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영양'으로 가는 행로는,
원래는 안동에서 북쪽인 '와룡면' 방향인 933번 지방도를 타고 '안동호'를 지나 빙 돌아 '임동면'으로 해서 가려고 했었다.
그 이유는, 내가 몇 년 전에 '걸어서' 했던 '되는 대로 여행'을 안동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임하호'를 지나 '진보면'으로 가는 행로를 했기 때문에, 반복은 피하고 새로운 행로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행로를 따라가다 보면 너무 거리가 늘어나, 하룻동안에 안동 부근의 험한 산악지역을(나는 사실 일부러라도 이 산악지역을 가고 싶긴 했는데) 지나 영양에 닿을 경우, 어쩌면 하루 종일 달리고도 어두워진 다음에나 허겁지겁 도착할 수밖에 없는 거리일 수도 있을 터라, 덜컥 겁이 났다.
게다가 더 큰 요인으로는 목적지인 '영양'에는 찜질방이 없기 때문에(인터넷 검색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늦은 시각에 도착할 경우 잠자리 문제 등 여러가지 불안요소가 나를 힘들게 할 것이기에,
마음에 두었던 코스를 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34번 국도를 탈 수밖에 없었는데,
갓길도 없는 2차선 국도를 달려야 하는 행로라 여간 위험한 게 아니었다.
더구나 주변에 높은 산과 호수가 많아선지(안동호, 임하호) 아침엔 안개가 짙어,
그 위험은 가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코스로 우회할 수도 없는 주변 여건이다 보니, 이 날은 출발부터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안동 도심을 빠져나오면서 그 위험은 현실화가 되었다.
그래서 지난 자전거 출타에서 돌아온 뒤 마련했던 '붉은 깜빡이 등'을, 개나리 봇짐 뒤에 묶어서 설치한 뒤(아래. 자전거 자체에 설치하면 보이지가 않아서),
갓길도 없는 국도를 (차가 달리지 않을 때를 골라 달리다 섰다를 반복해가며)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 위험한 길은 결국 임하호 중간의 한 다리를 건너 '임동면'으로 꺾어진 곳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데(너무 험한 길이어서 땀으로 등이 흥건할 정도였다.),
다시는 그런 길로 가지 않으리라! 맹서에 맹서를 했을 정도로 험한(위험한) 코스였을 뿐만 아니라 길기까지 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접어든 '임동면' '입암면' 코스는, 그야말로 '오지'였다.
차가 덜 다니는 건 좋았지만,
아직도 이런 산골이 있나? 할 정도로 시골(산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러면서도 사과 과수원밖에 없는 곳 같아 보였다.
그렇게 한 고개를 넘어 한 마을에 접어드니, 그 앞에 턱! 하니 사람을 질리게 하는 급경사의 또 한 고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주변엔 사과 과수원이 널려 있었는데도, 사과 하나 못 먹고 지나쳐야만 했으며, 정말 커다란 고개 하나를 통째로 넘어야 했다.
길고 긴 내리막을 거쳐 입암 면사무소를 만날 때까지는 정말 깊은 산골로 이어졌고,
거기서 영양에 닿는 길은 다소 평지로 이어졌는데(그러면서 오늘도 두어 차례 길을 잃어 헤매기도 했다. 아래),
내가 '가을 들판'을 보기 위해 이번 출타를 했을 수도 있었는데, 이 근방은 들판은 거의 보이지 않는 그저 첩첩산중일 뿐이었다.
쉬지도 먹지도 못한 상태로 힘들게 결국 오후 세 시 경에 '영양'에 도착을 했는데,
(임압 면사무소에서 한 사람에게 영양까지 얼마나 더 가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차로는 15분 걸린다면서, "자전거로 가면 20분은 걸릴 걸요?" 했던 거리가, 거의 두 시간 반이 걸려서야)
잠자리를 찾는 게 너무 힘들었다.
모텔이 몇 군데 있긴 했는데, 두 곳은 가격을 물어보기도 전에,
"오늘은 방이 없는데요." 하는 식으로, 내 불안감은 가중되고도 있었는데,
그 중 제일 허름한(?) 곳에 가서 물으니,
하룻밤에 4만 원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금 흥정(에누리)을 하려고 했는데(난 흥정할 줄을 모르는 사람인데,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청소하는 여자가 외국인으로 도무지 먹혀들어가지가 않아,
처음엔 그냥 영양을 떠날 생각까지를 했었다.
그러니까 그 상황에서,
여기(영양)서 버스를 타고 큰 도시로 나가(포항이거나 대구거나 아니면 안동?)게 되면, 이걸로 이번 '자전거 출타'가 끝나는 꼴이었다.
그런데 그건 너무 아까웠다.
언제부턴가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이 '영양' 지방에서 동해안으로 넘어가는 길을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내 여행의 특성 상 찜질방이 없는 곳이다 보니 항상 취침문제로 용기를 못내다 결국 이렇게나마 왔는데,
또 여기서 관둬? 하는 생각과 함께, 정말 그러기는 싫었다.
