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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5월 10일 주일
[(백) 부활 제6주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오늘은 부활 제6주일입니다. 초대 교회에서 제자들의 부활 체험은 말씀의 선포로 이어졌습니다. 선포되고 전해진 말씀은 모든 이에게 기쁨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부활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도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선교를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슬픔에 잠긴 이들,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먼저 전할 것을 다짐합시다.
말씀의 초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표징들을 보고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 그들이 성령을 받도록 한다(제1독서). 베드로 사도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고,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8,5-8.14-17
그 무렵 5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6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7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8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 보냈다.
15 베드로와 요한은 내려가서 그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였다.
16 그들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
그들 가운데 아직 아무에게도 성령께서 내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17 그때에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3,15-18
사랑하는 여러분, 15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16 그러나 바른 양심을 가지고 온유하고 공손하게 대답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선한 처신을 비방하는 자들이,
여러분을 중상하는 바로 그 일로 부끄러운 일을 당할 것입니다.
17 하느님의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보다 낫습니다.
18 사실 그리스도께서도 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4,13-16
사랑하는 여러분,
13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도
여러분은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14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영광의 성령 곧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15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살인자나 도둑이나 악한이나 모략꾼으로서
고난을 겪어서는 안 됩니다.
16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겪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 이름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5-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19 이제 조금만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1ㄴ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1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2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4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5 아버지,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제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
이제 다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6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뽑으시어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7 이제 이들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8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을 제가 이들에게 주고,
이들은 또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제가 아버지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참으로 알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9 저는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10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통하여 제가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11 저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지만 이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머무르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성령께서 머무르시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인 팀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진 가문의 남자입니다. 그는 이 능력으로 과거를 바꾸려 하지만 바라지 않는 결과가 함께 생김을 알게 됩니다. 그런 그에게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행복의 비밀을 알려 줍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낸 뒤에, 시간을 되돌려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에 보지 못하였던 삶의 아름다움이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팀은 깨닫습니다. 자기가 바라는 대로 삶을 바꾸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깊게 바라보며 온전히 그 속에 머물 때 행복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한병철 교수는 『시간의 향기』라는 책에서 현대를 ‘시간이 사라진 시대’라고 진단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일을 하고 성과를 내는 것을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에 대한 강박이 삶의 의미를 잃게 하고 시간의 향기를 사라지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안으로 관상의 삶, 곧 머무름의 기술을 제시합니다. 무엇인가를 바꾸거나 행동에 옮겨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 서서 삶을 깊게 바라볼 때 시간의 향기와 의미가 드러납니다.
성령께서 오시어 우리 안에 머무르실 수 있도록 우리에게도 머무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머무름의 시간을 오롯이 가져 보십시오. 머무를 줄 아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오시어 함께하실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머물러 봅시다.(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엄청난 사랑의 기적을 연출하시는 성령님!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젊은 사제 시절, 저희가 운영하던 아동 보육 시설에는 초등학생 꼬마들도 간간이 들어와 살았습니다. 하늘 같은 중고생 형들과 함께 사느라 고생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꼬마들에게 보호 본능이랄까 측은지심이 느껴져 더 각별하게 챙기곤 했습니다.
가끔 연피정이나 장거리 출장이라도 가면, 형들로부터 시달릴 꼬마들을 생각하니 영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은 꼬마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거 있을 때는 그나마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곤 했는데, 이래저래 불안함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안그래도 어린 나이에 부모와 분리된 친구들인데, 이제 겨우 정붙이고 마음 붙이고 살아가고 있는데, 보호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장시간 자리를 비운다니, 아이들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일종의 분리불안증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금방 돌아올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마라며 다독이고 그렇게 떠나곤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당신과의 분리로 인해 걱정이 태산인 제자들과 오늘 우리를 향해 손수 우리의 등을 다독다독 두드리시면서 안심시키십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 14,18)
내 일시적인 부재로 인해 너희는 근심에 휩싸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 걱정을 하지 말거라. 그 근심은 잠시뿐이란다.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란다. 내가 즉시 다시 돌아올 것이란다.
