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證言) - [45] 문평래 (文平來) - 뜻길의 50년 생애 22. 하늘이 지켜준 우리 가정 - 2
9 당시는 되도록 같은 지역 사람끼리는 축복을 피하여 왔기 때문에 “아버님, 그 사람은 같은 지구 안에서 함께 생활해 온 사람입니다.”라는 말씀을 드렸다. 10 그러나 참아버님께서는 “괜찮다. 너에게 좋은 짝이다.”라며 흐뭇해하는 모습이셨다. 그래서 “아버님,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올리고 내려왔다.
11 곧이어 여자들이 올라가 참부모님이 정해 놓은 남자에 대하여 대답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참부모님께서 최종 확답을 받으시는 절차였다. 참아버님께서 나의 사진을 내놓으며 “너 이 남자 어떻게 생각해? 좋은 신랑감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성격이 좀 괴팍한 데가 있기는 하지만 너에게 잘 맞는 남자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아버님이 결정해 주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12 당시 오계자씨는 그 어떤 남자일지라도 아버님의 결정에 틀림없이 감사해 하며 따랐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공의의 자리에서 참부모님의 축복으로 영원한 부부가 되었다. 나와 아기 엄마는 혈액형이 A형으로 같지만 생각이나 의식은 판이하게 달랐다.
13 나는 경제적인 면에서 수치에 예민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집착하지 않는 편이다. 미래의 생활 대비책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열심히 뜻을 위해 살다가 순교하는 것이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집에서 절대 누워 죽지 않는다.”라는 것을 좌우명으로 하고 살았다. 14 그러나 아기 엄마는 수리에 철저할 뿐만 아니라 알뜰하고 성실하다. 특히 저축 정신은 강하다. 아무리 어렵게 살더라도 저축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가족의 의식주 문제로부터 아이들 교육문제 그리고 나의 활동비 등 모든 뒷바라지를 아내가 해주었다. 그렇다고 물질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15 아내는 축복 전 바쁜 공적 생활 가운데서도 틈틈이 성화지에 개제된 참아버님의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대학노트에 정성껏 기록하여 다섯 권의 말씀 노트를 만들었다. 약혼 후 내가 “왜 하필이면 다섯 권을 썼느냐?”라고 물었더니, “축복받고 아이들을 낳으면 한 권씩 나눠주려고 준비한 것”이라고 하였다.
16 아이들 엄마의 예정대로 우리는 2남 3녀 5남매를 낳았다. 아내는 원리 강사였던 나보다도 참부모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보물처럼 가정에 보관하는 하나님의 딸이다. 지금도 집에서 말씀 선집 전권을 가장 열심히 훈독하는 사람은 아이들 엄마다. 하루 평균 3~4시간은 항상 훈독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