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영원하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시다(딤전 6:15; 계19:16).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그를 바로 알고 그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임의대로 살려는 무지와 교만으로 결국 불행과 저주와 사망을 자처하고 말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저버리는 행위로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전에는 어떤 행복도 승리도 축복도 있을 수 없다. 사사시대를 보라(삿 17:6, 21:25). 하나님은 우리인간을 사랑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어 다시 당신의 통치를 받고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다(요 14:6).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자에게 주신 마지막 기회이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저버리지 말고 영원히 다스리시는 하나님, 대대로 통치하시는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라. 오늘 본문은 이에 대해 바로 말씀해주시고 있다. 이제 당신은 세속에 물들지 말고 무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라. 이 길만이 당신의 생애와 가정에 승리의 축복과 최고의 영광의 비결이라는 사실임을 알라.
▣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자로부터 지배를 받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이 지배 곧,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가시적으로는 가정에서는 가장이, 부모가 통치하고, 사회에서는 사회의 통치권자가 통치하고, 직장에서는 직장의 직급을 가지는 윗사람들이 통치하며, 특수사회에서는 그 규범에 따라 통치를 받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로, 하나님의 통치가 아니면 마귀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통치는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케 하여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한 결과가 주어지지만, 마귀의 통치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목적으로 통치하기에 불행이요 사망이다(요 10:10).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두 통치자의 공통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라는 점이다. 그러나 다른 점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오, 마귀는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생명의 주이시며(행 3:15), 마귀는 세상임금 곧 사망의 왕이라는(요 12:31) 사실이다. 하나님은 사랑이 한이 없으시며 거짓이 없으신 진리의 불변하신 자이시요(딛 1:2,말 3:6), 마귀는 살인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다(요 8:44). 하나님은 영원히 다스리시는 통치자이시요(시 146:10). 마귀는 정죄되어 심판받은 자로서 쫓겨나 이제 통치할 수 없는 자이다(요 12:31, 16:11). 그러나 지금도 통치하고 있으니 그것은 분명히 불법자로서 속는 자들을 다스리며 죄를 짓게 하고 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신앙생활은 영적 생활이다. 가시적인 눈만을 가지고 살았던 믿기 전 생활이 아니다. 가시적인 모든 것들을 통치하시고 다스리는 근본적인 영적생활의 눈을 가지고 생명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라. 전에는 복음의 진리에 무지하여 불법자, 마귀의 통치를 받으며 살았으나, 이제는 진리의 복음으로 거듭난 자로서(약 1:18, 요 1:12,13; 3:5) 확신하였으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라.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진리의 복음을 알지 못했을 때에는 교회생활, 말씀을 순종하는 삶이 힘들어 억압을 받은 줄 알아 교회생활 곧,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떠나 생활했으나, 이제 진리의 복음을 바로 알았으니 진리의 삶에 자유를 누리라. 하나님의 통치를 최고의 축복으로 알고 감사하며 살라. 당신이 나름대로 행복하기 위해 진리의 말씀을 버리며 교회생활에서 벗어나 살려는 무지, 곧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회개하여 버리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다(롬 6:23 상반절). 진리의 복음을 버리면 무지한 자로서, 교만한 자로서 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고 피 흘려 십자가에 죽도록 내어주셨다. 이는 모든 사람을 살리려는 하나님 사랑의 열심 때문이었다(요 3:16, 요일 4:9,10, 롬 5:8). 이 사실을 정말 믿는다면 이제 불법자 마귀의 통치에서 벗어나 당신을(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라.
그래도 이 사실을 믿지 못하여 임의대로 산다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 무지요 교만한 자로서 불행과 저주와 사망을 자처하게 될 것이다. 이는 죄를 짓게 하는 불법자 마귀의 통치를 지금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이 세상에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고 마귀에게 속한 자를 끄집어내어 최고의 축복, 최고의 행복을 주시려 한 것이다. 성경은 이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히 다스리시고 대대로 통치하신 분이시니 그의 통치를 받으며 살라는 말씀을 증거해 주고 있다.
▣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앞에서 언급했거니와 정리해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하나님 전능자로서 영원히 다스리시고 대대로 통치하신 분이시기 때문이요(시 146:10, 계 19:6). 둘째는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모든 자) 사랑하시는 은혜에 대한 감사 때문이요(요일 4:9,10, 롬 5:8, 살전 5:18, 고전 2:12). 셋째는 마귀의 일을 멸하여 사망과 저주에서 최고의 행복, 풍성한 생명의 삶을 누리게 하시는 참 좋으신 통치자이시기 때문이요(요일 3:8, 요 8:32). 넷째는 금세에도 내세에도 하나님의 통치함 받는 일이 최고의 영광이기 때문이다(신 33:29, 계 19:6,7).
사랑하는 성도여, 이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할 이유를 알았으니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살라.
▣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위해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교육은 매우 중요하지만, 성령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그 교육은 단순한 지식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성령으로 가르치셨다(행1:2).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공생애 마지막 주간 마지막 날 잡히시기 전까지 가르치실 때 앞으로 받을 성령에 대해 철저히 가르치셨다(요 14장~16장).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후 성령 받을 것을 명하시고(요 20:22),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셨다(행 1:5). 주님의 명령을 따라 성령 받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과 120명 성도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게 되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통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하였다(엡 5:18).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요 14:17) 주님이 하신 말씀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요 14:26)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알리시며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주님의 것을 가지고 알리시는 분이시다(요 16:13).
성도여, 당신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만이 당신의 생애도, 가정도, 자녀도 보장받는 축복임을 알라.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시고 이끌어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 교회도 성령의 통치를 받는 교회만이 진정한 교회이며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이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삶이다. 천국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요셉은 비록 몸은 애굽의 바로 밑에 있어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다니엘은 포로지에 끌려가 있으면서 느부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왕의 왕국에 몸이 있었으나, 그를 통치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이 명한 신상에게 절하지 않고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했다. 베드로도, 사도 바울도 비록 감옥에 죄수로서 갇혀 있었지만, 그는 감옥 안에서도 주님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주님과, 주님의 제자들과 함께 동행 했지만, 그는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신앙의 공동체 안에 있으면서도 욕심에 의해 지배 곧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통치는 영광이다. 고통과 죽음 속에서도 능히 이기는 능력 있는 스데반 집사의 모습을 보라.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5-60).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통치는 기쁨이다. 힘들고 괴로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통치 속에 살면 기쁘고, 행복하다.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시97:1.개역) 라고 노래하고 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곳에는 축복이 있다. 기쁨이 있다. 바울은 ‘주안에서’라는 말을 수 없이 사용하였다. ‘주안에서’라는 말은 다른 말로 주님의 통치를 받는 다는 말이다.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었기에 감옥이 두렵지 않았다. 그러기에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기뻐하라’고 권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 이제 하나님의 통치 받기 위해 성령으로 충만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행복하게 살았지만, 영원하신 왕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길 때 왕이 없이 살았던 때를 기억하라.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 21:25). 그 결과를 알지 않는가! 우리 주님은 인간의 의지를 초월하지 않으신 분이시다(계 3:21). 당신의 마음을 세속에 물들지 않기 위해 깨어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여 근신하고 깨어 있으라. 하나님의 통치 받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생각으로 무장하라(잠 4:23, 롬 8:6). 당신 앞에는 항상 두 가지가 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생명을 택하라(신 30:19). 이 길만이 살길이요, 승리의 길이요, 진정한 축복의 길이며 최고의 영광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