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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승리
요한일서 5:1-5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1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는 표현은 너무나 귀한 표현입니다. 헬라어로 “겐나오”라고 하는데 요한일서에서는 6번에 걸쳐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장 29절을 보니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의를 행하는 자입니다.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 2:29).
3장 9절을 보니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9).
4장 7절을 보니 “하나님께로 난 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그리고 오늘 우리의 본문 5장 1절에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요일 5:1).
또한 5장 4절을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며 세상을 이깁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또한 5장 18절을 보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여기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고 할 때 피동 완료 분사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계속 과거 언젠가부터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거듭난 신자들을 말합니다. 반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는 과거 피동 분사형으로서 과거에 태어나서 영원히 존재하는 분을 말합니다. 그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세 가지 특성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아니함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바르게 믿으며,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누굽니까? 바로 거듭난 생명을 가진 참 신자들입니다.
다시오늘본문으로돌아와서 1절을보겠습니다. 사도요한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고 말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그런데 뒷부분에서 “낳으신 이”와 “그에게서 난 자”가 각각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어의 도움을 보면 너무나 분명합니다.
믿는 신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고 말하며 (게겐네타이)라고 하여 과거 피동 완료 시제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낳으신 이”는 (톤 겐네산타)라고 하여 능동 과거 분사 시제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계속 낳으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난 자”는 아버지로부터 난 자라는 뜻으로서 (톤 게겐네메논)이라고 하여 피동 완료 분사 시제입니다. 즉, 계속 아버지로부터 나오시는 어떤 한 분입니다. 이는 이미 과거에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 성령으로 태어나는 주의 자녀들이 계속 더하여지면서 예수님과 하나인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나으시는 모든 참 신자들과 연합된 맏아들입니다.
그러므로 1절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거듭난 신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며, 또한 자신을 낳아주신 아버지를 사랑하고, 이에 아버지께서 계속 나으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그를 믿는 다른 거듭난 참된 신자들을 사랑하며 그 거듭난 신자들 역시 그리스도와 하나 된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신자의 ‘믿음’에 대해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 있는데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라고 할 때 “믿는 자”는 (토 피스튜온)이라고 하여 현재 진행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믿는 상태가 진행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하나님께로 난 자들”은 과거 피동 완료로서 과거에 태어나서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로부터 과거에 태어나 존재하는 자들은 계속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뜻이 됩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으며 구원 얻은 거듭난 생명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항상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도 믿음으로 얻고, 거듭난 이후의 정상적인 신자의 삶 역시 계속 그리스도를 믿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거듭나는지에 대하여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거듭남은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우리를 살리심으로 시작합니다. 야고보서 1장 18절에서 야고보 사도가 말합니다.
“그(하나님)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
또한 에베소서 2장 1절도 거듭남에 관하여 말하길, “그(하나님)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합니다. 이는 거듭나게 하여 살리시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주권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살리신다는 뜻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데 사용하는 수단이 바로 진리의 말씀인 복음인 것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3-25).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은 복된 것이며 이에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다시 본문 2-3절을 보면, 거듭난 생명의 특징을 한가지 구체적으로 말씀하는데, 그것은 거듭났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영적인 가족의 식구로 출생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인데 그의 계명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자들은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같은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일 하나님의 자녀들이 서로 미워하면 이는 하나님의 가장 큰 고통이요, 만일 계속 누군가가 미움에 거한다면 그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자녀들 간에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고 풍성한 공동체가 되며 한없는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에 따라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형제를 사랑함에 대하여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형제를 사랑함이란 무엇인가? 요한은 이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며 의로운 사랑인 것을 분명히 합니다. 형제를 사랑한다 하면서 죄에 거하거나 불의에 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형제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것이지, 다른 목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요한일서 1장 3절에서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2절과 3절은 주의 계명을 지키는 사랑을 말합니다. 신학적 표현으로는 의로운 사랑입니다. 계명과 율법과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2-3).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장에서도,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랑을 말합니다(고전 13:6). 이때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랑은 주의 계명을 지키는 사랑입니다. 즉, 십계명을 지키는 사랑입니다. 물론 십계명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그 사랑은 10가지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지킴은 거듭난 생명이 있는 자에게는 무거운 계명이 아니요 즐거운 계명입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생명의 성격과 십계명은 매우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거듭난 신자가 되기 전에는 주의 계명은 가장 무거운 짐이며 순종할 수 없는 의무입니다. 그 이유는 아담의 타락 이후로 자연인은 죄를 좋아하기를 한없이, 끝없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늘 원수가 되며 하나님의 율법에 굴복할 수도 없고 굴복하지도 않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7-8).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들은 하나님께 이렇게 대들며 도전합니다.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바라지 아니하나이다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욥 21:14-15).
