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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무(18) - 납치(1)
납치(拉致)
청부업자, 그들은 강호 무림에서 가장 천대받는 자들 중의 한 부류
다. 대개가 그러하듯, 무인이란 족속들도 무공을 익히는 목적은 인격
완성에 있다고 한다.
속내야 어찌되었건 겉으로는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작
부터 돈을 위해 무공을 익혔다고 선언하는 자들이 있다. 대가를 받고
살인을 해주는 청부업자가 그들이다.
정사(正邪) 할 것 없이 대부분의 무인들이 청부업자를 무시하는 이
유가 바로 그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잠영루 루주인 사예군(思藝君)은 세인들의 시선 따윈 무시할
수 있는 배짱 두둑한 자였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겉모습만 번지르르 한 명예가 아니라 돈이라는
사실을 그는 어린 시절부터 터득했다.
더구나 사람을 없애달라며 청부를 넣는 자들은 거의가 양지(陽地)에
서 권력을 휘두르며 살아가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절친한 친구를 혹은 동업자를 죽여달라고 돈
을 지불하는 자들, 그들보다는 돈을 내면 사람을 죽여주겠다고 선언해
버린 살수가 훨씬 인간적이라 생각하고 있다.
사예군이 청부업을 매력적인 직업이라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등
급에 있다. 다들 제 잘난 맛에 큰소리치며 사는 자들이지만 청부업자
손에서는 순위가 매겨진다.
유수 문파의 제자들은 100냥, 수뇌급에 해당하는 자들은 1천냥, 이
런 식으로 값을 매기다보면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그저 돈을 머리 위
에 달고 다니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청부를 극구 피해야할 자들도 있다.
현 강호 무림을 이끌어가고 있는 북황련이나 남천벌 수뇌들에 대한
청부는 가능하면 받지 말아야하고, 설사 청부가 들어왔다 하더라도 일
생을 바꿀만한 대가가 아니면 무조건 거부해야 한다.
이번 청부를 맡으면서 사예군이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상대가 금강불괴(金剛不壞)를 성취한 고수라는 사실보다는, 그 정도
고수를 길러낼 곳이 북황련이나 남천벌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 망
설여졌다.
표적의 정확한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다.
혈불상으로 인하여 낙양이 혼란스럽지만 않았어도 청부를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낙양은 온통 무림인들 천지.
여타 무림인의 죽음과 함께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수락하고 말았
다. 아니 계약금으로 받은 5만 냥이라는 거금이 위험을 감수하게 하였
는지도 몰랐다.
그에 대한 정보는 네 가지. 금강불괴지신을 지녀 곤옥비가 아니면
처치가 불가능하다 하였고, 절세 미남에, 백의와 검은색 요대를 차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름은 소령이라 하였다.
10일, 사예군을 비롯한 잠영루 살수 50명이 산발한 채 달리는 소령
이란 자를 쫓아다닌 시간이다.
그가 지금껏 격전을 치른 회수만 해도 셀 수가 없다.
수많은 무인들과 싸움을 벌였고, 지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혈불상,
혈사4보의 하나라는 물건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낙양 북쪽 북망산에서 시작된 혈전은 동쪽으로 이어졌고, 동료라도
기다리고 있는 듯 소령이란 자는 백마사(白馬寺)를 향하고 있다.
"제군들, 일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모든 일행은 백마사로 간다!"
주변을 둘러보며 낮게 소리친 사예군의 신형이 전방을 향해 폭사되
어 나갔다.
스스스!
주변 풀숲이 가늘게 떨려옴과 동시에 무수한 인영들이 자리를 박찼
다.
50여 명의 잠영루 살수들이 떠난 그 자리에 차가운 바람과 함께 일
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일행의 선두에서 소령을 노려보는 자.
짙은 눈썹을 가진 이자는 한수 근처에서 주하연을 쫓던 혈루검 나철
이었다. 나철이 혈불상을 추격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등주까지 주하연을 추격하였으나 흔적을 놓치고 말았다. 다시 한수
근처로 되돌아가려는 순간, 주하연이 남경왕부로 들어갔다는 소식과
함께 낙양으로 가서 소벌주를 도와 혈불상을 취하라는 명령이 내려왔
던 것이다.
"나 각주, 저자가 누군지 알아냈소?"
