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용순 | 날짜 : 11-05-24 08:09 조회 : 1721 |
| | | 놈을 애도하며
칼날 같던 대륙(大陸)의 추위도 담장 가에서 노랗게 터뜨리는 개나리 망울에 무디어졌다. 예고 없이 방문하였던 감기를 이제 막 보냈다. 오후의 두터워진 햇살을 맞으며 오랜만에 밖으로 나섰다. 그날, 나는 놈을 처음 만났다. 색 바랜 인민모(人民帽)의 꼬질한 할아버지가 보도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 놓여 있는 바구니 속에는 새끼 토끼 몇 마리가 코를 모으고 있다. 겨우 뜬 빨간 눈이 성냥 알만한, 방금 어미와 이별하고 온 한 배 새끼들인 것 같았다. 어미 품을 떨어져 나온 놈들은 가늘게 불어오는 바람에도 하얀 털이 흔들리며, 추운 듯 추스른다. 정원의 초록 잔디에 하얀 토끼가 뛰노는 그림을 그리며, 10위안을 치르고 하얀 놈 한 마리를 샀다. 할아버지는 놈을 박카스 상자보다 작은 철장 속에 넣어준다. 실로 놈은 너무 작아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손 길이의 2/3를 넘지 못한다. 철장을 방 한켠에 놓고 배추 잎을 조금 넣어 주었다. 놈은 잠깐 호기심을 갖는 듯 하다말고는 외면한다. 한참을 지나도 꼼짝 않고 숨만 새근거린다. 본능적으로 낯선 환경을 느끼는지, 어미를 찾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서창(西窓)으로 들어온 오후의 긴 볕이 놈의 빨간 눈을, 하얀 등을 한참동안 비추고 나갈 때까지 놈은 꿈쩍 않는다.
밖에 나갔다 얼마 후에 들어와 보니 조그마한 입으로 배추 잎을 오물오물 먹고 있다. 그때부터는 새로운 환경을 익혔는지 곧잘 먹는다. 작은 몸에 배가 올챙이인데도 잠시도 쉬지 않고 먹어댄다. 놈은 세수라도 하는지 반쯤 서서 앙증스럽게 앞다리로 얼굴을 비벼대기도 하고, 쉴 새 없이 입을 오물거리기도 한다. 놈은 억울해 하겠지만, 하는 짓이 쥐 같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사악한 쥐하고야 비교 할 수 없다. 토끼만큼 순하고 약한 동물이 또 있을까. 작은 체구에 사뿐사뿐 뛰기 때문에 벌레 한 마리도 다칠 염려가 없다. 토끼전에서는 꾀 많은 동물로 묘사되지만 어느 구석에도 꾀 보따리는 보이지 않는다. 루비 같은 두 눈, 하얀 모피 옷을 입은 자태는 순결한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나는 놈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철장 속에서 풀어주었다. 풀려난 후에는 벗어놓은 슬리퍼 위에 곧잘 오줌을 싸기도 한다. 오줌이래야 병아리 눈물 만큼하고 똥은 파리똥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내가 침대에 누워 있으면, 놈이 뒷다리를 세우고 침대 위를 한참 올려다본다. 그러다 폴짝 뛰어 오른다. 처음 몇 번은 실패하더니, 침대 앞에 벗어놓은 슬리퍼 위에서 뛰니까 결국 오르고 만다. 영악하게도 그 다음부터는 꼭 슬리퍼를 이용한다. 침대이불 위를 초원인양 뛰놀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그러다 누워 있는 내 배 위에도, 얼굴 위에도 올라와 혀를 대어보기도 한다. 폭신한 침대 위가 좋은지 자꾸만 올라와서는 아예 내려가지를 않는다. 그러다 한 번씩 실례를 하기도 한다. 쉴 새 없이 움직이다 잠깐 멈추었다하면 틀림없이 오줌 싸는 중이다.
이제 하루가 다르게 볕이 두꺼워지고 목련꽃잎이 떨어진 곳에 얇은 껍질을 비집고 연두색 잎이 돋아나기 시작하였다. 놈도 햇볕이 따스해진 정원에서 마음껏 뛰어놀다 들어오기도 한다. 놈의 피 속에는 흙냄새를 느끼며, 대지(大地) 위를 내달리고 싶은 유전자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벌써 놈이 철장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부쩍 자랐다. 먹는 배추 량도 엄청 늘어났다. 녀석은 신통하게도 방바닥에 휴지나 신문지를 깔아 주면 꼭 그 위에다 대 소변을 한다. 놈의 습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간 예쁘지 않다. 소변 량도 많아져 몇 시간 만에 신문지 한 장이 흠뻑 젖는다.
나는 놈을 내 방에서 추방하기로 하였다. 놈을 위해 작은 토끼장을 만들었다. 밖이 보이게 앞면은 철망을 치고, 바닥으로 대소변이 잘 빠지게 하였다. 쥐가 침입하지 못하게 특별히 신경을 써야했다. 놈은 이제부터 집 앞의 초록 잔디와 꽃, 나무들을 느끼며 땅의 숨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른 아침이면 놈의 안부를 확인하고 푸른 잎을 넣어준다. 놈도 후닥닥 내게로 다가온다.
