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과 심장
예수님의 심정과 심장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그날부터 하나님의 소망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이 거할 수 있는 성전으로 완성한 사람, 하나님과 일치되는 심정과 심장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하나님의 실체 성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한 역사적인 섭리노정을 대신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성전인 동시에, 4천년 동안 섭리했던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한 분으로서 실체적인 산 가슴을 갖고 나타나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줄 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었고, 하나님의 사정을 느낄 줄 아는 예수님의 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뛰는 심장은 하늘을 동맥삼고 인간들을 정맥삼아 하늘이 동하면 예수님도 동하고 인간이 정하면 예수님도 정하는 일체의 관계를 맺어야 했고, 그것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는 예수 그리스도의 내적 심정을 아는 사람, 하나님의 몸을 대신한 예수님의 외적 심장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년의 준비기간에 남이 모르는 쓸쓸함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써 창조의 이념을 이루어 영광을 누리려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피조만물은 주인을 잃어버린 입장이 되었으므로 이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은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아시는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예수님도 쓸쓸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30년 준비기간을 거치신 예수님이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여 택해 세운 이스라엘 민족 앞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뜻을 받들고 나타나 새로운 복음을 전하게 될 때, 그 가슴은 말할 수 없는 사명감에 벅찼을 것입니다. 30년 동안의 슬픈 생애를 청산하고 하늘의 서러움과 하늘의 슬픔을 가로막아 잃어버린 에덴의 주인공을 다시 회복시켜야 할 사명을 짊어진 예수님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이 뛰는 심장을 갖고 나타나셨습니다.
택함받은 선민 앞에 나타나 하나님 대신 새로운 말씀을 전하게 될 때, 뜻을 따라나오던 이스라엘, 섭리의 뜻을 대신하여 부름받은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이념의 전체를 대신한 분으로, 자기들의 소망의 실체로서, 자기들의 영광 자체로 모셔드릴 수 있는 환경을 갖추지 않고 오히려 그들은 벅찬 가슴을 갖고 나타난 예수님 앞에 반기를 들고 나타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대신하여 세웠던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써 서러움을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선민이 예수님 앞에 뜻을 대하여 나타나지 못하게 될 때,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고 서러워하던 심정을 다시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불신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은 무한히 슬프셨을 것입니다. 분개심도 컸을 것입니다. 하늘 앞에 호소하고 저주하며 그들을 치라고 명령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심정을 다 떨쳐버리고 뛰는 가슴을, 뛰는 심장을 억눌러 가면서 옛날 에덴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한 이후에 하나님이 참던 그 심정을 생각하시며 서러운 심정을 품었던 것입니다. 반대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대하여 소망을 두시던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속죄의 제단을 쌓아 놓아야 할 세례 요한이나 아브라함 이후 40여대 동안 선민의 혈족으로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인도되어 온 요셉 가정도 사라지고, 뜻을 받들어 자기를 잉태하고, 낳은 후에 30년동안 길러오던 마리아와 형제들과 종족들도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태복음 8장 20절 )”고 하신 예수님의 심정, 하늘의 뜻을 붙들고 외로운 신세로써 싸워나가야 했던 예수님의 뛰는 심장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뛰는 심장 속에 하나님의 수고가 컸던 것을 알면 알수록 예수님의 안타까움과 분개심은 컸을 것이고, 택한 이스라엘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크면 클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은 찢어지는 듯한 원한에 사무쳤을 것입니다. (3-299, 58.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