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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 하라(약 4:6-10)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물러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더위가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추워졌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어떻게 잘 지내셨습니까? 추석 명절을 기쁘게 잘 보내셨습니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더 나아가, 같은 층에 사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직접 만나, 얼굴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경우가 없습니다만, “아파트너”라는 웹이 있는데, 그 웹으로 연결된 온라인상에서는 하루에도 수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고,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지금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 며칠 사이에는, 올여름 무더위 때문인지, 에어컨을 많이 틀어, 전기세가 많이 나와도, 너무 많이 나왔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전기요금 고지서 올린 것을 보면, 장난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무더위는 물러가, 이제 전기세 걱정을 덜어도 될 것 같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비가 너무 많이 내렸습니다. 전국 곳곳에, 시간당 100㎜(밀리미터)가 넘는 기록적인 호우가 쏟아지면서, 여의도의 14배 면적에 달하는 농경지가 물에 잠기고, 도로에 씽크홀이 발생하는 등, 여기저기서, 막대한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한 고비를 잘 넘기면, 모든 것이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또다른 고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믿음으로, 이 모든 일들을 극복하며, 하나님 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물질의 상태 변화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액체는 용기(그릇)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고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접시에 담으면 접시처럼 퍼지고, 컵에 담으면 컵 모양이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 누구를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그의 인격과 삶이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흰 것을 가까이 하면, 희게 되고, 검은 것을 가까이 하면, 검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 누구를 따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과 삶이 180도 달라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가까이 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요(느 8:10),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우리의 복(시 73:28)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복을 주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날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후에는, 하나님을 멀리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찾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하는 것은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참된 행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10절 말씀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겸손”이란,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가 최고라고 하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은 교만입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평생을 북아프리카 선교사로 헌신했던 “앤드류 머레이”는 우리가 겸손해야 할 이유에 대하여, “첫째는, 우리는 창조자가 아니고, 피조물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우리는 의인이 아니고, 죄인이기 때문이며, 셋째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그는 정통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가장 유명한 율법학자인 가말리아의 문하생이었습니다. 그러한 바울이 자기 자신을 가리켜, “종”이라고 했고, “만삭되지 못한 자”(고전 15:8)라고 했고,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고전 15:9)라고 했고, “죄인 중의 괴수”(딤전 1:15)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는 완벽한 율법학자였고,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을 범한 적이 없는, 너무나도 평범한 정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그는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라고 고백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자기밖에 모르고, 교만의 극치를 달리게 되는데, 바울은 하나님의 손에 크게 쓰임 받으면 받을수록 겸손해졌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그런 겸손을 보시고,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한다면, 겸손해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셨습니다.
빌립보서 2:6-8절 말씀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하늘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으로 내려오셨고,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고, 결국은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한도 없이, 끝도 없이,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낮추셨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을 하나님은 가만히 보고만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9-11절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하여금,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을 최고의 자리로 높여 주셨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점점 교만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결말은 좋지가 않습니다.
어느 날, 헤롯이 용포를 걸쳐 입고, 왕좌에 좌정하여, 사람들에게 연설을 했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신의 소리다. 이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순간, 헤롯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우쭐해졌습니다. 바로 그때, 주의 천사가 헤롯을 쳤습니다. 그는 벌레에게 먹혀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 때, 나타나는 몇 가지 증거들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기쁨이 넘칩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작은 일에도, 감격합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맡은 일에 충성합니다.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너그러워집니다. 부드러워집니다. 그리고, 겸손해집니다.
여러분! 더욱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합니다. 절대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고,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더욱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하나님께 순복해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여기의 “복종하다”라는 말은 “자신을 더 낮은 위치에 두라”라는 의미로, 단순한 복종을 의미하기보다는, “철저하게 낮은 위치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라”라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 순종입니다.
여기의 “마귀”라는 말은 “비방하는 자”라는 뜻인데,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복종하지 못하도록 만들고자 합니다.
한 마디로,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장 주된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마귀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대적해야 합니다.
“대적하라”라는 말은 “대항하는 자세를 취하라”라는 의미로, 한 마디로, 소극적으로, 마귀를 이리저리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마귀와 맞서 싸우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라는 말을 했는데, 이 말은 소극적으로,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죄에 맞서 싸우고,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습관들을 하나씩 고쳐나가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를 과감하게 떨쳐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마귀와의 싸움은 회피한다고 해결되어지는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반드시 싸워서 이겨야 하는 영적 전쟁입니다. 이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영적 무장을 해야 합니다. 마귀와의 싸움은 협상하거나, 적당하게 타협한다고 해서, 해결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대적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40일 금식기도를 마치셨을 때, 마귀가 찾아와,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마귀를 향하여, “사단아 물러가라”(마 4:10)라고 대적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야고보는 “마귀를 대적하라”라고 말했고, 베드로 사도도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라”(벧전 5:9)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두리뭉실하게, 적당하게 타협해서는 안되고, 있는 힘을 다하여,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 6:10-11)라고 말했습니다.
마귀와의 싸움을 위하여, 반드시 영적 무장을 갖추어야 하는데,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악한 날에, 마귀를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끝낸 후에,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하면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7)라고 말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마귀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물리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시험하는 마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라고 말했습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으려면,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시 119:33-35)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전심으로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요,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그 말씀에 절대 순종함으로, 우리를 괴롭히고, 쓰러지게 하고, 넘어뜨리려고 하는 마귀를 물리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성결해야 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손을 깨끗이 하라”라는 말은 외적인 행위를 정결케 하라는 표현이며,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라는 말은 내적인 생각과 동기의 순수성을 유지하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성결을 유지하여, 하나님의 자녀다운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가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 올라간 이사야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고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스랍 중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뜨거운 숯불을 이사야의 입술에 대고,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거룩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가 있다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머뭇거려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나오는 모든 이들의 죄를 깨끗하게 사하여 주십니다.
어느 날, 죄 많은 한 여자가 예수님 앞에 나아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은 일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여자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 여자의 행위에 대하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너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눅 7:4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죄가 셀 수 없이 많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모든 죄를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너그러운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놀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 무릎 아래에 엎드리어,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라고 말씀하시고,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더럽다고 더러운 삶을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든 유혹과 시험을 물리치고,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혹, 넘어지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시대가 혼란스럽고, 어지러울 때, 이방원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라고 정몽주를 유혹했으나, 정몽주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라고 받아치며,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일편단심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깨끗하게 씻어주셨습니다. 우리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지금껏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제부터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룩한 삶을 살려고 애쓰고 힘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5)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 할 때, 거룩해질 수가 있음을 알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욱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하나님이 주시고자 예비해 놓으신 은혜를 풍성하게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날마다 주님 곁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주님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옵시고,
주님의 품으로 우리를 품어 주옵소서.
주님,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인도하여 주옵시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장애물들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