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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5일(맥추감사주일)
신명기 16:9~12
감사는 믿음의 첫 열매입니다
하늘사랑교회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설득적 대지설교 형식
김규태 목사
*설교 주제문: 참된 감사는 받은 복을 구체적으로 세어보고,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며, 이웃과 함께 기쁨을 나눌 때 완성된다."
*설교 목적문: 성도들이 지난 반년의 은혜를 기억해 내고, 다가올 하반기를 믿음으로 결단하며, 주변의 연약한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데 있다.
어떤 낚시꾼이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낚시꾼은 오른손에 낚싯대를 들고 왼손에는 25센티미터짜리 자를 들고 있었습니다. 낚시꾼은 고기를 잡으면 자를 들고 물고기의 길이를 재곤 했습니다. 그리고 물고기가 25센티미터보다 크면 미련 없이 버리고 그보다 작으면 그릇에 담았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사람이 너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왜 큰 물고기를 버리고 작은 물고기는 담습니까?”
그러자 낚시꾼은 대답했습니다.
“우리 집에 있는 프라이팬은 지름이 25센티미터입니다. 그 프라이팬보다 더 큰 것은 구워 먹을 수가 없어서요.”
그는 자신이 가진 프라이팬을 기준으로 모든 생각을 고정한 것입니다.
-출처: 김병태, 「평생 은혜 절대 감사」(브니엘, 2020); 「생명의 삶 플러스」(두란노, 2026년 4월호), 265쪽에서 재인용.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기준으로 감사를 실천하십니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감사의 기준을 내 현실과 형편에 맞추어 놓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기준으로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는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먼저 감사를 배우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신명기(Deuteronomy)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압 평지에 이르렀을 때, 모세가 출애굽 2세대들을 향해서 했던 마지막 고별 설교입니다. ‘신명기(申命記)’라는 이름을 한자로 살펴보면, ‘거듭 신(申)’ 자를 쓰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거듭해서 기록한 책’이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눈앞의 요단강을 바라보며, 지난 광야 40년 동안 불순종으로 무너졌던 부모 세대의 역사를 회고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다음 세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만이 살길임을 거듭 선포하고 있습니다.
과연 모세의 설교를 들었던 출애굽 2세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그들은 광야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10가지 재앙도 직접 경험하지 못했고,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 죽어간 그들 부모 세대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 새로운 땅 가나안을 밟아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처한 삶의 정황은 아직 광야였지만, 앞으로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가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맥추절을 지키며 장차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실 은혜에 감사할 때,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지난 6개월 동안 우리 삶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며 감사하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하지만 지난 6개월을 돌아볼 때, 우리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우리에게 늘 기쁘고 풍족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 우리에게 고난이 있었고,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맥추감사주일을 맞았어도 여전히 감사의 제목을 찾기가 쉽지 않은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참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감사의 비밀 세 가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의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헤아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10절에서, 모세가 과연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칠칠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칠칠절이 무엇을 뜻합니까? 이스라엘의 주요 절기들은 그들의 농경문화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추수 활동은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데, 그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추수가 바로 이 봄철에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 추수는 유대의 종교력으로 1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으로는 3~4월에 이루어집니다. 그때는 가장 먼저 익는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리 첫 이삭 한 단을 하나님께 바치며 ‘초실절’을 지킵니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 절기이기도 합니다.
보리 추수가 시작된 지 7주, 그러니까 50일이 지나면 보리보다 생장 기간이 긴 밀 추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맥추절을 ‘칠칠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맥추절은 ‘밀의 첫 수확’을 하나님께 바치는 절기입니다.
혹 어떤 분은 “맥추감사절에 사용된 ‘맥(麥)’ 자(字)가 보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자 사전을 보면, 麥(보리 맥) 자는 보리를 가리키는 대맥(大麥)과 밀을 가리키는 소맥(小麥)을 통칭해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맥추절은 가장 먼저 익는 보리를 주신 하나님께서, 초실절로부터 50일 뒤에 더 알차고 풍성한 밀의 수확까지 책임져 주셨음을 고백하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칠칠절을 지킬 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헤아려 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429장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우리가 어떻게 주의 크신 복을 알 수 있습니까? 그 시작은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보는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데 지금 이 명령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을 보십시오. 그들은 지금 거친 모래바람이 부는 모압 평지에 서 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단 한 톨의 밀 이삭도 쥐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장차 주실 복을 미리 바라보며 “네 복을 헤아려 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아직 가나안 땅을 밟지 못했어도, 지난 40년간 아침마다 신령한 양식을 내려주신 하나님께서 장차 땅에서 난 풍성한 곡식을 그들에게 허락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형태는 바뀌었지만,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분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감사는 ‘기억력과의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헤아리는 일은 잊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스타인잘츠는 히브리대학을 졸업한 랍비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고난이 나를 짓누르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는 마음의 컴퓨터를 켜서 거기 담겨 있는 파일을 찾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찾다 보면 희망이 솟아오름을 느낄 것이라고 말합니다.
-출처: 조성욱, 「시편 묵상」(홍성사, 2023); 「생명의 삶」(두란노, 2025년 6월호), 119쪽에서 재인용.
