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동부 펜실베이니아 북동쪽에는 ‘포코노(Poconos or Pocono mountains)’라는 대규모 휴양 단지가 있다. 이곳에선 스키, 골프, 승마 등 거의 모든 종류의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또 501개의 호수와 18개의 폭포 등 자연 경관이 매우 뛰어나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휴양 명소가 된지 오래다. 따라서 이곳에 위치한 리조트는 파산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2002년 여름, 포코노의 유명 리조트 한 곳이 파산하고 말았다.
얼마 뒤 한국 기업가가 투자해 다시 오픈하려 했지만 또다시 파산했다. 한동안 투자자가 나서지 않다가 재미교포 사업가가 이곳을 사들인 뒤 재개장 직전 추모제를 올렸다. 추모제는 과거 이곳에 거주했던 인디언 영가들을 위한 제의였다. 그는 백인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던 인디언의 한이 리조트 실패의 원인 중 하나라고 판단했던 것.
재개장한 리조트는 과거와는 달리 순항했다. 그런데 얼마 뒤 여자 영가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황급히 진위를 알아본 결과 이곳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직원들은 ‘나타난 지 20년도 더 됐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손님들의 반응은 그러나 달랐다. 수영장을 배회하는 영가를 보고 기절한 손님도 꽤 있었다. 어렵게 리조트를 살려놨는데 이번에는 귀신 소동이라니. 그는 곧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을 통해 “꼭 한번 방문해 주십시오”라며 연락을 취해왔다. 나는 계속 미국행을 미루다 어렵게 포코노에 갔다.
리조트는 정면에 호수가 펼쳐진 꿈의 궁전이었다. 호수에 달빛이라도 드리우면 비경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리조트가 파산을 거듭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역시 인디언 영가들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그들은 사업가가 천도재를 올리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한 결과,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문제는 여자 영가. 내가 도착한 다음 날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여자 영가를 목격한 사람들의 말로는 그녀는 스페인 계통의 미인으로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수영장 근방에 나타난다고 했다. 나는 굵고 선명한 빗소리를 들으며 그 곳으로 향했다.
여자 영가를 만나러 가는 길에 갑자기 옛날 일이 떠올랐다. 과거 지방 호텔 사장이 급히 나를 찾아와 호텔에 영가가 있으니 천도재를 올려달라고 부탁해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은 일이 있었다. 영가가 나타난다는 방에 홀로 앉아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지루했는지 모른다. 그 일 때문인지 포코노 리조트에서는 내가 먼저 그녀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수영장에 도착하자 ‘쏴’하는 빗줄기 속에 듣던 대로 미인 영가가 서 있었다. 검고 긴 생머리에 구릿빛 피부. 언뜻 보기에는 스페인 계통의 여인 같았지만 염사를 시도한 결과 그녀는 헝가리 계통이었다. “여기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이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여기서 남편을 만나기로 했는데 오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한 마디로 그녀는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
약 25년 전 그녀는 이 리조트로 신혼여행을 와 로맨틱한 밤을 꿈꿨다. 하지만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던 중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허니문이 영원한 이별여행이 되고 만 것. 하지만 그녀는 영가가 돼서도 25년 동안 신혼의 단꿈을 나눌 남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진실을 말해주며 ‘이제는 떠날 때가 됐다’는 의미로 특별한 천도재를 올려줬다.
그녀의 천도 소식에 리조트 직원들은 ‘밤마다 미인 영가 보는 재미에 일했다’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기회가 되면 나는 다시 포코노를 찾을 예정이다. 근처에 위치한 세계적인 아트센터에서 구명시식 연극을 올리고 싶은 소망이 있기 때문. 만약 그 곳에서 다시 그녀를 만난다면 이번에는 영계에서의 안부를 묻고 싶다.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방황하는 영가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해 영매를 찾아달라고 나타나는 영가도 있다. 2003년 2월말 내게 한 통의 충격적인 편지가 도착했다. 부산에 살고 있는 A씨였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영안이 열려 있던 20세의 딸이 2001년 미국을 여행하던 중 영가를 목격, 그 뒤 영성이 주체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A씨가 여행을 마치고 뉴욕에 있는 동생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뉴저지에 막 접어드는 순간 차 트렁크에 사람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문득 뒤를 돌아보니 갈색 머리에 호리호리한 체구를 가진 미녀 영가가 강렬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끼익’ 급정거를 하자 영가는 그녀 앞에 나타나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놨다.
“나는 하버드 의대생으로 MIT 공대 연구실 연구원이었다. 그 때 한 남자를 사귀었는데 나와 맞지 않아 결별하고 다른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그러자 전 남자친구가 심하게 질투해 나를 목 졸라 살해했다. 그것도 모자라 내가 공들인 논문까지 훔쳐 학계에 발표했다. 현재 나는 실종처리가 돼 있으며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부모님은 아직도 내가 살아 있다고 믿고 매일 밤 기다리신다.”
또한 현재 자신의 시신이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해 세상에 나타나기 두렵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자신을 죽인 전 남자친구가 뻔뻔스럽게 성공 가도를 달리는 것을 보면 억울해 견딜 수 없기에 자신의 죽음을 폭로한다며 시신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
“하버드 의대와 MIT 공대 사이에서 피살된 뒤, 뉴저지 지역에 암매장 당했다. 무엇보다 내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고통으로부터 구원해줄 뛰어난 영매를 찾고 있다. 영매를 소개해준다면 보다 상세하게 가르쳐 주겠다”고 부탁했다. A씨는 영가의 말을 믿지 않고 뉴욕으로 갔다. 그런데 동생 집에 머무는 동안 괴이한 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한국으로 돌아와 무당에게 굿도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데 최근 들어 딸이 A씨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미국에서 만난 여자 영가 얘기를 꺼냈다. 깜짝 놀라 물어보니 영능력이 뛰어난 딸은 “모두 사실이에요, 엄마”라면서 그녀를 죽인 남자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다.
“지금 그는 37세로 미국 학회에서 유명한 사람이 됐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그때 만난 여자 영가의 목소리가 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빨리 미국에 있는 동생을 통해 영매를 소개시켜 달라. 시일이 촉박해 만약 나를 구원해주지 않으면 영원히 죽은 장소에서 붙박이 영이 될지 모른다”고 재촉했다.
2004년 4월의 어느 일요일, 나는 A씨의 간곡한 부탁으로 딸과 단독 면담을 했다. 만 1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딸은 웃으면서 “법사님을 뵙기 전에 어떻게 생긴 분이실까 그림을 그려봤어요”라고 했다. 초상화는 정확히 내 모습과 일치했다. 그리곤 이 세상에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기쁘다며 이상한 암호 종이를 꺼냈다.
“얼마 전 앙코르와트 사원에 가서 승려 영가를 만났어요. 그 분은 사원 앞 호수에 승려들의 집단 무덤이 있다면서 우주의 문서를 제게 보여줬어요. 그 문서엔 우주의 암호가 적혀 있었는데 한번 풀어봤습니다.”대단한 능력이었다. 그러나 A씨는 딸이 다른 20세 여대생처럼 평범한 삶을 살길 원했다.
나는 씁쓸히 웃으며 A씨의 딸에게 빙의된 하버드 의대생 영가를 천도한 뒤 “너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언젠가는 훌륭한 영능력자로 거듭 날 테니 당분간 편안히 지내라”고 했다. 그리고 영혼의 문을 조금 닫아줬다. 또 다른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 안심도 됐다. 이제는 나를 대신할 ‘영혼의 후계자’를 만났으니 더 바랄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