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생일이 지나 만 삼십이 된 장년입니다. 삼십에 접어들면서 이십대 청년 시절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흔히 아저씨들이라 불리우는 장년들의 습속들이 어느 순간 뇌리를 스치며 깨달음으로 다가와 하나 둘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에게도 쉬이 물어볼 수 없었던, 스스로 깨우친 그 진실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첫 번째 진실 : 모든 상의 바지에 넣어 입기
버클(Buckle)이 보이게 입는 게 보통 회사의 비즈니스 캐주얼 드레스코드인걸 차지하더라도 남방 혹은 셔츠는 바지에 넣어 입는 게 깔끔하고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워크샵이나 행사 등으로) 편한 복장을 입을 때 피케 셔츠나, 심지어 가디건을 바지에 넣어 입는 많은 회사 선배들을 보면서 쉬이 그들의 습속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입는지 속 시원하게 한번 물어볼까 하다가도 저를 제외한 모든 선배들이 그렇게 입고 있는 걸 보고 입을 꾹 다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내가 한번 넣어보자!" 결심한 건 회사를 다닌지 2년이 훌쩍 지나서였습니다. 한 여름이었습니다. 피케셔츠를 청바지에 안에 밀어 넣고 처음 외출을 했습니다. 생각보다 편했습니다. 내 상체와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 길어 엉덩이 부근의 하체를 불편하게 했던 Polo 셔츠 밑단이 바지 안으로 들어가니 달릴 때도, 앉을 때도, 물건을 들어올릴 때도 훨씬 편했습니다. 심지어 배도 덜 나와 보이고, 다리도 길어 보였습니다. 장년들이 갑자기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회사 화장실에서 좀 더 합리적인 인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의 습속은 합리의 완성 그 자체였습니다. 볼일을 보고 바지를 내린 뒤, 셔츠를 팬티 안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전 좀 놀랐지만 그 모습을 잊지 않고 집에 가서 고스란히 벤치마킹 해보았지요. 이건 뭐 아무리 팔을 흔들고 발광을 해도 남방은 하의에서 이탈하지 않을 만큼 짱짱하고 고스란히 제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전 이제 정장을 입을 때 이 방법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 두 번째 진실 : 샌들에 양말 신기
한 여름 샌들에 양말을 신은 장년을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샌들은 시원하라고 신는 건데 왜! 도대체 왜!! 양말을 신는거야"라고 괜시리 화를 내던 어린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비싸게 주고 산, 그러나 얼마 신지 않은 버켄** 샌들의 밑바닥이 탈색되기 전까지는요. 원인을 파악해보니 발바닥의 땀때문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땀때문에 샌들이 미끌거리던 안 좋은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그 때 알아챘습니다. "양말이구나!" 그랬습니다. 그분들은 발바닥 땀이 나는 걸 방지하고, 샌들이 탈색되는 걸 예방하는 '실용적 인간'이었습니다. 괜시리 그 동안 욕하던 그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 세 번째 진실 : 목욕탕에 딸린 이발소에서 이발하기
저번 주였습니다. 일요일 오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평소 가던 000헤어를 찾았습니다. 언제나처럼 손님이 만원이라 30분 넘게 기다린 끝에 의자에 앉았습니다. "어떤 디자이너 찾으세요?",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귀 부분은 파실래요?", "이 정도면 됐나요?", "어디 사세요?", "요즘 싸인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 까르르" 등등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질문과 수다들이 그날따라 유난히 귀찮게 느껴졌습니다. 디자이너가 그냥 알아서 잘라주고, 아무 말도 안 시켰으면 하는 그런 날이었죠.
약간의 짜증을 머금고 찾아간 목욕탕에서. 제가 바라던 그런 묵묵한 헤어 디자이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백옥같은 가운을 입고, 헐벗은 손님이 앉자마자 한 마디의 질문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돌려치기를 해주시던, 심지어 면도까지 해주시던 그 분.
블루클럽, 나이스가이 등의 남성용 미용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요즘, 화려한 쇼윈도와 세련된 디자인의 프랜차이즈 미용실을 들어가기엔 부담스러워 문 앞에서 서성이던 장년들의 서글픈 모습이 그 순간 오버랩되었습니다. 이들에겐 부담도 없고 머리를 자른 후 바로 탕으로 가 머리를 감을 수 있는 One Stop System은 목욕탕 이발소는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죠.
전 아직 위와 같이 세 가지 정도 밖에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인지 장년의 반열에 오르기엔 그 길이 멀어보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신 장년들의 진실이 있으시면 공유해주세요. 궁금합니다!
첫댓글 셔츠를 넣고 입는다.. 방년 26세인 저에게 신세계로군요.