떼지어 몰려가는 무인들을 쳐다보는 나철의 귓전에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절세 미남이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 선이 뚜렷
한 윤곽을 지닌 얼굴에서는 패도적인 기운이 흘렀다.
남천벌의 소벌주이자 신진십룡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일진룡
(一眞龍) 남세옥(南世鈺)이었다.
"알아냈습니다, 소벌주님. 그가 바로 신비룡이었습니다."
"그럼?"
"백마사에 있던 북황련 패거리는 들은 다른 곳으로 유인했습니다.
그곳은 가봐야 아무도 없습니다."
"으음! 그랬던가."
나철의 대답에 남세옥은 나직한 신음을 뱉어냈다. 물론 상대의 신분
을 예측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그를 없앰으로 해서, 일어나게 될 일이 걱정되었던 탓이었다.
자식을 잃은 위지천악의 선택은 한가지밖에 없을 것이다.
남천벌과 북황련의 전쟁이다. 더구나 그 원인 제공자가 자신이 되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형님!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신비룡을 없애면 우리에겐 더 큰
이득이 돌아오게 됩니다."
비파를 든 한 인물이 남세옥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진파룡(震琶
龍) 양천리(梁天理)로, 남천벌 소속인 천음양씨세가(天音梁氏世家)의
장자였다. 아울러 남세옥의 머리 역할을 떠맡고 있다.
"무슨 말이냐, 양 아우."
"우선 북황련의 대가 끊어지게 된다는 게 우리 남천벌로선 첫 번째
이득입니다."
"그건 나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신비룡의 죽음은 그
들을 더 결속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물론 근시안적으로 보면 형님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위지소령의 죽음은 북황련을 분열시킵니다. 특히 전쟁에서 우리
남천벌보다 우위에 섰을 경우엔 그런 경향은 더욱 심화되지요."
"위지천악의 뒤를 이을 후계자 때문이란 말이냐?"
"바로 그겁니다. 북황련은 두 가지 난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패색이
짙어지면 위지천악의 위치가 흔들리게 되고, 승기를 잡으면 후계자 문
제가 불거집니다. 우리로선 나쁠 게 없는 상황인 거지요."
"호오! 그럼 전쟁이 시작된다면 우린 장기전으로 가야겠구나."
남세옥의 눈이 반짝 빛났다. 미쳐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곳입니다."
양천리가 지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슨 말인가 이곳이라니?"
"중립지대를 없앨 수 있습니다. 북황련의 힘을 빌어."
싱긋 미소를 지은 양천리가 여전히 의문의 표정을 짓고 있는 남세옥
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북황련의 위지천악은 아들의 사인을 조사하기 위해 이곳에 무인을
파견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소림이란 거목과의 충돌은 자명한 일 아
닙니까. 하지만 그들은 소림을 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남천벌과 전쟁
을 남겨두고 있는데 소림을 비롯한 중립지대 네 곳과 전쟁을 치를 수
없으니까요."
"그럼 위지천악은 힘을 소모하지 않고 중립지대를 없앨 방법을 강구
하겠군."
"그렇습니다. 그는 무슨 수를 쓰던지 중립지대를 없애려고 할겁니
다. 아들의 복수도 복수지만, 중립지대 네 곳을 도모하는 건 북황련이
나 남천벌의 꿈이니까요."
"그렇지."
남세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천벌과 북황련을 강남북의 패자라고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인들의 외적인 평가일 뿐이고, 조금만 속으
로 파고들면 소림과 무당 그리고 하북팽가와 남궁세가를 천하제일로
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굳이 세인들의 내심까지 들먹일 필요가 없다. 중립지대를 만들어 그
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남천벌과 북황련의 행태만 봐도 바로 짐작
할 수 있는 일이다.
"설사 북황련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해도 그들이 있으면 종이호랑
이란 말을 들을 뿐이지."
"형님 말이 맞습니다. 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혈불상을 취함과 동
시에 위지천악이 하남성에 들어올 빌미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방법이 있느냐?"
"조금 전 보았던 잠영루 살수를 이용하는 겁니다. 그들을 적극적으
로 도와서 신비룡을 없애게 하는 거지요."
"우린 혈불상만 취하자는 말이군. 잠영루 살수는 살려주고."