이 얼마나 마음 든든한 주님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곧 돌아온다 해 놓고, 안 돌아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주님께서는 100퍼센트 확실히 돌아오실 것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약속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키셨습니다. 승천하시자마자 약속하신 대로 즉시 당신의 대리자요, 우리를 악으로부터 영원히 지켜줄 보호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께서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 가운데 머무시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총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생명의 수여자이신 성령께서는 우리를 참 삶에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참삶이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이겠지요.
중재자 성령께서는 하느님과 우리 인간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계속하실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께서는 우리가 거짓 논리에 휩싸이지 않고 참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물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고통, 우리의 죄,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나약함을 못 견뎌하시는 분이십니다. 큰 측은지심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우리가 당신께 합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 우리의 상처를 꿰매주십니다.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올무에서 자유롭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잔잔하고 깊은 영적 샘터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가끔 만나는 교우들 가운데, 놀라운 신앙의 소유자들을 뵙습니다. 어찌 그리도 관대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닐 수 있는지, 깜짝 놀랄 지경입니다. 인간의 지성이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사랑의 기적을 연출하십니다, 그 배경에 대체 무엇이 있었을까요? 성령의 굳건한 현존과 활동이 자리 잡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한 우리지만, 보호자 성령께서 늘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고, 우리 인생 여정에 동반하심을 굳게 믿는다면 우리 역시 세상의 두려움을 기꺼이 떨칠 수 있을 것입니다. 적대자들이 아무리 우리를 협박한다 할지라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이 아무리 요동치고 뒤집힌다 할지라도,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 풍파를 견뎌낼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왜 성령을 알아보지 못할까?
전삼용 요셉 신부님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주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요한 14,15-1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홀로 남겨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며, 진리의 영이신 '다른 보호자'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이 거룩한 약속의 끝에 아주 뼈아픈 진단 하나를 덧붙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성령을 보지도, 알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영이 우리 곁에 오셨는데, 왜 똑같은 눈을 달고 사는 세상 사람들은 그 위대한 현존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의 뇌가 수신하고 있는 '주파수'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2007년 1월의 어느 추운 아침, 미국 워싱턴 D.C.의 랑팡 플라자 지하철역 입구에 평범한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한 청년이 바이올린을 꺼내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출근길에 바쁜 사람들은 그를 흔한 거리의 악사쯤으로 여기고 무심코 지나쳤습니다. 45분 동안 그가 연주를 하는 사이, 무려 1,097명의 사람이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악사는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조슈아 벨(Joshua Bell)이었습니다. 그가 들고 연주한 악기는 1713년에 제작된 350만 달러(약 45억 원)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명기였고, 그가 연주한 곡은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답고 난해한 곡으로 평가받는 바흐의 '샤콘느'였습니다. 불과 이틀 전, 보스턴 극장에서 열린 그의 똑같은 연주회는 한 좌석에 10만 원이 넘는 표가 매진될 정도로 대성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하철역에서 45분 동안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발걸음을 멈춘 사람은 단 7명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세계 최고의 거장이 뿜어내는 수십억 원짜리 천상의 선율을 곁에 두고도, 시계를 쳐다보며 종종걸음으로 지하철을 타러 가버렸습니다. (출처: 워싱턴 포스트, 「진주 실험」 2007)
