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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모제> 펠릭스 가타리 지음, 윤수종 옮김, 동문선
가타리의 마지막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책의 초점은 새로운 주체성과 새로운 생태학의 패러다임의 생산에 대해 맞춰져 있다. 가티리 철학을 핵심은 68혁명과 정신병원에서의 분열분석 지도제작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68은 서구자본주의는 물론 마르크스주의의 파산을 선언하는 혁명이었다. 그 속에서 가타리가 찾아낸 것은 소수자로 불리던 다양한 주체들의 발생과 탈영토화였다. 그의 분열분석은 소위 정신병자들을 모델로 하여 기존이 정신분석이 가진 억압을 극복하고 자신을 정립하는 모습을 통해 새로운 주체의 전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가타리의 생태학이 자리하는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묶는 원리로서 욕망기계를 작동시킨다. 기계나 생산 따위가 가진 현대적 의미 때문에 가타리의 기계 개념을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난점이 있기는 하다. 아무튼 욕망기계란 주체를 정립하기 전에 일어나는 흐름으로서 ‘자기를 생산하는’ 생명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기계를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시정치와 담론으로부터 거시담론을 허물고자 했던 가타리 시도는 치열함 자체일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철학이 가진 난해함은 어찌해야 할까 싶다. 최근 고전주이자의 미학과 정신을 대표하는 실러의 책을 읽고 가타리 책을 보니 둘의 차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가타리는 어쩔 수 없이 아방가르드의 후예일 수밖에 없는 듯하다. 사실 그는 특이성의 창조를 담당하는 예술가야말로 새로운 주체탄생의 모델을 간직한 몇 안 되는 부류라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실러는 형식의 보편성에 훨씬 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게 특징이다. 정치 등이 현실과 분리함으로써 오히려 정치와 현실을 바로 할 수 있다는 실러의 미적 체험론과 현실과 정치에 대한 대안의 방법으로써 아방가르드적인 개척을 요구하는 가타리는 분명 다른 정상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마치 클라인씨의 병과 같다. 밖으로 통하는 안과 안으로 통하는 밖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미가 가진 전염력에 의해서. 마지막 7장 오키나와 강연은 그의 생태학과 전망을 쉽고 간명하게 압축해 놓은 느낌이 든다.
= 차례 = 1. 주체성 생산에 관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