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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의원 글쓰며, 그에 대해 네이버 블로그를 보다보니
정청래 의원이 너무 좋아진다....
그를 앞으로 지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서없이 쓴 글이니, 좀 글의 전후가 이상합니다.
글을 쓰며, 이것저것 붙이기 하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ㅜㅜ
아무튼, 정청래 의원!!!!!!!!!! 그와 친해지고 싶다 ㅅ ㅣ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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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백토 보다가 새로운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사실, 정청래 의원 잘 몰랐는데 ㅋㅋ좀 글을 재밌게 쓴다. 이정도 패액~~~~~~~트
충남 금산군 진산면 출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충남 논산시 연무대 출신이거든요
금산이야ㅡ
뭐 어릴때부터 대전 산내쪽으로 숱하게 오토바이 드라이빙을 다녔던 곳이고,
그곳 출신 선배들도 3명 있고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보문고 나오셨네..
ㅋㅋ
저 충남고 나왔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놔 ㅅ
저 학교 다닐땐, 보고는 충고 밥이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불교학교
아무튼 방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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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의원
이참에
현재 국회의원 이인제 좀 그만 쉬게 하시고
논산/금산으로 출마하시면 어떻겠습니까??? ㅋㅋㅋ
논산에 저희 집안만 200명이상 됩니다.
별로 실현가능성 없는 얘기는 집어치구요
*정청래의원 프로필* 2008년도부로 업데이트가 끊김..안습*
1.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시는군요, -------> 다음으로갈아타세요. 다음에 개인카페를 하나 만드시던지, 다음블로그를 사용하시기를 건의드립니다.
2008년뒤로 안쓰시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뭐 왜 그래야 하는지는.........굳이 설명안해도 아시리라..
2. 블로그에서 읽은 정의원의 칼럼 '저도 한때 놀았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1978년 3월 초. 중학교 입학식 날. 이 날은 정말 가슴 설렌 날이었습니다. 비록 검정색 운동화지만 난생처음 운동화를 신어 본 날입니다. 으젓하게 검정색 교복을 입고 모자도 썼습니다. 무엇 보다 기분 좋은 것은 중학생이 되면서 면소재지 읍내까지 4Km를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일이었습니다. 평소 경운기는커녕 차를 타 볼이 없는 오지마을 충남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돌로 막은 동네)에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기가 들어오더니 5학년 때 버스까지 들어 왔습니다.
제가 88년도에 중학교 입학했으니, 저보다 11살 형이시네요^^지금도 금산시내는 다른 곳보다는 많이 시골느낌나죠
버스가 들어오던 날 기다란 버스를 돌릴 장소가 없어 논배미로 짚과 자갈을 깔고 들어갔다가 버스가 논 진흙탕에 빠져 버렸습니다. “아~아~ 동민 여러분! 우리 마을 둥구나무 옆 논에 버스가 빠졌습니다. 모두들 나오셔야 하겄습니다.” 마을 이장님의 방송에 따라 온 동네 어른들이 동원되어 밀고 당기고 해서 간신히 버스를 살려 놓았습니다. 그 논 주인은 졸지에 차부집 주인이 되었고 동네에서 가장 큰 구멍가게까지 거머쥐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이 집이 현금보유고 1위를 항상 달렸습니다. 우리집 먼 친척이니 배가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입학식 날 어머니는 까만 교복에 호크를 채워주고 모자를 씌워 주시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20원짜리 승차권을 주시며 시간이 남으면 걸어서 오고 차표는 아껴 쓰라며 첫날부터 훈계를 했습니다. 새 교복에 새 운동화 거기에다 새 가방에 새 책들. 시골이지만 초등학교는 우리 동네에 있어서 차부까지 외딴 동네 아이들이 걸어 와서 차를 탔습니다. 어젯밤 막차로 들어 온 버스이기에 7시 출발이지만 아침 일찍 나가서 줄을 서면 차장이 순서대로 승차를 시킨 덕분에 뒷자리에 편하게 앉아서 학교에 갔습니다.
