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괴산 바둑나들이’가
열린 홍범식 고택(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4호)은 1730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조선후기 중부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 생가. 그의 아버지가 홍범식이다.
1909년 금산군수가 된 홍범식(1871~1910)이 이듬해 일제가 한국을 강점
하여 나라가 망하자 통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 순국하였다.

홍명희 작가 생가에는 '홍범식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훗날에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말라”는
유서를 후손에게 남겼다.
1919년 3월 19일 이곳에서 홍범식의 아들 홍명희는 충청북도 최초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근대역사 소설의 이정표가 된 ⟪임꺽정林巨正⟫ 의 작가 벽초碧初 홍명희
(洪命憙,1888~1968)의 고택으로도 널리 알려진 문학사적 유산이다.
벽초 홍명희는 일제강점기 조선일보에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대하역사
소설 ‘임꺽정’을 연재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28년부터 무려 10년에 걸쳐 집필한 ‘임꺽정’ 민중의 삶을 탁월하게
재현한 역사소설로서 민족문학사에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홍명희 선생은 괴산 3.1만세 운동과 항일운동 단체인 신간회 창립을
주도하다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독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을 했지만 광복 후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분개하여 월북을 하였고 부수상을 지냈다.
1968년 북한에서 서거하여 평양 근교에 묻혔다고 한다.
1919년 감옥에서 나온 벽초 선생은 괴산 생가를 매각하고 제월리로
이사를 하게 된다.
제월리 집 부근에 벽초 선생이 즐겨 찾던 제월대가 있다.

벽초 홍명희 선생이 즐겨 찾던 '제월대'
제월대 아래로 흐르는 괴강 물줄기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사색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제월대 절벽 위에는 선조 때 충청도 관찰사 유근(1594~1627)이 세운 정자
가 있는데 고산 9경의 하나인 ‘고산정’이다.

선조때 충청도 감찰사 유근이 풍광에 반해 지은 '고산정'
유근은 이곳의 풍광을 사랑하여 만송정과 고산정사를 짓고 광해군 때,
낙향하여 말년을 보냈다.

현판은 이원의 글씨다.

정자 안에는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선조(1606년)
때 쓴 ‘湖山勝集호산승집’의 편액이 걸려 있다.

숙종 때, 고산정사는 불타 없어지고 만송정만
남았는데 이를 ‘고산정’이라 불렀다.
벽초 홍명희 선생은, 이 고산정에서 펼쳐진 풍광
에 낚싯대를 드리우며 소설 ‘임꺽정’을 구상 했을
것이다.
지금 그곳엔 선생의 뜻을 기리는 ‘벽초 홍명희 문학비’
가 세워져 있어 괴산이 한국의 대작가홍명희 선생의
탄생지이자 생장지였음을 일깨워준다.

홍명희 얼굴 캐리커처가 각인된 문학비에는 임꺽정을 집필할 때 다짐
했던 글귀가 음각되어 있다.
“‘임꺽정’만은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 벌
빌려 입지 않고 순 조선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

역시 대작가다운 발상 아닌가.
첫댓글 괴산에 살고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십니다
발로 뛰어 써서 그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