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수련을 보다. 벌써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새벽 3시 훨씬 넘어 호텔에 들어와 씻고 눕자마자 그대로 골아떨어졌다. 체크아웃 시간이 12시라서 혜인인 늦잠 잘거라고 미리 얘기 했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났더니 9시쯤이었나? 온몸이 뻐근하고 손발은 퉁퉁 부어 있었다. 혜인인 아예 일어날 기척도 안 보였다. 창문 커텐을 조금 열어보니 밖은 활기로 가득찬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한 사람이 바게트를 들고 지나갔다. 또 조금 있으니 바게트를 든 사람이 지나가기에 창을 열고 그 사람들이 왔던 길을 거슬러 봤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저 길 어디쯤 빵가게가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애는 정신없이 잠들어 살금살금 지갑과 열쇠 폰만 들고 호텔을 빠져 나갔다. 호텔 맞은편으로 5m도 채 안 되게 걸어갔더니 역시나 빵가게가 있었다. 아침에 갓 구운 바게트 냄새는 없던 식욕을 돋구웠다. 크로아상 2개와 바게트를 하나 사서(3.4유로) 파리지앤 처럼 호텔로 돌아왔다. ▲ 혜인인 내가 나갔던 것도 모르고 자고 있었는데 커피를 끓이고 바게뜨를 자르고 하니 부시시 일어났다. "엄마 언제 나갔다 왔어?" "금방, 저 앞에 사람들이 바게트를 들고 지나가기에 빵집이 있을 거 같아서 나갔다 왔지" 커피를 끓이고 바게뜨 한 조각을 주니 부시시 일어나서 아기새 처럼 잘도 먹었다. 농부가 논에 물들어 가는 것과 부모가 자식입에 밥들어 가는 모습을 제일 행복해 한다더니 절대로 틀린 말이 아니다. 고소한 크로아상과 바게트와 향기로운 커피는 파리지앤 최대의 조찬이었다. 저 바게트는 먹다 가방에 넣어두었는데 인천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리무진 안에서 인천공항에서 산 사과주스와 함께 저녁 대신으로 먹었었다. 그때는 더 맛있었다. 체크아웃 하면서 캐리어를 리셉션에 맡겨 놓고 파리시내를 좀 돌아다니다 밤비행기를 타러 갈 때 캐리어를 찾기로 했다. 오늘의 코스는 미리 정하지 않았다. '오랑주리 미술관'도 가보고 싶고, '오르세 미술관'도 가보고 싶었다. 둘 다 가기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오랑주리를 먼저 갔다가 다음코스는 맘내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호텔에서 오랑주리 미술관까지는 금방이었다. 이젠 파리지하철도 익숙해지려고 했다. 오전이라 금방 입장할 수 있었는데 나중 나올 때 보니 줄이 길었다. 우리가 미술관을 아무 생각없이 오전 중에 갔던 것이 잘 한 선택이었다. 그만큼 낭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가 있었다. ▲ 모네의 수련 (오랑주리 미술관 입장료 9유로) 모네의 그림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난 오랑주리 미술관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다른 방의 그림을 제쳐놓고 제일 먼저 수련이 있는 모네의 방으로 갔다. 내 희망사항 중 하나가 모네의 수련이 있는 그림 앞에서 아무 생각없이 보다가 다리 아프면 앉았다가 배고프면 바게트와 커피를 마시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 보는 것이었다. 근데 미술관엔 음식물 들고 가면 안 되는 것인데 무지하게 그런 꿈을 꿨었다. ▲ 모네의 수련이 있는 방은 벽면이 곡선으로 되어 있다. 사진을 전체를 다 찍긴 어려워 부분으로 나눠서 찍었다. 