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유 영 자
“권총으로 놈을 겨누었지요. 정말 쏠 생각이었어요. 개새끼.”
흥분으로 새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김 서방을 보며 우리는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런데 저쪽이 나를 붙들고 살려 달라며 비는 겁니다. 제 자식을 죽이겠다는데 어떤 부모가 그러지 않겠어요.” ‘봄이’ 아빠인 김 서방(형사)이 대낮의 주택가 골목에서 서부활극의 한 장면을 연출하게 된 사연이다.
‘봄이’는 새끼일 때 시누이가 데려다 기른 발발이다. 햇수로는 거의 20년이 된 수컷이다. 녀석이 주인을 따라 바깥바람을 쐬러 나갔을 때의 일이다. 제 덩치의 몇 배나 되는 이웃의 진돗개를 발견한 ‘봄이’는 흠칫 걸음을 멈추고 코를 벌름거리다간 주인도 무시해버린 채 달려가 꼬리를 쳤는데, 진돗개가 ‘봄이’를 사정없이 물어뜯어 그만 창자가 배 밖으로 삐어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 진돗개 주인이 ‘봄이’의 수술비용 일체를 부담하는 것은 물론이요 매일같이 문병을 왔다는 이야기다.
어머님은 간신히 입을 열어 더듬거리셨다.
“죽고 싶다. 제발 죽어 주었으면…”
모로 눕혀 드린 자세로 종일을 꼼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식은 멀쩡했다.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식들은 이제 일 년에 두어 번밖에는 병문안을 오지 않았다.
어머님은 말문을 닫으셨다. 의식을 잃은 채 해를 넘기고 있었다. 당뇨합병증으로 허물어져가는 한쪽 다리를 잘라낸 건 의식이 있을 때였다. 그나마 살이 붙어 있는 엉덩이며 허리에서는 욕창으로 진물이 흘렀다. 형제들은 조심스레 어머님을 편안하게 해드리면 어떨까 하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건 생명에 대한 불경이요 입에 올리기조차 섬뜩한 일이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어머님을 뵙고 돌아온 우리 내외는 저 지경이 되도록 병원에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묵시가 교감되었다.
집사람이 녀석의 뒤치다꺼리를 했다며 사람으로 치면 백 살이 된 강아지는 기저귀를 채워야 할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기저귀를 얌전히 차고 있으면 좋겠는데 자꾸만 물어뜯어 벗겨내더란다. 문득 미장원집의 망령든 시어머니 생각이 났다. 채워둔 기저귀를 벗겨내고 벽에 환칠을 하곤 해서 못 견디겠다는 마담의 말이다. 시누이가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어서 ‘봄이’는 현관에서 지하실로 옮겨졌다.
“내가 집안으로 들어와 버리면 나를 보려고 거실 유리창에 붙어 서서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놈을 어떻게 차마…”
말하고 있는 김 서방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서 지하실에 내려가 ‘봄이’를 붙잡고 말했단다.
“봄이야, 이제 우린 그만 헤어져야겠다. 어쩔 수가 없지 않느냐.”
‘봄이’도 이젠 모든 것을 체념하는 것 같았다. 장의사가 와서 ‘봄이’를 안아 차에 올렸을 때에도 전혀 저항을 하지 않았다. 장의사는 ‘봄이’가 쓰던 모든 것을 차에 싣고 ‘봄이’를 안아 앞좌석에 눕혔다. 차가 떠날 때 ‘봄이’는 힘 빠진 머리를 들어 창밖을 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나는 김 서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돌아가신 어머님을 생각하고 있었다. 박제처럼 하얀 시트 위에 누워 계시던 어머님을 보면서 나는 몸을 떨었다. 안락사를 한 ‘봄이’는 이제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자기를 물어뜯은 이웃집 개를 향해 권총을 겨누던 주인의 그 아픈 마음을 ‘봄이’는 알고 떠났을까. ‘봄이’ 친구인 늙은 고양이 ‘천둥이’가 거실 유리창을 통해 우리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첫댓글 예전에 쓴 글인데 발표는 하지 않은 것입니다.
윤여정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죽여주는 여자' 기타, 파고다 공원..보니까 생각이 나서요.
안락사 글 잘 봤습니다.
역시 유영자님은 글을 잘 쓰십니다.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제가 나이가 있으니까 자연 죽음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모든 생물체가 태어나면 언젠가 죽습니다. 죽음을 전제로 살아갑니다.
죽을 때 편하게 갔으면 희망을 하나 이 또한 마음대로 되지가 않습니다.
의식 없이 살면 가족, 지인들에게 힘들게 하고 폐를 키치고 돈도 시간도 많이 뺐습니다.
저희 내외는 2018년 7월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해 놓고 있습니다.
멋진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김윤권 칭찬 고맙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올리시는 노래가 좋습니다. 꿈이여 다시 한번!
사는 것 못지않게 죽는다는 것도 쉽지않은 일입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오래전에 쓴 글인데 그때만해도 이런 글은 좀 그랬어요. 요즘은 사전동의서?도 작성하니까요.
읽어주시고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