왜 사람들은 그 엄청난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그들의 영혼과 뇌의 주파수가 '돈을 벌러 직장에 지각하지 않고 가야 한다'는 치열한 생존과 욕망의 채널에 완벽하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존 본능이라는 주파수에 고정된 귀에는 바흐의 명곡도 그저 성가신 지하철 소음으로 들릴 뿐입니다. 이것보다 더 치명적인 잘못은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성령님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려는 이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래서 그들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모든 맛이 그렇습니다. 맛을 보아야 맛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은 성령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라고 선언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을 상실한 채, 자기 힘으로 돈과 권력을 쥐고 살아남아야만 하는 '고아의 주파수'로 살아갑니다. 하느님 나라의 유일한 주파수는 '사랑'인데, 그들은 애초에 남을 사랑하려는 마음 자체가 없습니다. 사랑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니,
내 힘의 한계에 부딪힐 일도 없고, 한계에 부딪히지 않으니 성령의 도우심을 청할 이유도 없습니다. 성령의 힘을 체험해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성령이 무엇인지, 어디에 계신지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기심과 탐욕에 갇혀 있는 자에게 성령의 위대한 사랑과 진리의 숨결은 그저 무의미한 소음이나 환상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 8장에 등장하는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는 이 사랑의 플러그를 꽂지 않고 꼼수로 전기를 훔쳐 쓰려는 자의 비참한 최후를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를 하자 그들에게 성령이 내려옵니다. 이것을 본 마술사 시몬은 그 놀라운 권능을 탐내며 사도들에게 돈을 내밉니다. "나에게도 그런 권한을 주어, 내가 안수하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게 해 주십시오." (사도 8,19)
시몬은 세상의 주파수(돈과 권력)를 그대로 유지한 채,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사랑하려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이 성령의 능력만 외장 배터리처럼 사려고 했습니다. 희생과 순종, 이웃 사랑이라는 '플러그' 없이 돈으로 전력을 끌어다 쓰려 한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대가 하느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니, 그대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사도 8,20)라며 무섭게 저주합니다. (출처: 『주석 성경』 사도행전 8장). 성령은 결코 세상의 얄팍한 거래로 수신할 수 있는 에너지가 아닙니다. 자아를 부수고 십자가의 계명, 곧 사랑에 나를 끼워 맞출 때만 접속되는 숭고한 신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가짜 주파수를 끊어내고, 어떻게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수신하여 내 영혼의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그 완벽한 전환 스위치를 오늘 복음 첫머리에 명확하게 제시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바로 '사랑의 계명 안에 머무는 실천'입니다. 이 원리를 현대 공학의 '무정전 전원 장치(UPS)'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UPS는 병원 수술실이나 대형 서버실에 필수적으로 설치되는 장비입니다. 외부의 메인 전력이 갑자기 끊어지는 정전 사태가 발생해도, UPS는 0.1초의 오차도 없이 자체적인 무한 전력을 공급하여 생명 유지 장치나 컴퓨터가 꺼지지 않게 막아줍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 영혼 내부에 장착된 하느님의 무정전 전원 장치입니다. 내 인간적인 인내심과 사랑의 능력이 바닥나서 절망이라는 끔찍한 정전이 닥쳤을 때, 성령은 내 영혼이 타죽지 않도록 무한한 은총의 전력을 공급하십니다.
하지만 여기서 치명적인 물리적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수백억 원짜리 최고급 UPS가 설치되어 있어도, 전자제품의 플러그가 그 장치의 콘센트에 꽂혀 있지 않다면 정전이 일어났을 때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도 정확히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계명을 지켜라"라고 하신 것은 우리를 귀찮게 하려는 구속이 아닙니다.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억울함을 십자가로 봉헌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내 것을 나누어주는 그 '사랑의 실천'은, 내 영혼의 플러그를 성령이라는 무한한 발전기에 물리적으로 꽂아 넣는 유일한 접속 행위입니다.
저는 성령님의 존재를 가장 크게 느끼는 순간이 언제나 ‘성체조배’입니다. 나는 가지이기 때문에 나무에 붙어있으면 그 수액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맺히는 열매를 보면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사제가 아니면 이만큼 성체조배를 할까요? 안 할 것입니다. 저는 성체조배를 통해 강론도 준비해야 하고 그 에너지로 신자들을 대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려 하기 때문에 성체조배를 하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성령님을 느끼는 것입니다.
먼저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그 일을 위해 기도하게 되고 그러면 성령님을 만나게 됩니다. 1973년, 콜카타의 마더 테레사 수녀님과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은 극심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죽어가는 빈민들이 넘쳐났고, 고아원과 병원에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수녀들은 잠잘 시간조차 부족했습니다.