입학식 날. 3학년 회장이 ‘앞으로~ 나란히~.’와 ‘열중~ 쉬어~’를 반복했습니다. 초등학교 다섯개가 모여 하나의 중학교를 만들었습니다. 띄엄띄엄 우리 동네 아는 선배들과 아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열을 지어서 있는데 한 놈이 앞에서부터 모자를 툭툭 치며 땅바닥에 모자를 떨어뜨리며 뒤쪽을 향해 달려 왔습니다. 키가 제일 커(우리 반 78명중 출석번호 78번) 맨 뒤쪽에 서있는 내 앞까지 이놈이 도달했습니다. 읍내 초등학교 1짱으로 악명이 높은 놈이라 다른 아이들은 떨어진 모자를 아무 말도 못하고 주워서 다시 썼습니다.
순간의 판단이 3년을 좌우합니다. 나도 명색이 석막 초등학교 1짱인데..... 권투 시합전에 주고받는 눈빛을 아이오브더타이거(Eye of the Tiger)라고 했던가? 이 녀석은 자전거 폐달을 멈추면 쓰러진다고 덩치가 큰 나의 모자도 훌쩍 날려 버렸습니다. 순간.
나는 “씌워라잉.”이라 말했고
이 녀석은 “어~ 이새끼 봐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놈의 말이 채 끝나기 0.5초전에 오른쪽 주먹을 그 놈의 콧잔등에 날렸습니다. 곧바로 콧잔등을 나온 나의 주먹은 0.01초 후 정확하게 그놈의 명치에 꽂히고 있었습니다.
이놈은 숨이 막혔던지 허리를 굽혀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마음이 약해져 봐주면 안 됩니다. 아니 확실히 봐 버려야 합니다. 이제 주먹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순간 떠올랐습니다. 굽힌 허리를 마치 주먹으로 어퍼컷을 치듯 오른쪽 무릎으로 다시 명치를 치켜 올리며 가력하자 이놈은 운동장 바닥에 나 동글어 괴로워했습니다. 그 순간. 마무리해야 합니다. 처음 신어본 운동화로 얼굴을 밟고 몇 번 더 야수같은 짓을 몇 번 반복하고 한마디 합니다. “모자 씌워줄래.” 그러자 이 녀석은 말도 못하고 제발 살려달라는 측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강경파로써 님의 적에 대한 이런 기조에 깊은 존경과 동감을 표합니다 ㅋㅋ
이 녀석은 흙이 묻은 모자를 정성스레 털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반듯하게 나의 머리에 1분전 자신이 기분 좋게 날린 바로 그 모자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았습니다.
“너 이름 머냐?” 근엄한 나의 물음에
이 녀석은 “강**”라고 모기소리로 아주 짧게 대답했습니다.
“다음에 또 그럴래.”
“.......”
“가봐~”
사실 이럴 마음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것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없었던 때라 그냥 나는 나의 나와바리와 깃털을 곧추 세우려 했을 뿐입니다. 본의 아니게 나도 한 때 버스 뒷좌석에 앉아 껌 씹고 놀았습니다. 아무튼 이 녀석 덕분에 입학식 첫날부터 쭈욱~ 3년 동안 참 편하게 지냈습니다.(이런 호시절을 다 보내고 대전의 고등학교 입학식 날부터 가슴팍 엉덩이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정 반대로 연 이틀 죽도록 얻어 맞은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2007년 7월 8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정청래 올림
[출처] 저도 한때 놀았습니다. (슬픈 고백-3)|작성자 정청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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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재밌으셔..
