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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3월 다섯째 주(3/29) 열반재일. 일요 정기법회 일
3월 마지막 주 법회는 현관에서 법회보를 나누고 안내데스크, 엘리베이터 봉사, 사무국 업무. 회장단 회의 등, 바쁜 아침부터 시작이다
떡 생수는 송파 6, 7, 9구, 중랑구에서 보시. 나눔 봉사까지 수고하고 있으며. 법당안내팀과 새법우 안내팀은 각각 자리를 지킨다.
현진 거사님의 천수경에 이어 혜안 거사님 사회로 법회 시작되고, 합창단장의 헌향, 다도팀에서 헌다를 올린다.
일요 법회 참석한 불광 형제들은 오늘도 보광당을 가득 채우고 있다. 불광을 지켜가는 이들의 이 간절한 바람인 불광 정상화가 하루속히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며.._()_
금주의 법문 : 가지와 회향은 선의와 자비에서 나오는 기적입니다.
금주의 법어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전문 연구원 혜운 스님
반갑습니다. 오늘 제가 불광법회에 왔더니 법회장님께서 비구니스님이 처음 온 날이라 하더라고요. 제가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고민했을 텐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훌륭하신 비구니 어른 스님들도 많이 계신데 역시 용기 있는 자가, 아니면 두려움 없는 자가 이렇게 첫 주사를 맞는구나. 한편으로는 굉장히 뜻 깊어서 영광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솔직히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뭘 하려고 온 게 아니라 우리 부처님께서 늘 가르쳐주신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왔기 때문에 그런 본분에 충실하자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봄날 석촌호수 벚꽃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많이 듣고 사진으로는 많이 봤는데 실제 눈으로 보기는 이번이 두 번째예요. 안타깝게도 아직 벚꽃이 안 폈더라고요. 조금 더 늦게 왔으면 볼 수 있었는데 겸사겸사. 그럼에도 오늘 불광법회 불자님들께서 저를 불러주신 인연으로 이 길을 다니게 되거나 또는 마음먹고 오게 되면 굉장히 제가 오늘 이날을 많이 기억하고 오래도록 기억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늘 부처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불자님들께서 이렇게 많이 오셨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놀랍고 기쁩니다.
오늘 도착했더니 법회보를 주셨는데 여기에 의미있게 봐야할 숫자가 있어요. 맨 위에 보면 제2400호로 되어 있어요. 여러분은 잘 아시는데 저는 이 숫자가 너무 의미가 있어서 오늘 꼭 짚어가려구요. 2400호 숫자가 어떤 숫자인지 제가 여쭤봤어요. 1975년부터 시작해서 오늘 이 날까지의 일요법회 숫자라고 했어요. 중간에 일요법회 아닌 다른 법회는 제외하고 오로지 일요법회만 해서 2400호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 ‘와, 대단하다.’ 올해가 불기 2570년인데 이보다 더 뜻깊은 거 같아요. 부처님의 법이 2570년 동안 흘러왔던 것이 바로 이렇게 2400호의 불광법회보가 나오는 마음이 이어져서 불기 2570년을 만든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은 제가 감동적이었어요. 이런 시간에 맞게 여러분에게 큰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은 일요일이지만 사실은 출가재일부터 열반재일까지 해서 다른 사찰에서는 정진주간으로 여겨서 좀 더 열심히 각자에게 맞는 수행을 하는 주간으로 삼는데 달력을 보니 다음 토요일이 음력 2월 15일로 열반재일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요법회가 열반재일과 인연이 있구나 싶어서 열반과 관련된 법문을 준비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그늘 아래에서 돌아가신 지가 벌써 한참 됐는데 우리가 그날을 기념하는 날이 열반재일이죠. 그런데 하필이면 돌아가신 날을 우리가 기념할까요? 보통 우리 주변에 누가 돌아가셨다고 하면 굉장히 슬프고 안타까운 날로 여겨지기 마련인데 우리는 부처님의 열반재일을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굉장히 기뻐합니다. 우리가 좀 이상한 사람인 건 아니죠?
왜냐하면 우리가 부처님의 열반을 인간 몸, 신체의 죽음으로 여기지 않죠. 열반이란 말을 산스크리트어로 니르바나라 하는데 ‘니르’라는 접두사에 촛불을 불어서 끈다는 의미의 동사 ‘바’가 합해져서 만든 파생어예요. 뭐가 불어져서 꺼진 상태인가 하면 탐진치라는 번뇌의 불길이 꺼져버린 상태를 열반이라고 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우리 인간으로 가질 수 있는 온갖 번뇌를 다 불태워서 완전히 꺼지고 마음이 평온해지고 또는 적정하고 고요해진 상태를 열반이라고 해서 이게 부처님의 참생명이구나, 부처님의 진정한 생명이 지속되는 첫출발의 날이라는 걸 알고 이날을 고요하고 평화롭고 적정한 참생명을 얻으셨는데 그런 열반을 맞이해서 나는 어떻게 번뇌를 완전히 소멸해서 부처님과 동일한 적정, 평온의 상태를 얻을 것인가 고민을 해보는 자기 성찰의 날이 되어야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나는 세상을 이만큼 살다보니까 번뇌 따위는 없다. 웬만한 건 일어나다가도 바로바로 꺼뜨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하시는 분 있어요? 저는 진짜 탐진치라는 번뇌가 불타오르는 촛불처럼 형태가 있으면 불어서 꺼뜨리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탐진치는 형태가 보이질 않고 손으로 잡히질 않아서 끈다는 걸 경전을 읽어서도 알겠고 2400번이나 되는 법문을 들어서 너무 잘 알겠는데 이 번뇌를 꺼뜨리는 게 쉽지 않죠. 탐진치 삼독을 버리는 방법에 대해서 오늘 제가 이야기를 할 겁니다.