기왕에 아주 힘들게 여까지 온 김에, 무리를 해서라도 하룻밤 모텔 신세를 지자! 하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일단 카드로 결재를 하면, 지금 당장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까......
돈이 좋기는 했다.
맨 찜질방만 돌아다니다, 하룻밤 모텔에서 자니... 더없이 편하고 자유롭고 좋았다.(원래는 이런 식으로 다니고 싶은데......)
그렇게 영양에서 편하게 하룻밤을 잤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모텔에서 나오니, 영양은 작은 도시여서 그런지 정말 먹을 거리를 살 만한 마땅한 곳도 없어 그냥 떠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역시 안개낀 아침길을 달리고 달려,
이 지역 또한 낙후된 곳이라 그만큼 때도 덜 묻고 경치도 아름다웠는데,
또 그만큼 산세가 험했기 때문에 오르막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를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힘들게 달리기만 하러 떠나온 것도 아닌데...... 하면서,
중간에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동영상까지 찍어두었다.)
그러고도 오르막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나는 어젯밤 영양에서 잤던 게 그만 한 가치가 있었음을 실감하고도 있었다.
그냥 여행을 끝냈다면, 이런 풍광을 직접 겪지도 보지도 못했을 테니까......
힘든 고바위길이긴 했지만, 나에겐 처음 와보는 곳에 대한 호기심과 만족감이 더 컸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나는 이 안내문(아래)을 발견하는데......
아, 그렇구나! 하고 스스로 고개까지 끄덕였던 건,
내가 언제부턴가(아주 옛날) 이곳을 한 번 넘어보고 싶었던 게 바로 이 문열의 소설을 읽은 뒤 생겨났던 감정이었다는 걸, 오랜 세월 잊고 있었던 기억에서 끄집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가 바로 이 고개였다니!
옛날엔 그 누구라도 걸어서밖에 넘을 수 없었을 고개였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나마(길이 좁다 보니 확장공사도 한창이었는데) 자전거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도 와 볼 수 있었던 것인데,
옛날이라면(그 소설가가 소설을 쓸 때, 아니 그가 어렸을 때라면) 얼마나 오지였을까? 하면서,
다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었다.
잘 왔구나. 꼭 한 번은 와보고 싶었던 길인데, 소설에서 묘사됐던 그 기분을 낼 수는 없지만(내가 대학시절에 읽었던 소설이라), 그래도 이렇게나마 와 본 게 참 잘한 일이구나...... 하고 아주 만족해 하고도 있었다.
그러니 이까짓 힘듦 쯤이야 훌훌 털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런 만족감으로 그 고개를 다 오르고 있었는데......
뭔가 (얼굴 쪽이)허전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생각하다가,
어? 하고 깜짝 놀랐던 건,
내 입 안에 '임시 틀니' 공간이 휑하니 비어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 아까, 계곡에서 잠시 쉴 때(동영상),
동영상을 찍은 뒤(밧데리가 닳기 때문에, 동영상을 찍으면서는 그러지 못했는데) 호주머니에 있던 댓 개의 대추를 그 자리에서 먹었는데,
틀니를 끼고 먹으면 불편하기 때문에(그 사이에 음식물 찌거기 등이 걸려서) 임시 틀니를 벗어 거기 바위 위에 올려놓고는,
그걸 챙기지 않고 그냥 떠나왔던 것이다.
앞이 까마득했다.
그 계곡에 돌아가기만 하면 그 임시 틀니는 그대로 있을 터라, 잃어버릴 염려는 없을 것이었다.
근데, 그 뒤로 내가 고개를 올라온 게 얼만데...... 나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만약 '디카'를 놓고 왔다면 다시 돌아가야겠지만, '틀니'는 그냥 포기하자!였다.
임플란트를 11월 초에 해준다고 했으니, 한 20일 간은 '이빨 빠진 도장구(?)'로 지내야 할 것이지만......
아까 오는 중간에, 거기 산골도 아주 깊은 산골의 한 마을에 들렀는데,
길이 끊기는 것 같아 길을 묻고 싶어도 사람이 없어서 도로 나오려다가, 한 주민(내 또래)이 뭔가 망을 들고 나타나기에 길을 물었는데,
떠나오려다 (그 분이)그 마을 입구에 열려있던 대추나무 아래에 그 망을 깔 거라기에, 조금 도와줬더니,
"대추 좀 따가세예!" 하기에,
몇 개를 따서 호주머니에 넣었었는데,
"더 따서 가방에 넣어가세예." 했는데도,
"이거면 됐습니다." 하고 따왔던 대추를 그 계곡에 앉아 먹었는데,
그러느라 빼 놓았던 틀니.
참내! 내가 늙은 나이에 그 '창수령'을 넘었더니, 노망이 든 걸까, '정표'라도 남기려 했던 것일까? 몸의 일부일 수도 있는 '틀니'를 빠트리고 오다니...... 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