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義縣南行山谷人居遇飢民(전의현남행산곡인거우기민)
이황(李滉:1502~1571)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퇴도(退陶), 도수(陶叟), 청량산인(淸凉山人).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집은 새고 옷은 때에 절고 얼굴에 검버섯까지 피었는데
屋穿衣垢面深梨 옥천의구면심리
관아에 곡식은 잇따라 비어 가고 들에는 나물까지 드무네
官粟隨空野菜稀 관속수공야채희
외따로 사방의 산에 핀 꽃은 비단 같은데
獨有四山花似錦 독유사산화이금
봄은 어찌 사람들이 굶주려 있는 것을 알기나 하는 것인지
東君那得識人飢 동군나득식인기
:전의현(全義縣): 충남 연기군 전의면 · 전동면 일대.
충청도 암행어사가 되어서 지은 시
*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1956. 文學藝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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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碑 (묘비)
신경림
쓸쓸히 살다가 그는 죽었다.
앞으로 시내가 흐르고 뒤에 산이 있는
조용한 언덕에 그는 묻혔다.
바람이 풀리는 어느 다스운 봄날
그 무덤 위에 흰 나무 비가 섰다.
그가 보내던 쓸쓸한 표정으로 서서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러나 비는 아무것도 기억할 만한
옛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언듯
거멓게 빛깔이 변해 가는 제 가녈픈
얼굴이 슬펐다.
무엇인가 들릴 듯도 하고 보일 듯도 한 것에
조용히 귀를 대이고 있었다.
(1956. 文學藝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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罷場(파장)
신경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1970. 創作과 批評)
⬨당시 발표한 원문 그대로 실음
삼가 신경림 시인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