새벽, 여름, 아침, 오후 등등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수련을 보노라니 몽환적인 수련이 가득 핀 연못에 풍덩 빠질 것만 같았다. ▲ 우린 각자 앉았다가 보다가 휴식처럼 모네의 수련을 원없이 바라봤다. 모네의 수련을 보고 나니 이젠 아무것도 안 해도 아쉽잖을 것 같았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기념품 가게도 구경할 것이 너무 많았다. 혜인인 할머니 드린다고 파리 그림책과 그림엽서도 사고, 난 모네 수련그림이 있는 찻잔받침을 샀다. 이제 다음은 어딜 가지? 여행준비 하면서 메모해 놓은 곳을 가보기로 했는데 데이터로밍을 어제까지로 했기 때문에 자세한 안내를 볼 수가 없었다. 인터넷 환경에 길들여져서 지도와 간단한 메모만 들고 어디를 가려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생 제르맹 거리에 가면 직접 향수도 만들 수 있단걸 기억하곤 그 곳으로 가기로 했다. 성인이가 자기 선물로 향수를 사달라기도 했고 거기 가서 만들어서 선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도를 보니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생제르맹 거리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을만큼 가까웠다. 둘이 여행의 막바지라서, 어제 강행군 후라서 힘들었지만 파리거리를 이젠 몇 시간 후면 떠난다 생각하니 아쉬움으로 힘을 내 걸었다. 근데 우리가 생각한 소호가게가 많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명품이 많은 거리였으며 보기만 해도 선뜻 들어설 수 없는 가게들이 많은 거리였다. 차라리 오르세 미술관을 갈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있었다. 인테넷이 안 되고 우왕좌왕 하다가 이후 시간이 많이 꼬이고 허비하게 되었지만 그것 또한 여행이니까. 세느강 주변의 어느 헌책과 잡지 파는 노점이 보여 카메라를 들었더니 못 찍게 했다. 왜 그러지? 지금 생각해도 디자인 도용을 우려할 것도 아니고, 후레쉬로 인해 훼손될 것도 없는데.... 혜인인 돌아와서 그 곳에서 구경 좀 할 걸 하며 아쉬워 했다. 가다보니 향수가게가 있긴 있었다. 근데 가격이 아주 비쌌다. 이젠 점심이나 먹자 하고 어느 한 카페로 들어갔다. 다리도 쉴 겸. ▲ 레 뒤 마고 카페 샌드위치와 커피 (21.2유로) 길을 걷다가 들어가려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조금 더 가니 그만큼은 아니지만 적당히 사람이 붐비기에 이 곳으로 정하고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켰다. 역시나 내용물이 별로 없은듯 해도 먹을수록 맛있는 샌드위치였다. 얼음물 두 잔, 저그에 뜨거운 물, 어떻게 먹으란 거지? 아직도 왜 저렇게 셋팅되어 나온 건지 모른다. 이 카페에서 와이파이가 되어 혜인이가 검색해 보더니 "엄마 아까 사람 많던 그 집이 여기서 유명한 집이래. 헤밍웨이,카뮈, 사르트르, 보봐르 등이 즐겨 찾던 집이라는데?" "그럼 거기도 가보자" "금방 점심 먹었는데?" "그럼 거기선 디저트를 먹자. 유명한 곳이라는데 한 번 가보자." ▲ 카페 드 플로르 메뉴판 ▲ 뭘 주문할 지 심사숙고 하는 혜인이 테이블이 빈 자리가 별로 없었지만 우린 운 좋게도 좋은 창가 자리에 앉게 되었다. 웨이터들이 여럿 있었는데 테이블 담당이 정해져 있었다. 카페임에도 고급레스토랑의 웨이터 같이 보였다. 쇼콜라쇼가 유명하다고 하니 난 음료로 쇼콜라쇼를 시키고 혜인인 마리아쥬 플레르 (홍차)를 시켰다. 디저트는 에클레어와 타르트를 시켰더니(3.5유로?) 그 메뉴에 있는 건 아침에 파는 것이고 지금은 없다고. 