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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8;1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마음에 썩 들지 않는 '가시자리'를 조금씩 '가장 좋은 꽃자리'로 만들어 가는 사람, 그가 참 실력자입니다. 성경이 비운의 여인 다말에 대해 '의롭다'하고 명예를 주는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다. 공주야! 하나님 나라의 윤리는 세상의 도덕을 초월한다. 그것은 세상 윤리를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의 윤리가 지향하는 기대보다 훨씬 높고 지향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Your seat that you consider like a sitting cushion is a flower seat." He is the one who gradually makes the thorn that he does not like into the best flower seat. The reason why the Bible gives honor to Damal, the unfortunate woman, is no different from that. Princess! The ethics of the kingdom of God transcend the morality of the world. It does not mean that they ignore the ethics of the world, but that their ethics are much higher than what they expect and their direction is diffe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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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때로 세상이 합법이라고 하는 것을 위법이라 말하고, 위법이라고 말하는 것을 합법이라고 한다. 유다의 두 아들이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는다. 둘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심판을 받아죽었다. 특히 오난은 ’기업 무름‘의 의미를 소홀히 하여 형의 대가 끊기도록 방치한 죄가 컸다. 그런데 유다는 자부 다말을 친정으로 돌려보낸다. 자식 없이 친정으로 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다말에게는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It is sometimes called illegality to say that the world is legal, and it is called illegality to say that it is illegal. Judah's two sons die without having a subordinate. Both were judged and killed because "the Lord is evil in his eyes." In particular, Onan was guilty of neglecting the meaning of "corporate affairs" and leaving the price of his sentence to be cut off. Judas, on the other hand, sends Jabu Damal back to his parents' home. Going home without children was already painful and shameful for Da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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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아들 셀라가 어리기 때문이었지만 실제로는 셀라도 죽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두 아들이 죽은 것이 그들의 죄악 때문이 아니라 다말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을 탓하는 자에게 개선의 여지는 없다. 셀라가 장성했으니 다말을 다시 불러 그를 통해 장자의 대를 잇게 해야 했다. 하지만 유다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는 다말이 살아 있는데도 막내아들을 통해 장자의 대를 이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On the outside, Zella's son was young, but in reality, he was afraid that Zella would die. He appears to have thought that Tamar was the cause of his two sons' deaths, not their sins. Those who blame others without looking back on themselves have no room for improvement. When Zella grew up, he had to call Tamar back and use him to connect the eldest son's generation. Judas, on the other hand, does not keep that promise, and he did not think about succeeding the eldest son's generation through his youngest son, even though Tamar was still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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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미래가 사라져가고 있고 수치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도 그는 태평하였다. 하나님의 나라가 위태롭고 교회가 위태롭고, 우리 자녀들이 위태로운데, 우리는 너무 태평한 것은 아닌가, 펜데믹은 이제 그 망각을 그치고 믿음의 대를 잇기 위해 무언가 본질을 찾고 중심을 잡으라는 하나님의 신호가 아니겠는가, 다말은 창녀 행세를 하며 시부 유다를 유혹한다. 유다의 목적은 욕망 충족이었지만, 자부의 목적은 기업을 무를 손을 얻는 일이었다.
Even though a person's future was disappearing and he was having a time of shame, he was at ease. The kingdom of God is at stake, the church is at stake, and our children are at stake. Isn't the pandemic a sign of God to stop forgetting and find the essence and take center stage in order to continue the generation of faith? Damal pretends to be a prostitute and seduces his father-in-law Judas. Judah's purpose was to satisfy his desires, but the purpose of pride was to bring business to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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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는 쾌락의 대가를 지불하는 데는 성실했으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결국 다말을 통해 아들을 낳는다. 유다 역시 다말을 음란한 여인이라고 오해했다가 그의 의도를 알고는 그녀가 자신보다 옳다고 인정해 준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수치와 오해를 자초한 다말의 용기 있는 믿음을 통해 예수까지 이어지는 메시아의 계보에 참여하였다. 형제들과 떨어져 이방 결혼한 유다의 삶에 비춰본 나의 현재는 어떠한가? 오난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내 행실은 없는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책임 회피나 책임 전가의 모습은 없는가? 나는 교묘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지는 않았는가? 나는 영적 분별을 잃은 유다가 아닌가? 성적인 욕구를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
Judas was sincere in paying the price of pleasure but had no interest in fulfilling God's orders. Eventually, through Damal, a son was born. Judas also misunderstood Damal as an obscene woman, but when he knows his intention, he admits that she is better than him. He participated in the lineage of the messiah that extends to Jesus through Damal's courageous belief that caused shame and misunderstanding to do God's will. What about my present day in the light of the life of Judah, who was separated from his brothers and married in a strange way? Is there no evil deed in the eyes of the Lord like Onan? Is there no evasion of responsibility or transfer of responsibility for God's will? Have I not turned the blame on others in a clever way? Am I not Judas who has lost spiritual sense? How will you deal with sexual desi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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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결혼과 자녀들의 출생(1-5)