완전 웃겨요~다 이유가 있었군요!ㅋㅋㅋ welcome to the world of 아.저.씨
1. 엉덩이를 가리는 피케셔츠를 산 것이 실수입니다. 대개 길이가 긴 것들이 많지만, 벨트라인을 조금 내려오는 길이의 셔츠들이 많습니다. 청바지를 입었을 때, 면바지를 입었을 때도 라인이 딱 나오죠. 길이가 길다고 해서 바지 속으로 한 번 넣어보고 편하다 하는 것은 비겁한 변명입니다. 또한,팬티 속에 셔츠를 넣는다. 흠. 여친 혹은 아내와의 소중한 커플티를 팬티 속에 넣는다는 것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정장의 와이셔츠는 속옷의 개념이니 넣어 입어도 무방한 거고요.
2. 샌들에 양말을 신게 된 것은 군대의 잔재로 보입니다. 군대에서는 보급받은 긴 양말만 신을 수밖에 없지만, 신발은 전투화, 운동화, 슬리퍼 등 다양합니다. 때문에 가끔 운동화(반바지),슬리퍼에 긴 양말을 신는 미스매치가 발생하죠. 허나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러한 언밸런스에 둔감해지면서 사회로 돌아옵니다. 사회 복귀 직후, 여친의 관리 없이 장기간 싱글로 방치되는 경우 이러한 행태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슬리퍼,샌들은 격식을 갖추지 않고(양말없이! 발가락이 노출되어도 무방한!) 편하게 신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므로 이에 양말을 신어 굳이 통풍을 꾀하는 것은(이미 뚫려있는데!)
'역전 앞', '족발' 과 같은 느낌입니다. 버켄스탁은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상품입니다. 땀을 흡수하고, 변색되는 샌들이라니! -_-
3. 목욕탕 이발소는 정말 개인의 취향이니 따로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저도 사실 미용실은 좀 어색합니다. 말 거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발소에서는 정말이지 '내가 원하는 헤어스타일'은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깐 어색하고, 뭔가 부담스럽더라도 머리 이상하게 잘랐다면서 놀림받거나 스스로 불만족하면서 머리카락이 자라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저는 올해로 32살입니다. 저건 장년층의 습속이 아니라, 청산해야 할 악습에 가깝습니다.ㅎ
목욕탕 이발소에서 곱게 자른 머리에, 통풍 잘 되는 샌들에도 땀이 흥건하여 양말을 신었고, 팬티 안에 셔츠를 밀어넣은 남성의 모습을 떠올리니 와우..-_-
아-ㅅ- 아저씨들이 배바지를 입으시는 이유가, 양말에 샌들이었던 이유가, 그것이었근영!!
ㅋㅋㅋ재밌게 읽었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현자의 뜻을 어찌 알리오. 댓ㄱㄹ들을 보니 여러 학설(?)과 다른 신념이 있는 듯 하지만. 음 저는 글쓴이의 해석을 존중합니다. 시도가 아름답네요!
첫번째 진실은 알면서도 안하는.. 근데 해보면 확실히 편합니다. ㅋ
글 잘 쓰시네요.^^
그런데 예비군 군복만큼은 반드시 상의를 빼고 싶더이다...ㅋ
새벽에 웃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첫번째 방법의 치명적인 단점은, 자칫 허리를 숙였을때 셔츠를 따라 팬티가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챈들러가 저렇게 하고 다니죠-_-
ㅋㅋㅋ 그래도 넣어입지마세요 .. 여자들도 운동화편한 거 알지만, 킬힐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고요 ㅋㅋㅋ
장년이 30~40대를 뜻하는 거였군요. 이 글 보니까 왠지 폭삭 늙어버린 느낌이..
저도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ㅎㅎ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공공장소에서 빵터졌어요!!
즐거운 글이네요^^ 사람마다 취향이 아닐까요.. 젊은 제 후배(23세 정도?)중에도 자꾸 안으로 넣는 애가 있더군요ㅋㅋ
ㅋㅋㅋㅋㅋㅋ재밌어요. 번뇌와 어울리네요 ㅎ
ㅋㅋㅋㅋㅋㅋㅋㅋ 웃겼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재밌었어요 ㅋㅋ 글잘쓰세요 ^_^
저도 간만에 웃었네요 ㅋㅋㅋㅋㅋㅋ그런데 "볼일을 보고 바지를 내린 뒤, 셔츠를 팬티 안에 넣는 것이었습니다."<요건 조심하세요 ㅋㅋㅋ 아는 분이 그렇게 하셨다가 망신당한 기억이 있으시거든요~ㅋㅋㅋ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