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32년 10월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지난달 11일 생을 마감한 법정스님.
‘세속에서의 이름은 박재철’ 이었다고 한다.
법정스님이 입적하신 후 스님과 목포상고(목포상고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도
졸업하신 학교로 그 시절 전남지역에서는 명문고등학교 중 하나로 손꼽힌다)
시절 이래 60년 지기였던 박광순 전남대학교 명예교수가 세상에 내놓은 사진과
출가 전 이야기는 그동안 가려졌던 법정스님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전남 상업초급대학에 다니던 시절 법정스님은 목포에 있는 정혜원에서
효봉스님(판사 스님으로 알려졌던 분)을 만나면서 불교에 귀의했다.
집안을 일으켜야 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애써 공부시켰더니 결국 중이 되려한다며
크게 반대했던 집안 식구들을 뒤로한 채
스님이 되신 이후 살아 생전 내내 속가의 친척들에게 차가우셨다고 한다.
<젊은시절 법정스님.... 이미지 출처 서울신문>
<출가 한 달 전 친구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을 비롯해
대학생 시절 흑산도로 친구들과 함께 여행가서 촬영한 사진..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이미지출처 뉴시스>
살아있는 모든 이들에게 무소유라는 화두를 던지고
우리 곁을 떠난 법정스님께서 입적하신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폐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셨던 스님께서 세상을 떠나시자
우리들은 큰 어른을 떠나보낸 슬픔과 홀로 남겨졌다는 크나큰 외로움으로 연일 눈물을 흘렸다.
그 흔한 목관마저도 마다하신 채 대나무 평상에 누워 한 줌의 재로 세상을 떠나가시는 모습은
하늘까지 울렸는지 법정스님의 다비식 날에는 온종일 궂은비가 내렸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지만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 그리고 우리의 입과 입을 통해서
전해진 슬픔을 아무리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은 듯 했다.
얼마 전에는 한 주간지에서는 법정스님을 보내고 ‘내 인생에서 비우고 싶은 것들’이라는 주제로
욕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살면서 비워야 할 것들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어떤 이는 생각 없이 사서 모은 물건들에 대한 소유욕을 또 어떤 이는 삶을 비참하게 만든 돈에 대한 욕심을
또 다른 이는 엄마와 아이의 망가뜨리는 아이에 대한 조바심을
그리고 마지막 이는 미움과 완벽주의 질투의 마음을 꼽았다.
국내 유명서점의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법정스님의 책 11권이
모두 들 정도로 이미 세상을 떠나신 법정스님에 대한 우리들의 연모는 끝이 없는 듯하다.
절판 논란으로 더욱 열풍이 일었던 법정스님의 저서 ‘무소유’ 1993년 판이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110만 5천 원(1993년 당시 시중가였던 천500원보다 700배 이상 높은 금액이다)에 낙찰되기도 했다.
인터넷 옥션에서는 하루 평균 10여권에 달하는 ‘무소유’ 중고책
(발간된 지 20년이 지난 책은 경매 시작가가 30만 원에 이르기도 한다고)이 경매에 올라온다고 한다.
세상에 말빚을 지고 싶지 않다며 앞으론 책을 출판하지 말라는 스님의 당부에 따라
절판 논란이 이어졌던 법정스님의 저서를 다행히 올해 말까지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법정스님의 정신을 이은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가 출판사와 합의 끝에
올해 말까지는 책을 구입할 수 있게 하겠다고 독자들을 배려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훨씬 전 한참 사진에 빠져있던 나는 매주 출사를 나갔었다.
계절이 바뀌는 모습, 꽃이 피고 지는 모습, 왁자지껄한 한바탕 소음이 담긴 전통시장의 전경 등을 쫓아다니던 시절,
아주 우연히 광양 매화마을에서 법정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매화마을을 끼고 도는 섬진강, 눈꽃보다 더 아름답게 휘날리는 매화꽃잎의 모습에 빠져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는 가운데 내 카메라 프레임 사이로 챙이 큰 밀짚모자를 쓴 스님 두 분께서 등장했다.
모자에 얼굴이 가려져 법정스님을 알아볼 순 없었지만 당당한 풍채와 걸음걸이에는 보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매화마을로 들어서자 지난 96년 미스코리아 진이었던 이은희(한류스타 이병헌의 여동생)씨 일행이 법정스님 일행을
공손하게 맞이하고 난 후 매화마을을 돌며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뒤늦게 법정스님과 이은희씨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말을 통해 나는 챙이 큰 모자를 쓰신 분이 법정스님임을 알게 되었다.
먼발치에서나마 법정스님의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에 나는 일행을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걸어가면 따라 걷고 멈춰서면 따라 멈추는 내가 못내 신경 쓰이셨는지 법정스님은 몇 번을 멈칫 거리시다가
결국 몸을 돌려 나를 보고 합장을 해주셨다.
이제 그만 뒤쫓고 돌아가라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사진을 찍고 싶어 했던 내 맘을 헤아려 자세를 취해주셨던 걸까?
법정스님께서 살아생전 매월 법회를 가졌던 길상사를 찾아가봤다.
나처럼 아련한 기억이라도 남은 이들일까...
고즈넉한 평소의 분위기와는 달리 많은 이들이 길상사를 찾아 절내는 붐볐으며
한쪽에서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길상사 들어서는 길에... 길상사 전경>
<맑고 향기롭게... 법정스님을 추모하는 추모단 안내 글귀가 보인다>
<법정스님을 추모하며 흰 등을 달아두었다...>
<길상사에 들어서면 시원하게 흐르는 약수가 보인다>
<예전에는 요정으로 쓰였다는 길상사는... 곳곳에 스님들이 쓰시는 처소가 있다 >
<길상사 이곳저곳에는 법정스님의 글귀가 담겨있다>
<침묵의 집.. 누구나 들어가 명상할 수 있는 곳>
머뭇머뭇 대며 법정스님의 뒤를 밟던 나는 이제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아이를 키우며 쫓기듯 세상살이에 묻혀 살다 법정스님의 입적소식을 들었다.
나는 오늘 내 오래된 기억으로 법정스님을 추모한다.
첫댓글 좋은글 향기를 느끼면서 노래를 감상해보세요..."얼키고설킨 인연 물같이 바람같이 그리살다 나는가리....
법정스님의 글을 정말 좋아 합니다 올린 글 정말 잘 읽었네요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