리를 숨기고
바람 부는 곳에서 오랫동안
흑흑 울고 싶은 것이기에
연애 시절아, 그날은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다
우리가 서로 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오늘도 밤하늘에는 별이 뜬다
연애 시절아, 그것 봐라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 아니냐
그리하여 우리 살아 있을 동안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
연애/안도현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 곳에서 발견(發見)한 내 사랑의
풀잎 되어 젖어 있는
비애(悲哀)를
지금은 혼미(昏迷)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衣裳)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내어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便紙) 위에
애정(愛情)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 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幸福)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지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 곳에서 발견(發見)한 내 사랑의
기진(氣盡)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녹크
하면,
그 때 나는 어떤 미소(微笑)를 띄워
돌아온 사랑을 맞이 할까
우울한 샹송/이수익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음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기러기 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
하늘의 얼음짱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했더니
뭐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저 민들레나 쑥니풀 같은 것들
또 한번 고개숙여 보라 함인가
황토언덕
꽃상여 떼과부의 무리들
여기서서
또 한번 더 바라보라 함인가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음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풀리는 한강가에서/서정주
RECITER /이미선
KBS 아나운서.한국 방송예술 진흥원 전임교수
1956년 3월 3일 생
1980년 입사 클래식 음악 전문 라디오채널인
KBS 1FM(93.1㎒)의 프로그램 '당신의 밤과 음악'(밤 10~12시)이 오는 7일 방송 30년을 맞는다.
현재 DJ는 16년째 마이크 앞을 지키고 있는 이미선(56) 아나운서.
그는 1983년 '음악의 산책' 진행을 맡은 이후 30년째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맡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장수 클래식 전문 DJ'인 셈이다
26.NOVEMBER.2015.정효(JACE)
FOEM:겨울 편지 / 박세현. 연애/안도현.우울한 샹송/이수익.풀리는 한강가에서/서정주
RECITER :이미선
첫댓글 기다림의 사립문을 열고 오는 달빛 그림자
황토토방에 앉아 침묵으로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속상했던 의문을 잊고
돌아가면 나의 대답대신에
된서리만 내릴 안마당에서
헛기침을 하여도
나를 만나지 못 할 것입니다.
이별예감
이 독한 인생은 장난이 아니다.
장난이 아니다.
뜨거운 커피 대신
즐거우셨나요?
나를 찾으신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이 겨울에
다함없이 떨어지는 함박눈이 축복입니다.
나의 복입니다.
넘치고 또 넘칩니다.
아 그대여 함께 이 부유함을 나눕니다.
사랑이 쓰러진 자리에
눈사람을 세웁시다.
정결한 몸으로
깨끗한 옷을 입힙시다.
감사
여기서 겨울을 느끼는군요
감사 합니다
여우가 되어 꼬리를 감추는게 연애?ㅎ ㅎ ㅎ
재미나네요.
다양한 시어들을 만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