다른 디저트를 직접 냉장쇼케이스에서 골라볼래? 하고 웨이터가 안내를 했다. 혜인인 쫄랑쫄랑 따라가더니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걸로 골라왔다. ▲ 딸기 타르트와 에클레어 타르트의 딸기는 상큼하고 싱싱했으며, 타르트는 바삭하고 달콤했다. 프랑스에 오면 에클레어는 꼭 사먹어 보리라 해서 릴에서 먹었었는데 그것 보다 훨씬 맛있었다. 크림도 시원하고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 맛도 보기전 행복해진 내 모습. 다음의 결과도 예측 못 한 채. ▲ 마리아쥬 플레르 혜인인 차를 좋아하는데 내가 못 들어본 이름도 종종 알려주고 집에 가져다 주기도 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차를 몇 종류 샀다. 이 카페에서도 와이파이가 되어 우리가족 카톡방에 연락도 하곤 했다. 2층 화장실 갔다 나오는데 들어갈 땐 없더니 나올때 보니 유료인듯 해 보였다. 혜인이도 가려고 하기에 돈을 받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 다녀오더니 씩씩거렸다. 이 카페는 손님에게도 화장실 사용이 유료였던 것이다. ▲ 쇼콜라쇼는 저그 한가득 나와서 혼자 다 못 먹을 양이었다. 몽마르트에서도 달콤한 크레페에 사이다를 시켜 영 아니었는데, 이번에도 달콤한 디저트에 쇼콜라쇼를 시켜서 단맛이 배가 되어 실패를 했다. 혜인이의 홍차를 마셨더니 달콤한 디저트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 여기도 얼음물 두 잔과 저그 등. 어떻게 마시란 거지? 홍차 티백을 저그에 담아서 뜨거운 물로 우려낸 뒤 찻잔에 따라 마시는 건가? 냉수는 차를 마신 후 입가심 하는 용이고? 내추측이 맞나 모르겠다. 다 먹은 후 계산서를 받고 보니....... 눈이 둥그래졌다. 자그마치 35유로(47,250원)였다. 에클레어 하나에 12유로(16,200원) 아까 3.5유로? 인가 그것 보고 비슷한 가격이라 생각하고 혜인이가 아무 생각없이 골랐다는데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 못 시켜먹었을 지도 모른다. 아님 한 번 멋진 호사를 해봤을 지도 모르고. 본의 아니게 아주 비싸게 먹었던 '카페 드 플로르'.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기고 재밌다. 근데 와서 보니 '레 뒤 마고 카페'도 유명 예술가들이 자주 들렀던 생제르맹 거리의 유명한 카페였다. 곁에 둔 두 카페가 모두 파리의 예술가들에게 사람받았던 집이었다. 예정에 없던 생 제르맹 거리에서 파리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던 유명한 카페를 두 곳이나 가보게 됐다니? 예상에 없던 행운이다. 이젠 더 이상 어디 갈 만한 시간은 없었다. 생 제르맹 거리에서 우리 호텔이 있는 몽파르나스역까진 멀지않은 길이었다. 버스를 타려다가 그냥 걸어가면서 구경도 하자고 했다. 걷다가 릴에서도 사고 싶었던 '르크루제' 그릇가게가 보였다. ▲ 르 크루제 마침 파운드케익을 갓 구워서 무료시식을 하고 있었다. 그릇구경만도 좋은데 맛있는 케익까지 맛보고. "엄마 아저씨가 엄마 사진 좀 찍어도 되냐는데?" 베르베르 같이 생긴 남자가 활짝 웃으며 나를 찍고 싶다니? 파운드 케익을 먹으며 모델이 되어줬다. 아마도 자기네 가게 들은 동양인 아줌마로 소개 되려나?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르크루제 그릇은 무게 때문에 선뜻 살 수도 없는데. 마침 할인행사를 하고 있었다 3개 사면 하나 더 준다는 그 말에, 이제 짐 싸서 바로 공항으로 가면 된다는 합리화에 그만 작은 냄비 4개를 덜렁 사고 말았다 . "아! 무거워" ▲ 르 크루제 냄비 사은품으로 르크루제 모형의 마그넷도 받았다. 저 냄비에 여러 야채와 버섯 치즈를 넣고 그라탕도 해먹고, 계란찜도 해먹곤 한다. 