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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가보지 않은 공연장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날이 갈수록 이런 마음이 증폭되는것같아요. 멋모르고 공연 볼 때는 작품만 좋으면 공연장은 개의치 않고 다녔죠. 그러나 이제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극장에 대한 설레임과 호기심이 생기지 않아요. 꽤 많은 공연을 봤고 여러군데의 공연장을 두루두루 다니면서 익숙한것만 찾는 경향이 생겨버린듯해요. 이러다보니 안좋은 습관이 쌓이고 있어요. 어느 극장이 좋은 극장인지,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유무가 확실히 판가름이 나버리면 작품과 별개로 해당 공연장에서 올려진다는 이유만으로 기피 대상이 되는거죠. 사실 1년 기준으로 봤을 때 도저히 안 보고는 못 배기는 공연이 몇 편이나 된다고요. 대부분 이런저런 사심에 의해 관람하는건데 극장 환경에 따라 관람 여부를 결정짓는 일이 잦다 보니 진국을 놓치는 경우도 허다할겁니다. 가끔은 정보소극장 같은곳에서 힘들게 공연보는걸 감수하고라도 작품에 우선순위를 둘 때가 있지만 그렇게해서 관람한 공연이 썩 만족스럽지 못하면 편견만 가중시키는거죠.
[쥐덫]의 공연정보를 알아보면서 작품이 올려지고 있는 SH아트홀을 제가 가봤나, 안 가봤나 헷갈렸어요. 대학로 소극장도 가본데 위주로만 다녀서 모르는 극장이 태반이죠. 구석구석에 소극장들이 모여 있어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극장을 처음 방문할 땐 어느 정도는 헤맬 각오를 합니다. 예전에 정보소극장에 처음 갔을 때도 동숭홀 인근에 있는걸 못찾고 한참을 두리번거렸던 기억이 나요. 마방진 소극장에서 [마리화나]를 볼 때는 극장 위치를 제대로 못찾아 전전긍긍했죠. [사랑은 비를 타고]를 처음 보러 갔을 때도 인켈아트홀 극장을 한번에 찾은건 아니었습니다. 문화공간 필링 극장이 이다 극장 전에 신시뮤지컬극장 전에 폴리미디어 씨어터였던 고릿적 시절에 지금처럼 혜화역 출구를 빠져 나오면 한눈에 보기 좋게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도 않아서 한참을 오락가락했던 기억도 나요.
극장 편식을 하는건 종종걸음 하기가 싫어서인 이유도 있었는데 요즘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극장이라도 대학로를 여러 해 동안 다니다 보니 감이 잡혀서 전처럼 어렵게 찾는 일은 없죠. 그러나 극장을 찾아 다니는 일이 귀찮아 졌기에 익숙한 공간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기우나 봅니다. [쥐덫]이 올려지고 있는 SH아트홀은 아마도 가보지 않은 극장 같았어요. 약도를 보니 근방에 알과핵 소극장도 있고 대학로 예술극장도 있는걸 봐서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것 같진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 작품을 SH아트홀에서 보느냐, 마느냐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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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덫]은 꼭 봐야하는 작품이라기 보단 웬지 봐야할것만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100권짜리 세계명작 전집 목록을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독서 수행과 같이 따분한 의무감을 동반시키는 고전 관극이었죠. 이 작품은 딱 두가지로 관람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애거사 크리스티 원작, 웨스트엔드 최장기 공연기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연극. 이런 연극은 일단 한번은 보고 난 뒤 정리하면 돼요. 웨스트엔드에서 60년 동안이나 공연했다잖아요. 어떤 작품인지 궁금했어요. 작품의 인지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고 한번은 보리라 다짐했던 작품이었죠.
거기다 SH아트홀에서 하는 버전은 무허가로 올리는것도 아닙니다. 정식으로 판권을 확보해서 올리는 라이센스 연극이죠. 이 점이 지난 겨울 서울시극단에서 올렸던 [쥐덫]과 차별되는 요소입니다. 그래서그런가 이번 [쥐덫]은 정식으로 라이센스 사온 티를 때깔나게 내고 있습니다. 공연 전반적으로 강조하는 숫자는 60입니다. 웨스트엔드에서 [쥐덫]이 올려진지 60년이 됐다고 하여 60이란 숫자를 대문짝만하게 키운건데 얼핏 보면 공연 제목이 [쥐덫 60]인것 같기도 하고 원래 제목이 [60]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60주년이 됐다고 하여 60주년에서 파생된 특별 이벤트를 실시하여 파격가로 판매했습니다. 60원에 표를 팔진 않았지만 600원을 넘어 전석 6000원이라는 헐값에 좌석을 제공했죠. 프리뷰 공연을 6000원에 판매한것보다 더 놀라운것은 프리뷰 기간이 본 공연 기간 맞먹게 길었다는겁니다. [쥐덫]의 프리뷰 기간은 무려 46일이었습니다. 다른 작품들이 본 공연기간으로 잡는 기간을 전부 프리뷰 공연으로 6000원에 판매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식의 구조로 공연을 선보인거죠.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에선 한 달 넘게 프리뷰 기간을 가지고 공연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현재 오픈런으로 올려지고 있는 [쥐덫]은 프리뷰 할인 끝내자마자 다시 전석 60프로 할인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렇게까지 가격을 인하시켰음에도 예매율은 프리뷰 때와 달리 급감해서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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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서울시극단에서 단기간 올렸던 [쥐덫]도 볼까말까 망설이다 안 봐서 이번 [쥐덫]은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리뷰 할인티켓이 프리뷰 초반엔 몇주치씩 빠져나가서 구하기 힘들었지만 프리뷰 기간만 한달이 넘다보니 프리뷰 막바지엔 자리 구하기가 쉬웠습니다. 프리뷰 초반엔 아예 관람하기를 포기했었어요. 프리뷰 초반엔 주의깊게 안 봐서 설마 프리뷰 기간이 한달 넘을거라고는 생각 못했죠. 우연히 검색하다 알게 됐고 자리가 남았길래 얼른 잡았습니다.