a.유다의 떠남:1
b.유다의 결혼:2
c.유다가 세 아들을 얻음:3-5
다말의 결혼과 유다자녀들의 죽음(6-11)
a.다말의 결혼:6
b.엘의 죽음과 수혼 명령:7-6
c.오난의 악행과 죽음:9-10
d.다말을 친정으로 돌려보냄:11
유다와 다말 중 누가 더 의로운가(12-26)
a.다말이 유다를 속이고 동침함:12-19
b.유다가 다말을 찾지 못함:20-23
c.유다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함:24-26
베레스와 세라의 출생(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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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유다가(1a)
자기 형제에게서(1b)
내려가서(1c)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1d)
나아 가니라(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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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거기서(2a)
가나안 사람(2b)
수아라 하는 자의(2c)
딸을 보고(2d)
그를 취하여 동침하니(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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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잉태하여(3a)
아들을 낳으매(3b)
유다가 그 이름을(3c)
엘이라 하니라(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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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시 잉태하여(4a)
아들을 낳고(4b)
그 이름을(4c)
오난이라 하고(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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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또 다시(5a)
아들을 낳고(5b)
그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5c)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5d)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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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6a)
아내를 취하니(6b)
그 이름은 다말이더라(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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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장자 엘이(7a)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7b)
여호와께서 그를(7c)
죽이신지라(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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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8a)
오난에게 이르되(8b)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8c)
남편의 아우의(8d)
본분을 행하여(8e)
네 형을 위하여(8f)
씨가 있게 하라(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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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난이(9a)
그 씨가 자기 것이(9b)
되지 않을 줄 알므로(9c)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9d)
형에게 아들을(9e)
얻게 아니하려고(9f)
땅에 설정하매(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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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10a)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10b)
여호와께서(10c)
그도 죽이시니(1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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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그 며느리(11a)
다말에게 이르되(11b)
수절하고(11c)
네 아비 집에 있어서(11d)
내 아들 셀라가(11e)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11f)
셀라도 그 형들 같이(11g)
죽을까 염려함이라(11h)
다말이 가서(11i)
그 아비 집에 있으니라(11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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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에(12a)
유다의 아내(12b)
수아의 딸이(12c)
죽은지라(12d)
유다가(12e)
위로를 받은 후에(12f)
그 친구 아둘람 사람(12g)
히라와 함께(12h)
딤나로 올라가서(12i)
자기 양털 깎는 자에게(12k)
이르렀더니(1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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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이 다말에게 고하되(13a)
네 시부가(13b)
자기 양털을 깎으려고(13c)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1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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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 과부의(14a)
의복을 벗고(14b)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14c)
몸을 휩싸고(14d)
딤나 길곁(14e)
에나임 문에 앉으니(14f)
이는 셀라가(14g)
장성함을 보았어도(14h)
자기를 그의 아내로(14i)
주지 않음을 인함이라(1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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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얼굴을(15a)
가렸으므로(15b)
유다가 그를 보고(15c)
창녀로 여겨(1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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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곁으로(16a)
그에게 나아가(16b)
가로되 청컨대 나로 네게(16c)
들어가게 하라 하니(16d)
그 자부인줄(16e)
알지 못하였음이라(16f)
그가 가로되(16g)
당신이 무엇을 주고(16h)
내게 들어오려느냐?(16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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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가로되(17a)
내가 내 떼에서(17b)
염소 새끼를 주리라(17c)
그가 가로되(17d)
당신이 그것을 줄때까지(17e)
약조 물을 주겠느냐(1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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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가로되(18a)
무슨 약조 물을 네게 주랴(18b)
그가 가로되(18c)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18d)
당신의 손에 있는(18e)
지팡이로 하라(18f)
유다가 그것들을(18g)
그에게 주고(18h)
그에게로 들어갔더니(18i)
그가(18j)
유다로 말미암아(18k)
잉태하였더라(1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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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일어나 떠나가서(19a)
그 면박을 벗고(19b)
과부의 의복을(19c)
도로 입었더라(1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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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그 친구(20a)
아둘람 사람의(20b)
손에 부탁하여(20c)
염소 새끼를 보내고(20d)
그 여인의 손에서(20e)
약조 물을(20f)
찾으려 하였으나(20g)
그가 그 여인을(20h)
찾지 못한지라(20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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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곳 사람에게 물어(21a)
가로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21b)