수녀들의 얼굴에서는 서서히 미소가 사라졌고, 육체적 피로와 우울증으로 인해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의 능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도, 내면에 짜증과 한계가 차올라 더 이상 사랑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때 마더 테레사 수녀님은 세상을 경악게 할 파격적인 명령을 내렸습니다. "오늘부터 우리 수녀회의 모든 수녀는, 매일 아침 성체 앞에서 1시간 동안 의무적으로 '거룩한 머무름(Holy Hour)'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주변의 신부님들과 봉사자들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녀님, 지금 밖에서 환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일할 1분 1초가 부족한데, 하루에 1시간을 가만히 앉아 버리다니요!" 하지만 마더 테레사의 결단은 단호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체 앞에 머물며 주님의 사랑을 수혈받지 못하면,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의 능력이 고갈되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열심히 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원천이신 분 곁에 무릎을 꿇고 멈춰 서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매일 아침 성체 앞에 1시간을 조용히 '머무르기' 시작하자, 며칠 뒤 수녀들의 얼굴에 다시 빛이 돌아왔습니다. 1시간의 노동 시간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혼에 성령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공급되자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효율성과 사랑의 깊이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습니다.
놀랍게도 그해부터 사랑의 선교회에 입회하는 성소자의 수는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주님께 철저히 머무를 때만 타인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부어진다는 것을 수녀회의 역사로 증명한 것입니다. (출처: 캐서린 스핑크, 『마더 테레사 전기』)
교부 성 베르나르도 역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이렇게 일갈하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사랑의 불꽃을 피우려 애쓰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저 마른 장작이 되어 타오르는 그리스도의 용광로 안에 던져져 조용히 머무르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불이 당신을 태워 당신 자체가 뜨거운 사랑의 불꽃이 될 것입니다." (출처: 성 베르나르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오늘은 Mother’s Day입니다. 어머니는 6년 전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그토록 사랑하신 아버지와 함께 여전히 저와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두 분의 사랑으로 제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당연히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아버지는 강인한 성격과 냉철한 판단력을 지녔지만, 체질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머리카락이 일찍 하얗게 되었고, 치아가 좋지 않았고, 혈압이 높았습니다. 어머니는 온유한 품성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성격을 지녔지만, 체질은 좋았습니다. 머리카락도 검었고, 치아도 좋았고, 혈압도 정상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성격과 어머니의 체질을 닮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체질은 아버지를 닮아서 머리카락도 일찍 하얗게 되었고, 치아도 좋지 않았고, 혈압도 높았습니다. 성격은 어머니를 닮아서 온유한 편이고,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편입니다. 예전에는 그런 체질과 성격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돌아보면 그런 부모님을 닮아서 감사합니다. 체질은 노력으로 좋게 할 수 있었습니다. 성격은 더 좋은 분들의 도움으로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제자들을 이끌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믿음이 약했던 토마 사도를 나무라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토마 사도에게 손과 옆구리의 못 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토마야! 너는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참으로 복되다.” 그러자 토마는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천천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빵을 나누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분께서 성경 말씀을 설명해 주셨을 때, 우리와 빵을 나누셨을 때, 우리의 마음은 뜨거워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 그리고 몸소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은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길은 고속도로가 아닙니다. 전용도로도 아닙니다. 벗이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함께 가주는 희생의 길입니다. 자갈과 가시밭을 정리하는 개척의 길입니다. 권력의 길이 아닙니다. 명예의 길이 아닙니다. 성공의 길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이 드러나는 길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길입니다. 진리는 남을 구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남을 배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진리는 벗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진리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입니다. 예수님의 진리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넘어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신앙입니다. 생명은 나만을 위한 생명이 아닙니다. 타인의 생명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죄인일지라도, 아픈 사람일지라도, 외로운 사람일지라도,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이방인일지라도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 생명입니다.
