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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비즘(Snobbism)
속물근성 혹은 지적 허영을 가리키는 말.
19세기에 등장한 단어로, 원래는 일반인이 귀족을 동경하며 그들의 복장과 행동거지를 흉내내는 것을 뜻했다. 물질적, 지적인 면과 상관없이 고상한 척 하는 행동 자체를 지적하는 말이다.
과거에는 분수에 맞지 않게 명품으로 치장하는 등 '있는 척'도 스노비즘이라 했고 여기서 '속물근성'이란 번역어가 생겨났다.
대한민국 인터넷상에서는 지적 허세를 부리는 눈꼴사나운 태도를 가리킨다. 소위 많이들 알고있는 비속어로 좆문가가 있다. 관련된 순우리말로는 '안다니'가 있는데, 무엇이든 잘 아는 척 뻐기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흔히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보니 이 개념도 번역하기 쉽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대중적이면서도 저속하지 않은 표현으로 번역하기 어려운 거지 이미 앞에 적절한 단어가 두 개나 있다
알랭 드 보통이 쓴 ≪ 불안 ≫ 한국어판에서는 '속물'이라고 번역했다. 그밖에도 자신의 전공 지식으로도 잘난 척을 하려는 경우, 그리고 도덕, 윤리적인 우월감을 자랑하려는 도덕적, 윤리적 스노비즘도 존재한다.
다만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스노브'의 정의는 이 문서의 내용과는 좀 다르다. 한자어로는 현학자라고도 한다.
구체적 의미와 용법
스노비즘은 정보의 우위와 가르치려는 태도를 중심으로 하는데, 정보의 우위라는 것이 대개 인터넷이나 매스미디어에 의한 일시적인 우위이다 보니 '가르치려는 태도' 위주로 부각되어 좆문가라는 단어와 혼용되기도 한다.
주로 겉핥기식 지식에 현란한 어휘를 조합하여 지적 곡예를 펼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실상 웹 중독자, 정치충, 니트족(NEET)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무위키나 대형 입시 사이트, 인터넷 포털 사이트 기사 댓글에 가면 이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문외한이 보기에는 전문가와 구별하기가 힘들다는 점도 특징.
단, 인터넷 상에서는 스노비즘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렇게 굳어졌지만, 원래 '스놉/스노브'라는 단어는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에 간단히 정의내리기 힘들다. 스노비즘, 또는 '스노브'의 의미가 좆문가의 의미와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좆문가는 어떤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다. 이때 그 동기는 보통 허영심이 될 것이다. 그러나 스노비즘이라는 용어의 경우 동기가 허영심이라는 데에 보다 주목한 용어이고 해당 분야에 있어 무능하다는 의미는 없거나 있더라도 좆문가에 비해 훨씬 약하다. 예술가들이 스노비즘을 비판할 때 그것이 단순히 무능하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일까?
혹자는 스노비즘이 반드시 무능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면 왜 문제가 되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스노비즘의 문제는 상업주의의 문제와 유사하다. 학문이나 예술을 함에 있어 돈벌이만을 지나치게 추구한다면 정작 그것들의 내재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데에는 소홀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노비즘은 설사 그가 유능하다고 할지라도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한 나머지 그의 지식들의 내재적인 가치를 소홀히 여기게 될 위험이 있다.
삶의 태도라는 측면에서 스노비즘은 미학 용어 키치와 맥이 닿아있는 부분이 있다. 논문 검색 사이트 등에서 검색하면 이러한 의미에 관한 글만 쭉 나온다. 관심이 있다면 찾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스노비즘의 행동 및 구별 팁
일반적인 예시
상대가 어떤 것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지만, 듣는이 입장에서는 그게 '설명'인지 '주관'인지 구분지어야 할 때가 있다. 만약에 '주관' 뉘앙스가 짙게 다가온다면 "~부분에서는 '왜?'"와 같이 질문 형식의 발화를 취해보자. 이 때, 그 자리에서 관련 근거나 출처를 정확히 말하지 못하거나 (카톡일 경우 자료를 찾느라) 시간이 지체되면 거의 확정. 아니면 처음부터 뻔뻔하게 "몰라.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있어."와 같은 대답을 취하면 스노비즘으로 간주해볼 수 있다. 단, 이는 진지한 내용의 대화일 때만 속한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배려해주지 않는 경우
부연 설명도 없이 심화적인 용어를 구사해가며 대화를 밀고나가는 경우. 어려운 용어나 잘 쓰이지 않는 용어임을 자기가 자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동을 취한다는 건 누가봐도 지적허영. 스노비즘이 아닌 사람은 보통 고급 용어(영어) 사용을 자제하거나 순화된 표현을 쓰며, 굳이 써야 하는 상황일 때는 그 용어를 친절히 설명해주는 경우가 많다. 특정 정치인이 생소한 사자성어나 영어를 써서 검색창에 오르내리는 상황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도 관심을 끌기 위한 지적허영에 포함된다. 레밍
분명히 누가 봐도 일반인이 모를 '전문적인 지식'임이 확실한데, "이런 것도 몰라?", "상식 아니야?"라며 상대방을 내리까는 태도도 속한다. 여기에 응수할 때 "너도 알기 전엔 몰랐잖아?"라고 하면 된다. 이건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컨퍼런스에서 대학원생이 연구방법론에 대해 잘 몰라서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일 때 선배가 "이런 것도 몰라? 상식 아니야?" 하고 말한다고 그 선배가 스노브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반대로, 일반인을 상대로는 해당인물의 기분을 나쁘게 하기 싫으면 아무리 모르더라도 면박주지 않는 게 예의다.