사실 탐진치 삼독은 어떻게 일어나나요? 눈으로 보고 좋은 거 있으면 가지고 싶고, 귀로 들어서 좋은 소리 있으면 또 듣고 싶고, 더 좋고 더 강한 소리 듣고 싶고, 향기를 맡거나 입으로 맛을 보거나 피부에 촉감을 느끼는 것으로 뭔가 더 좋은 게 있으면 굉장히 얻고자 합니다. 그래서 탐진치라는 번뇌는 내 마음과 상응을 해요. 내 마음에서 좋다고 여기면 얻고 싶고, 얻고 싶은 걸 못 얻으면 화를 내고, 이런 모든 것은 마음의 어리석음에서 생긴다고 하거든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탐진치는 마음과 상응해서 일어나는 번뇌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마음에 탐진치가 생겼을 때 진짜 내 마음이랑 서로 연결이 되든가요, 아니면 마음과 상관없이 일어나든가요? 마음과 상관을 해야 내가 어떻게 마음을 다독여서 어찌해볼 텐데 마음과 상관없이 불쑥 일어나니 큰일 아닙니까? 탐진치 같은 번뇌는 마음과 상응하니까 마음을 닦는 수행으로 제거할 수 있어요. 그래서 초기에 부처님 계시던 당시에도 마음을 닦는 수행법이 굉장히 많죠. 호흡을 통해서, 느낌을 통해서, 생각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탐진치를 제거하는 수행법이 많았어요.
부처님 열반 후에 100여 년이 지나면 인도에서 불교를 전국에, 나중에는 동남아시아나 전 세계적으로 전파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왕이 한 분 계시죠? 아쇼카왕이 계실 때 왕권에서 불교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해줘서 굉장히 불교가 많은 부흥을 이루었거든요. 그런데 나라의 전폭적인 지지와 왕의 후원을 받으면서 생활이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을 때 사람들이 더 열심히 수행을 했어야 되는데 항상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이 많으면, 조명이 밝게 비칠수록 여기 아래에는 그늘도 더 진하고 강한 것처럼 후원과 지지를 많이 받을 때 병폐도 많았어요. 기천이라는 아라한의 깨달음에 대해서 옳지 않다고 반대하는 쟁론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그런 것처럼 수행에 있어서의 깨달음 또는 번뇌에 대한 갈등과 논쟁이 굉장히 많이 이어졌어요.
그러면서 대승불교에 와서는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번뇌가 있다는 것이 재조명됩니다. 여러분 승만경 들어보셨죠. 제가 승만경을 통해서 박사논문을 썼어요. 승만경이란 중기 대승불교 경전으로 여래장경전이면서 흔히 비구, 비구니, 우바새도 아닌 오늘날의 우바이에 속하는 여성 불자가 깨달음을 설합니다. 부처님께서 그것이 맞다라고 대답하시면서 설법이 이뤄지는 형식의 방광경입니다. 승만경에 보면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번뇌가 있는데 그것은 무명주지번뇌라고 해서 그것을 닦아야한다고 설합니다.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번뇌를 들어보셨을까요? 역시 들어보지 못하셨군요. 여러분은 불교를 어떤 종교로 생각하세요? 불교의 중심, 핵심 가르침이 무엇일까요? 깨달음이면 무얼 깨달아야 될까요? 마음을 깨달으려고 하면 뭔가 마음과 연결된 걸 알아야 이걸 깨뜨려서 깨달음을 얻는데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걸 어떻게 해결해야 되나요?
불교는 많은 사람이 착각하고 있는데 윤회에서 벗어나고 멈추는 종교다. 또는 우리의 까르마, 업에서 벗어나게 하는 종교라고 말하는데 제가 공부하기엔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기의 업을 벗어나게 할 수도 없고, 윤회를 벗어나긴 하는데 그것이 핵심 가르침은 아니고 불교의 진정한 가르침은 마음이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길을 알려주는 겁니다. 불교란 마음이 번뇌로부터 해탈하는 길을 보여주는 가르침입니다. 불교의 정말 가르침은 이 몸을 벗어나거나 업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마음이 번뇌로부터 벗어나서 대자유인이 되는 가르침을 설한 게 불교예요.