오늘은 부활 제6주일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핵심은 ‘성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 협조자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언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른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이제 성령과 함께 시작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그들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 그들 가운데 아직 아무에게도 성령께서 내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때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오늘 제2독서도 이렇게 전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영광의 성령 곧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켜라.” 그 계명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살 수 있도록 가장 소중한 선물,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요구하는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내어주는 삶을 살 것인지입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 먼저 사랑하고, 먼저 내어주며, 성령과 함께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신앙은 어쩌면 단순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신앙은 어쩌면 단순합니다. 내게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나눌 줄 아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 가탈도 (Cataldus)
활동년도 : +685년
신분 : 주교
지역 : 타란토(Taranto)
같은 이름 : 가탈, 가탈두스, 카탈, 카탈도, 카탈두스
아일랜드 먼스터(Munster)에서 출생한 성 카탈두스(또는 가탈도)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인 워터퍼드(Waterford)의 리즈모어(Lismore) 수도자 교육원에서 성 카르타고(Carthago, 5월 14일)의 지도를 받던 학생이었다. 뛰어난 학문으로 큰 명성을 얻은 그는 수도자 교육원에서 교사가 되고 이어서 교장이 되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직책을 사임하고 예루살렘(Jerusalem) 순례 길에 올랐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폭풍을 만나 배가 이탈리아의 타란토에 난파했고, 그곳에서 그의 성덕이 알려져 타란토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는 타란토에서 자신의 여생을 보내며 열렬한 신심과 해박한 지식으로 봉사하였다. 그는 카탈(Cathal)으로도 불린다.
성 다미안 드 베스테르(Damien de Veuster)
신분 : 신부, 선교사
활동지역 : 몰로카이(Molokai)
활동연도 : 1840-1889년
같은이름 : 다미아노, 다미아누스, 다미앵
성 다미안 드 베스테르(원명은 Joseph de Veuster)는 1840년 벨기에의 한 작은 마을에서 성실하고 신앙심 깊은 아버지 프랑스와 드 베스테르와 어머니 카타리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모들처럼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으나 수도원에 들어간 큰형의 영향을 받아 수도원에 들어가기를 희망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깊어 기도와 고행을 실천하면서 성장하였다.
일찍이 영성에 눈을 뜬 그는 고향에서 초등 교육과정을 마치고 발론(Vallon) 지방의 르 콩(Brain le Comt)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공부하던 중,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복음적 권고를 통해 완덕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그는 1859년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 수도회’(The Fathers of the Sacred Hearts of Jesus and Mary, 일명 Picpus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수도회 회칙에 따라 의사로서 시칠리아 섬의 주민들을 헌신적으로 돕다가 4세기 초에 순교한 다미안으로 세례명을 바꾸었다. 수도회 입회 후 벨기에 루뱅과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하였다.
해외선교를 주요 목적으로 삼고 있던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 수도회는 1825년 이해 수차례에 걸쳐 하와이 군도의 샌드위치 섬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었다. 1863년 하와이 선교사로 선발된 큰형 팜필 신부가 병자들을 돌보다 장티푸스에 걸리자 성 다미안은 형을 대신하여 하와이 선교를 자원하였다. 이듬해 하와이로 간 성 다미안은 호놀룰루 근교의 아피마뉴 대신학교에서 약 2개월 간 공부하고, 그 해 5월 호놀룰루 대성전에서 메그레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후 푸노(Puno) 지역에서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한 성 다미안 신부는 1865년에는 코할라(Kohala)로 옮겨 원주민들의 인습과 싸우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성당을 짓고 용암으로 덮인 섬을 돌아다니면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1865년 하와이 군도에 나병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감염된 환자를 격리 수용하는 법이 제정되었는데, 이에 따라 나환자들은 몰로카이(Molokai) 섬에 격리 수용되었다. 1873년 메그레 주교로부터 몰로카이 섬에 수용된 나환자들의 참상을 전해들은 성 다미안 신부는 33세의 나이로 그곳에 건너가 700여 명이 넘는 나환자들의 집을 지어주고, 의사의 도움 없이 나환자들의 고름을 짜 주고 환부를 씻어 주며 붕대를 갈아주고,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밝혀 주었다. 그리고 매일 죽어가는 이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고 무덤을 파고 장례를 치러 주었다. 이렇게 어려움 속에서 나환자들을 위해 희생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자 냉담하던 환자들도 신뢰와 존경심을 가지고 따르게 되었다. 1881년에는 하와이 정부로부터 나환자들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카라카우아’ 훈장을 받았다.
