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도 ‘실리’도 못 챙긴 강제 침탈, 위법적 요소만 가득
윤지연 기자
22일 민주노총을 강제 침탈한 박근혜 정부가 역풍을 맞게 될 처지에 놓였다.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하겠다고 나선 기습 침탈이었지만, 검거에도 실패하고 법적 요건도 갖추지 못해 사실상 ‘명분’과 ‘실리’ 모두 잃어버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박근혜 정권 퇴진’이라는 공식적인 투쟁 기조를 내걸게 됨으로써, 박근혜 정부와 노동계가 민영화 반대를 넘어 ‘전면전’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민주노총 역시 이번 사건은 박근혜 정부가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며 이후 수위 높은 투쟁을 결의하고 나섰다.
시민사회와 국민들의 비판 여론도 거세질 전망이다. 그동안 ‘철도민영화 저지’로 모아졌던 여론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노동계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법률가단체들도 정부의 민주노총 기습침탈이 법적 근거가 없는 명확한 불법적 행위라며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출처: 철도노조
민주노총 불법 침탈한 박근혜 정부, ‘역풍’ 밀려오나
경찰의 민주노총 강제 침탈은 1995년 민주노총이 설립된 이후 발생한 첫 사례다.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만큼 민주노총은 정부와의 ‘전면전’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출범 1년 만에 노동계와 극명한 대치 전선을 만들어낸 셈이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호소문을 통해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상징이며 심장부인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침탈은 노동운동 자체를 말살하겠다는 것이며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군홧발로 짓밟겠다는 독재적 폭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서 22일 저녁, 민주노총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박근혜 정부는 80만 민주노총과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라며 본격적인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권 출범이후 처음으로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이라는 공식적인 투쟁 기조를 내걸게 됐다. 또한 민주노총은 비상 중집을 개최해 23일 확대간부 파업과 28일 총파업을 통해 범국민적 저항을 만들어 내겠다며 벼르고 있다.
출처: 철도노조
기습 침탈로 민주노총 간부 및 조합원, 연대단위 등 150명을 무더기 연행하면서 인권, 시민사회단체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철도민영화 저지’라는 기조로 모아졌던 여론은, 이제 노동계를 향한 범정부적 탄압 문제로 확대될 조짐이다. 시민사회는 23일부터 경찰의 기습침탈에 대한 기자회견 등을 이어가며 정부를 압박해 나갈 전망이다;
가뜩이나 경색돼 있는 여야의 관계도 이번 사태로 더욱 얼어붙을 조짐이다. 경찰의 민주노총 침탈 이후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김한길 민주당 대표 역시 현장을 찾아 공권력 투입을 비판하고 나섰다. 정의당, 통합진보당, 노동당 등 야4당 역시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 등을 통해 정부의 공권력 남용을 비판했다. 특히 이들 의원들은 민주노총 침탈 과정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일 예정이었으나 경찰이 이를 강력히 제지하며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민주노총에 대한 공권력 침탈을 ‘당연한 것’이라고 규정하며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날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 수석부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불법파업에 대해 법과 원칙에 입각해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은 시민의 권익보호를 위해 당연하다”며 “국가 공권력의 정당한 사법 절차 진행을 무력 방해하는 것 자체가 위법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출처: 윤지연 기자
‘명분’도 ‘실리’도 못 챙긴 강제 침탈, 위법적 요소만 가득
하지만 ‘정당한 사법절차’라는 말이 무색하게, 경찰이 민주노총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절차상 위법성이 드러나며 논란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철도노조 지도부가 이미 건물을 빠져나간 뒤 강제 진압이 이뤄진 것이어서, 정부는 본전도 찾지 못한 채 위법성 시비에 휘말리게 됐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22일 저녁에 열린 집회에서 “여러분이 이겼다. 경찰은 오늘 엄청난 불법을 저질렀다”며 “민주노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법원으로부터 기각됐는데도 경찰은 강제적으로 침탈을 강행했다. 또한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한다는 명목으로 침탈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민주노총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그렇다면 경찰이 지금 이 곳(민주노총)에 있을 이유는 없다. 대한민국 역사상 경찰이 이렇게 무도한 적은 없었다”며 “우리는 오늘 경찰의 불법행위를 여실히 확인했다. 지금 벌어지는 공권력 남용에 대해 법률가들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체포영장은 구속영장과는 달리 피의자 수색 목적으로 타인의 주거에 잠금 장치를 해제하고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경찰은 체포영장만을 내세워 민주노총 출입구 및 사무실 문을 부수거나, 경향신문사 유리문을 깨는 등 과격한 성향을 보이며 공권력을 집행했다.
출처: 윤지연 기자
경찰의 ‘무리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소수 인원을 체포하기 위해 언론사 건물에 수 천 명의 경찰이 난입해 기물을 훼손한 것도 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주변 인도를 모두 점거해 시민들의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고 덩달아 인근 상가시설의 출입까지 저해하면서 과도한 공권력 집행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민변 등의 법률가 단체들은 “10명도 안되는 인원을 체포한다는 명목으로 무려 100명도 넘는 시민들을 강제로 연행한 것은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를 일탈한 것으로 비례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 명백하다”며 “또한 위법한 체포영장 집행에 저항한 시민들을 강제로 연행한 것도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법률가 단체들은 150명에 달하는 불법 연행에 대한 손해배상과, 건조물 및 주거침입, 등에 대해 경찰에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계획이다. 신인수 법률원장은 “이후 법률적인 마무리를 지어, 심지어 법적으로도 경찰에 이겼다는 것을 꼭 확인받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