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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림의 소리 스크랩 고불산의 대불(大佛) 공주 성곡사(1/2)
현림 추천 0 조회 29 14.11.30 08: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불산의 대불(大佛) 공주 성곡사(1/2)

 

만추의 끝자락 운무(雲霧) 자욱한 일요일 아침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성곡사로 향했다.

공주의 유명사찰이라면 봄에는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라는 말과 함께 동학사를 꼽지만 

성곡사는 중국의 여느 대불(大佛)과도 견줄만한 거대한 불상이 조성되어 있는 사찰이라기에 호기심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학사와 갑사, 마곡사는 조계종으로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지만

공주의 성곡사는 종단이나 불상의 내역에 대한 기록이 없어 미지의 사찰이었다.

현지에서 가서도 사찰에 대한 것은 안내판 하나 뿐이었다.

그러나 그 안내판에서조차 단지 1982년 현주지인 관묵스님이 도로를 내고 요사채와 전각을 비롯하여

불상을 조성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종파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다행히 요사채의 한 직원을 통해서 성곡사는 관음종에 속한 사찰인 것만 겨우 알았다.

 

 

 

불교에는 여러 종파가 있다, 종교단체로 등록된 것만 하더라도 26개 훨씬 넘는다.

그 중 하나인 관음종의 뿌리는 순천 선암사의 기록에 따르면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1055~1101)을 종조(宗祖)로 하여

그 후손인 전라남도 순천 선암사(仙庵寺)의 경운원기(擎雲元奇)(1852~1936) 선사로 이어지고

관음종 개산조 태허홍선(太虛弘宣) 조사스님께로 그 법맥(法脈)이 이어진 것이라고 한다.

 

 

 

 

@ 관음종인 선암사의 안내서를 보면 1965. 12. 8. 태허 홍선대법사 대한불교불입종 창종되어고,

1972. 10. 21. 대한불교불입종으로 명칭 변경되었다가.

1979. 12. 제2대 종정에 경조 대법사가 추대에 되었는데

1988. 10. 일부사찰들이 관음종으로 분종했다고 한다.

 

 

 

 

@백과사전에 나온 기록을 보면

「대한불교불입종(大韓佛敎佛入宗)이라고도 한다. 1945년 김정운(金正雲)이 조직한 대승불교법화회가

계속적으로 분열하는 과정에서 1965년 12월 이홍선(李泓宣)이 독자적 종단을 구성하고

1966년 10월 대한불교불입종포교원으로 문화공보부에 불교단체 등록을 했다.

1972년 10월 대한불교불입종, 다시 1988년 8월 대한불교관음종으로 종단 명칭을 변경했다.

종지는 "석가모니불께서 열어[開] 보이시어[示] 중생들이 깨달아[悟] 열반에 들도록[入] 가르치신 법화경(法華經)의 교리를

정혜겸수(定慧兼修)로써 체득하여 생활의 원리로 삼는다"는 것이며,

소의경전(所依經典)은 〈법화경〉이고 본존불(本尊佛)은 석가모니불이다.

본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의 묘각사(妙覺寺)이고,

주요행사는 다른 불교종단과 유사하나 10월에 지내는 신곡제(新穀祭)가 특이하다.

기관지로는 〈범성 梵聲〉을 1973년부터 월간으로 발행하고 있다. 」라고 되어있다.

 

 

(관음전)

 

성곡사의 내역을 알 수 없지만 위의 기록들로 유추해 보면

공주 성곡사는 1988년 분종된 관음종의 일파임임을 추측할 수 있다.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 1055~1101)은 고려시대의 왕족 출신 승려이다.

자는 의천, 이름은 후(煦)이며, 호는 우세(祐世), 흔히 대각국사(大覺國師)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시호이다.

고려 문종(文宗)의 넷째 아들로서, 어머니는 인예태후(仁睿太后)이다.

대한불교천태종을 세운 한국 천태종의 중흥시조로서,

대한불교천태종에서 3대 종조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는 송악 출신인데 관음종에서는 조종으로 여긴다.

 

 

천수관음상

 

 

 

@관음종의 개조로 추앙되는 태허선사(1905~1979)는 불입종 초대종정으로도 모셔지고 은사는 경암스님이라고 한다.

1).불입종은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구현(具現)하는 불교로서 일상생활을 종교적으로 실천 수행하는,

고려의 의천 대각국사 종조와 창종조 태허 대법사의 유지를 받들어 법화사상을 홍통하고 중생의 길잡이가 되는 종단이다.

 

 

(포대화상)

 

2).따라서 태허스님은  대한불교 불입종이어, 관음종의 창종주가 된다. 

스님의 법명은 泓宣(홍선) 당호는 太虛(태허)이며, 전주 이씨로 속명은 용이(龍伊)이다.

1905년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서 아버지 선준과 어머니 묘행심(妙行心)을 연으로 출생했다.

1919년에 경성고등전문학교를 나온 후 한동안 나라를 배앗긴 울분 속에 방황했다.