[쥐덫]이 공연되고 있는 SH아트홀은 5년 전에 가봤던 극장이더군요. 하도 안 가서 처음 가보는 극장인 줄 알았어요. 알과핵 소극장을 지나면서 한번 와봤던 극장, 지나가다가 여러번 봤던 극장이라는걸 알았죠. 5년 전에 여기서 [헤드윅]을 봤었어요. 지금처럼 할인률에 인색하지 않았던 시절에 올려졌던 [헤드윅]을 여기서 두번 봤었네요. 그때 조승우가 중간에 합류했는데 바로 전 작품인 [렌트]때 매진 사태로 벌어진 암표거래 때문에 시끌벅적해지자 [헤드윅]은 조용히 출연을 결정짓고 참여했죠. 당연히 자리 잡기는 치열했는데 특이하게도 A석은 온라인에선 구매할 수 없었고 현장에서만 판매했습니다. 온라인 예매로 자리 구하기는 글러먹었고 해서 시간 맞춰 현장 구매로 가닥을 잡았는데 저처럼 온라인 예매에서 실패한 관객들이 미리 자리 잡고 앉아 기다리고 있더군요. 공연 시작 한시간전부터 판매했는데 불안해서 그보다 일찍 가서 구매를 했었죠. 하마터면 현장 판매분도 못구할 뻔했어요. 실제로 현장 구매에도 실패해서 되돌아간 관객들이 많았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SH아트홀을 가본건데 [헤드윅]을 보기 위해서 간것일 뿐 재방문은 하고 싶지 않았죠. 좁고 불편했고 쾌쾌했어요. [헤드윅]때문에 한번 더 간 뒤로 5년 동안 가보질 않아서 기억에서 잊혀진 극장이었는데 [쥐덫]을 보게 되면서 다시 살아난거죠. [헤드윅]은 조승우 출연회차로 봤을 때 재미는 있었지만 작품의 진가를 알려면 웬지 다른 배우로 한번은 더 봐야 느낄 수 있을것같아서 며칠 뒤 다른 배우로 한번 더 봤었어요. 그때도 현장 구매해서 봤는데 공연시작 10분전에 도착했어도 여유분이 있더군요.
5년 만에 찾은 SH아트홀은 싹 바뀌어 있었습니다. 불편했던 좌석도 전면 교체됐고 내부 인테리어도 다시 해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죠. 공연 전 대기공간도 이전보단 넉넉했고요. 공연장에 일찍 도착했는데 [쥐덫]기획사가 작품과 관련된 자료를 공연장 전면에 꼼꼼하게 배치해놔서 공연 보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영국문화원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극장 내부를 애거사 크리스티 홍보관으로 꾸밀 수 있었던거죠. 기획사가 신경 많이 썼더군요. 현재 종연 일자가 결정되지 않았는데 프리뷰 기간만 해도 46일이었으니 1년은 할 기세입니다. 밑지는거 알면서도 염가로 떨어뜨린 공연이니 관객 많이 들어서 현상유지라도 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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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은 무엇보다도 정식 라이센스라는것이 작품의 상품가치를 높여주고 있는데 공연 자체적으로 보면 그것말고는 별로 볼건 없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웨스트엔드에서 60년 동안이나 올려진, 그리고 지금도 올려지고 있는 최장수 베스트셀러 연극을 정식 라이센스로 관람했다는것 이상의 의미는 생기지 않았어요. 그동안 밀린 방학숙제 하듯 본 공연이 몇편 있는데 대게 명작이거나 해외에서 수십년동안 올려진 장기 공연이었죠. 그중에는 [우먼 인 블랙]처럼 국내로 유입되면서 분위기가 헐거워진 연극도 있었고 [판타스틱스]처럼 실망스러운 뮤지컬도 있었습니다. [쥐덫]은 상당히 지루했던 작품으로 남을것같군요.