어떠한 문제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만 할 뿐, 해결책이나 대안은 정작 제시하지 않는 경우(혹은 못 하는 경우). 단, 이는 대상이 토론 참여자일 경우에만 국한된다. 그 범주를 전체로 엮는다면 그저 네가 한번 만들어봐라식의 오류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부적인 예시
국내 칼럼에서는 와인을 대표적인 예로 든다. 와인 잔을 흔들거리며 어떤 것은 60년산, 어떤 것은 80년산이라며 알아맞히는 행동에서 흔히 이 행동임을 의심해본다고 한다. 실제로 동유럽 쪽 포도주 전문가들도 이를 딱 맞히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는데, 일반인이라면 더 이상의 말이 필요한가? 영화 네이키드 웨폰에서도 관련 대사가 나온다. 커피나 맥주도 비슷한 사례로 꼽힌다. 공인된 커피 전문가나 맥주 관련 마니아가 아닌 이상 일반인 입장에서는 허영으로 보일 때가 많다. 커피나 맥주 맛이 제품이나 생산 방식에 따라 다르다고 평할 때 전문가는 근거가 있지만 스노브는 '아몰랑 그냥 다 달라.'라고 한다.
클래식 곡명을 모른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저질 음악이나 듣는다고 모욕하는 것. 물론, 교과서에 필수적으로 나오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대표곡을 모를 경우에는 정규 교육 여부를 의심받을 수 있겠지만, 클래식 음악 채널에만 나오는 곡을 모른다는 이유로 저런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클래식은 워낙 분야가 방대해서 음악 전공자나 클래식 애호가라도 모르는 곡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열성적인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라,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특정 곡만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즉 자기가 좋아하는 곡을 몰랐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진성 클래식 애호가와는 오히려 거리가 있다.
또한 평소 대중음악을 듣는다고 해서 클래식을 아예 모른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곡 이름만 모를 뿐, 그 사람이 모르는 다른 클래식 곡명은 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트락을 듣는 사람들은 해당 뮤지션에게 영향을 준 클래식 음악가는 알 수도 있다. 특히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는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아트락 마니아가 아닐지라도 왕년에 라디오 많이 들어 본 아재들은 알 가능성이 높다. 재즈 마니아의 경우도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1Q84>에 야나체크의 작품 <신포니에타>가 언급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이러한 곡은 국내 클래식 음악 채널에서도 자주 안 나온다. 따라서 누군가가 그런 수법을 시전한다면 당신은 야나체크가 어떤 음악가인지 아냐?라고 반격하자.
스노비즘의 발생원인
지식의 차이
개인이 보유한, 또는 접근 가능한 지식의 종류나 깊이 등에 개인차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데 특정 정보에 대한 번역/통역이 빈약할 때 스노비즘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외국어로 구성된 정보를 제대로 번역/통역하지 않으면 그 정보에 대해 접근하기 힘들어지게 된다. 스노비즘은 이를 이용해 약간의 정보를 얻은 뒤 이를 부풀려서 자신이 해당 정보에 능통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매우 과격한 주장이지만, 번역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은 점을 악용해서 정식 학계에도 일부 학자들이 소수의 원서만 읽은 뒤 해당 학문의 능통한 전문가인양 행세한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한다.
잡지 프리미어 98년 4월호에 한 영화 '스노브'가 이러한 현상을 언급하면서 얼떨결에 본인이 '스노브'라는 것을 인증해버린 내용이 담겨 있다. 한번 읽어보자.