마음과 상응하는 건 방법이 많고 경전에도 많이 설해져서 어떻게 해볼 수 있는데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이 무명주지번뇌는 어떻게 합니까? 승만경에서는 무명주지번뇌를 대지, 땅과 같아서 모든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싹이 나는 것처럼 탐도, 진도, 어리석음도 싹 틔우므로 승만경에서는 탐진치를 기(일어날 起)번뇌라고 합니다. 초목과 꽃, 풀은 땅이 다 허물어지면 당연히 허물어지겠죠. 지진 일어나면 온 세상이 무너지듯이. 땅이 허물어지면 땅 위의 모든 것이 허물어지는 것처럼 무명주지번뇌가 허물어진다면, 무명주지번뇌를 의지해서 일어났던 모든 번뇌도 당연히 소멸되겠죠. 그래서 무명주지번뇌를 소멸하는 것만이 완전한 니르바나, 열반을 얻는 길이라고 승만경에서는 설합니다.
그렇다면 무명주지번뇌를 제거하는 방법도 나오겠죠? 그게 뭘까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바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거라고 합니다. 부처님께 귀의하는 일이 어떤 일이 있기에 무명주지번뇌를 끊는 것일까? 오늘 법회 시작할 때 보니까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시고 또 공양 올리시고, 찬탄하고, 불자들의 발원도 하면서 좋은 건 다하시더라고요. 이렇게 부처님께 귀의하고 공양 올리고 찬탄하고 각자 자기의 서원을 발하는 모든 것의 공덕이 모이겠죠. 공덕이 모이면 부처님전에 전해지죠. 보통은 부처님께 우리의 소원을, 발원을 성취시켜주시라고 기도를 많이 하죠. 우리의 공덕을 부처님께 전하는 것을 보통 회향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지은 공덕을 나 아닌 다른 중생의 행복과 나와 다른 중생의 깨달음으로 전환되는 것을 회향이라 하고 이런 회향은 부처님께 가기를 원하죠. 부처님께서 당신이 지은 공덕을, 당신의 불가사의한 힘을 우리에게 전해줘서 그런 것들이 나에게 작용해서 번뇌도 소멸되고, 우리의 참서원도 성취되고, 우리의 깨달음으로까지 연결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가 이 자리에 함께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회향이란 산스크리트어로 파리나마나(Parinamana)로 자신이 닦은 공덕을 다른 중생의 행복과 깨달음을 향해 돌린다는 뜻이 있구요. 반대로 부처님의 가지력, 가피력은 아디스타나(Adhisthana)로서 부처님이나 보살님의 대자대비 한 불가사의한 힘이, 공덕력이 우리 불자님들의 신심에 깃들어 우리를 깨달음으로 얻는 길로 연결이 되어서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게 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가지력에는 부처님의 위신력이라는 신비로운 힘, 또는 불가사의한 힘이란 뜻도 있고, 부처님의 가피가 있길 바란다고 할 때의 가피란 뜻도 있고, 아까 서원을 발했는데 서원의 뜻도 있고 일본에서는 이것을 기적 또는 신의 은총이란 의미로 해석해서 사용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의 가지력을 원합니다라고 할 때는 나에게 기적같은 일이 생기기를 원하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여러분은 이렇게도 말해요. 우리 집 양반이 절에는 한 번도 안 오더니 어느 날 문득 마음의 변화가 있는지 오늘 절에 왔어요. 부처님의 가피력이에요. 물론 그것도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기적같은 일이라 가피라 할 수 있지만 정말 가피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게 가피력이에요.
여러분이 이 법회에 와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마음을 변화시키면서 주변 사람을 따뜻하게 하시고 주변 사람의 마음까지도 변화시킬 힘을 갖게 되었을 때 내 가족도 변해서 부처님의 법을 가까이하는 그것도 기적이긴 하지만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 너무 큰 병에 걸려서 다시는 살아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이 살아나든지, 탐진치가 달콤해서 어떻게 하면 윤회를 잘해볼까 꿈꾸는 우리에게 그런 건 부질없다. 깨달음이 나의 진정한 참 생명을 얻는 길이다 하고 나에게 단박에 깨달음이 이뤄지는 것이 기적이 아닐까요? 회향이나 가피란 말을 너무 많이 쓰다 보니 잘 와 닿지를 않아요. 우리가 어떤 면에서는 그 내용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는 만큼 불교가 보이고, 아는 만큼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거든요.