스님은 유문집인 ‘성불도’의 자서론 ‘산문山門’에서 일본과 만주일대를 유랑하던 시절,

권투구락부를 경영하여 독립자금을 조달에 일조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3).스님은 1928년부터 불교에 심취하다가, 1930년 선암사에서 조선불교 선교양종의 교정인 경운(擎雲)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이때부터 4년간 경론과 참선의 수행을 가지면서 공부를 하였으나

그것으로는 미진하다는 생각에 1935년부터 소요산 백운암에 들어가 천일기도를 하였다.

그후 중국 산서성으로 구법을 떠나 여러 명찰을 순례하며 고승들의 가르침을 받았고,

1940년 서울 종로구 숭인동 낙산 밑에 묘각사를 창건, 법화신앙의 근본도량을 마련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경북 상주 백화산으로 자리를 옮겨 백화암을 창건하고 6년간 수선하시었다.

그 후 서울로 돌아와 하루도 빠짐없이 탑골공원에 나가 일없이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2년여에 걸쳐 거리설법으로 장안에 삿갓도인으로 칭명되기도 했다.

 

 

 

 

4).스님은 대승불교 법화회·현정회를 거쳐 불입종을 세우기까지 법화계의 통합을 가장 열망했던 분이다.

 따라서 종정 재임기간에 여러 차례의 통합을 모색했고, 그 염원을 법제자들에게까지 당부했다.

스님이 법화신앙에 귀의한 것은 이미 해방 전의 일이지만,

육이오동란 중 경북 상주 백화산 백화암을 창건하면서 본격적으로 몰입했고,

이를 통해 독창적인 법화사상의 체계를 세운다.

‘법음주송’ ‘3대비법의 관행법’ ‘종지의 성립’을 꾀하였고,

또한 불입종의 생활신조, 인생탈춤, 성전요품, 불종대의 , 원비경 등 17권의 저술을 남겼다.

 

 

 

 

5).1957년에는 법화계통을 규합하여 일승불교현정회를 창립하고 회장에 취임했으며,

1960년에는 ‘생일회’를 조직하였다. 1965년 12월 8일에는 대한불교 관음종(구불입종)을 창종했다.

이듬해 초대 종정이 되신 스님은 제자들을 가르치며 포교에 전력하여 관음종을 크게 발전시켰다.

또 1970년에는 한일불교친선회 고문으로 추대됐고, 1971에는 정부로부터 보국훈장(保國勳章)을 받았고

전일본불교회의 초청으로 일본불교계를 시찰했다.

청소년포교의 중요성을 느낀 스님은 1973년 마하불교학생회를 창립했고, 불교잡지 ‘범성(梵聲)’을 창간했다.

 

6).1975년 한중불교회고문, 1976년 국가총력안보협의회 불교대표로 추천됐으며,

같은 해 묘각사 대웅전을 중창했다.

또한 고희의 나이에도 법화경 홍보에도 힘을 써 백일기도 중에도 법화경을 사경하여 법보로 모시기도 했다.

법화사상의 포교와 관음종의 포교에 힘쓰던 스님은 1979년 6월 24일 세수 74세 법랍 50세로

묘각사에서 입적하였고, 다비를 하니 128과의 사리가 수습되어  그중 28과를 법화경 28품에 맞추어 사리탑을 조성하고

묘각사 대웅전 옆에 봉안했다. 스님은 법화계 인사중 유일하게 선법(禪法)에 밝아 ‘기해단전법’의 체계를 세우기도 했다.

현재 스님의 부도탑은 대한불교 불입종의 총본산인 충복 제천 송화사에 모셨다.

저서로는 성불도(成佛道), 인생탈춤, 법화문증선집,

해동천태법화법맥소고, 믿음의 생활상, 피안의 등대 등이 있다.

 

 

아미타불전

 

 

 

아미타불의 협시불로 모신 지장보살

 

운무속의 관음불

 

 

 

 

 

아미타불전에서 대웅전 가는 길

 

 

 

운무속의 대웅전

 

 

 

 

 

대웅전의 부처

 

 

 

대웅전 앞 마당

 

 

 

 

 

성곡사를 다시 간다면 아마도 바람에 울리는 이 수백개의 풍경이 자아내는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이 소리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명부전

 

명부전은 정 중앙에는 지장보살, 그 옆은 삼장보살을, 그리고 시왕을 모시고 있다.

 

명부전의 금강역사

 

 

영산전

 

석가모니불과 오백나한이 모셔져 있다.

 

 

영산전의 금강역사

 

삼성각

 

 

삼성각을 내려오면서 바라 본 대웅전 풍경

 

종각이다. 성곡사의 종루는 다른 절과 달리 입구가 아닌 대웅전 보다 높은 언덕 중간쯤에 설치되어 있다.

 

 

 

 

천불전 입구

 

성곡사의 대불 석가모니불은 좌대포함 18m로 조성되고 뒤편에 부처님 10대제자와 동관 60매에 금강경을 새겨 놓았고

좌우에는 1m90cm의 크기로  각각 500불의 입불상이 조성되어 모두 1000불이 된다.

설악산 신흥사의 청동 통일대불이 14.6m인 것을 감안하면 거대한 불상이다.

 

 

 

 

 

 

 

 

 

 

윤장대

 

 

 

 

 

 

 

 

 

 

 

천불전 앞에 남겨진 마지막 단풍인가 보다. 운무속 만추의 끝자락을 수놓은 붉은 단풍이 참으로 아름답다.

 

~2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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