국회의원을 떠나며 쓰신글
17대 국회 첫 번째 의원총회에서 첫 번째로 발언을 한 기억이 납니다. 당시 “우리가 잘 나서 국회의원이 된 것이 아니라 탄핵 촛불을 든 국민들 덕분에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탄핵에 반대하며 분신을 기도한 백은종씨가 병원비가 없다니 우리가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이 발언으로 정말 국회의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아 1200만원을 백씨에게 전달한 기억이 납니다. 국회의원으로 의원총회에서 첫 발언을 한 것이 성과를 낸 것입니다. 그 뿌듯했던 보람이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의 여행 저 편에 아득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옳고 그름 속에서 줄타기는 하지 않겠다. 결코 좌고우면하지 않고 옳은 것은 옳다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하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앞으로의 각오에 대한 첫 번째 방송 인터뷰였던 것도 이제 빛바랜 앨범속의 기억으로 아득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문광위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용기있게 “옳은 것을 옳다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언론개혁의 길이었습니다.
‘삼성 재벌이 잘못 되었다. 정치개혁을 하자. 이라크 파병을 반대한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자. 등등’ 이것은 어렵지만 위험천만한 주장은 아닙니다. 왜? 정치인으로서 가장 무서운 언론으로부터의 공격이나 보복은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개혁적인 정치인들도 굳이 언론개혁에는 소극적인 이유는 바로 언론의 보복이 뒤따르기 때문일 것이라는 저의 추측이 지나친 억측만은 아닐 것입니다.
문광위에서 저는 정말 줄기차게 신문시장의 투명화 정상화를 위한 신문법 제정에 앞장섰습니다. 문화일보에서 연재했던 포르노 소설 강안남자에 대해 2006년도 국정감사에서 지독할 정도로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문화일보는 자존심도 상하고 신문판매에 큰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발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총선에서 노골적인 보복으로 정치테러를 가해 왔습니다.
오늘 마지막 의원총회에서 마지막 연사로 발언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늘 의총에서 한 발언이 아마 국회에서 국회의원으로 행한 마지막 발언일 것입니다. 요약 발췌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정청래입니다. 공식 총선거 운동이 시작된 3월 27일. 3일후인 3월 30일 밤 10시경에 저희 비서관에게 다급한 전화가 옵니다. 고소를 할까요? 말까요? 이것이 무슨 말씀인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잘 가던 식당에 한 청년이 나타납니다. 그 청년은 정청래의원 언론특보가 보낸 정의원 사무실 직원이다. 그동안 밥 먹은 식대를 계산하려고 하니 영수증을 달라. 그래서 주인이 ‘그런 적이 없다.’고 하자 그러면 오늘 것이라도 달라고 하여 ‘오늘은 오지 않았다.’라고 했답니다.
주인이 하도 이상해 112로 경찰에 신고해 경찰차가 출동해 홍익지구대에서 이 청년을 연행해 갔는데 신분을 조사하니 문화일보 사회부 박모 기자였습니다. 제가 결찰에 고소를 해야 더 조사를 하고 본서로 이첩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문화일보는 강안남자 문제제기에 대해 총선 때 악랄하게 제 뒤를 캐고 다녔습니다. 항간에 8명의 기자가 풀려 제 지역구에서 뒤를 캐고 다녔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서교초등학교에서 저는 “교감을 자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첫 보도이후 교감선생이 ‘정의원은 절대 그런 사실이 없다.’라고 말해도 문화와 조선은 귀를 막고 정치보복을 했습니다. 오히려 정의원이 외압을 넣어서 교감이 거짓 반박문을 낸 것처럼 줄지어 보도를 했습니다.
선거 5일을 남겨 놓고 문화일보 사설 포함 11꼭지, 조선일보 사설포함 7꼭지를 썼습니다. 동아일보도 6꼭지를 썼습니다. 문화는 더욱 악랄하게 자매 무가지 Am7을 총선 전 마지막 출근 일이었던 4월 8일 1면에서 3면까지 허위 기사를 실어 뿌려댔습니다. 정청래 찍지 말라고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낙선운동을 한 것입니다.