‘라프카디오 헌’이라는 사람은 영국 군인인 아버지와 그리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기자로 있다가 우연히 일본을 갔는데 일본 문화를 보고 완전 매료되어서 일본에 반하여 일본 이름으로 개명하고 일본 여인과 결혼을 해서 14년을 살았어요. 일본 관련 영문 저서도 14권 내고 단편소설도 썼어요. 일본에서 죽어가면서 많은 학자들이 ‘라프카디오 헌’은 진짜 일본인보다도 일본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일본 역사와 전설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이분이 1903년에 ‘디프로머시’라는 단편을 쓰는데 디프로머시는 임기응변적인 술책, 기적적인 일이라는 뜻이 있어요. 일본은 예전에 사무라이들이 자기 가문을 일구죠. 사무라이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서 자기 가문의 영광과 명예를 누리고 땅을 넓히면서 자기 세력을 키워갔던 집단이죠. 그래서 이 사무라이들이 서로의 가문이 원수지간으로 있던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 중의 어떤 사람이 가문의 원수를 갚겠다고 찾아와서 사무라이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 겁니다. 이 사람이 말합니다. 가문의 원한으로 내가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 죽게 되었는데 내 잘못도 아니고 가문의 원수로 연결되어 내가 죽임을 당하는 건 너무 억울하다. 내 탓이 아닌 것으로 사무라이 당신이 내 목을 벤다면 그건 무법이다.
만약 당신이 이런 원한으로 나를 죽인다면 내가 반드시 당신에게 원한 갚겠다며 절규하는 겁니다. 저는 겁이 나서 움찔할 것 같은데 이 사무라이는 웃으면서 말합니다. 너의 원한이 그렇게 깊다면 그걸 나한테 보여봐. 목이 잘리는 순간에 저 정원의 연못에 있는 자갈돌을 깨물어서 뜯어봐라. 그러면 너의 원한이 깊음을 내가 알겠다고 했더니 그 남자가 꼭 물겠다며 복수심에 불탈 때 사무라이가 그 사람의 목을 탁 쳤어요. 이 머리가 떼굴떼굴 굴러서 눈을 뜨더니 통통 튀어서 연못에 있는 자갈돌을 물어뜯고 떨어져나오는 겁니다. 이 정도의 복수심이면 진짜 원한을 갚겠죠.
사무라이 가신들은 너무 무서워서 큰일났다며 원한을 갚으러 올 테니 우리가 시아귀라고 베풀어주자고 했습니다. 시아귀(施餓鬼)란 연고자가 없는 귀신들을 공양을 올려서 재를 지내주는 의식이죠. 우리는 보통 중양절에 연고자 없는 지인이나 자식 없는 분들 위패 모셔서 해주죠. 일본에도 그런 걸 시아귀라고 합니다.
사무라이는 픽 웃으면서 저 남자는 절대로 원한을 갚을 수가 없다면서 그가 가진 마지막 원한심, 내가 반드시 원수를 갚겠다는 무서운 복수의 마음을 정원에 있는 돌맹이를 물어뜯는 마음으로 바꿔버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점잖게 말하면 복수심을 돌맹이를 물어뜯는 집착으로 바꾸어서 바꿔치기라 하고 전환이라고 합니다. 사무라이가 그 마음을 바꿔치기한 거죠. 이 원한 가진 남자는 원한을 깊이 가져야 죽어서도 그 원한을 이룰 텐데 어리석어서 깜빡 속아서 돌맹이를 물어뜯겠다는 집착으로 바뀌어서 마음이 멈추었기 때문에 절대로 원한을 갚지 못할 거라고 사무라이는 말한 겁니다. (보리광 보살님 녹취)
또 이런 얘기도 있어요. 일본에는 아니 일본이 아니라 인도에는 어떤 종교가 있느냐면 파슈파타(Pasupata)라고 있어요. ‘파슈파타파’라고 하는 그런 수행 집단이 있는데 이 집단은 뭐냐 하면 파괴의 신, 인도의 3대 신 중에 파괴의 신 또는 파괴를 통해서 재창조를 해준다라고 믿고 있는 시바 신이 있죠. 그 시바 신을 믿고 있는 종교 중에서 초창기 때 많이 부흥을 했던 그런 종교 집단이 있는데 이 파를 시바교의 한 파로 파슈파티가 있어요.
이 수행자들은 그 수행의 1단계에 어떤 일을 하느냐면 굉장히 열심히 수행을 하고 덕을 쌓고 이러다가 길에 사람들이 많은 여기가 좋겠어. 석촌 호수같이 아주 사람들이 많고 북적북적 대는 곳에서 나간답니다. 어떻게 나가느냐 하면 얼굴에 뭐도 칠하고 옷도 거지같은 걸입고 누가 봐도 냄새 난다고 더럽다고 여겨서 혐오심이 일어나고 이럴 정도로 막 가가지고 그런 불쾌한 모습으로 나가서 일부러 웃기도 하고, 또는 음란한 짓도 하고 나쁜 말도 하고 이상하게 행동을 해서 사람들이 그를 보고 더럽다고 욕하고 이상하다고 흉보고 또는 미친 사람이라고 뒤에 가서 흉을 볼 정도로 엄청 이상한 짓을 한대요. 그 사람은 그게 수행의 1단계잖아요.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비난하라고 왜? 이런 짓을 할까요? 왜 그러냐면 그 사람들이 내가 원래는 그런 이상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거짓되게 위선으로 자기가 불명예스러운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이 착각하도록 만들어서 그 사람이 막 욕을 하면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욕을 먹으니까 어떻게 해요?
