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지만 정겨운 풀꽃
나무들의 새순이 돋아나기 전에 피는 풀꽃은 몸채에 비해 꽃이 아주 크며, 대개 흰색 혹은 붉은색 계열이 많다. 낙엽수림에 잎이 돋아나 신록으로 물들이면 이젠 노란색 계열의 꽃이 피어난다. 이것은 수분을 해줄 중계자인 벌과 나비와 같은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그들의 눈에 띄도록 하는 풀꽃들의 지혜이다. 이제 우리 주변으로 성큼 신록의 싱그러운 내음이 다가오는 ‘계절의 여왕’ 5월이다. 녹음이 짙어진 산과 숲 속에서는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등 온갖 생명들의 소리가 들리는 계절이다. 그러한 자연이라는 식물계의 세상에서는 많은 풀꽃들과 나무꽃들이 부지런히 꽃을 피우고 있다. 또한 때를 다한 꽃은 다시 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봄날의 향연’을 보여주는 듯 풀꽃들은 바쁘게 계절을 쫓아 분주히 움직인다.
민들레가 하얀 열매를 맺고 있는 자리에는 어느새 선씀바귀, 고들빼기, 미나리아재비 등 노란색 풀꽃들이 길가나 들판 등 초록의 풀무덤 속에서 노란 꽃대를 내밀고 있다.
이들에게 뒤지지 않을세라 무리를 이뤄 노란 꽃을 피우는 것이 바로 애기똥풀이다.
애기똥풀은 길가나 들판 혹은 낮은 산언저리 같은 양지바른 곳 또는 반그늘을 좋아한다. 개망초나 씀바귀처럼 흔하고 쉽게 볼 수 있는 꽃이다. 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끌거나 사랑을 받거나 하는 풀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기에 그렇게 귀하지도 아주 예쁘지도 않지만 정겹고 소담스런 그런 꽃이다.
네 장의 꽃잎이 꽃대 위로 올라와 여러 개의 수술과 하나의 암술을 열어젖힌 샛노란 꽃이다.
그러기에 쉽게 마주치는 꽃이면서도 사람들에게 그 이름이 기억되지 못한 꽃이기도 하다.
잎이나 줄기를 꺾으면 애기의 똥과 같은 노란색 유액이 나온다. 그 냄새도 약간 고약하다. 해서 젖먹이 아이의 변과 같다고 해서 ‘애기똥풀’이라고 부른다. 일견 하찮게 보일수도 있는 흔한 꽃이지만 꽃을 보게 되면 그 귀여운 꽃의 모습에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 줄기를 잘라 보면 노란 유액이 나오는데 이것을 보면 더욱 수긍을 하게 된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풀꽃·Ⅱ/ 나태주)
#애기똥풀의 특징
애기똥풀은 양귀비목 양귀비과 애기똥풀속(Chelidonium)의 두해살이풀로 학명은 Chelidonium majus L. var. asiaticum (Hara) Ohwi이다. 속명 켈리도니움(Chelidonium)은 그리스 신화와 관련이 되는데 제비를 뜻하는 그리스어 켈리돈(chelidon)에서 유래한다. 종소명 마유스(majus)는 그리스어로 ‘큰’ 또는 ‘거대한’을 의미하는데 무성하게 펼쳐진 잎의 특징을 나타낸다. ‘var. asiaticum’는 아시아 지역의 변종, 그 뒤는 이를 명명한 일본 식물학자 오이(Ohwi)와 하라(Hara) 박사의 이름이다. 흔히 만날 수 있는 것이기에 애기똥풀은 별명도 많다. 까치다리, 젖풀, 씨야똥이라도도 한다.
한방에서는 백굴채(白屈菜)라 하여 알레르기나 피부병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산에 피는 노란 연과 같다고 해서 산황련(山黃蓮), 일본에서는 ‘풀의 왕’이라는 의미의 쿠사노오(草ノ王)라 부른다. 영명은 Asian greater celandine이다.
애기똥풀은 전국의 산지와 동네 주변에서 자라는 풀이며, 생육환경은 양지바른 곳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근처의 길가나 풀밭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뿌리는 곧고 땅 속 깊이 들어가며 황색이다. 줄기는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속이 비어 있으며 높이가 30∼80㎝이고 분처럼 흰색을 띠며 상처를 내면 귤색의 젖 같은 유액이 나온다. 잎은 깃꼴로 갈라지며 길이가 7∼15㎝이고 끝이 둔하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와 함께 깊이 패어 들어간 모양이 있다. 잎의 뒷면은 흰색이고 표면은 녹색이다.
꽃은 5∼8월에 노란색으로 피고 줄기 윗부분의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가지 끝에 산형꽃차례를 이루며 여러 개가 달린다. 꽃의 지름은 2㎝ 정도로 꽃잎은 네 장이고, 꽃받침조각은 2개이다. 열매는 길이 3∼4㎝의 작은 콩깍지 모양의 껍질 속에 7~10개 정도 삭과로 열린다. 우리나라 전역, 일본, 중국 동북부, 몽골, 시베리아와 사할린, 캄차카반도 등지에 분포한다.
#애기똥풀의 전설
속명인 켈리도니움(Chelidonium)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어로 켈레돈(Chelidon)은 ‘제비’를 의미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비에 관한 이야기가 전한다.
