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표선 바닷가를 걷는다. 제 철이 아닌 바닷가는 황량하기만 하다. 모래밭만 끝없이 멀리 펼쳐져 있다. 썰물 때는 한참을 걸어야 바닷물에 발을 적실 수 있다. 경사도 거의 없이 완만하다. 저 멀리 바다 깊숙이 사람이 하나 서 있다. 보통의 바다라면 목까지 물에 잠겼음직한 거리다. 그러나 물결은 겨우 그의 무릎을 적실 정도다. 그래서 모래밭은 넉넉하고 바다는 한없이 자애롭게 느껴지지만 때로는 너무 무미건조하다. 일설로는 일제가 이곳을 임시 활주로로 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 편편하고 단단하게 다듬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거의 날마다 아침이면 이곳 바닷가를 걷는다. 변화라고는 날마다 물이 조금씩 더 들거나 날 뿐이다. 나는 낚시를 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가 조금이고 언제가 만조인지 관심이 없다. 물결이 밀려오면 이게 드는 물인지 나는 물인지 구별조차 못한다. 어쩐지 여유롭고 넉넉한 기분일 때는 이게 밀물이지 싶다.
모래밭에 무수한 구멍이 뚫려 있다. 걷다보면 작은 게들이 재빨리 그 구멍 속으로 숨는다. 저 작은 구멍에도 다 주인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급하면 두세 마리가 한 구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크기가 고만고만한 것이 형제 게들인 것 같다. 게들이 사니 물새들도 찾아온다. 도요새들이 빠른 걸음으로 구멍 속을 뒤진다. 어쩌다보면 게 구멍이 크게 파헤쳐져 있고 주변에 새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는 곳이 있다. 인간의 소요하는 발자국과는 다른 치열한 삶의 흔적이다. 파도가 밀려오면 모든 게 구멍들은 다 사라지면서 밀물 위로 수백 수천의 기포들이 일시에 올라오는 장면은 화엄 세계를 방불케 한다. 다시 물이 썰 때 쯤이면 기포도 게 구멍도 물새 떼의 발자국들도 모두 씻은 듯이 사라진다. 그러자 게들은 다시 모래를 파헤쳐 구멍을 뚫는다. 주변에 먹이활동으로 내뱉은 모래들로 작은 연단들을 수없이 빚어 놓는다. 끝없는 되풀이에도 지치지 않음을 과시하는 것이다.
나는 하릴없이 매일 바닷가를 배회한다. 딱히 걷고 싶은 길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나도 할 수만 있다면 이 모래밭에 구멍을 뚫고 게처럼 들어앉고 싶다. 어쩌면 사실은 나도 나만의 구멍 안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이라는 좁은 터널을 뚫고 들어가 하루를 살다가 또 하루가 허물어짐을 망연히 지켜보고 있는 삶인지도 모른다. 바다의 막막함은 무명無明에 잠겨 있고 모래밭은 어디 하나 의지할 데 없이 발목까지 빠진다.
어느 하루는 여명이 채 밝기 전에 바다를 찾았다. 모래를 밟을 무렵 해돋이의 채색이 그날따라 강렬했다. 동편 하늘은 검붉었고 물결은 금빛으로 넘실댔다. 나는 여느 때처럼 모래밭의 원호 바깥쪽을 돌아 점점 무른 안 쪽으로 걸어들어 갔다. 물이 발목을 적실 때 나는 갑자기 바다 위에 떠 있는 집 한 채를 발견했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까이 생생하게 집이 있었다. 물 위에 떠있는 당당한 집이었다. 그러나 곧 아침이 되면 그 집은 사라질 것이다. 그 집은 먼 바다로 떠나고 사람들은 수평선 위의 점 하나를 배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집이 있었다고 말한다. 사실은 죽을 때까지는 내 집이다가 먼 길 떠날 때는 배가 되는 그런 집을 갖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