그 사람이 나를 잘못 욕한 거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동안 쌓아놨던 복업은 나한테 옮겨 와요. 그 대신 나에게 남았던 그런 죄업들 있죠. 이런 거는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욕을 먹으니까 그 사람들한테 내 죄업이 옮겨 가고, 나도 이런 거 있으면 가서 할 것 같아. 일부러 바보짓을 하고 막 더럽게 하고 가가지고 욕먹어서 그 사람의 복업이 나에게 오고 나의 죄업이 그들로 간다면 이거 좀 해볼 만하지 않겠어요?
여러분들처럼 착하게 산 사람은 아까워서 못하겠지만 잘못을 많이 저지른 사람은 이런 수행법이 있다면 우르르 몰려갈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성공적이었으면 그 파슈파타파의 수행자들이 오늘날까지 이렇게 대단한 힘을 발휘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거 보면 효과는 없었나 봐. 그렇죠. 다행이지 뭐예요. 그래서 이 수행자들이 그런 일을 한 거는 복업이 다른 사람의 복업이 나에게 오고 나의 죄업이 그 사람들한테 간다고 믿었기 때문에 하는 거거든요. 그러는 것처럼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잘 보면 어떤 일이 생겼냐면 첫 번째 이야기에는 나의 원한심이 저 사람을 향한 원한심이 뭘로 바뀌었어요? 돌멩이를 물어뜯는 집착으로 바뀌어버렸죠. 이런 것들은 내 마음에 방향이 어디로 바뀌었어요? 원한에서 돌멩이라고 하는 집착심으로 방향이 바뀌어버렸죠. 방향이 바뀌어 지는구나 마음은 그렇죠.
또 두 번째 이야기는 이런 게 있어요. 복업이 다른 사람의 복업이 나에게로 오고 나의 죄업이 다른 사람으로 옮겨가는 거 보니까 이 내용이 어떻게 됐어요? 복업이라는 내용이 요리 오고 죄업이라는 내용이 저리 가고 이러면서 내용이 바뀌죠. 그러고 보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런 공덕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내용도 전환이 되고 바꿔지고 이 공덕의 방향도 다른 곳으로 전환이 되는구나. 바꿔지는구나라는 걸 알 수가 있죠.
그런데 이 사무라이하고 한 사나이의 이야기는 파슈파타파의 수행자의 이야기는 좀 어때요? 나빴죠?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교묘하게 술책을 부려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꿔 놓고 다른 사람의 복업을 훔쳐 온 거잖아요. 이런 것들은 옳지 않다고 우리 세 살 먹은 아이들도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마음의 방향이 바뀌고 마음의 내용이 바뀔 수 있다. 전환된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회향과 가지력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어요. 회향도 우리가 쌓은 공덕도 내용을 전환할 수 있고 방향도 전환할 수 있어요. 부처님의 가지력도 그 내용이 전환될 수 있고 방향도 전환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된다? 내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럼 큰일 나겠죠.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우리 불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회향과 가지력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려고 하려면 선의와 대자대비한 마음에서 이루어져야 됩니다. 선의와 자비심이 없이 회향과 가지력이 일어나면 아까 그 사무라이와 같은 일을 벌이게 돼 있고 파슈파타파의 수행과 같이 수행자처럼 엉뚱한 일을 벌이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선의와 자비에 의해서 우리가 회향하고 가지력이 일어나야 됩니다. 이런 일들은 불교에서 엄청 많이 있어요. 어떤 일이 있어요? 가장 쉽게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느냐 하면 구마라집이라고 하는 역경가가 있죠. 일생에 수많은 경전과 논설을 펼쳤는데 그분이 법화경을 번역하고 제자들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만약에 내 이 번역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내가 죽어서 나를 화장했을 때 ‘혀’만은 타지 않는다. 이런 법문은 들어보셨죠? 내 혀만은 타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해서 진짜 구마라집 법사가 돌아가셨을 때 그 몸을 화장했더니 뭐가 안탔어요? 혀가 타지 않았다고 하죠. 그래서 현재 중국에도 구마라집의 혀 탑이 남아 있잖아요. 남아 있는 것처럼 그런 것들이 기적인 거예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죠. 왜냐하면 구마라집의 진짜 부처님의 의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내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온전히 내가 중국인의 말로 번역했다라고 하는 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그런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또 이런 것도 있죠. 부처님 당시에도 있었어요. 앙굴리마라 이야기도 알죠? 앙굴리마라 이야기도 뭐예요? 자신의 깨달음을 위해서 잘못된 스승을 만나가지고 99명을 살해했잖아요. 우리가 알 것 같으면 살인자는 깨달음을 얻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니 참 이상한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앙굴리마라가 아무리 부처님 제자지만 너무너무 무서웠어요. 그 사람을 보는 것만 해도 너무너무 공포스러웠던 산모의 이야기 알죠? 아기를 가진 산모가 앙굴리마라를 보면서 너무 무서워서 난산을 겪고 있으니까 앙굴리마라가 이런 일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여쭈었더니 부처님께서 진실을 말해라 해서 앙굴리마라가 그 산모에게 가서 뭐라고 그랬어요?내가 불가에 들어서서 청정한 부처님 가문에 들어서서는 단 한 번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부처님 법을 믿고 열심히 수행했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당신에게도 평화가 오고 당신의 아이에게도 평화가 와서 순산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부인이 아기를 순산했다라고 하는 이야기도 우리가 잘 알고 있죠. 이거 말고도 우리나라 선사 이야기도 되게 많아요.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을 하신 분이 있을 것 같아요. 열심히 기도를 했더니 갑자기 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이루어지고 어디 불났던 곳에 불이 꺼졌고 뭐가 날아다니고 이랬다라고 하는 기적적인 일들이 많이 듣게 되잖아요. 이런 것들이 바로 회향과 가지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가만히 보면 자기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대중의 이익을 위해서 대중의 깨달음을 위해서 그 공덕을 회향했다는 것들이 오는데요.
