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목상 신앙인이 되지 말라!(계3:1-6)
갈등
1. 요한계시록 내러티브 일곱 번째 시간입니다. 계시록-묵시는 박해 시대에 쓰여진 문학입니다. 문학이라고 해서 소설이나 허구가 아니고, 긴박한 실제 상황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입니다. 서론에 이어 2-3장에, 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편지가 나옵니다. 천상에 계신 예수님께서 일곱 교회에 요한을 통해서 편지를 보내셨어요. 일곱 교회는 요한 당시의 교회들만 아니라, 시대를 넘어서 각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는 시금석이 됩니다.
예수님이 언제 보시든지, 어느 시대든지 각 교회는 일곱 교회 가운데 한 교회의 모습을 띱니다. 예수님이 각 교회를 보시며 칭찬하시기도 하고, 책망하시기도 하십니다. 칭찬과 책망을 겸해서 하시기도 합니다. 오늘 다섯 번째 이어지는 사데 교회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봅니다. 사데는 두아디라에서 남동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사데 교회는 일곱 번째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칭찬은 없고, 책망만 받았습니다. 주님이 정확히 보고 말씀하셨으니 그들의 모습이 어땠는지 짐작이 갑니다.
2. 사데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1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주님은 다른 여섯 교회의 모습을 보셨듯이 이 교회도 아셨어요. 내가 네 행위를 안다고 첫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사데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셨다고 자기소개를 하셨습니다. 주님이 사데 교회를 향해서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3. 천상에서 예수님은 사데 교회를 보시며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아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각 교회를 사랑의 마음으로 보시며 말씀하세요. 참된 사랑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잘 하고 있다고 하지 않아요. 그들을 향해서 칭찬하고 높여준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저주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 성도들의 영혼이 죽은 것을 아셨어요. 그들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상은 죽은 자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을 오늘 말로 하면 너희는 명목상 신앙인이라고 합니다. 실제는 신앙인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서 우리가 충격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사데 교회도 그렇습니다. 본인들의 영혼은 이미 죽었는데도, 우리는 믿는 자이다. 우리의 믿음은 살아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어요. 형식과 모양은 그리스도인이었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한 이들입니다.(명목상 신앙인)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판단하고 말하면 실수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예수님이 친히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사데 교회 성도들의 신앙은 분명히 빗나갔습니다.
4. 예수님은 사데 교회를 책망만 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살 길을 말씀해주셨습니다. 2절,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주님은 사데 교회의 믿음이 죽었다고 선언하시고, 그들을 저주하지 않으셨어요.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을 보면, 고대 종교에서는 사람들의 실수를 신들이 확인한 후에는 거침없이 하이킥을 합니다. 저주를 퍼붓고 그대로 당합니다.(시지프스 신화가 대표적)
예수님은 이렇게 저급한 신들과는 차원이 다르세요. 주님은 매우 고차원적인 모습을 나타내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만이 아니에요. 교회를 교회 되게 하시는 데에도 그렇습니다. 주님은 결코 억지로 교회가 회개하도록 하지 않으셨어요. 그들 스스로 깨닫고 돌이키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인격이 세상 어떤 신들과 비교되지 않는 성숙한 모습입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가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자기의 실상을 파악하고 바로 잡으라고 권하셨어요. 주님은 구체적으로 사데 교회가 어떻게 그들이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실마리
5. 사데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함께 칭찬은 하나도 받지 못하고 책망만 받았습니다. 두 교회가 모두 심각한 상황에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시고 인자하신 분인데, 칭찬 없이 책망만 하신 것은 그들 스스로 자기 모습을 속히 깨닫고 개선하라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를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일곱 영(성령)과 일곱 별(교회)를 가지신 이라고 표현하셨어요. 주님이 성령과 교회가 주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주관하십니다. 교회를 살리기도 하시고(부흥), 촛대를 옮기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 교회에서 떠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교회를 떠나시면 그 교회는 오래가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사데 교회가 지금 모습 그대로-죽은 신앙-있으면 주님께서 그들에게 더 이상 기회를 주시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데 교회는 당시 비상 상황이었어요. 주님은 그들이 비상상황임을 선언하시며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 예수님은 사데 교회가 다시 살 수 있는(부흥)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기회는 사데 교회만 아니라 어느 시대 모든 교회에게 주십니다. 먼저, 사데 교회는 하나님 앞에 행위가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친히 말씀해주셨어요. 여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파생되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예수를 주(메시아, 퀴리오스, 구주)로 시인하는 입술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고, 예수를 주로 믿은 이들은 이후 주님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여기서 살아 있는 믿음과 죽은 믿음이 갈라집니다. 예수님이 주인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행위가 온전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구주로는 영접했지만, 주님이 자기 삶의 주인이기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행위가 온전하지 못해요. 주님과 상관없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성경과 신앙은 복잡하지 않아요. 매우 단순합니다. 이 단순한 것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합니다.
7. 예수님은 사데 교회가 다시 살 수 있는 길을 분명하게 전해주셨습니다. 3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들의 믿음이 제대로 살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로 말씀해주셨어요.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도 그랬고, 언제 어느 때이든지 모든 교회가 동일합니다. 주님은 회개를 어떻게 하는지도 말씀해주셨어요. 사데 교회가 그동안 복음을 받고 들은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면 되었습니다.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문제는 복음을 받고 들은 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몰라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시작됩니다. 사데 교회의 믿음이 죽은 것도 여기서부터 출발했어요. 주님은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만,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도둑같이-아무도 모르게 오십니다.(재림도) 주님의 말씀이 귀에 들린 순간 회개하는 자가 소망이 있습니다. 다윗이 이 본을 잘 보여주었어요. 다윗의 이 모습을 보시고,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사데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주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복음 제시
8. 복음은 듣고 입술로만 시인한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믿음은 자라고 성숙해야 합니다. 성숙한 믿음은 4절, 그 옷을 더럽히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데 교회는 몇 명은 옷을 더럽히지 않았지만, 대부분 옷을 더럽혔습니다. 옷을 더럽힌 것 중의 하나가 성적인 죄에서 떠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마태복음5-7장) 결론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성적인 죄에서 떠납니다. 사데교회는 그렇지 못했어요. 오늘 한국교회도 이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교회 직분을 막론하고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복음을 빙자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잘못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지만, 구원받은 자는 다시 죄를 범하지 말고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5절,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주님은 사데 교회에서 죄에서 떠나라, 죄를 이기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셨습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기대
9. 오늘 메시지를 들으며, 행여나 행위 구원을 설교하냐고 말하고 묻는 이가 없기를 바랍니다. 설교나 글을 한 문장만 보고 판단하면 곤란해요. 말이나 글은 말하는 사람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사데 교회를 향해서 말씀하시는 것처럼요. 복음은 결코 행위 구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행위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죄나 악에 대해서 민감합니다. 죄나 악과 타협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복음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주여 주여 말로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첫째는 명목상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실제는 신앙인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새겨 듣고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었으니. 이제 기도합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