제가 폭언을 했다는 증언은 안 나올 것입니다. 왜냐? 제가 그 말을 안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반론보도 청구 소송, 정정보도 청구소송, 형사소송, 그리고 문화일보 7억, 조선일보 5억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4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비용과 인지대 등 약 4천만원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법정투쟁을 통해 승리하겠습니다. 중간에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손학규 대표도 뒤 늦게 이 사실을 알고 저에게 미안하다고 했으며 격려도 해 주셨습니다. (천정배의원께서 제 문제를 다룰 언론피해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괄호 안의 말은 못했습니다. 이 기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한 가지 말씀드립니다. 저에게 본때를 보인 언론은 이제 18대 문광위에서 어느 누가 언론개혁을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공영방송 KBS에 대한 장악 음모를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KBS 이사장이 압력을 너무 받아 사퇴했습니다.
정연주 사장을 끌어 내리려는 압박이 너무 거셉니다. 이 문제는 모든 것을 떠나 우리당이 나서서 공영방송을 사수하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BS가 무너지면 MBC도 무너집니다. YTN 사장은 이명박 대선 캠프에 있던 구아무개씨가 내정되었다고 소문이 파다합니다. 조중동이 정권 편을 들고 방송도 넘어간다면 우리는 결국 우리의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러 길거리로 나가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공영방송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목소리와 국민의 목소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사활을 걸고 덤비는 문제라면 우리도 사활을 걸고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내야 합니다. 언론노조 등 각계각층 시민단체들이 공영방송 장악음모 분쇄를 위한 범국민 대책위원회를 만든다고 합니다. 우리도 동참해야 합니다.
저는 이제 전직의원의 꼬리표를 달고 삽니다. 그러나 현직의원이든 전직의원이든 정의와 진실을 되찾는 길에서 이탈하지 않겠습니다. 언론의 자유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수호하는 대열에 미력하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함께 해 주십시오.”
운이 좋은 것인지 어쩐지....17대 국회 의원총회 첫 발언과 마지막 발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문화와 조선일보의 저에 대한 정치보복에 대해 이해를 한 모양입니다. 참으로 많은 격려를 받았습니다. 김효석 원내대표께서도 제 발언 이후 마이크를 잡고 “KBS 미디어 포커스를 봤는데 참으로 어이가 없고 억울하게 됐더라.”며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최재성 공보 부대표도 “말 잘 들었고 좋았다.”라며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국회 본 회의에서 정운천 농림부 장관 표결이 부결된 후 의원회관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이글을 쓰고 있습니다. 정들었던 국회 의원회관 306호. 이 곳에서 많은 생각과 번뇌를 했고 많은 글을 쓰기도 했으며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국가가 어떻게 움직이고 법안 하나하나가 국민생활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배웠습니다.
부족했지만 이런 소중한 기회를 주신 국민들께 감사드리면서 이제 306호 방을 떠납니다. 저보다 더 훌륭한 분이 입주하셔서 좋은 의정활동 펼쳐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이제 방문을 열고 나갈 시간입니다.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나의 보금자리였던 306호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이젠 안녕.
첫댓글 왠지 슬프다........308호를 떠나며 ㅜㅜ
내년엔 꼭 복귀하시길.......
정 전의원의 복귀 기대합니다
근데 BGM 제목이 무엇인지요??? 예전 애니 배경음악으로 들었던 것 같아서..^^
잘 모르겠네요 ㅎㅎ
앗 HTML소스 보니 있네요...duvet (Lain 오프닝..)
암튼 좋은 글, 좋은 BGM 감사감사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마포 사람들이 과연.......어떤 선택을 할지
마포 사람입니다. 선택은 했습니다 .^^
청래씨는 참 유머러스하고 좋은분 같습니다ㅎ
으악 몰랐네...나랑 같은 학교를 같은 해에 졸업했네...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줄 알았는데...한살 많은거였구나...ㅋㅋ
ㅋㅋㅋㅋ 이런 ㅋㅋ 저 논산 연무대 기계공업 고등 학교 출신인데..ㅋㅋ 연무 사거리를 한때 주름??ㅋㅋ 잡던 시절이 잇었죸ㅋㅋ
오 시팍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난 연무중앙초등학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오매 형제여
꼭 당선되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