그 즈음 종일 갇혀있어 한 토막 볕도 쪼이지 못하는 놈이 안쓰러워 성숙한 봄을 느끼게 하여 주고 싶었다. 목에 긴 줄을 묶고 한쪽 끝에 말뚝을 박아, 반경(半徑) 줄 길이만큼 자유롭게 풀을 뜯을 수 있게 하였다. 목이 묶여 있는 놈의 모습이 공장 식구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여공(女工)들의 사랑을 한껏 받기도 한다. 나는 산책길에서 색다른 잎이 보이면 뜯어 와 주기도 하고, 놈의 앞을 지날 때마다 좋아하는 나뭇잎을 뜯어 준다. 잎을 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놈은 고개를 앞으로 쭉 내민다. 언제부터인지 놈이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저만치에서도 나만 보면, 목이 묶여 있는 것도 모르고 뛰어 오다 뒤로 벌렁 나자빠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내가 보이기만 하면 뛰어 온다. 보석 같이 빨간, 작은 눈으로 주인을 알아본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정원에 새 식구가 들어 왔다. 한 여직원이 갓 깨어난 노랑 병아리 다섯 마리와 오리새끼 한 마리를 상자 속에 넣어 왔다. 바늘 같은 다리로 아장거리는 병아리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이지만 ‘삐악삐악’하며 곧잘 쏘다닌다. 정체성을 잊어버린 오리새끼는 뒤뚱뒤뚱, 병아리 꽁무니 쫒기에 정신이 없다. 미처 병아리들의 집을 준비하지 못하여, 당분간 놈과 동거시키기로 하였다. 해질 무렵 놈의 집에 같이 넣었더니, 집안이 떠들썩해 졌다. 병아리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엎드려 있는 놈의 등을 밟고 다닌다. 그래도 놈은 눈만 감고 텃세 할 생각을 전혀 않는다. 이튿날 아침, 놈의 새하얀 등에는 온통 병아리 똥이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놈을 위해 배추 잎이라도 넣어주면 극성스러운 병아리들이 다 쪼아가 버린다. 먹이를 빼앗겨도 놈은 조금도 힘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심하게 귀찮게 굴면 슬그머니 자리를 옮기고 만다. 인간이 토끼의 반(半)만이라도 된다면 이 세상은 다툼과 전쟁과 없는 낙원이 될 터인데. 여름이 문턱을 넘어섰다. 나무들은 녹음이 짙어 지고 햇살이 따가워 졌다. 나뭇잎 속 어디에선지 성급한 매미 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놈도 하얀 털에 윤기가 흐르고 목덜미가 제법 굵어졌다. 나는 아직 놈이 암놈인지 수놈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경비(警備)는 놈을 뒤집어 보더니 암놈이라고 한다. 동물도 임신 가능 기가 되면 본능적으로 이성이 그리울 것이다. 나는 놈이 외롭지 않게 해 주고 싶었다. 놈과 비슷한 크기의 새까만 수놈을 새로 사왔다. 새까만 털에 흑진주 같은 눈을 가졌다. 초록 잔디위에는 하얗고, 새까만 두 마리의 토끼가 풀을 뜯는 낭만적인 풍경이 연출 되었다. 나는 병아리들을 이사시키고 희고 검은, 얼룩빼기새끼를 기대하며 둘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첫날은 무엇 때문인지 집안이 소란스러웠다. 그 이후 매일 밤을 한집에서 지내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다. 여름이 무성하여, 그 중턱을 넘어가고 있는데도 놈의 몸에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임신하기에는 아직 어린지,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은지 모를 일이다.