어느 따뜻한 봄날 남녘에서 날아온 제비 부부가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제비 5마리를 부화했다. 그런데 새끼 중 한 마리가 눈에 이물질이 끼어 눈을 뜨지 못했다. 어미제비는 새끼제비 모두에게 똑같이 먹이를 물어다 줬다.
새끼제비들은 자라서 날기 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눈을 뜨지 못한 새끼제비 한 마리가 날 생각을 하지 않자 어미제비는 비상연습을 시킬 수 없어 매우 안타까워했다.
이때 지나가던 제비가 애기똥풀 유액을 눈에 발라주면 치료될 것이라고 알려 줬다. 어미제비는 들판으로 나가 애기똥풀 줄기에서 나온 유액을 채취해 아기제비에게 발라줘 눈을 뜨게 했다. 그 후 눈을 뜬 아기제비는 열심히 날기 연습을 해 하늘 높이 멋지게 날아다닐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겨울이 다가오자 고맙다는 듯 애기똥풀이 핀 언덕을 한 바퀴 돌고 남쪽 나라로 날아갔다.
어머니의 ‘몰래 주는 사랑’을 통해 자식에게 ‘미래의 기쁨’이 성취되도록 한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그래서 꽃말도 ‘엄마의 지극한 사랑’, ‘엄마의 사랑과 정성’, ‘몰래 주는 사랑’이다.
우리나라에 구전되는 전설도 있다. 하늘나라에 사는 한 천사가 천상의 법을 어기고 임신을 해 지상에 내려와 아기를 낳았다.
하지만 지상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는 천사는 아기를 키워줄 만한 집을 찾아다니다가 어느 산골마을에서 방금 아기를 낳은 집을 찾았다. 그리고는 방금 아기를 낳았으니 자신의 아기도 잘 키워 주리라 생각을 한 천사는 그 집 앞에 자신의 아기를 두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그러자 방에 누워있던 산모는 문 밖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바깥으로 나가 보았다.
문 밖에는 예쁜 아이가 혼자서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산모는 그 아이가 하늘나라의 천사가 두고 간 아이인 줄은 까맣게 몰랐다. 금방 아이를 낳은 터라 그 아이를 불쌍하게 여겨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자신의 아이와 함께 젖을 먹였다. 그러한 와중에 식구들이 돌아와서 아기가 한명 더 있는 것을 보고는 놀랐다.
식구들은 아기에게 먹일 젖이 부족하기에 관가에 알려 그곳에서 아기를 기를 수 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모는 자신의 아기와 함께 기르겠다고 사정했다.
그렇게 하여 산모는 자신의 친 아이와 천사가 두고 간 아이까지 두 명의 아이를 기르게 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 아이가 온 뒤 부터는 밥맛도 좋아지고 젖도 원래 보다는 엄청나게 많이 나오게 됐던 것이다.
그리하여 큰 걱정 없이 두 아이를 잘 기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또 놀랄 만한 일이 생겼다. 주워온 아이가 똥을 싸서 기저귀를 씻으려고 보면 아이의 똥이 간데없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저귀는 항상 새것처럼 깨끗해졌다. 그렇게 두 아이를 기르다보니 어느덧 백일이 됐다.
그동안 건강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백일잔치를 크게 열었다. 그러던 중 지나가던 각설이들도 와서 음식을 얻어먹게 됐다.
이 각설이들이 음식을 먹고는 노래를 부르는데, 이 집 애기가 천복을 누릴 최고의 아이라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이 노래를 들은 어머니는 이상한 노래도 다 있네 하면서 별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백일잔치를 끝내고 피곤한 어머니는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천사가 나타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 나타난 천사는 눈물을 흘리면 사실 그 애기는 자신의 애기인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맡기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하늘나라로 가서는 매일같이 눈물로 괴로운 생활을 보내면서 옥황상제님께 간곡히 부탁을 해 이제야 허락을 받아 애기를 데리러 왔다고 했다.
그동안 자신의 애기를 잘 길러주어 너무 감사하다며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말을 한 다음 애기를 데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이 모습을 본 어머니는 깜짝 놀라 꿈에서 깨었는데 곁을 보니 그 애기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는 게 아닌가. 그런 일이 있고 다음해 봄이 되었다.
그 애기가 처음 놓여있던 문 밖의 그 자리에 이름모를 노란 꽃이 피어났다. 그 꽃의 잎은 부드러운 곡선과 가벼운 잔털이 있어 영락없는 애기피부 같았고, 꽃의 색깔은 그 애기가 누었던 똥의 색깔과 같은 노란 꽃이었다. 식구들은 천사의 아기가 눈 똥이 없어졌다가 꽃으로 환생한 것이라 믿었고 이 꽃을 애기똥풀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애기똥풀의 효능
이 풀은 독성이 있으나 약재로서 위암 등의 효능이 있고 강한 살균작용을 한다고 한다. 각종 피부염에 효능이 높다. 한방에서는 식물체 전체를 백굴채(白屈菜)라고 하며, 위장염과 위궤양 등으로 인한 복부 통증에 진통제로 쓰고, 이질·간염·피부궤양·결핵·옴·버짐·무좀·위장염 등에 사용한다.
그리고 애기똥풀은 종자번식 방법도 특별하다. 민들레처럼 바람에 의존하지 않으며, 새의 먹이를 통해서 씨를 옮기지도 않는다. 개미가 좋아하는 엘라이오솜(elaiosome)이라는 물질을 지니고 있어 개미가 종자를 퍼뜨린다.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애기똥풀/ 안도현)
칼럼니스트 hysong@y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