성 다미안 신부는 1885년 자신이 나병에 감염된 것을 알았으나 용기를 잃지 않고 나환자들을 위하여 계속 일하였다. 요양하라는 주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1889년 4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성 다미안 신부의 유해는 1936년 몰로카이 섬에서 벨기에로 옮겨 안장되었다. 성 다미안 신부는 1992년 7월 시복 대상자로 확정되었고, 1995년 6월 4일 벨기에 브뤼셀(Brussel)의 퀘켈베르그 대성전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다. 그리고 2009년 10월 11일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인의 축일은 교회의 관례대로 선종일인 4월 15일에 지냈으나, 이날이 종종 사순시기와 겹치는 관계로 미국 교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5월 10일로 변경하여 기념하고 있다.
성녀 솔란지아 (Solangia)
활동년도 : +880년
신분 : 동정순교자
지역 : 부르주(Bourges)
같은 이름 : 쏠란지아, 제느비에브, 주느비에브
베리(Berry)의 성녀 주느비에브(Genevieve)로도 불리는 성녀 솔란지아는 프랑스 베리 지방의 수호성인이다. 부르주 근방 빌몽(Villemont)에서 태어난 그녀는 포도원을 운영하지만 매우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깊었던 그녀는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기로 결심하고 혼자서 정결서원을 발하였다. 늘 하는 일이라곤 푸른 초원에서 아버지의 양떼를 돌보는 것이었으므로 자연과 이야기하며 기도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녀에게는 동물을 잘 다스리는 능력 외에도 치유의 은사까지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러던 중 그녀의 미모와 성덕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푸아티에(Poitiers)의 백작 아들의 귀에 들어갔다. 그가 말을 타고 산으로 가보니 마침 성녀 솔란지아가 양떼들과 함께 평화롭게 놀고 있었다. 그는 쏜살같이 말을 달려 그녀를 말위에 앉히고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거세게 반항하다가 결국 말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고 말았다. 그러자 백작의 아들은 사냥용 칼을 들고 그녀를 위협하다가 끝까지 저항하자 그만 살해하고 말았다.
성 안토니노 (Antoninus)
활동년도 : 1389-1459년
신분 : 대주교
지역 : 피렌체(Firenze)
같은 이름 : 안또니노, 안또니누스, 안토니누스
성 안토니누스 피에로치(Antoninus Pierozzi, 또는 안토니노)는 1405년에 설교자회에 입회하여 40여 년 동안 이탈리아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전전하며 훌륭한 수도자로 살았다. 그는 대부분의 수도 생활을 수도원장으로 지냈으며 두 차례나 관구장을 역임하였다. 1436년 피렌체에서 그는 코시모 디 메디치(Cosimo di Medici)의 재정 지원으로 산마르코(San Marco)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은 유명한 도미니코회 수사 화가인 복자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2월 18일)가 벽면을 장식하였고,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산실이 되었다.