여러분들이 여기 보니까 감동적이었던 게 무슨 발원을 이렇게 모아 놓고 108 기도 발원문 또 송파 몇 구에 있는 그런 무슨 발원문 하고 모셔 놓았길래 이분들 진짜 알짜배기 기도하고 있구나 이렇게 제가 봤습니다. 이 발원이라고 하는 것들이 부처님 전에 올리는 게 이것이 나의 공덕이 되거든요. 발원이 부처님 전에 올렸으니 어떻게 되겠어요? 부처님이 여러분들에게 가지력을 행하면 그게 이루어지겠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도를 하고 소원을 빌고 공덕을 올리고 공양을 올렸던 것들이 어떻게 나에게 그런 작용력이 되어서 나에게 임해서 작용력이 펼쳐져서 내 아들이 대학에 입시하고 내 남편이 내 와이프가 어디어디 입사를 하고 승진을 하고 아팠던 사람이 일어나는 그런 기적이 어떻게 일어나나 했더니 뭐였어요?바로 이런 회향과 가지력에 의해서예요. 여러분들의 기도가 또는 발원이 어떻게 돼요?
발원의 내용이 부처님에게 전달이 되거나 또는 내가 기도를 해 주고 싶은 내 가족이나 내 아들 딸에게 방향이 바뀌어지죠. 방향을 바꾸고 내 공덕이 내용을 바꿔서 누군가에게 승진과 합격과 어떤 병에서 벗어나게 되는 힘을 발휘하잖아요. 그런 작용력이 생기잖아요. 이게 바로 기적이라고 하는 건데 이 기적이 우리 불교에서는 가지력이다 가피력이다 부처님의 위신력이다라고 말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오늘 이 법회에서 했던 나의 공덕을 한번 생각해 볼까요? 뭐가 있을까요? 나무 석가모니불 하고 부처님한테 귀의했죠.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하고 귀의한 것도 공덕력을 오늘 여러분이 오늘 한 것만 이 법회 시간에 한 것만 한번 생각을 해보면 공덕력을 쌓으셨어요. 그다음에 지심귀명례 하면서 부처님 전에 또 보살님 전에 온갖 선지식과 승가에 귀의를 하면서 공덕을 지으셨죠 또 발원을 하면서 각자의 발원과 서원을 하면서 공덕을 지었죠. 이제 공덕을 많이 지어놨단 말이죠. 그런데 이 공덕을 어떻게 하셨어요? 회향하셨습니까? 아직 안 하셨으면 빨리하셔야 됩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공덕은 잔득 쌓아놨는데 공덕 사용법을 모르면 공덕이 나한테 언제 올지 모르잖아요. 어떻게 올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혹시 그전에 법문 들으실 때 발원을 분명히 해라. 이루고 싶은 소원의 구체적인 뭐를 적어라 혹시 이런 법문 들어보셨죠?
방향을 분명하게 해주는 거예요. 나의 공덕의 방향을 누구에게 어디로 방향을 정해주고 나의 어떤 공덕을 어떤 형태로 기적을 일으킬 것인지 그 내용도 분명하게 바꿀 줄 아셔야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회향을 꼭 하셔야 되겠죠. 요즘 제가 절에 가보면 회향을 오늘 법회 회향식입니다. 이렇게 해서 어떤 법회가 끝날 때 또는 무슨 행사가 끝날 때 끝나는 게 무슨 회향합니다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는 걸 보고 제가 안타까웠거든요. 회향은 그런 게 아니에요 공덕 사용법이에요. 첫 번째 공덕 사용법, 여러분들이 오늘 지었던 공덕을 어떻게 회향할 줄 아느냐에 따라서 그 공덕의 내용과 방향이 누구에게 어떻게 갈 것인지는 여러분들이 정하는 거에요.
