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명의 치즈 완전정복(3)
체다치즈
영국의 체다치즈는 이탈리아의 모짜렐라 치즈와 더불어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치즈다. 우리가 흔히 ‘치즈’ 하면 떠올리는 노란색 치즈, 투명한 비닐에 낱개 포장된 슬라이스 치즈의 원형이 바로 체다치즈다. 하지만 슬라이스 치즈는 체다치즈와 비슷하게 만든 가공치즈일 뿐, 시간이 지날수록 무르익는 숙성치즈의 맛을 느끼려면 ‘살아있는’ 체다치즈를 먹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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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다치즈
슬라이스 치즈? 익혀야 제맛 나는 숙성치즈!
가공치즈인 슬라이스 치즈와 내추럴 체다치즈는 서로 다른 치즈라고 봐도 될 정도로 큰 차이가 있다. 원래 체다치즈는 단단한 하드타입 치즈로서, 부스러지는 듯한 독특한 식감과 오랜 숙성을 통해 생성되는 깊은 맛이 특징이다. 반면 가공치즈는 열처리 과정에서 효소와 균이 죽기 때문에 숙성이 이뤄지지 않는 치즈다. ‘체다치즈’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치즈 중 상당수가 가공 치즈이기 때문에 체다치즈 본연의 맛을 느끼려면 효소와 균이 살아있는 ‘내추럴 체다치즈’를 골라야 한다.
내추럴 체다치즈는 숙성기간에 따라 맛이 무르익고 질감이 부드러워진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일년 이상 숙성하며 보통 9개월 정도 숙성한 것을 잘 익었다(Mature)고 표현한다. 치즈가 ‘익는다’는 뜻은 효소와 균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맛과 질감이 변화할 뿐 아니라 단백질을 비롯한 영양성분들이 소화되기 쉬운 형태로 분해되고 인체에 이로운 부산물이 생겨난다. 숙성된 체다치즈를 먹어야 하는 까닭이다.
‘천연 치즈숙성고’ 동굴에서 탄생한 체다치즈
영국 내에서만 연간 28만톤 이상 소비되는 체다치즈는 영국인의 식생활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체다치즈를 듬뿍 넣은 핫샌드위치에 따끈한 밀크티를 곁들인 식사는 영국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메뉴 중 하나다. 체다치즈의 역사는 영국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구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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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더링하는 모습
영국 남서부 지역 체다(Cheddar) 마을에서 탄생한 체다치즈는 12세기에 이미 영국 최고의 치즈로 명성을 떨쳤다. 온도 조절장치도 없었던 그 옛날, 체다 마을에서는 어떻게 수개월씩 치즈를 숙성시킬 수 있었을까? 비결은 ‘천연 치즈숙성고’나 다름없는 체다 협곡의 동굴에 있다. 체다 협곡(Cheddar Gorge)은 무려 3억년 전에 만들어진 지형이다. 빙하시대의 얼음이 녹아 내리면서 거대한 협곡이 형성됐고 100만년 동안 흘러내린 얼음물은 이곳에 깊은 동굴을 만들어냈다. 이 동굴에서 발견된 9000년 전 고대 인류의 해골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동굴에서 인류가 생활했음을 보여준다. 온도와 습도의 변화가 거의 없는 체다 협곡의 동굴은 사람이 살기에 적합했을 뿐 아니라 치즈를 숙성하는 데에도 최적의 장소였다.
발효와 숙성의 관건은 부패균을 억제하는 동시에 인체에 이로운 유익균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땅 속이나 동굴이 바로 그런 장소인데 밤이건 낮이건, 여름이건 겨울이건 온도의 편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치즈를 장기간 숙성하기에 제격인 장소다. 김장독을 땅에 묻으면 김치가 맛깔스럽게 익는 것처럼, 동굴 속에서 숙성된 체다치즈는 시간이 흐를수록 특유의 풍미를 형성하며 진하게 익어갔다.
체다치즈의 부슬부슬한 식감, ‘체더링’ 덕분이죠!
체다치즈의 가장 큰 특징은 부스러지는 식감과 약간의 신맛이다. 체다치즈를 슬라이스 치즈로만 접했다면 ‘부스러진다’는 표현이 의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본래 체다치즈는 슬라이스 치즈처럼 매끄럽지도, 부드럽지도 않다. 전통적으로 체다치즈는 25kg의 커다랗고 단단한 원기둥 형태로 만들어지며, 표면은 매끄럽지만 단면을 들여다보면 부서진 입자를 눌러놓은 듯한 조직감(Crumbly Texture)을 확인할 수 있다.
체다치즈만의 독특한 식감과 맛은 ‘체더링(Cheddaring)’이라는 특수한 제조과정을 통해 얻어진다. 우유에 응유효소를 넣어 커드와 유청을 분리하는 것까지는 일반적인 치즈 제법과 동일하나, 체다치즈의 경우 커드를 아주 작은 크기로 분쇄해 산도를 높이는 과정이 추가된다. 그리고 부슬부슬한 커드 조각을 쌓아 올려서 수분을 빼는데, 이때 작은 입자들이 뭉쳐지면서 체다치즈 특유의 조직감이 생기는 것이다.