1446년 성 안토니누스는 피렌체의 대주교로 임명되어 불굴의 정의감과 넘쳐흐르는 사랑으로 직무를 수행하였으며, 지혜와 능력이 뛰어나 사회문제를 해결하도록 자주 초빙되어 활약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요 관심사는 언제나 교구민에 대한 사랑이었으며, 그 자신이 단순한 생활과 모범적인 처세로 큰 명성을 얻었다. 그는 정기적으로 교구를 순회하며 강론하였으며, 그로부터 물적, 영적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였다. 또한 그는 사회와 경제 발전에 대한 문제에도 깊이 관여하였으며, 국가는 공동선에 기여해야 할 의무를 지녔다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1523년 교황 하드리아누스 6세(Hadrianus VI)가 그를 시성하였는데, 교회 개혁에 대한 그의 이상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성 알피오 (Alphius)
활동년도 : +251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렌티니(Lentini)
같은 이름 : 알삐오, 알삐우스, 알피우스
시칠리아(Sicilia) 섬의 오트란토(Otranto) 교구와 렌티니 교구의 수호성인은 성 알피우스(또는 알피오)와 성 필라델푸스(Philadelphus) 그리고 성 키리누스(Cyrinus) 형제 순교자들이다. 시칠리아 출신인 이 세 순교자와 그들의 자매인 베네딕타(Benedicta)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로마(Roma)로 끌려가서 갖은 고문을 받은 후 나폴리(Napoli) 근방의 포추올리(Pozzuoli)에서 몇 사람이 순교하고 이들 형제와 나머지 사람들은 다시 시칠리아로 끌려왔다. 그들의 조리 있는 설명과 투철한 신앙정신으로 말미암아 20명의 군인을 비롯한 수많은 개종자들이 나왔다. 이때 성 알피우스는 22세였는데 혀가 잘리는 등의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21세의 성 필라델푸스는 구워 죽이는 형을 받았고, 19세의 성 키리누스는 기름에 튀기는 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들의 자매인 베네딕타가 어떻게 순교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성 치리노 (Cyrinus)
활동년도 : +251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렌티니(Lentini)
같은 이름 : 치리누스, 키리노, 키리누스
시칠리아(Sicilia) 섬의 오트란토(Otranto) 교구와 렌티니 교구의 수호성인은 성 알피우스(Alphius)와 성 필라델푸스(Philadelphus) 그리고 성 키리누스(또는 치리노) 형제 순교자들이다. 시칠리아 출신인 이 세 순교자와 그들의 자매인 베네딕타(Benedicta)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로마(Roma)로 끌려가서 갖은 고문을 받은 후 나폴리(Napoli) 근방의 포추올리(Pozzuoli)에서 몇 사람이 순교하고 이들 형제와 나머지 사람들은 다시 시칠리아로 끌려왔다. 그들의 조리 있는 설명과 투철한 신앙정신으로 말미암아 20명의 군인을 비롯한 수많은 개종자들이 나왔다. 이때 성 알피우스는 22세였는데 혀가 잘리는 등의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21세의 성 필라델푸스는 구워 죽이는 형을 받았고, 19세의 성 키리누스는 기름에 튀기는 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들의 자매인 베네딕타가 어떻게 순교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성 필라델포 (Philadelphus)
활동년도 : +251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렌티니(Lentini)
같은 이름 : 필라델뽀, 필라델뿌스, 필라델푸스
시칠리아(Sicilia) 섬의 오트란토(Otranto) 교구와 렌티니 교구의 수호성인은 성 알피우스(Alphius)와 성 필라델푸스(또는 필라델포) 그리고 성 키리누스(Cyrinus) 형제 순교자들이다. 시칠리아 출신인 이 세 순교자와 그들의 자매인 베네딕타(Benedicta)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로마(Roma)로 끌려가서 갖은 고문을 받은 후 나폴리(Napoli) 근방의 포추올리(Pozzuoli)에서 몇 사람이 순교하고 이들 형제와 나머지 사람들은 다시 시칠리아로 끌려왔다. 그들의 조리 있는 설명과 투철한 신앙정신으로 말미암아 20명의 군인을 비롯한 수많은 개종자들이 나왔다. 이때 성 알피우스는 22세였는데 혀가 잘리는 등의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21세의 성 필라델푸스는 구워 죽이는 형을 받았고, 19세의 성 키리누스는 기름에 튀기는 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들의 자매인 베네딕타가 어떻게 순교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