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문학] 겨울호 신인상 당선작 심사평
김정곤론
인간과 비인간인 겨울 숲의 네트워크가 구축하는 생태계의 확장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김정곤의 <겨울 숲길> 외 1편을 당선작으로 선한다. 이 수필은 문학을 위대하게 하는 철학성으로 뒷받침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유물론처럼 물질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객체 지향 존재론과 같은 신유물론처럼 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신유물론은 21세기 세계관의 일대 변혁을 일으키고 있는 철학이론이다. 수동적인 죽은 물질이라는 옛 유물론의 물질관을 대체해 능동적인 산 물질이라는 새로운 물질관으로 우주와 인간을 해석하는 것이 신유물론이다. 인간과 세상의 관계를 새롭게 고찰하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로부터 탈피하도록 돕는다. 사소한 물건과 생명들, 자연 간 복잡다단한 관계 맺기에 의하여 비로소 존재하는 인간의 정체성을 다시 되돌아봄으로써 오만한 인간의 이성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생태계는 서로 조화를 이루지도 정복하지도 않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공존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수필은 이 지점을 지향하고 있다.
이 수필의 쾌미는 들뢰즈 이후의 현대철학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서 맛볼 수 있는데, 이를테면 ‘걷는 이의 마음이 길 위의 소리결을 반음 올려놓음으로써 겨울 길 위의 삭풍은 화음을 갖게 된다.’식의 사유가 이 수필의 품격과 수준을 드높인다는 것이다. 김정곤의 말을 빌리면, ‘한 송이 꽃은 우연히 가지 위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온 그루에 모인 정이 필연적으로 터져서 유기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뷔르노 라투르의 행위소-연결망이론에 따르면 생명체고 비생명체고 전부 하나의 행위소다. 동물도 식물도 환경도 기술도 문자도 전부 다른 행위소에 영향을 미친다. 복잡계의 세상 속 모든 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역동적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이 이 수필의 핵심이다.
‘차가운 칼바람에 떨고 있는 숲은 결코 단절된 곳이 아니다. 겨울 숲에서 만나는 회색빛 길은 침묵 속에서 삶과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망은 크고 단단하다. 연결망을 따라 강렬한 생명의 에너지가 흐른다.’라고 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글쓴이의 신유물론적 사고의 일단을 만날 수 있다. 겨울 숲길은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작용, 즉 구조접속을 통해 하나의 의미체가 된다. 김정곤 씨는 라투르의 행위소-연결망이론을 통해, ‘겨울 숲에서 만나는 회색빛 길이 침묵 속에서 삶과 연결되어 있다’고 단언한다. 인간과 비인간인 겨울 숲의 네트워크가 구축하는 생태계의 확장을 눈여겨 보는 것이 이 수필을 감상하는 포인트다.
이런 행위소-연결망이론으로 김정곤과 겨울 숲의 만남, 그 역동적 상호관계를 파악하면, 숲이라는 행위소가 김정곤에게 미친 영향, 즉 목표의 변혁을 분석할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수필감상의 새로운 관점을 확보할 수가 있다. ‘차가운 겨울의 바람은 육체적으로는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우리의 사유는 사물의 구별을 허물고 사물들을 나의 욕망 속이 아니라 자연의 품안으로 더 깊이 끌어안게 한다.’는 결말부 진술은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지 않고 동등한 객체로 본다는 것으로 김정곤의 신유물론적, 객체 지향 존재론적 사고를 나타낸다. 구조접속은 인식이고 삶이다. 이 수필에서 함과 앎과 그리고 삶이 하나로 일치가 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필쓰기는 기술적인 문제보다도 인식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 수필은 인식의 중요성을 잘 나타내고 있어 매우 철학적이다.
겨울 숲길
김정곤
겨울의 찬 공기를 가르는 바람은 칼바람이다. 바람 앞에 존재들의 광활한 바다는 꽁꽁 얼어붙었다. 바위, 흙, 강물은 말할 것도 없고 나무의 잎순과 꽃순도 수피 속에 깊숙이 숨죽이고 있다. 동물들은 겨울잠에 빠져들거나 덤불 속에서 웅크린 채 바람소리에 귀를 세운다. 대지도 얼굴색을 바꾸었다. 더 이상 부드러운 흙은 없다. 순한 길도 없다. 발밑은 딱딱하고 거칠다. 길을 걷는 이의 하얀 입김은 허공에 힘없이 사라진다.
