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미의 「모두가 쿠로브스키 부인」 감상 / 강인한
모두가 쿠로브스키 부인
진수미 문틀 안에 사람이 있다 대놓고 심술궂게 말하는 사람 친절을 베풀면 더 큰 걸 요구하는 사람 피부색 다른 이름 구역질나는 족속이라 떠드는 사람 쿠로브스키 부인은 그러지 않았다 많은 여성이 전쟁으로 사별을 겪고 빌딩 계단과 창틀을 닦으며 홀로 늙어갔다 재건 중인 도시에는 젊고 싱싱한 이주 노동자가 넘쳐 흘렀다 ‘독일인은 주인, 외국인은 개’ 망상에 빠진 이들은 곁눈질로 음란한 상상에 물을 주고 사랑을 선택한 이들을 대놓고 모욕했다 문틀 안에 무엇이 있다 프레임은 빛과 어둠이 만드는 환영 어둠 속에서 그것을 응시한다 불안이 조여오는 심장으로 쿠로브스키 부인은 그러지 않았다 나치당에 입당하기는 했었다 아버지도 나치 당원이었다 그 시절은 다 그랬으니까 전후에도 사랑하는 이를 데려가고 싶은 곳은 히틀러가 단골이었던 레스토랑 근엄한 지배인이 경멸 어린 표정으로 메뉴판을 내밀어도 모른 척 꿋꿋이 음식을 주문했다 문틀 안에 누군가 있다 행복하면 울어버리는 사람 그 이면을 흐르는 음악에 몸서리친 적 있으니까 그럼에도 천국을 한 조각 구입해서 금고에 넣고 싶은 사람 엘 헤디 벤 살렘 바랙 모하메드 무스타파라는 이름의 남자 줄여서 알리라 불리는 이 그를 사랑하고 긴 이름을 완벽하게 부를 수 있는 사람 문틀 안에 테이블이 있다 붉은 천이 그것을 감싸고 있다 샛노란 야외용 의자도 있다 남자는 붉고 여자는 노랗다 아스팔트 술집에 집시 음악이 흐른다 붉은 조명이 떨어진다 부둥켜안은 여자 머리와 등 남자의 어깨와 손등을 어루만진다 혼인신고 후 붉은 꽃다발을 안고 두 사람이 걸어 나온다 파헤쳐진 검은 흙구덩이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 월간 《현대시》 2023년 9월호 .......................................................................................................................
쿠로브스키라는 이가 누굴까. 시의 주인공은 그 남자의 부인인 모양인데,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 앞에 생소한 이름이 문득 가로막는다. 무작정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다. 『전쟁, 하나의 거대한 모험: 저술가 그리고 역사가 프란츠 쿠로브스키』 역사학자 로만 퇴펠이 2차대전 논픽션 저술가 프란츠 쿠로브스키를 비판한 책이 나온다. 비판 받는 프란츠 쿠로브스키의 흑백사진. 2차대전을 다룬 영화에 나옴직한 전형적인 독일 남성의 얼굴. 어쩌면 바로 이 남자의 부인에 대한 시일까. 오독(誤讀)을 각오하고 상상을 전개해 본다. 심술궂은 사람, 뻔뻔한 사람, 인종차별이 심한 사람…쿠로브스키 부인은 그런 유형의 인간이 아니었다. 모두가 호감을 가질 만한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전쟁. 전쟁의 참화로 말미암아 많은 여성들이 배우자를 잃고 도시에서 어려운 삶을 이어간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 재건 중인 도시로 돈 벌러 오는 이들 중에는 젊은 이주 노동자가 많았다. 외국인과 사랑에 빠진 여인들을 보면 대부분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그런 여인을 향해 대놓고 욕을 했다. “음란한 상상에 물을 주고” 위대한 독일인의 신분을 망각한 철없는 여자들이라고. “문틀”은 하나의 프레임이다. 사람을 규정하는 하나의 틀. 판단하는 관점이라거나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시각. 쿠로브스키 부인은 그런 전형적 프레임에 갇힌 여성이 아니었다. 세상 돌아가는 풍조에 따라 그녀는 나치당에 가입했으나 그건 그녀의 삶에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독일인이 아닌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정말 그녀는 자신의 사랑 앞에 당당할 수 있었다. 알리라는 이름의 남자를 알고부터 그녀는 너무나 행복해서 울기도 하였다. 그녀는 일곱 마디로 된 기다란 알리의 정식 이름을 완벽하게 부를 수 있었다. 그녀를 사랑스럽고 행복하게 하는 이름의 소유자였으므로. 엘 헤디 벤 살렘 바랙 모하메드 무스타파. 어쩌면 그는 아랍계 남자일 것이었다. 나치당원 중 고위층이 즐겨 다니는 레스토랑에 알리와 함께 들어가기도 하였는데 그럴 때면 레스토랑 지배인이 음식 주문하는 그녀를 경멸하는 시선으로 대하곤 하였다. 집시 음악이 흐르는 술집. 붉은 조명 아래 붉은 머리의 남자와 금발의 여자가 부둥켜안는다. 머리칼과 등, 어깨와 손등에 입을 맞추는 애인들의 마지막 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랑, 그런 진실한 남녀의 사랑 앞에 여인들은 모두가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심정적으로 그녀를 응원한다. 그래서 "모두가 쿠로브스키 부인"이 된다. 평생소원인 결혼식을 마치고 가슴에 꽃다발을 안은 두 사람이 걸어 나온다. 처형 후의 시신을 파묻기 위해 “파헤쳐진 검은 흙구덩이”를 향하여 한 걸음 두 걸음, 문틀을 벗어난 두 사람이 걸어 나온다.
강인한(시인) |
첫댓글 “문틀”은 하나의 프레임이다. 사람을 규정하는 하나의 틀. 판단하는 관점이라거나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시각. 쿠로브스키 부인은 그런 전형적 프레임에 갇힌 여성이 아니었다. 세상 돌아가는 풍조에 따라 그녀는 나치당에 가입했으나 그건 그녀의 삶에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독일인이 아닌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정말 그녀는 자신의 사랑 앞에 당당할 수 있었다. 알리라는 이름의 남자를 알고부터 그녀는 너무나 행복해서 울기도 하였다. 그녀는 일곱 마디로 된 기다란 알리의 정식 이름을 완벽하게 부를 수 있었다. 그녀를 사랑스럽고 행복하게 하는 이름의 소유자였으므로. 엘 헤디 벤 살렘 바랙 모하메드 무스타파. 어쩌면 그는 아랍계 남자일 것이었다.
나치당원 중 고위층이 즐겨 다니는 레스토랑에 알리와 함께 들어가기도 하였는데 그럴 때면 레스토랑 지배인이 음식 주문하는 그녀를 경멸하는 시선으로 대하곤 하였다. 집시 음악이 흐르는 술집. 붉은 조명 아래 붉은 머리의 남자와 금발의 여자가 부둥켜안는다. 머리칼과 등, 어깨와 손등에 입을 맞추는 애인들의 마지막 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랑, 그런 진실한 남녀의 사랑 앞에 여인들은 모두가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강인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