그들은 주의 음성을 가장 싫어합니다. 도리어 그들은 어둠의 소리를 듣기를 바랍니다.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사 30:9).
특히 그들에게 복음의 소리는 가장 자존심 상하는 소식이며 거리끼는 것이며 가장 미련하게 들리는 소식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며 왕으로 모시지 않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다”(고전 1:22-23).
특히 십계명 중에 제1계명에서 제4계명까지는 하나님을 향한 계명인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명이 없으니 그들은 이 네 가지의 계명을 ‘전혀’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난 마음은 주의 계명과 율법이 선하다고 인정하며 그것을 지키고자 합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사람은 거듭난 이후에도 아담에게 속한 옛사람이 남아 있기 때문에 거듭난 새사람과의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1-24)
따라서 거듭난 신자는 주의 계명을 지킬 수 있지만, 쉬지 않고 옛사람을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아야 계명과 율법에 부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7:25; 롬 8:1-4)
이렇게 주의 성령을 따라 행하게 될 때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전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진심으로 죄와 싸우려는 진지함이 먼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히 12:4-5).
오직 이렇게 히브리서 사도의 권면처럼 우리가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우기를 진심으로 진지하게 결단해야, 그 싸움은 내가 이길 수 없다는 비참한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면서 더욱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을 배우고 그 후 성령으로 주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되고 그 후 믿음 안에서 계속 새사람을 입고 계명을 지켜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성경은 우리에게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할 동기를 부여합니다.
첫째,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의 뜻에 따름이 피조물로서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죄는 창조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고는 피조물이 평안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피조물로서 창조주를 섬기고 영화롭게 해야 할 마땅한 의무가 있습니다. 창조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은 그분의 뜻이 담긴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 영혼은 한량없는 기쁨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둘째, 우리가 부패한 상태에서 영원한 멸망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을 때, 그 악하고 어리석은 상태에 있던 우리를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생명과 피로 값주고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더욱이 아들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고, 나아가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의 영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3:16-20)
셋째,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가 받아야 할 율법의 저주를 내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만든 우리의 죄와 죽기까지 싸워야 할 뿐만 아니라 한없는 감사의 마음으로부터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주의 계명을 지켜야 마땅합니다.
사실 주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된 신자의 상태는 말로 다 표현 못할 특권을 받은 상태입니다. 즉,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오직 새생명으로 거듭나야 주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것이기에 신자만의 특권입니다. 그리고 주의 계명을 지킬 때 평강과 기쁨과 만족이 보장되어 있고 영원한 보상까지 약속되어 있으니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의 참된 자랑이며, 또한 주를 향한 사랑의 증거를 나타낸 것이기에 한없는 만족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질 때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기에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주께 기쁨이 되고 내게는 영원한 영광이 되는 주의 계명을 지키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해 힘쓰는 것은 얼마든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언급한 것처럼, 주와 연합되지 않고는 죄를 넉넉히 이기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늘 깨어 있는 가운데 그리스도 예수님을 친밀하게 모시며 믿음으로 주를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성령의 역사로 우리는 계속 주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는 삶을 살아갈 것이며, 그러면서 우리의 속사람은 강건하여질 것이고, 우리의 성품은 계속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추가적으로, 우리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우리가 행한 대로 영원한 상급과 면류관으로 갚아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며 더욱 주의 계명을 지키는 일에 신중해야 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4-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 5:2-4).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주의 성령으로 거듭난 참 신자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남은 삶을 철저하게 주의 계명을 지키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구체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4절과 5절은 거듭난 생명의 승리를 확실하게 선포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 5:4-5).
