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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무(15) - 낙양 그리고 청부(2)
"하지만 이제는 정신을 잃지 않으니까……."
자신을 다독이듯 고개를 끄덕이며 음황을 쳐다보았다.
목전의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인지 음황을 비롯한 5명 남은 적
은 망연한 눈으로 이편을 쳐다보고 있었다.
머리칼로 한껏 얼굴을 가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오보살 음황이라 했느냐? 네 놈이 강호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지는 상관하지 않겠다. 하지만, 더 이상 건들지 말라. 천붕십일천마의
손에서 살아날 자신이 있으면 계속 공격해라. 그동안 우리를 따라 왔
다면 중화독지대를 잘 알고 있을 터."
"그럼 네가 천붕십일천마와 관련이 있단 말이냐?"
경악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구양중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
문에 저들이 처음 떠났던 곳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모옥이 탔던 그곳은 분명 독지대였다.
"세상에……. 그럼 그 모옥은 천붕십일천마의 은거지?"
음황이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알아서 행동해라."
백산은 비릿한 조소를 남기며 주하연을 안아들었다. 하연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했기에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멍한 눈으로 쳐다보는 음황 일행을 뒤로하고 서둘러 몸을 날렸다.
"놈! 일단은 두고보겠다."
멀어지는 백산을 쳐다보며 음황은 입술을 깨물었다. 천붕십일천마와
연관된 자라면 교에 보고를 해야하기 때문이었다.
천붕십일천마와 관련된 사항은 단독 처리 할 수 없는 중대사였다.
"너희들은 계속하여 저들을 미행해라. 나는 교에 다녀오겠다."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음황이 재빨리 몸을 날렸다.
"제길, 하필 이럴 때 운기행공이 극에 달해 있냐."
동굴 근처로 다가온 백산은 곤혹스런 얼굴로 안쪽을 노려보았다. 설
련과 구양중의 운기행공 때문에 안쪽에서 일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두
사람의 운기행공은 극에 달해 있고 지금이 중요한 시기다.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가해지면 곧 바로 진기의 폭주 상태인 주화입
마로 이어진다.
"오빠 제 말대로 하세요. 혹시라도 치료 중에 제가 비명이라도 지르
면 큰일이잖아요."
해쓱한 얼굴의 주하연이 5장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동굴을 가리켰
다. 자리를 옮기자고 했던 사람은 그녀였던 것이다.
"알았다."
고개를 끄덕인 백산은 재빨리 주하연이 가리켰던 동굴로 들어갔다.
"우선 가져온 천에 물을 적셔 오세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말을 아껴."
가물거리는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주하연을 안쓰러운 얼
굴로 쳐다보았다. 가벼운 상처는 그렇다 쳐도 등에 난 상처는 심각했
다.
옷과 함께 잘린 곳에서 끊임없이 피가 스며 나왔다.
안쪽으로 들어가 천에 물을 묻혀온 백산은 한쪽 벽에 비스듬히 기대
있는 주하연 뒤쪽으로 돌아갔다.
"지금 뭐해요?"
"뭐하긴 옷을 찢고 피를 닦아내려는 거지."
"미쳤어요? 한 벌 밖에 없는 옷인데."
"그래도 너는……."
"어이그, 이러니 기절하고 싶어도 기절을 못하지. 사람이 죽어 가는
데 남녀간의 예절을 따져서 뭘 어쩌겠다고. 잔말말고 앞으로 와서 옷
이나 벗겨요."
"제길……."
욕설을 뱉어내며 주하연이 시키는 대로했다.
잠시 후, 벌거벗은 조그마한 동체가 눈앞을 메웠다.
"어때요?"
옷을 벗길 때부터 시작하여 백산의 눈을 주시하던 주하연이 짓궂게
웃으며 물었다.
"뭘, 임마!"
"설련 언니 거보다 조금 작지만, 모양은 훨씬 예쁘죠?"
"너어?"
황당한 얼굴로 주하연을 쳐다보았다. 나이는 물론이고 출신이 의심
스러웠다. 이제 15살이면 속살만 조금 보여도 부끄러워 얼굴을 붉혀야
하건만, 오히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은 자신이다.
하지만 백산은 더욱 놀라운 말을 들어야만 했다.
"공짜로 처녀 가슴을 봤으면 그 정도는 말해줘야지.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졌다 져. 니 가슴이 최고다."
소리를 빽 지르고 다시 주하연 뒤로 돌아가 앉았다.
"그 말 믿어도 되죠?"
"속고만 살았냐.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우니까 팍팍 믿어."
"강호에서 제일이라는 화봉 언니 거보다 내 게 더 이쁘다니, 이젠
됐어요."
"하연아!"
주하연의 상처를 닦아내던 손을 문득 멈췄다. 그제야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얼마 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스스로 만족감을 얻
어보자고 한 행동이었다.
부질없겠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자신의 가치를 확인해보려는 발버둥
이었다.
"상처는 어때요."
백산이 움직이지 않자 주하연이 먼저 말을 꺼냈다.
"한 치 정도 찢겼다."
"피 색은 어때요, 붉어요 아니면 검어요."
"붉어."
"그래요? 그럼 독은 없나 보네요. 예쁘게 꿰매 주세요. 방법은 어제
설련 언니 꿰맬 때 봤을 테니 그대로 하면 될 거예요."
"잘 하려나 모르겠다."
하지만 말만 그렇게 했을 뿐 백산의 손끝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어
중간히 망설이면 더욱 아프다는 걸 알기에 과감하게 주하연의 상처를
봉합했다.
다행이 한치 정도 상처라 봉합은 금방 끝났다.