고난이 찾아오면 마음의 컴퓨터를 켜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파일을 열어 보십시오. 우리의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헤아리는 일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농부가 거둔 밀 이삭을 한 단 한 단 세어보듯이, 우리도 지난 6개월 동안 받은 은혜를 하나씩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불평하는 이유는 은혜가 없어서가 아니라, 은혜를 기록하는 ‘기억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지나온 은혜를 기억해 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다음과 같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나온 날들은 감사한 데, 당장 눈앞에 닥쳐올 내일은 어떡하지? 남은 하반기 내 삶에 몰아칠 경제적인 어려움과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내가 계속 감사할 수 있을까?”
아마 모세의 설교를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들도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치러야 할 정복 전쟁과 낯선 농사일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세는 두 번째 감사의 비밀을 선포합니다.
둘째로, 우리의 참된 감사는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며 ‘자원함’으로 드릴 때 그 의미가 깊어집니다.
10절에서, 모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은 자원하는 예물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억지나 체면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으로 자원하여 예물을 드리기 원하십니다.
출애굽 1세대의 신앙에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시내 산에서 천둥과 번개 속에서 율법을 받았기에 그것을 어기면 죽는다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출애굽 2세대들에게 다시 율법을 전하면서 사랑을 강조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명기 6장 4~5절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맥추절에 드리는 예물은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드리는 기쁨의 고백이어야 했습니다. 과거 광야 시절, 하나님의 성막을 지을 때 마음이 감동된 백성들이 넘치도록 자원하여 예물을 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출 36:5~6).
맥추절에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랑의 고백’일 뿐 아니라, 하반기를 하나님께 맡기는 ‘과정 중의 감사’입니다.
맥추절은 1년 중 7월 첫 주, 즉 딱 절반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봄철 곡식인 밀과 보리를 거두었지만, 이스라엘 농사의 핵심인 가을 과일 추수는 아직 시작도 안 한 시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을에 포도나 올리브, 무화과와 같은 과일을 추수하여 창고에 넣고 수장절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그제야 한해 농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인생의 하반기,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우리가 먼저 자원하여 감사를 드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영적인 마중물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마중물 한 바가지의 비밀’을 아십니까?
시골 마당에 있는 수동식 펌프를 일명 ‘작두펌프’라 부릅니다. 시골 마당에 서 있는 작두펌프를 상상해 보십시오. 가물고 메말라 있을 때, 아무리 힘을 주어 손잡이를 흔들어대도, 쇠붙이가 부딪히는 쇳소리와 헛바람 소리만 요란하게 날 뿐입니다. 아쉽게도 맑은 물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 메마른 펌프에서 시원하고 풍성한 생수를 끌어올리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손에 든 소중한 물 한 바가지를 펌프 구멍 안으로 쏟아붓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중해 오는 물’이라는 뜻을 지닌 ‘마중물’이라고 부릅니다.
이 물은 결코 낭비되는 물이 아닙니다. 내 손에 든 마지막 한 바가지의 물을 기꺼이 자원하여 부을 때, 비로소 압력이 형성되고 지하의 거대한 수원(水源)과도 연결됩니다. 내가 부은 것은 고작 물 한 바가지이지만, 하나님은 감당할 수 없는 샘물로 우리에게 돌려주십니다.
맥추감사절에 드리는 우리의 감사가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감사는 1년 농사가 다 끝나서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하반기에 꼭 있어야 할 추수를 앞에 두고 드리는 ‘과정 중의 감사’입니다. 전반기를 지키신 하나님이 하반기도 책임지실 줄 믿고 우리가 자원함으로 감사의 ‘마중물’을 부을 때, 하나님은 하반기 우리의 삶에 셀 수 없는 은혜의 샘물을 터뜨려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생수를 부어주시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 혼자 배부르게 마시고 내 창고에 가두어두라고 주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물을 흘려보내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감사의 마지막 비밀이 등장합니다.
셋째로, 우리의 감사는 이웃과의 ‘나눔’으로 완성됩니다.
11절에서, 모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선물을 이웃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객과 고아와 과부”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며, 사회적 돌봄이 절실히 필요한 이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양식을 나눔으로 우리가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원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룻기에 나옵니다. 이방 여인이었던 룻이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먹을 양식을 얻기 위해 이삭을 주워야만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보아스는 맥추절의 정신을 따라 자신의 밭 모퉁이를 열어 이방 나그네 과부인 룻을 도왔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룻은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고, 그들을 통해 다윗의 가문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저와 여러분의 참된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보아스가 이웃과의 나눔을 실천했을 때, 인류 구원의 통로로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첫 열매의 축복은 내 창고에만 쌓아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의 밭처럼, 내 삶의 밭 모퉁이를 열어 연약한 이웃들과 나눌 때 비로소 감사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12절)”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는 죄와 사망의 종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는 단순히 풍성한 수확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지도 않은 백성들에게 먼저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창고가 가득 차지 않았는데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전쟁도 끝나지 않았는데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미래가 보이지 않았는데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왜입니까? 감사는 풍성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맥추감사주일에 여러분이 받은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도 새로운 추수의 기쁨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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