이들에게 유일한 위안은 온기다. 한낮 삭풍 속에서 어렴풋이 감지되는 따스함이다. 어떠한 불이 겨울 낮 햇볕의 따스함에 필적할 수 있는가? 온기는 태양에서 직접 오며 여름처럼 땅에서 발산되지 않는다. 눈이 덮힌 골짜기를 걷거나 바람맞이 언덕 위에서 등 뒤로 온기를 느낄 때 우리는 옆에 따라오는 태양을 찬미하게 된다.
겨울 숲속 길의 흰색 지면에는 원시시대의 단순함과 순수함이 있다. 가벼워지고 야위어진 산과 외로운 골짜기는 조용하고 명상할 가치가 있다. 바람결과 물결은 봄의 유연함, 여름의 풍성함, 가을의 너그러움이 아니다. 그것들이 내는 소리는 피아노의 검은 건반 소리처럼 반음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인간의 발자국 소리가 그 속에 녹아들면 변하기 시작한다. 걷는 이의 마음이 길 위의 소리결을 반음 올려놓는 것이다. 간혹 산새 몇 마리가 혀 짧은 소리로 나목 가지 위에서 지저귄다. 이리하여 겨울 길 위의 삭풍은 화음을 갖게 된다.
겨울 숲길은 '나'를 향해 가는 길이다. 땅의 길이 아니라 하늘의 길이다. 벌거벗은 낙엽송의 줄기와 이리저리 얽힌 가지들은 인생의 상형문자다. 숲길을 걸으면 그 문자를 해독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나목이 자신의 잎을 벗어 버리듯 잔뜩 움켜쥔 손을 조금씩 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리하여 이것저것 쥐고 있던 것들을 삭풍 속으로 날려버린다. '움켜짐'의 집착에서 벗어난 두 손은 자유를 얻기 시작한다. 두 손이 움켜진 자유는 새롭고 야생적인 시각을 준다. 상식과 관행으로 만든 허식으로 부터 자유로움을 느낀다. 말없는 자연의 절제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지각한다. 드디어 익숙한 삶의 공간을 넘어선 풍경 속의 일부가 된다.
차가운 칼바람에 떨고 있는 숲은 결코 단절된 곳이 아니다. 겨울 숲에서 만나는 회색빛 길은 침묵 속에서 삶과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망은 크고 단단하다. 연결망을 따라 강렬한 생명의 에너지가 흐른다. 차가움과 사나움이 극치를 이루는 숲길 위에서 에너지의 연결고리는 결코 흐트러지거나 단절되지 않고 역치의 힘으로 버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최소한의 힘 속에는 초심의 겸손과 열정과 성실함이 들어있다. 교만과 탐욕과 거짓의 욕망이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뜨거움이 강렬한 차가운 바람 속에서 흩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아름답고 신비한 고독으로 가득 찬 겨울 숲속에서 흐르는 에너지의 연결고리는 절망과 비탄에 빠져 우울한 영혼에게 조차 생기를 불어넣는 힘이 있다.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 숲에서는 때때로 혼란스러운 삶의 욕구를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 힘도 얻게 된다. 칠흙 같은 바다에서 배는 등대 불빛을 의지해서 그 곳을 향해 운항한다. 그러나 배가 향하는 곳은 등대가 아니다. 그 뒤쪽 어느 곳에 있을 항구다. 배가 편안하게 쉴 항구다. 산길을 따라 힘들게 오르는 자는 정상을 향해 오르지만 최종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다. 정상 어디엔가 있을 정신적 은신처다. 그곳에서 고단한 심신을 쉴 것이다. 평안을 얻을 것이다. 거친 광야에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회색의 겨울 숲길을 걷는다면 적어도 행위의 지향점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
겨울 숲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숲길을 걷는 자에게는 언제든지 실체를 볼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차가운 겨울의 바람은 육체적으로는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우리의 사유는 사물의 구별을 허물고 사물들을 나의 욕망 속이 아니라 자연의 품안으로 더 깊이 끌어안게 한다. 겨울 숲에서 돌아올 때 낡은 외피를 한 꺼풀 벗어버린다. 양파의 바깥 껍질이 벗겨지듯 낡은 자아가 벗겨진다. 내부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새순을 느낀다. 엄동설한의 칼바람 아래에서 느끼는 햇빛의 온기를 느끼듯 숨어있는 새순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