연극 [쥐덫]의 토대는 애거사 크리스티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할머니인 메리 왕비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20분짜리 라디오 방속극 [세 마리 눈 먼 생쥐]입니다. 방송극은 성공적이었고 이에 고무된 애거사 크리스티는 이후 [세 마리 눈 먼 생쥐]를 장편극으로 각색해 무대용으로 만들었죠. 그렇게 해서 오래로 60살 먹은 [쥐덫]이 탄생하게 됩니다. 현재 SH아트홀에서 올려지고 있는 [쥐덫]은 제작진의 의도대로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라는것이 공연 내내 느껴지지만 매끄럽지 못한 번역극 특유의 딱딱함이 시종일간 묻어 나옵니다. 극 자체는 정상 속도대로 전개되는데 아무런 흥미나 궁금증이 유발되지 않아요.
이번 공연은 과거 무허가로 여러번 올려졌던, 작년 12월에도 서울시극단에서 자체 제작으로 해석했던 [쥐덫]과 달리 원작에 충실하기 위해 해외에서 60주년 다이아몬드 쥬빌리 행사 중인 연극 [쥐덫]의 라이센스를 체결해서 올린거죠. 그 덕에 공연장 내부를 애거사 크리스티 기념관으로 개조할 수 있었던것이고요. 무대 전환은 거의 없는 작품이지만 정식 라이센스로 올려지는 연극 답게 작품에 투자한 흔적은 곳곳에 보입니다. 꼭 필요하진 않지만 활용하면 극적 분위기를 풍부하게 유도하는 무대 효과도 여러번 발현되고 영국적인 냄새도 강하게 표출됩니다. 재미나 완성도를 떠나서 성의있게 만들어진 공연이에요. 재미가 없고 어색해져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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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극이라면 극을 따라가며 관객들의 두뇌를 자극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예상치 못한 반전과 범인이 밝혀지는 상황에서도 놀랍지가 않습니다. 그래, 저 사람이 범인이었구나, 그 다음엔 구구절절 범인의 개인사가 펼쳐치고 몇 번의 반전이 또 나올 수도 있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게 되는거죠. 이건 각본이 허술해서 그런건 아니고 이해력의 부족인것같습니다. 라이센스에 대한 강박증이 작품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원작 재현에 그치고 만거죠. [쥐덫]역시 제한된 공간, 모두가 범인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구성 등 애거사 크리스티의 특징이 망라된 작품인데 애거사 크리스티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초반의 재미와 흥미는 금방 풀이 죽어 버립니다. 초반 30분이 지나고 나면 딱딱한 번역체 대사를 힘들게 소화하고 있는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에 귀를 막고 싶을 정도에요.
사건의 전환 방식은 급작스럽고 눈발 날리는 외부의 풍경을 표현할 때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는 잡음이 되어 몰입을 방해하기 일수입니다. 범인이 밝혀지는 장면은 작위적입니다. 범인 역을 맡은 배우의 감정표현 방식이 서툴러서 범인의 혼란스러운 이중성이 희미해졌죠. [쥐덫]은 해외에서 공연될 때도 연극이 끝나고 나면 범인 역의 배우가 나와서 관객들에게 살인범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을 했다는데 이번 국내 공연도 라이센스 답게 똑같이 마무리를 짓습니다. 이 비밀은 그동안 잘 지켜졌다가 재작년에 위키디피아에 [쥐덫]의 살인범 이름이 공개돼 논란이 있었습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유족들과 팬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위키디피아는 살인범 공개에 대해 지식을 공개하는것 뿐이라며 회사측 입장을 고수했죠. 근데 아무리 관객들이 살인범 이름을 함구한다 하더라도 애거사 크리스티의 원작을 시중에서 구하기가 쉬운데 감춰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 않나요? 60년 동안이나 올려진 연극인데 반전을 숨기는것도 웃기는 일이고요. 호들갑스러워요. 범인을 알고 본다 해도 크게 문제될 작품은 아니에요. 범인이 누구인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을 따라가는게 관건인 작품이니까요. 이번 라이센스는 그 지점에서 실패하고 말았죠. 그 바람에 내용이 억지스럽게 변질됐어요. 배우들의 매력이 떨어진다는것도 걸리는 점인데 보다 고상하면서도 속물적인 분위기를 발산할 수 있는 배우들이 각 배역을 소화했다면 어색한 느낌을 상쇄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프리뷰 막바지에 관람했는데 본 공연에선 프로그램은 아직 제작되지 않았더군요.
첫댓글 중요한 지점에서 실패했네요. 개인적으로 애거서 크리스트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반전이 평온한 까닭이었거든요. 반전에 도달하기 전의 쫄깃한 맛이 사라졌다면, 이 작품은 내내 평온함을 유지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보니 전 SH아트홀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네요. 저도 아그네스님처럼 공연장을 꽤나 따지는 모양입니다. 좌석이 불편하든 말든 그저 가본 공연장의 연극만 줄곧 주시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공연장마다 다양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언제나 후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