"으잇! 남자 손이 뭐 그래요. 아파 죽겠네. 첫눈 오는 날 이게 무슨
청승인지……."
"기다려라, 저쪽 동굴에 가서 불씨 좀 가져오마."
상의를 벗어 주하연에게 걸쳐주며 동굴을 나섰다.
"쳇! 자기 옷도 걸레수준이구먼. 그리고 남자는 벗고 있어도 상관
없고, 여자는 안 된다는 건 누가 만든 법이야."
바삐 움직이는 백산의 모습을 보며 투덜거렸다. 걸치라고 건네준 백
산의 옷은 걸치지 않느니만 못했다. 군데군데 찢어진 곳으로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아이고 추워라. 이 아저씨는 뭐 하는 거야. "
연신 밖을 흘끔거리던 주하연이 이내 슬쩍 웃었다. 부산하게 움직이
는 백산의 기척이 느껴졌던 탓이었다.
잠시 후, 마른 나무 가지를 한아름 안고 백산이 들어섰다.
"춥지, 조금만 기다려라."
오돌오돌 떨고 있는 주하연을 안쓰러운 듯 쳐다보며 서둘러 불을 피
웠다. 활활 불이 타기 시작하자 빠르게 훈기가 돌았다.
"이쪽으로……."
"산 오빠!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
"뭔데!"
"다른 게 아니고, 왜 날 처음 보았을 때 불렀던 이름 있잖아. 천영
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그 언니가 누군지……."
한순간 주하연이 말끝을 흐리며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백산의 얼
굴이 조금씩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공연한 걸……. 나 좀 잘게요."
무안한 듯, 고개를 숙인 주하연이 눈을 감았다.
"부인이었다. 내 목숨보다 사랑했던 사람. 같이 죽고자 했었는데,
나만 살아나고 말았다. 천영이도, 추렴이도 그리고 딸 소령도……."
"그래서……, 자살을 하려 했던 거였어요?"
"그녀들에게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하지만, 그 언니들이 그걸 원할까요? 이곳에 남은 다른 사람을 아
프게 하면서 자신들에게 오길 바라진 않을 것 아니에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 나이는 많다. 훨씬……."
"피이! 내가 보기엔 많아야 20살이구먼, 많다면 얼마나 먹었는지 말
해봐요?"
하고 주하연은 숨을 죽였다. 하지만 기대했던 말은 들려오지 않았
다. 백산은 말없이 모닥불 속으로 나뭇가지만 던져 넣고 있을 뿐이었
다.
백산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주하연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아버지께 항상 죄송스러웠어요. 엄만 날 낳다가 돌아가셨대요. 나
만 아니었다면 엄마는 살수 있었겠죠. 하지만 엄마는 날 선택했어요.
물론 엄만 몰랐겠지만 15년도 살지 못하는 딸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리신 거예요. 매달 그믐이면 천음신맥의 저주로 인한 고통이 밀려와
요. 열양단(熱陽丹)이라는 약으로도 어쩔 수 없는 한기가. 죽고 싶다
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아니 매번 한기(寒氣)가 닥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가능하다면, 살수
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 살 거예요. 의술을 배워 다른 사람을 치료할
때 비로소 알게 되었어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
한 사람이란 사실을 말예요. 저 진짜 잘게요."
"행복한 사람……."
어느새 고른 숨을 몰아쉬는 주하연을 쳐다보다가 백산은 한숨처럼
말을 흘렸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었다. 그저 그녀들과 더불어 평범하게 사는 게
유일한 꿈이었다. 보통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그런 삶을 살길 바랐을
뿐이다.
그런데 고작 하나도 허락되지 못했다. 그 하잘것없는 꿈조차…….
"들어와도 된다!"
"저희들이 너무 오랫동안 운기행공을 했나보군요. 죄송합니다."
안으로 들어온 구양중이 고개를 숙였다. '조금만 더' 하는 욕심 때
문에 운기행공을 멈추지 못했는데, 그 사이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괜찮다. 성과가 있었던 모양이구나."
"네, 이제 강기( 氣)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도?"
설련에게 시선을 주며 물었다.
"네! 백 공자."
"이제 시작일 뿐이다. 지금부터는 단전을 비우는 노력을 해야한다.
내공을 써서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끊임없이 단전의 내공을 위로 끌
어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땅으로부터 힘이 유입된다. 그 힘을 쏟아내
는 게 탄(彈)이다."
"알겠습니다, 백 공자."
격동에 찬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방금 백산의 무론은 검탄강기(劒
彈 氣). 즉 길게 이어진 강기를 조각으로 잘라내어 공격하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었다.
검탄강기의 경지만 올라서도 더 이상 다가오는 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때는 이미 초극의 고수고,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양중, 강기를 얻은 기념으로 가서 멧돼지나 한 마리 잡아와라."
"설마……. 첫 강기( 氣)를 멧돼지를 잡을 때 쓰라는 말입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이 녀석아. 그럼 개시를 사람 죽이는 걸로 할
래?"
"컥! 제가 장사 시작했습니까? 개시가 뭡니까, 개시가."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구양중은 안도했다. 조금 전 밖에서 두 사람의
말을 들었다. 침울해 있을 것 같아 내심 걱정했는데 백산의 표정이 의
외로 밝았기 때문이었다.
싱글벙글 웃던 구양중이 재빨리 동굴 밖으로 뛰어나갔다.
"너도 임마!"
"아-알았어요. 자기는 먹지도 못하면서……."
고소한 얼굴로 구양중을 쳐다보던 설련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날렸
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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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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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감사 하고 사랑 합니다
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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