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4(수)■
(마태복음 26장)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묵상/마 26:26-30)
◆ 복된 성찬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26)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바로 직전에 가르쳐주신 성찬은 매우 복된 예식이다.
주님께서 축복하셨다는 이 구절을 눈여겨 보라. 이후로 행해지는 모든 성찬은 주님께서 축복하신 예식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전 10:16).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축복하신 이 예식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특권이다.
성찬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성찬은 예배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사람들에게 예배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찬양 몇 장하고 기도하고 설교를 듣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럴싸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예배가 전혀 하나님을 향하고 있지 않다. 자기들이 위로받고 싶은 찬양과, 자기들이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 그리고 잔소리에 불과한 설교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예배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나를 기쁘게 하거나 내가 위로받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그를 기뻐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찬만큼 그것을 강력하게 표현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성찬이야말로 예배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 성찬의 의미
"이것은 내 몸이니라"(26)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8)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주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한다(요 6:56)라고 하셨다. 우리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써 주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됨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지 않은 자는 그 안에 생명이 없다고 하셨다(요 6:53).
주님의 살과 피를 어떻게 먹을 수 있는가?
성찬의 떡과 포도주가 주님의 몸과 피 자체는 아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십자가를 믿고, 그것을 묵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성찬은 그것을 실현하도록 하는 수단이다.
◆ 성찬은 얼마나 자주 해야하는가?
내가 중국형제들에게 교회가 모여서 예배드릴 때마다 성찬 할 것을 권하자, 어떤 형제가 이렇게 말했다. 너무 자주 성찬을 하면 식상하지 않을까요?
나는 그에게 형제는 밥먹는 것이 식상한가요? 라고 되물었다. 우리는 매 끼니마다 밥을 맛있게 먹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음식을 그려놓고 마치 먹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것을 의식화했다면 그것은 식상할 것이다. 그런 의식은 정말 일년의 한번도 지루한 것이다.
그러나 그림의 음식이 아니라,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맛있는 것이라면 결코 식상할 수 없다.
성찬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다.
주님의 임재가 있는 놀라운 영적 체험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참여할 때,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십자가의 사랑과 거룩함과 주님의 어떠하심에 대한 교훈이 맛있는 음식처럼 실감나게 내 영혼을 풍성하게 하는 것을 체험할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집에서 떡을 떼었다(행 2:46).
우리는 날마다 행하지는 못해도 교회 공동체가 모였을 때는 성실하게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성찬은 누가 할 수 있는가?
신학자이자 목사인 유진 피터슨은 교회에서 평신도와 성직자의 벽을 없애는 데 주력했다. '당신은 그저 평신도일 뿐이야 '라는 생각은 마귀가 기독교 공동체에 넣어준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역설했다.
많은 사람들이 성찬은 오로지 목사만이 집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마귀가 평신도와 성직자의 구분을 만들어서 효과를 본 가장 거대한 마귀의 업적이다.
2019년에 중국에 선교차 방문했을 때, 중국 많은 가정 교회들이 성찬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오로지 하나였다. 목사가 없어서였다. 이 귀중한 축복의 예식을 목사가 없어서 못한다고? 너무 기가 막혔다. 그리고 솔직히 그렇게 가르친 종교지도자들에게 화가 났다.
목사가 아니면 성찬을 집례할 수 없다는 이 논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구약에서는 제사장이 아니면 제사드릴 수 없었다. 그런 예를 들어서, 그리고 목사만이 제사장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여기에 대입하여서 목사 외에는 성찬을 집례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는 복음도 성경도 모르는 자다. 하나님께서 한탄하셨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성찬은 십자가의 대속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할 수 있고, 집례할 수 있다. 어느 대학생 형제들 몇 명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성찬을 했는데 너무나 은혜로웠다고 했다. 주님의 임재를 느끼고 감격하는 이 은혜의 자리가 단지 목사없이 진행했다고 정죄받아야 하는가?
성찬은 매우 귀중한 성도들의 특권이자 의무다. 목사가 아니면 진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며 반드시 깨져야할 미신이다.
나는 성찬의 중요함을 깨달은 날부터 가정예배 시에 꼭 성찬을 포함한다. 성찬을 하면서부터 자녀들도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신앙을 다시 점검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다. 왜 진작 이렇게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공동체가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리고 싶다면 성찬을 하라.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주님을 묵상하는 법을 배워라.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직전에 이것을 가르치시고 이것을 행하여 기념하라고 명령하셨다(눅 22:19). 이것은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옵션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다.
그리고 제자들은 성실하게 실천하였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미처 성경이 기록되기 전이라 매일 성경은 읽지 못했지만 매일 성찬을 통해서 주님을 묵상함으로써 우리보다 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십자가가 그들의 삶의 지표와 원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찬을 하려면, 세가지 요소만 있으면 된다.
★ 재료 - 누룩이 없는 떡, 포도주가 준비되어야 한다. 떡 재료는 밀가루든 쌀이든 관계없지만, 누룩이 없어야 한다. 누룩은 중요한 상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고전 5:8). 포도주는 알코올 도수가 낮은 와인이나, 포도즙도 상관없다. 성찬을 하려면 이런 것을 제대로 준비하는 성의가 있어야 한다.
★ 집례하는 자-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과 사랑과 희생을 선포해야 한다. 말씀 선포가 없는 성찬은 그냥 밥 먹는 것에 불과하다. 적당한 말씀이 생각이 안나면 성경 (마 26:26-28)을 읽어라.
★ 참여하는 자 - 진실로 십자가의 대속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진지한 믿음과 고백이 없이 참여하는 것은 범죄다. 복은 커녕 오히려 징계를 받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다(고전 11:28-30).
이 세가지만 준비된다면 누구나 성찬을 할 수 있다.
나는 형제들이 두려움없이 기쁨으로 성찬을 시도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하나님의 큰 복을 체험하기를 원한다.
주 예수님, 제가 성찬에 담긴 귀중한 의미를 더욱 깊이 알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이 나라 교회와 가정에서 성찬이 회복되게 해주십시오. 그럼으로써 십자가가 우리의 예배와 삶의 중심이 되게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