오랜만에 귀국하여 한 달쯤 집에 머물다 공장으로 돌아 왔다. 정원에는 이미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잔디밭 한쪽에 까만 놈이 가을바람을 맞으며 졸고 있다. 왠지 하얀 놈이 보이지 않았다. 경비에게 물었더니, ‘죽었다’고 한다. ‘몇 일전 갑자기 죽었다’고 하며,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아줌마가 준 배추 잎에 농약이 묻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토끼는 저항력이 약해 잘 죽는다.’고도 했다. 놈은 일 년도 못되는 짧은 생을 마치고 말았다. 나는 놈의 사체(死體)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경비실 옆, 포도나무 아래에 묻혔을 것이다. 지난번, 공장을 지키던 송아지만한 개가 극약을 먹었는지 갑자기 죽었을 때, 금방 그 흔적이 없어져 물었더니, 포도나무 밑에 묻었다고 하였다. 몇 년 전, 경비실 옆에 포도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 포도 알을 충실하게 하기위하여 해마다 돼지비계, 내장 등을 묻어 준다. 그렇다고 기르던 개, 토끼를 바로 이곳에 묻는 여기 사람들의 이기심과 무감각이 징그럽게만 느껴졌다. 놈은 이제 포도 알을 키우기 위하여 유기질 거름이 되었다. 나는 내년부터 이 포도를 먹을 수 없을 같았다. 놈은 보이지 않고 까만 놈뿐인 잔디밭을 볼 때마다 허전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
| 이희순 | 11-05-24 16:46 | | 6,70년대에는 토끼를 참 많이 길렀었는데 요즘엔 구경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애지중지하던 토끼의 죽음에 안타까워하시는 순정, 포도나무 밑에 묻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아속한 심정에 공감합니다.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녀석은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행운아입니다. | |
| | 김용순 | 11-05-25 10:14 | | 이희순 선생님, 토끼가 사람을 알아 본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짐승도 키우면서 정이 드니까, 죽고 난 후에 많이 섭섭 하였습니다. 졸작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윤행원 | 11-05-25 12:34 | | 김용순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모처럼 재미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애완동물(토끼)을 키우는 따스한 마음이 엿보이는 섬세한 글입니다. 글 솜씨가 보통이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저도 집에 '시추'라는 강아지를 키우고 있습니다만 여간 재미 있습니다. 정이 많고 재롱이 특출나서 사는 재미를 더해주는 정도입니다. 토끼를 잃은 (쓰라린) 심정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 | |
| | 김용순 | 11-05-25 22:34 | | 윤행원 선생님, 시원치 않은 글을 읽어 주시고 격려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배님께 죄송합니다만, 나이가 들어 갈 수록 주위에 애정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하찮은 동물이지만 정을 주니, 그것을 알고 답을 해 주어 정말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강승택 | 11-05-25 23:05 | | 토끼를 향한 선생님의 지극정성이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토끼 사랑은 소년기에 잠시 거쳐가는 1회성 경험인 줄 알았는데 이 글을 읽으니 아직 남아있는 선생님의' 순수'가 부럽습니다. | |
| | 김용순 | 11-05-26 10:33 | | 강선생님, 내가 혼자 중국 나가 있을 때 였습니다. 외로우니까, 귀여운 토끼에게 정을 붙여 보았지요. 서툰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이진화 | 11-05-27 13:57 | | 루비 같이 빨간 눈의 하얀 토끼가 눈 앞에 어른대고. 김용순 선생님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어린 시절 남산을 오르내리며 풀과 나뭇잎을 따다 먹이던 토끼 가족이 생각납니다. 저희 가족은 13년 간이나 코코라는 반려견에게 정을 주고 사는데 나이가 많아서 앞일이 걱정됩니다만 그들을 통해 얻고 깨닫는 것도 많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요즈음 많이 하는 수목장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 |
| | 김용순 | 11-05-27 20:18 | | 이진화 선생님, 동물이라도 정을 주면 반드시 답을 해 주는 것 같습니다. 동물은 인간보다 순수하지 않습니까. 토끼가 정을 느끼고, 정을 준 사람을 알아 본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어찌 하잘 것 없는 동물이라고 아무렇게나 생각 할 수 있겠습니까. 잘 읽어셨다니 감사합니다. | |
| | 임병문 | 11-05-27 18:11 | | 김용순 선생님, 토끼에게서 느끼고 쏟았던 정, 토끼도 그대로 느꼈을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보다 더 발달된 것이 짐승의 감각, 미물의 감성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언젠가 도살장 앞에서 주춤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짐승을 보았습니다. 그때의 예사롭지 않은 기억이 새롭습니다. | |
| | 김용순 | 11-05-27 20:21 | | 임선생님 하잘 것 없는 동물도 우리가 모르는 감성이 있는 것 같아요.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다 영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 미물이라고 막 대하겠습니까. 월요일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 |
| | 정진철 | 11-06-01 11:30 | | 네 놈이 그런거였군요 돌려주려고 희생하는 것인가봐요 건필하시고 좋은글 많이 쓰시길 | |
| | 김용순 | 11-06-01 20:57 | | 정선생님, 시원치 않은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좋은 글 많이 쓰시고 건강하십시요. | |
| | 박원명화 | 11-06-01 13:58 | | 토끼든 식물이든, 생명있는 모든 것들은 소중한 것이지요. 그들과 공존 하면서 어쩌면 인간은 많은 것을 배우며 살고 있는 것인지도......선생님의 여린 마음을 글속에서 만나게 되네요.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 |
| | 김용순 | 11-06-01 21:01 | | 사무국장님,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마음이 여려지고 주위의 하잘 것 없는 미물도 쉽게 밟을 수 없습니다. 자연으로 돌아 가려는 마음의 준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최복희 | 11-06-04 10:46 | | 요즘 바쁜 일이 겹쳐 좋은 수필을 읽지 못했습니다. 목장을 30년이나 직접 경험하며 가축들을 많이 키워본 저이기에 선생님의 심정 깊이 공감합니다. 요즘 외도(실버넷뉴스 앵커)를 하고 있어 수필이 써지질 않는군요. 꾸준히 좋은 쓰시는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함께 한 시간들 참 즐거웠어요. 행복한 날 되세요. | |
| | 김용순 | 11-06-04 19:33 | | 최선생님, 그날 모두들 따뜻하게 대하여 주셔서 저도 좋은 시간 되었습니다. 저는 글이 아직 시원치 않습니다. 여러 선배님들에게 아직 많이 배워야 합니다. 다음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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