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창조경제니 뭐니
입으로 외쳐됐다.
말이야 새로운 블루오션을 만들겠다니
이 보다 더 좋은 경제정책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자.
한진해운의 몰락을 보면서
감독해야 할 정부는 뒷짐쥐고 강건너 불구경 하듯 해 놓고선
이제와 한진해운 경영진의 개인경영부실로 몰아세우고 있다.
해운의 성격상 글로벌기업으로 어디 개인기업으로 치부할 일인가?
오늘 조선일보 1면톱에
공대생이 공학과외 받으러 학원간다고 기사가 났다.
컴퓨터공학과 출신이 프로그래밍도 못하고
전기과출신이 전기회로도도 못 읽는다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산업현장에서 바로 써 먹을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지식은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수들이 머리릉 맞대고 커리큐럼을 짜고 시대에 따라 개선해 나가기도 한다.
서울대에서 A+ 성적을 받으려면 수업중 교수 농담까지 녹음을 해서
시험때 그대로 적는 것이라고 한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김향준교수의 인터뷰 내용이다.
그 전에도 학생들 사이에서 그런 말들이 많이 돌았다.
초등학교때의 받아쓰기와 뭐가 다른가?
한국의 최고수재들이 모인 서울대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래 놓고서도 창의설계니 뭐니 말할 자격조차 있는가?
금년의 첫 노벨상은 일본의 세포연구자인 도쿄공업대 명예교수인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에게 돌아갔다.
그는 세포내의 청소를 담당하는 오토파지 연구에 50년을 매달렸다고 한다.
오토파지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학원 생물학강사도 웬만큼 알고 있는 사항이다.
그렇다면 뭐가 다른가? 일본에서는 한 우물을 깊이 파고 우리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흉내내 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보면 일본 교수나 연구자와 우리나라의 연구자들과 능력면에서는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비만 쓸데없이 축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학부교육이나 연구자의 연구방향이 잘못 됐으면 지체없이 바로 잡아야 한다.
서울대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시험방식을 듣고 보니
우리가 대학다닐 때가 생각난다.
대학1학년때 교양영어 과목인데 담당교수는 영어전공교수도 아니고 경제학 전공교수였다.
일제때 교육을 받은 분이어서 발음도 일본식 발음이었다.
영어시간엔 교수가 텍스트의 지문을 읽고 해석을 해 주었다.
시험때는 지문을 출제하고 자기가 해석한대로 써야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과서에 한글로 해석을 받아쓰기에 바빴다. 글자 한자라도 틀리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 분의 지론은 한 단어의 가장 적확한 뜻은 우리말로도 한 단어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분의 채점방식도 독특했다. 답안지의 한 문장을 한글 맞춤법으로 들이대어 채점을 하기 때문에
글자 한 자 한 자가 채점대상이어서 전체적으로 점수가 마이나스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는 수업시간에 그것을 번호대로 발표를 했다. 특히 시골출신의 영어가 약한 학생들은 지옥의 시간이었다.
영어시험공부를 할 때는 지문을 보고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적기한 내용을 달달 외워서 썼다.
그 교수도 그런 상황을 알고 있었던지 한번은 교과서에 나온 지문중에서 시험지에 내면서 중간의 한 문장을
일부러 누락시켜 버린 것이었다. 그런데도 일부학생들은 그 문장이 빠진 줄도 모르고 우리말로 외워둔 내용을 그대로
적었던 것이다. 교수가 파 놓은 함정에 보기 좋게 걸려 들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재시험도 없었고 학점이 나오지 않으면 바로 제적당하고 ROTC도 제적 당하면 곧 바로 영장이 나와 군에 끌려가는
그런 살벌한 상황이었다.당시 학생전체가 ROTC신분이었다.
약 50여년 전에 벌여졌던 일이 지금 서울대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