그런 회향에 따라서 여러분들이 회향에 따라서 부처님도 어떻게 해요? 당신의 가지력이 그 사람에게 어떤 방향으로 어떤 내용으로 갈 건지 여러분들이 결정한 대로 보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회향과 가지력이 함께 만나면 나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런 기적 경험하신 적 있죠? 이 정도 하시는 거 보니까 한 3분의 1만 지금 기적을 맛보신 것 같은데 나머지 3분의 2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회향하셔야 돼요. 우리가 그동안 공덕 사용법을 잘, 공덕은 이 법회에 참석하는 것만해도 공덕을 아주 많이 짓겠더라고요.
앞으로 법회 때 늦게 오는 것보다는 일찍 와가지고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일찍 와가지고 낱낱이 공덕을 지어서 가는 마지막에 오늘 지은 내 모든 공덕이 있다면 회향하셔야 돼요. 회향을 하셔서 부처님의 가지력이 여러분들에게 임해서 여러분들이 소원하는 일들이 이루어지는 기적을 이루셔야 돼요. 이 마음 중에는 여러분들이 내 개인에게 있었으면 하는 발원도 있을 테고 또는 우리 가족에게 있었으면 하는 발원도 있을 거고 우리 마을에 또는 이 불광법회에 미래의 우리 자손에게 대한민국에게 우주 법계에 얼마든지 할 수 있겠죠. 이왕이면 자기 도량이 얼마나 큰지는 내 발원이 가는 방향과 내용을 보면 돼요. 내가 어디까지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서 갈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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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힘은 안 되지만 누구는 가능해요?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내가 불광법회에만 이 기적이 일어나게 해 주세요 하면 불광법회에만 있겠죠.
그런데 대한민국에 이 가피력이 있게 해주세요 하면 누구의 힘으로 부처님의 힘으로 그 가지력이 행해질 테고 우주 법계에 있게 해주세요. 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주 법계의 그 가지력이 임하겠죠. 그래서 이런 나의 회향이 부처님의 가지력과 만나서 내 삶의 기적이 일어나려고 한다면 공덕을 많이 지으십시오.
공덕을 많이 짓는 방법은 너무 잘 아실 테고 귀의한 부처님께 삼보님께 귀의하고 찬탄하고 공양 올리고 기타 등등 많은 것들이 다 공덕을 쌓는 일이에요. 이런 일들을 회향을 통해서 방향을 정하고 그 내용까지도 여러분들이 컨트롤 할 수 있다면 이런 것들에 의해서 부처님이 가지력을 임해줄 텐데, 아까 제가 처음에 열반을 이루려고 하면 모든 번뇌를 꺼뜨려야 되는데 탐진치 말고 탐진치가 뭘 의지해서 싹튼다 그랬어요. 전생사라 기억이 안 나는가요. 뭐가 뭐에 뭘 의지해서 일어난다고 그랬어요.무명주지번뇌(無明住地煩惱) 의지해서 성장하는 것이 탐진치라고 하는 번뇌죠.
그래서 내 마음만 가지고 어떻게 하면 해결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더니 여러분 가끔 이러잖아 나도 모르게 그랬어. 나도 모르게라니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미처 마음을 못 쓸 텐데 그 마음이 못쓸 때 알고 봤더니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거는 나라고 하는 사람의 공덕을 온전히 부처님께 나라고 하는 사람 자체를 공덕뿐만이 아니라 나의 번뇌까지 또는 나의 허물까지 나의 잘못까지 온통 여러분들이 여기에 발원문 올리듯이 마음 통째로 부처님 전에 다 공양을 올린다면 부처님이 여러분들의 선한 마음이던 불선한 마음이던 다 바꿔서 어떻게 해요? 내용도 전환할 수 있다 그랬잖아요. 내용도 바꿔치기 할 수 있고 방향도 바꿔 칠 수가 있으니까 여러분들 좋은 것만 공양 올리는 거라고 생각하셨죠?
알고 봤더니 어떤 것도 나의 슬픔도 공양 올리시고 나의 좌절도 공양 올리시고 나의 부끄러움도 올리시고 나의 두려움도 공양 올려보세요. 그러면 그 내용이 부처님 전에 전달되면 어떻게 하실까요?