전 세계 널리 퍼진 ‘체다’, 어떤 것이 ‘원조 체다’일까?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하면서 체다치즈 제조법도 표준화·기계화됐다. 이때 정립된 체다치즈 제조법을 바탕으로 1951년 미국 뉴욕에 최초의 체다치즈 공장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대량생산이 시작됐다. 미국에서 제조한 공산품 체다치즈는 곧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종주국인 영국을 제치고 미국산 체다치즈가 세계시장을 선점해버린 것이다. 심지어 미국산 체다치즈가 영국으로 역수입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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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각국의 체다치즈
문제는 원산지와 제조법에 상관없이 아무나 ‘체다’라는 지역명칭을 가져다 쓰는 바람에 어떤 것이 ‘진짜 체다치즈’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영국의 ‘원조’ 체다치즈 농가들은 ‘웨스트 컨트리 팜하우스 체다치즈’를 정식 명칭으로 정했다. 현재 이 명칭은 지정된 치즈 제조사만 사용할 수 있도록 유럽연합의 원산지 명칭 보호(PDO)를 받고 있다. 즉, 체다치즈에 빨간색 PDO 마크가 찍혀있다면 영국의 유서 깊은 치즈 농가에서 전통방식으로 만든 체다치즈라는 뜻이다.
따뜻한 쌀밥 위에 체다치즈 한 조각 올려보세요!
꼭 영국의 치즈 장인이 만든 값비싼 프리미엄 치즈가 아니더라도 잘 만든 내추럴 체다치즈라면 찾아서 먹어볼 가치가 있다. 세계 각국에서 좋은 품질의 체다치즈가 생산되고 있는데,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지역마다 치즈 공방이 활성화돼있어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내추럴 체다치즈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체다치즈는 맛이 담백하고 쓰임새가 다양해 일상적으로 먹기 좋은 치즈 중 하나다. 기본적으로 얇게 슬라이스해서 햄버거나 샌드위치로 먹고, 잘게 갈아서 샐러드 위에 뿌리기도 한다. 특히, 열을 가하면 풍미가 진해져 더욱 맛있어지기 때문에 뜨거운 요리에 활용하면 좋다.
의외의 조합을 한 가지 소개하자면 따뜻한 쌀밥과 체다치즈, 그리고 김치의 ‘삼합’이다. 뜨거운 밥 위에 얇게 썬 체다치즈 한 조각을 올리고 김치와 함께 먹어보라. 버터를 농축해놓은 듯한 밀키한 풍미가 의외로 한식과 궁합이 맞다. 체다치즈를 단무지처럼 길게 썰어 김밥에 넣어도 아주 맛있다.
캄파뉴 체다치즈 타르틴 레시피
프랑스 빵에 체다치즈를 얹어서 구워 핫샌드위치를 만들고, 뜨거운 밀크티 한 잔 곁들이면 바쁜 런더너들의 만족스러운 점심 한끼가 된다. 프랑스어로 ‘시골’이라는 뜻을 지닌 캄파뉴(Campagne)는 밀가루, 물, 이스트, 소금만으로 만드는 담백한 빵이다. 체다치즈의 신맛과 쓴맛이 담백한 캄빠뉴 빵과 아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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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파뉴 체다치즈 타르틴
재료 깜빠뉴 1개, 체다치즈, 버터
만드는 법
1. 깜빠뉴 빵을 1.5cm 두께로 슬라이스 한다.
2. 부드럽게 녹인 버터를 잘 펴서 바르고, 체다치즈를 부숴서 얹는다.
3. 180℃ 오븐에서 치즈가 녹을 때까지 약 5분간 굽는다.
4. 뜨거운 밀크티에 곁들인다.
Tip 설탕을 넣지 않은 밀크티에는 캄빠뉴 타르틴 위에 꿀을 뿌려서 먹으면 아주 잘 어울린다.
체다 맥 앤 치즈 레시피
맥 앤 치즈(Mac & Cheese)는 이탈리아 파스타의 한 종류인 마카로니에 치즈를 녹인 크림소스를 넣고 오븐에 구운 요리다. 미국의 가정에서는 우리가 라면을 먹듯이 흔히 만들어 먹는 손쉬운 요리 중 하나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체다치즈를 몇 가지 섞어서 만들면 가장 좋은 맛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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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다 맥 앤 치즈
재료 마카로니 50g, 체다치즈 50g, 버터 10g, 밀가루 1T, 베이컨 한 줄, 생크림 2T, 우유 한 컵
만드는 법
1. 냄비에 소금물을 끓여 마카로니를 넣고 8분 동안 삶은 다음 건져 식혀둔다.
2.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고, 밀가루를 넣어 익히면서 루(Roux)를 만든다. 크림소스의 루는 브라운 색이 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밑부분이 타지 않도록 잘 젓는다.
3. 생크림과 우유, 잘게 잘라 놓은 베이컨을 넣고 루를 잘 푼 다음, 1/3 정도 수분을 날리면서 졸인다.
4. 부숴놓은 치즈를 넣어서 녹인 뒤 마카로니를 넣고 잘 섞는다.
5. 그라탕 용기에 (5)를 넣고 180℃ 오븐에서 15분 정도 굽는다.
Tip 대부분의 맥 앤 치즈에는 체다치즈가 들어간다. 모짜렐라 치즈를 토핑하거나 다른 종류의 치즈와 섞어서 취향에 따라 만들어 즐긴다.
글·사진 치즈마스터 강진명 (일본치즈프로페셔널협회(C.P.A) 공인인증 치즈마스터, 르 꼬르동 블루 졸업, 야사이 소믈리에 자격, <키친·i> 대표,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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