바로 이 구절 때문에 우리는 우리 안의 영적 전쟁에서 내 속사람이 내 옛사람을 이길 것을 확실히 압니다.
사실 4-5절은 3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4-5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승리의 자리에 서는 것”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세상’이라고 알려줍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리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사도 요한은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도록 새롭게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옛사람과의 갈등 속에서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새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선택이 우리 거듭난 신자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 선택이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교통의 상태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거듭난 자들이 세상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사실 4-5절은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말한 승리의 비결과 다를 바 없는 진리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 말을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라고 말합니다. 즉,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는 반드시 세상을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의 이 말씀은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과 같은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으로 거듭난 주의 자녀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데 가장 큰 방해는 세상입니다.
이에 바울은 세상을 이기는 비결로서 옛사람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 5:24-26)
그리고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우리는 믿음으로 거듭난 생명을 입고 주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갈 6:15).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역사로 인해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자들마다 이 세상에서 새로운 영적 전쟁에 임하게 됩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
이때 우리가 싸워야 하는 전쟁 대상은 세상과 내 안의 육체와 그리고 공중 권세 잡은 마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전쟁 대상을 다 말하지 않고 세상만 언급합니다. 그 이유는 세상만 이기면 내 안의 육체와 마귀를 이기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때 세상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다 포함합니다.
[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 2:15-17)
사랑하는 여러분!
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들의 생명을 주시고 자기 자녀로 삼으실 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사람이 죄와 부패로 인해 잃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 형상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입니다.
[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1-24)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으로 우리 마음이 새롭게 되면 하나님의 형상을 계속 회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7-18)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보혈 흘리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며 나아가 그분의 죽으심은 나의 죄를 위한 하나님의 율법의 공의를 만족시켜주기 위한 대속 제물임을 믿고, 부활 승천하신 나사렛 예수, 영원히 살아계신 인자 같으신 예수님을 의지하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
그리고 성령이 충만한 자의 삶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질서’와 ‘평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와 평강은 무질서와 변태와 더러움과 혼란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그곳이 가정이든 직장이든 교회든 어디서든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의지하고 사랑함으로 성령이 충만한 자에게 가장 뚜렷한 또 다른 현상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고상함에 사로잡혀 인간의 의와 세상에 속한 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즉, 거듭난 이후 영적으로 성장하는 신자의 특징은 세상과 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약 4:4-5).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참된 신자가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더욱 그리스도만을 사랑하며 그분만 의지하고 바라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영적으로 성장한 신자의 특징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자들 중에는 신학적으로 뛰어난 자들도 있습니다. 성경에 박식한 자들도 있습니다. 교회 행사를 잘 치르는 사람도 있고, 경영을 잘 하여 교회 성장을 일구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결 같이 천박하고 못난, 어쩌면 거짓 신자일 수 있는 교인들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아직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동역자였던 데마 같은 사람이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명예를 사랑하고 권력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인기를 사랑하고 텃세를 사랑하는 자들! 그들은 세상의 자랑을 위해 신앙을 취하며, 세상 염려 때문에 주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돈도 있고 건강하고 권력도 있어서 소위 세상적으로 아쉬울 것이 없으면 그들에게 신앙은 하나의 액세서리와 같은 형식이라는 것이 곧바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항상 소돔과 고모라에서 세상이 아쉬워서 뒤를 돌아보아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처를 생각해야 합니다.