얘가 지금 나한테 이런 부끄러움을 올렸다고 아니 나에게 이런 공포심을 공양 올렸다고 하고 부처님이 여러분들 야단치실까요? 아니에요 그 부끄러움과 공포심과 두려움조차도 온전히 공양 다 받으시고 두려움이 큰 만큼 공포심이 큰 만큼 부끄러움이 큰 만큼 내가 다 받아서 이것을 더 좋은 내용으로 바꿔서 전환시켜서 그에게 기적을 이루리라 할 거에요. 여러분들이 부처님한테 공양 올리는 것은 모든 것들 여러분들 하고 싶은 거 다 공양 올리셔도 돼요. 그래도 부처님께서는 그 내용을 다 바꿔서 좋은 것들로 주실 거거든요. 공덕을 회향하고 가피를 받는 것이 사실 되게 쉬운 일인데 우리가 마지막에 이 공덕을 회향할 줄 몰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로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내 공덕을 어떻게 회향하고 가피력을 어떻게 받는지를 아셨으니 앞으로는 더 많은 공덕을 짓고 이왕이면 더 크게 회향을 하셔가지고 내 가족만 잘될 것 같지만 내 주변이 힘들고 어려우면 내가 편안하겠어요? 불안하죠. 저 사람이 언제든지 내 행복을 뺏어갈 것 같아서 불안하잖아요. 내가 제일로 가난하고 내 주변이 엄청 부자고 편안한 사람들이야. 그럼 어떻게 될까요? 내가 제일로 가난하니까 내 주변의 부자들이 편안한 사람들이 나를 안 돌볼 수가 없어.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더 부자로 만들고 더 안락한 사람으로 만들면 나 자신은 한두 사람한테 한두 사람을 돌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주변에 온통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이 나를 돌본다고 생각해 봐 완전 겸손하지 않았어요. 이왕에 회향하실 거면 더 크게 더 넓게 회향을 하신다면 여러분들이 더 큰 가피를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열반이라고 하는 것 중에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무명주지번뇌를 깨뜨리는 방법도 부처님께 내 온 마음을 공양 올리고 귀의하는 거고 찬탄하는 거다라고 배웠고, 또한 내가 올린 모든 공덕들을 더 크게 쓸 수 있는 방법도 삼보님께 귀의하고 찬탄하고 공양 올리는 것이로구나라는 걸 이제 아셨잖아요. 이제 앞으로는 실천하는 길만 남았겠죠. 그래서 저도 오늘 제가 이 불광법회에 오면서 불광법회 법문을 준비하면서 지었던 모든 선업 공덕이 있고 부처님께 의지했던 그런 공덕, 또 많은 중생들을 생각했던 공덕, 많은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 저도 여러분들도 부처님과 동일한 깨달음을 얻고 동일한 대자대비로 많은 중생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공덕을 지었다면 그런 공덕을 이 자리에 오신 불광법회의 모든 불자님들과 불자님들의 가족과 또 인연 있는 모든 분들과 우주 법계에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과 가족과 대한민국과 우주 법계에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제가 지은 공덕을 온 우주 법계에 대한민국의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에게 우리가 나누어 드릴 테니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들의 여기 부처님의 가피력이 한가득해서 진짜 기적을 만나보시길 발원합니다.
오늘 법회에 오셔서 이렇게 저 뒤에 있는 분까지도 뒤에 앉아 계신 분까지도 어떻게 하면 내가 더 큰 공덕을 회향할까 하고, 이런 저를 봐주시는 저 선한 공덕에 제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법회에 이렇게 불러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고 여러분들과 제가 이런 인연으로 항상 모든 공덕들을 다 우주 법계 회향하는 그런 참 불자 되고 그로 인해서 부처님과 동일한 깨달음을 얻고 부처님과 동일한 그런 불자가 되시길 기원하면서 오늘 이 법회를 마치겠습니다 성불 하십시오.(월광화 보살님 녹취)
♬ 찬탄곡 : 빈 손(대석스님 작사. 서근영 작곡 , 김회경 지휘) 마하보디 합창단 ♬
열반재일 축원 : 혜담스님
발원문 낭독 : 불광법회 감사 혜각 거사님 (불광사. 불광법회 정상화 기도 발원)
현안 보고 : 현진 법회장님
2019년 1월부터 끊이지 않고 매주 현안 보고를 해오신 현진 법회장님. 이제 법회장을 회향하며 마지막 현안 보고라는 말씀에 가슴은 뭉클하나 7년이 훌쩍 넘은 긴 세월 동안 불광 법회를 지금의 활성화된 법회로 이끌어오느라 애쓰시며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시간들을 알기에 감히 잡지는 못하지만 서운한 마음 어찌 말로 다 하겠는가. 하지만 환하게 웃는 사진 속 모습처럼, 불광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날. 우리 모두 함께 밝게 웃으며 옛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현진 법회장님!
힘든 시간 불광 법회를 튼튼하게 지켜주신 그 은혜는 오래오래 불광 형제들 가슴속에 각인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불광법회 첫 걸음, 새 법우 환영식.
법회 후, 나름대로 준비하신 점심 공양을 나누며 법등 모임을 활발하게 진행 중인 불광 형제들.
법당 안내팀의 인사 와 보문부에서 준비한 열반재일 공양물을 소분하여 귀가하는 형제들이 시식하고 갈수 있게 했다.
사측에서 쓰레기통을 치워서 비닐봉투를 설치하고 법회 마무리.
오늘도 대웅전에서 금강경 독송이 이어지고~~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청정팀봉사단은 법당 청소 및 의자 배치를 한다. 봉사 후에 나누는 차 한잔, 과일하나 그 또한 즐거움이어라.
조계사, 봉은사의 1인 시위 정진 중.
토요일 불광사 호법시위 정진단
|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
첫댓글 오늘도 여법하게 이어진 불광의 일요법회를 기록하려고 사진 찍으신 원각화님, 귀한 비구니스님의 법문을 받아쓴 보리광, 월광화님, 전체를 훌륭하게 편집하신 마음님 모두 불광의 빛나는 보현행자이십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