창녀가 어디 있느냐(21c)
그들이 가로되(21d)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2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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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22a)
가로되 내가 그를(22b)
찾지 못하고(22c)
그곳 사람도 이르기를(22d)
여기는 창녀가 없다 하더라(2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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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가로되(33a)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23b)
우리가 부끄러움을(23c)
당할까 하노라(23d)
내가 이 염소 새끼를(23e)
보내었으나(23f)
그대가 그를(23g)
찾지 못하였느니라(2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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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쯤 후에(24a)
혹이 유다에게 고하여(24b)
가로되 네 며느리 다말이(24c)
행음하였고(24d)
그 행음함을 인하여(24e)
잉태하였느니라(24f)
유다가 가로되(24g)
그를 끌어내어(24h)
불사르라(2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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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끌려 나갈 때에(25a)
보내어 시부에게 이르되(25b)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25c)
잉태하였나이다(25d)
청컨대 보소서(25e)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25f)
뉘 것이나이까? 한지라(2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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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그것들을(26a)
알아보고 가로되(26b)
그는 나보다 옳도다(26c)
내가 그를(26d)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26e)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26f)
다시는 그를(26g)
가까이 하지(26h)
아니하였더라(26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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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하여 보니(27a)
쌍태라(2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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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할 때에(28a)
손이 나오는지라(28b)
산파가 가로되(28c)
이는(28d)
먼저 나온 자라하고(28e)
홍사를 가져(28f)
그 손에 매었더니(2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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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을 도로 들이며(29a)
그 형제가 나오는지라(29b)
산파가 가로되(29c)
네가 어찌하여 터치고(29d)
나오느냐 한 고로(29e)
그 이름을(29f)
베레스라 불렀고(2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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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제(30a)
곧 손에 홍사 있는 자가(30b)
뒤에 나오니(30c)
그 이름을(30d)
세라라 불렀더라(3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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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말을 돌려보내는 유다_Judas to send Tamar back.
약속을 지키지 않는 유다_Judas who doesn't keep his word.
유다보다 옳은 다말_The right thing to say than Jud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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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하나님이 정하신 가족의 도리를 다하지 않을 때 위기가 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호스트의 본문을 똑바로 이행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책임 있고 진실하게 살게 하옵소서. 내 고엘이 되셔서 비참한 처지에 있는 저희들을 구원해주신 주님, 내게도 유다처럼 잘못을 시인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고 끝가지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사는 다말의 로드 십을 본받게 하옵소서. 다시하번 이방인이었던 저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는 믿음을 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Lord, I will remember that a crisis will come when God does not fulfill his family's duty, and I will carry out the text of the host correctly. May you live in a responsible and sincere manner, conscious of God's gaze, based on the word of God. O Lord, who
has become my Goel and saved us from our misery. Give me the courage to admit my wrongs like Judah and end up with God. Follow the example of Damal's Lord Xib, who lives according to righteousness. Once again I, a stranger, thank you for your faith in God's salvation.
2026.5.9.sat.Clay
신학 비평//
의로움은 윤리를 넘어서는가? 다말은 왜 ‘옳다’고 선언되는가? 하나님의 의는 인간 도덕을 깨뜨리는가, 완성하는가? 다말의 행위는 분명 비정상적이고 문제적입니다. (속임, 성적 위장, 근친적 긴장)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나보다 옳도다” 이 본문에서 의는 일반 윤리가 아닙니다. 언약의 계승을 지키는가? a. 유다...책임 회피/약속 파기/욕망 중심의 언약을 끊는 쪽인데 반해 b. 다말...수치 감수/자기 파괴적 선택을 합니다. 그 목적은 후사 보존으로 언약을 이어가는 선택입니다. 도덕적으로 깨끗해서가 아니라 언약을 지켰기 때문에 ‘의롭다’는 겁니다.
1) 프로이트 vs 융: 욕망과 상징
a. 지그문트 프로이트로 보면 이 본문은 억압된 성욕/권력/금기 위반으로 욕망 폭발 구조입니다. b. 칼 융으로 보면 다말은 “그림자”를 수행합니다. 사회적으로 금지된 역할이나 공동체를 살리는 기능, 어둠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아키타입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더 나아갑니다. 욕망도, 그림자도 아닌 언약을 위한 사건입니다. 다말의 “기다림”은 약속 있음, 그러나 이행 안 됨→ 지연 발생 그리고 이 지연이 만든 것은 수치-분노-위험한 선택까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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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자크 데리다의 차연 (différance)을 개입시키면 "의미는 즉시 완성되지 않고 지연 속에서 드러납니다. 언약의 의미는 정상적인 방식이 아닌 <지연과 균열 속>에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합니다. “목적이 옳으면 수단은 정당하다”→ 위험한 해석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다말을 “의롭다”고 했지 행위를 “모범”이라 하진 않습니다. 하나님은 왜곡된 상황 속에서도 언약을 이루시지 왜곡 자체를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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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계보가 다말 → 베레스 → 다윗 → 예수인 것을 가만하면 하나님의 구속사는 깨끗한 역사로 진행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창38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 도덕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드러내고 더 큰 목적 속으로 끌어올립니다. 다말의 행위는 의롭다기보다 하나님이 그 상황을 통해 의를 드러내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나는 옳은 행동을 붙들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이루시는 더 큰 의의 흐름을 보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