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과 길, 그리고 ‘길을 걷는다는 것’에 관한 인문학적 사유
충남대학교 교수 박찬인
1. 들어가면서
새로운 밀레니엄에 접어들던 2000년대 초, 이제는 배고픔을 이기기 위한 질주에서 벗어나 ‘제대로 살아가자,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운동이 확산하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레저 문화’, ‘아웃도어 문화’가 급팽창할 즈음 대전에서는 “대전의 산을 시민의 품으로”라는 구호 아래 ‘대전둘레산길잇기’ 운동1)이 시작되었다. 자발적인 시민의 제안과 참여, 주도로 이루어진 그 운동은 시청 관계자들과 한마음으로 ‘대전둘레산길’ 12구간 138km를 탄생시켰다. 대전둘레산길의 탄생은 제주도 올레길보다 먼저였고 명실상부하게 전국적인 올레길, 둘레길 붐을 일으키는 기폭제로 기능했다. 2024년 1월 현재에도 ‘대둘’은 그 단체 대표와 팀장의 안내하에 매 주말 ‘시민안내산행’을 20년째 진행하고 있다.
‘대전둘레산길’은 2022년 11월 ‘제7호 국가숲길’로 지정되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대전광역시나 각 구청에서만 관리하던 대전둘레산길을 차후에는 국가적 예산으로 산림청을 통해 유지, 보수, 관리하게 될 것이다. 게재에, 우리에게 길이란 무엇이고,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특히 현대 과학도시 대전과 길은 어떤 특수한 인연을 맺고 있는지, 둘레산길이나 대청호반길을 걸으며 인문학적 치유 가능성은 열려있는지, 보완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타진해 보려는 것이 본 글의 목표이다.
2. 대전과 길
21세기 한국의 “과학도시, 미래도시” 대전은 ‘길’로부터 탄생하였다. 그리고 한 도시의 탄생에 개입한 길이 오늘날 그 도시의 삶과 문화에 또한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약 150만 명의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광역시 대전의 ‘현대적인’ 시작은 길로부터이다. 서구문명이 ‘현대’라는 이름으로 한반도에 이입되기 시작하였던 20세기 초, 정확하게는 1904년 대전에 길 하나가 ‘인위적으로 불현듯’ 놓였다. 그것은 수많은 방랑객들과 행인들의 발길로 다져져 생겨난 길이 아니라 현대문명이란 미명 하에 기획되고 계획되어 생겨난 길, 철도이다. 대전역사박물관의 기념비화 작업이 “현대의 대전은 1904년 경부선철도 부설을 계기로 ‘도시’로 본격화되었다”2)라고 밝히는 바와 같이, 대전의 근원적 실존성은 “철도 때문에 번창한 현대도시의 속성”3)에 의존한다. 현대도시로서의 대전은 철도라는 현대문명이 잉태한 ‘길’과 운명공동체로 엮여있는 셈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타자의 강압적 의지에 의해 이입된 문명이 전통사회의 동리를 인구 집결지의 현대도시로 변화시킨 계기 속에서 대전이 태어난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도시의 탄생은 유독 대전만의 경우가 아닐 것이며, 강대국의 억압에 놓인 지역이나 국가가 겪을 수밖에 없는 숙명일 수 있다. 세계현대사를 살펴볼 때 19세기 후반기부터 ‘현대적으로’ 본격화된 제국주의의 약진 시기 동안 유사한 사례들을 확인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전의 탄생에 대한 담론에서는 ‘철도 건설’이라는 문화적 기표보다 ‘일본제국주의’라는 역사적 기표가 더 부각되어지고는 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일본제국주의가 건설한 철도는 현대도시 대전의 탄생 ‘설화’ 속에서 배경역할을 하는 ‘사실’이면서 동시에 지울 수 없는 집단적 기억이며, 한국 현대사 전체에 드리워진 우울한 그림자로 작용한다.
"경부선은 1905년 개통되어 100년 넘는 세월 동안 한국의 동맥 역할을 해왔다. 조선말에서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국권이 침탈당하던 시기, 일본이 건설하기 시작한 경부선은 당시 “힘깨나 쓰는 장정 철도 역부로 끌려가고, 얼굴 반반한 계집 갈보로 끌려간다.”는 노래가 불릴 정도로 이때 동원된 수많은 조선인의 피와 눈물로 건설되었다."4)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배경은 비극적 서사(敍事)의 다양한 모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시대성을 고발하게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대적 배경을 서사구조 속에 침잠시켜 버리는 암묵적 동의를 요청하기도 한다. 특히 한 도시의 탄생 설화를 이야기하는 서사적 구조 안에서 더욱 더 그러하다. 때문에 대전 현대사의 출발은 거의 '트라우마(trauma)'에 가까운 역사적 아픔의 양상을 보인다.
"대전의 비약적인 발전의 처음은 대전역이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대전역에 이어 그 해 6월에는 대전 우체국의 처음인 대전 우편물 수취소가 대전역 구내에서 업무를 시작하고 다음 해인 1905년 대전 시가지에서는 처음으로 대전역에서 대전 장터까지 폭 3칸의 도로가 신설되었다. 우마차가 겨우 다닐만한 도로였다.
대전에 몰려든 일본인은 1904년에 188명에서 1905년에는 609명으로 늘어났으며 그들의 착취 본거지 일본 거류민단이 1905년 1월에 정식으로 인가되어 그들의 자치기관으로 더욱 침략의 손길을 넓혀갔다."5)
"철도 개통에 의해 새로운 도시가 탄생하였고, 그간의 역원 제도에 의해 발전된 지역은 새로이 건설된 철도 노선에 따라 발전지역이 변화되었다. [......]
대전의 경우도 1905년에 경부선의 개통과 1914년 호남선의 개통에 의해 발전을 계속하였다."6)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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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전둘레산길잇기를 주도한 단체는 ‘비영리민간단체 <대전둘레산길잇기> http://cafe.daum.net/djsarang’이다. 본고에서는 대전둘레산길과 그 단체의 명칭이 혼동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 단체 이름은 ‘대둘’로 부른다.
2) 경부선철도 건설 기간은 1901년 6월부터 1905년 1월 완공까지 약 3년 6개월이다.
3) 송형섭, 『새로 보는 대전 역사』, 도서출판 나루, 1993, 12쪽
4) 이수광, 『경부선, 눈물과 한의 철도 이야기』, 효형출판, 2010, 6쪽
5) 최문휘, 「역사이야기 - 되돌아본 대전 100년, 지난 이야기 1900-1920」, 『토마토』 (2010년 7월호)
6) 이용상 외 공저, 『한국 철도의 역사와 발전 I』, 북갤러리, 2013, 39-40쪽
첫댓글 잘 생긴 '문화와숲길연구소'장으로서의 첫 연구논문 기대합니다.
대전발0시50분이 그냥 생긴게 아니네요
철도가 생기면서 대전 한밭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네요
일제식민지 때 철도가 생겼지만
길이 있어야 길이길이 발전한다는 것을
인문학적 사유로 잘 표현하셨습니다
샤넹 대표가 허당이라는 호가 있었다는 사실을 신문에서 알았네요
빈집 이라는 뜻의 호가 말해주듯
세상살이가 다 허당이래요
빈집에 세들어사는 그런 우리네 인생이
그러듯이ㅡ
교수라는 옷을 벗어셨으니 나목처럼
벌거벗은 몸으로 홀가분하게 대둘의 아름다운 숲길을 동화처럼 예전대로 계속 화폭에 꾸며주시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