남세옥이 빙그레 웃었다. 누가 잠영루에 청부를 했는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지만 남천벌에서 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누가 청부를 했을까?"
"글쎄요. 그건 위지천악이 알아내게 될 테니까 우리는 신경 쓸 필요
가 없지요. 북황련 내부소행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그럼 가보자."
미소를 주고받은 두 사람의 신형이 둥실 떠올랐다. 이어 허공을 박
차며 전방을 향해 쾌속하게 쏘아져 나갔다.
허공답보(虛空踏步), 초극 고수나 되어야 펼칠 수 있다는 허공답보
의 경공을 두 사람은 가볍게 구사했다.
한편.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백산은
연신 투덜거리며 북망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의 입이 툭 튀어나온 까닭은 바로 뒤쪽에 찰거머리처럼 따라다니
는 주하연이었다.
잠영루 살수의 표적이 되기 위해선 혼자 다녀야 한다고 극구 강조했
지만 주하연은 요지부동, 손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이제 그만 놔라! 그러다 동상 걸리면 어떻게 할래?"
왼손을 꼭 붙들고 따라오는 주하연에게 툭 쏘아붙였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피장파장인데 뭘. 내 몸에 비하면 오빠 몸은
차가운 축에 끼지도 못한다구요."
"지금은 따스한 것 같은데?"
"어라, 이 오빠 보게?""
따스하다는 말에 주하연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백산의 몸은 시체와
비슷하여, 몸의 감각이 거의 죽어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손을 잡고 따뜻함을 느끼다니.
"그일 때문인가?"
얼마 전, 마교 무인들과 싸울 때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분명 지
금과 달랐다. 절정 무인과 비교했을 땐 손색이 있었지만 평상시 움직
임보다는 훨씬 빨랐다.
아울러 백산 몸 주변으로 붉은 기운이 회오리치는 광경도 목격했다.
무공을 회복하는 건지, 아니면 익히는 건지는 알 길이 없지만 백산
의 몸이 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무슨 말이야?"
"아냐, 맨날 몸이 차가우면 그게 사람인가, 시체지. 한 달에 한번
정도만 그래요. 음정이 폭발한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근데 무섭게
여긴 왜 왔어요?"
눈앞, 겹겹이 더해 가는 무덤들에 몸이 으스스 떨려왔다. 북망산.
고래로부터 왕후장상의 자리가 되었던 북망산은 산 전체에 죽음의 기
운이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시체들이 무덤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차가움에도 불구하고 백산의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
다.
"친구 만나러 왔지. 왜 왔겠냐?"
"친구는 또 뭔 소리래?"
의아한 얼굴로 백산을 쳐다보았다. 자살을 시도한 그의 경력으로 보
건대 친구가 있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생뚱맞게 친구라니.
"애들은 몰라도 돼, 임마. 어디였더라, 아, 저기다!"
거의 쓰러져 가는 비석이 세워진 무덤을 발견한 백산이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표운. 소령의 몸이 아닌 백산의 어린 시절 사귀었던 유일한 친구.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만상투인루의 생사투인이 되어 죽었던 녀석이
다. 그때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죽음을 택한다고 하였던 녀석을 미
친놈이라고 욕했다.
하지만 표운의 말을 이해하게 된 건, 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였다. 천영과 추렴 그리고 딸을 인질로 잡은 제천맹이 목숨을 요구
했을 때,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 닿았다는 무공도, 천하를 살 수 있는 재물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 한 몸 죽어 그녀들을 살릴 수 있다면 백 번이라도 그렇게 하겠다
는 생각뿐이었다.
"운아! 네 녀석 말이 맞았다.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이었다. ……그런 놈이 왜 죽지 못했냐고? 내가 그녀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그녀들이 나를 더 사랑했나 봐."
마른 풀로 뒤덮인 무덤 가에 술을 부으며 중얼거렸다. 50년 만에 찾
은 표운의 무덤, 그간의 세월을 말해주듯 거의 평지나 다름없이 변해
버렸다.
"산다는 게 참 힘들다.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그냥 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봐.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 끊임없이 남
의 것을 탐하는 놈들이 괴롭혀. 날 죽여주지도 못하는 것들이 말이
다."
첫댓글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감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감사감사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즐겁게 읽었네요
즐감하고 갑니다.
즐겁게 읽었네요
잘읽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감사 하고 사랑 합니다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