[
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지 말며 세상에 미련을 갖지 말라는 뜻입니다)
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눅 17:30-33)
교회 내에서도 여러 일을 잘하지만 세상을 사랑하는 모습이 보이는 뚜렷한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런 지체들에게는 세월이 흘러도 주의 형상을 닮아가는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독수리 날 듯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계속 성장하는 신자의 특징은 주의 명령을 지키는 것을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잘라내는 사람입니다. 텔레비전이 주의 명령을 지키는 것을 방해하면 텔레비전을 갖다 버리고 인터넷 라인도 끊어 버립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주를 사랑하는 참 신앙에 계속 방해가 되면 그런 만남을 차단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심지어 오른 팔이요 오른 눈이라 할지라도 주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도리어 주님으로 멀어지게 하거나 죄를 짓게 한다면 잘라 내 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미 생명을 다 바쳐 그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때문이고 또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평강과 기쁨,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칭찬을 가장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깁니다.” 이는 세상을 이길 생명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신자가 항상 세상을 저절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가 세상을 이기려면 ‘믿음’을 행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얻은 자들입니다. 즉, 죄의 종노릇하는 신분과 상태에서 벗어난 자유인들입니다. 하지만 자유인이 되었어도 다시 스스로 죄를 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고 경고하였고, 로마서에서는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4-16)고 경고하였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그리스도를 택하여 의지함이요, 그러할 때 생수의 강이 계속 흐르면서 우리는 세상에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그리스도의 무한한 보혈의 공로에서 끝없이 샘솟는 성령의 샘물, 생명의 샘물은 우리의 영혼을 언제나 저 영원한 하늘로 향하게 하는데 엄청난 역사를 나타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만이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세상을 승리하는 믿음인지 확인하기 바랍니다. 내 믿음이 참으로 주께서 원하시는 믿음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동기’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동기’가 무엇인가? 그 동기는 ‘세상에 물들지 않으려는 것’이어야 하며,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려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만일 그 동기가 세상을 추구하고 세상을 사랑하기 위한 ‘동기’라면 그런 믿음은 결코 세상을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갈 1:4-5).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세상)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롬 12:1-2).
그러므로 죄가 마음 속에 기웃거릴 때, 또는 세상의 여러 유혹들이 내 눈과 귀와 마음을 흔들려고 할 때 주의 말씀을 기억하며 외치기 바랍니다.
“죄야, 마귀야! 떠나라. 나의 주께서 주의 생명과 보혈로 나를 씻으시고 구원하셨는데 내가 어찌 주를 버리고 죄를 택하리요. 죄야! 내 마음에서 떠날지라. 나는 너를 보지도 않으며 먹지도 않으며 만지지도 않으며 마시지도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이유는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임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주로 모시지 않는 사색적인 믿음, 그저 머리 속에 있는 지적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약 2:19-20).
오,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참된 신자들이여! 쉬지 말고 계속 말씀과 기도와 예배 가운데 그리스도를 의지하기 바랍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주의 뜻을 헤아려 순종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내 욕심과 생각을 부인하고, 성경의 인도하심을 철저하게 따르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기도와 말씀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즉, 기도와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를 붙드는 믿음만이 살아 역사하는, 세상을 승리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러한 참된 믿음을 가진 자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나그네의 모습입니다.
[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 1:14-19)
그러므로 날마다 세상을 대하여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죽기 바랍니다.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벧후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그러므로 신자된 우리의 하루 하루의 삶이란, 내적으로는 옛사람과 새사람, 죄성과 생명의 싸움입니다. 지금 우리는 가끔 옛사람과 죄성에 져서 비참하게 쓰러지는 때가 있을지라도 반드시 우리의 거듭난 생명이 결국 옛사람과 죄성을 이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는 외적으로는 사탄과의 싸움을 치러야 합니다. 이는 불의와의 싸움이요 거짓과의 싸움입니다. 미움과의 싸움입니다. 더러움과의 싸움입니다. 무질서와 방종과의 싸움입니다. 그러나 사랑, 의, 진리는 반드시 미움, 불의, 거짓을 이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는 마치 빛이 어두움을 이기는 원리와 동일한 것입니다.
지금은 두 존재가 함께 공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공존은 주님이 오실 때 영원히 끝날 것입니다. 어두움, 거짓, 미움, 불의는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원수 마귀는 영원히 불타는 불못에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제거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 안에 영으로 계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어둠과 마귀와 죄와 세상을 영원히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원한 승리가 오늘 날에도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데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그리스도의 승리를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신자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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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좌의 능력과 축복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도 멋진 날 되시길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