"이젠 영화에 있어서는 전문가나 매니아가 없어진 것 같지 않소? 왜, 예전에는 누가 영화에 대한 정보를 빨리 얻는가에 따라 그런 층이 존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정보 공유 시대가 되었잖우. 인터넷에 들어가면 지금 촬영중인 세계 영화가 한눈에 쫙 들어오지, 게다가 이리저리 얽어서 부대정보까지 주지--이젠 누구나 영화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소 그려, 특히나 매니아라고 자처하던 층에서는 이런 현상에 당혹감마저 느끼는 것 같소, 참."
결국 개나 소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는 바람에 내가 잘난 척을 못한다고 투정부리는 뭐 그런 내용이다.
전문가 입장에서는 일반인들이 자기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고, 스노브에게 자기 일거리를 빼앗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일반인들이 스노브와 전문가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학문 분야일수록 전문가들은 지식을 널리 공유하며 스노브든 일반인이든 뭐든 간에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좋다는 태도를 보인다. 해당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이 많아져야 판이 커지고, 판이 커져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스노브가 전문가보다 돈을 더 많이 벌기도 하는 특정 분야에서는 전문가들은 특정 인물 이야기만 나오면 지식 소매상이니 장사꾼이니 하고 욕을 한다. 개나 소나 학문을 팔아먹어 장사를 하는 말세라면서 짜증을 낸다.
정신승리
자의식과잉적 심리를 가진 경우가 많으나, 종종 자아존중감이 상당히 바닥을 치기에 그것을 보상받기 위해 남들을 깔아보는 경우도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지속되는 경제 불황에서 고개를 드는 넷 우익 사이에서 발견되는 스노비즘을 예로 들 수 있다. 넷 우익의 구성원을 보면 2ch에 거의 하루 대부분을 투자하는 인터넷 중독자, 프리터, 백수 등 일반적인 사람들이 '실패자'로 생각할 사람들이 제법 많은 수를 차지하는데,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에 염증과 환멸을 느끼고 재일을 일본의 부정부패, 당면한 사회문제의 흑막이라 주장하며 이에 동조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다수를 '너희는 재일의 음모도 모르는 멍청이들' 식으로 비하하는 것이다. 니들이 제 3제국이냐 사실 일본 2ch 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디씨의 역갤러들이 딱 전형적인, 자존감은 시궁창 바닥이고 사회에 억하심정은 많은데 실제 현실에선 분풀이 할 대상이 없으니 국까적인 방향으로 지엽적인 정보만 일반인들 보기엔 기분나쁜 아스퍼거 처럼 파대서 인터넷에 싸질러놓고 자신들끼리 '깨어 있는 사람'이라 자위질하는 적절한 해당 사례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일련의 과정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즉 '내 자존감의 회복을 위해 재일을 공격해야지!'하며 인식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정보적 약자 항목 참조. 자신의 현실은 백안시하고 교묘하게 '애국'으로 포장한다. 한국으로 치면, 종북세력이 대한민국에 몇만 이상씩 주요 기관에 침투해서 북한을 이롭게하는 행동을 하고(하려고하고)있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모 집단 이라거나 이런 주장을 함으로써 사회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자신들이 재일의 위협에 대항할 수 있는 깨어있고 영향력있는 시민으로 자신의 인식 속에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정신승리라 할 수 있겠다.
그 밖의 원인
스노비즘에 빠진 사람들이 난립하는 이유는 학문에 정진하는 것보다 전문가처럼 보이게 노력하는데 드는 수고와 비용이 훨씬 싸게 먹히고, 잘 통하기 때문이며, 사람들로부터의 관심을 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전에는 어떤 분야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직접 현장에 뛰어 들어야 하거나, 최소한 도서관에서 관련 도서를 찾아 보거나 신문, 잡지 등을 일일히 뒤적이는 수고를 해가며 겨우 얻어내야 했던 지식들이, 이제는 클릭 한번, 검색 한번이면 쉽게 알수 있게된 측면도 있다. 따라서 지식에 접근하는 비용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즉 해당 분야가 대중화될수록) 스노비즘은 사라져간다. 일례로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기 전의 한국은 스노비즘 천국이었다. 그 당시에는 애니메이션 스노비즘도 있었다.
스노비즘은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선상에서 누군가는 '깊은 지식은 미덕이지만 얕은 지식은 생존전략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에는 주로 자서전, 자기계발서 같은 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엮어 팔거나 강연에 나서거나 해서 금전적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문외한의 눈에도 확 차이나는 특정 학문분야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거의 없다. 하지만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문외한의 눈에 별 차이나지 않는 어느 학문분야의 경우 자기계발서 작가가 학문의 전문가 행세를 하고 다니고 대학 교수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