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grSWdLdp7po
7월 첫날, 뭔가 뿌듯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굳이 유라이어 힙 Uriah Heep 의 '줄라이 모닝'을 크게 틀고 들으며 출근길에 나선 것은 항상 7월 첫날이면 그랬던 것이긴 합니다만. 고등학교 때 알게 된 이 노래에 꽂혀 그렇게 이 곡을 여름이면 계속 들었고, 나중에 그 가사가 완전히 가슴에 와서 닿을 때까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 나를 매혹시키고 취하게 만든 것들보다는 집으로 향하는 나의 모습이 진리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나서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곡이기도 합니다. 올해 7월의 아침, 나는 희망을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원래 7월은 내겐 그런 계절이었습니다. 어렸을 적 7월은 여름방학이라는 이벤트가 있었고, 방학이 시작되면 거의 늘 아버지와 함께 집을 떠나 있었습니다. 고래불 해수욕장과 가까운 영해(영덕 바로 위, 울진과의 사이에 있습니다) 거무역의 선산이든, 아니면 이리(지금은 익산이라고 불리우는) 의 외가이든 간에 우리집에서의 일상을 떠나 있는 시간들에 대한 기대가 많았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7월이 시작되면 나는 그렇게 들떠 있곤 했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 때문에 삼척에 갈 때면 더욱 그랬습니다. 삼척에 가면 일주일 정도가 아니라 보통 보름 정도 있다 오곤 했습니다. 살껍데기가 그을려 다 벗겨질때까지 나는 바다에서 철없이 뛰어놀곤 했고, 아주 가끔, 그 어린 나이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예쁜 여자아이를 만나 사귀고 함께 바닷가를 뛰어놀곤 했던 기억들이 납니다. 아, 간지럽고 따뜻한 기억들. 이제 7월에 어디 가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미국의 7월은 뜨겁습니다. 보통은. 아무 곳에 가도 다 뜨겁습니다. 알래스카 정도만 제외한다면.) 나이를 먹었습니다만, 그래도 7월은 두근거림이고 설레임입니다. 저는 결혼도 시애틀이 기록적으로 더웠던 23년 전 7월 말에 했고, 아내와 함께 7월 말의 하와이로 신혼 여행을 갔었습니다. 호텔들이 비치를 가득 메우고 있는 마우이의 와이키키보다는, 사탕수수를 으깼을 때 나는 뭔가 조금은 퇴폐적인 향기가 공기에 가득 차 있던 마우이의 라하이나의 기억이 더 진하게 남아 있기도 합니다. (도대체 그때 찍었던 사진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올해 7월, 나는 뭔가 다른 이유로 설레입니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회동, 실질적으로 제 3차 북미회담이라 할 수 있는 역사적인 만남이 있었고, 트럼프가 북한의 땅을 밟았습니다. 희망의 향기 같은 걸 맡았달까요. 우리의 희망의 끈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보다 다양한 실타래에서 더 많은 실들이 쏟아져 평화의 베틀 위에서 무엇인가가 직조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저는 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7월은 우리 현대사에서 그 극렬한 내전이 잠시 종지부를 찍은 날이기도 합니다. 7월이 앞으로 휴전이 아니라 완전한 정전과 평화의 기억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나는 7월의 어느 아침, 새로운 새벽의 힘과 아름다운 태양의 힘을 입어, 나는 사랑을 찾고 있었네. 새벽 아침 첫 새의 울음 소리가 들릴 때, 나는 집으로 향해 나섰네. 폭풍과 내 뒤에 남겨진 밤, 그리고 다가올 새 아침에 대한 희망, 내 갈 길을 나는 그대를 찾겠다는 소원을 갖고 나섰다네...." 시애틀에서... |
첫댓글 네, 뜨거운 7월..뜨거울 7월..
한반도를 식혀줄 시원한 소식 기다려 봅니다!
권종상님 글은 늘 따뜻해서 좋습니다
더위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