무거워서 그렇지 잘 사온 듯. ▲ 모네의 수련 찻잔받침 커피나 차를 마실 때마다 번갈아가며 모네를 만나면 얼마나 행복한 지 모른다. 걷다보니 우리가 묵었던 몽파르나스역이 여행자에게 아주 좋은 지역이었다. 지금 알면 뭐하겠냐만, 조금만 걸으면 여러 크고작은 쇼핑센타 예쁜 가게들, 카페,레스토랑 등등이 있고, 지하철도 버스도 교통이 아주 편리한 곳이었다. 떠나는 마당에 발견하다니? 호텔까지 걸어오면서 이번엔 비싸진 않은 향수가게에서 향수도 몇 개 사고, 혜인인 또 쿠즈미차를 몇 통 더 사고 했다. 허둥지둥 호텔에 와서 맡겨 둔 캐리어를 들고 바로 앞에 에어프랑스 리무진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근데 여기가 아니래. 어?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어쩌지? 이젠 짐도 무겁고 낑낑거리며 허둥지둥.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팀도 이 곳이 정류장이 아님을 알고 어딘가로 이동을 하고. 혜인이가 다시 구글맵을 보고 열심히 걷는데 따라가보니 바로 옆을 한바퀴 둘러서 온 것이었다. 그래도 무사히 리무진을 타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구경이라도 할 계획이었는데 수속밟고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 이후는 완전 패잔병이 되어 인천공항에 도착. 공항에선 각자 자기 사는 곳으로. 난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기로 했는데 마침 리무진이 있어 예매한 기차표 취소하고 리무진 타러 가고, 혜인인 KTX를 타고 포항으로. 사랑스런 내 딸과 함께 한 이번 여행이 나의 삶에 무한한 풍요로움과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또 가자! |
출처: 풍경화처럼 원문보기 글쓴이: agenes
첫댓글 우와 아녜스님의 여행기가 여기서 끝나다니~ 너무 아쉽네요^^
풍성한 이야기거리에 따님과 함께 하는 여행 저도 함께 다니는 듯 즐겼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또 댕겨오셔서 후기도 나누어 주셔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요. 여행은 언제나 준비하면서 그리고 다녀와서 더 풍성해지는듯 합니다. 블로그를 쓰면서 새록새록 기억이 나고 그 시간들이 그립네요. 원문보기를 하면 사진원본을 보실 수 있어요. 풍경사진은 원본 그대로 보도록 해놨습니다.
수련처럼 아름다운 아녜스님과 혜인이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여 찰라도 덩달아 행복해집니다. 그동안 카페에 들르지 못해 미처 읽지 못했던 여행기를 오늘 새벽 줄줄이 읽으며 독자로서 무한한 행복감에 젖어 있습니다. 아녜스 작가님께 독후감 써 내야 겠어요~ 다음에 영주에 가면 사인도 받아야 겠고 ...
들르지 못했던 잡지사와 오르세 미술관은 다음 여행 때 들려 꼭 그 여행기를 올려주세요. 찰라도 사진 찍지 못하게 하는 헌 잡자사가 무척 궁금합니다. 유럽의 카페나 음식점은 고객에게도 화장실 바가지를 씌워 정말 입맛이 쩌려요. 그런 걸 보면 한국이 좋치요 ㅎㅎ 베르베르 님이 찍은 사진이 궁금합니다???
행복한 시간이었지요. 또 가고 싶어요.
찰라도 유럽에서 아녜스님을 만나면 사진찍고 싶을 겁니다. 아, 다음 여행은 언제 어디를 가신다고 했지요? 벌써 그 여행기가 기다려 집니다. 여행이란 Plan, Do, See의 3단계를 거쳐야 완벽한 여행의 진수와 맛을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지요. 여행을 스스로 설계하고, 현지를 답사하고, 돌아와서 사진과 추억을 더듬으며 모니터링을 해야 비로서 여행의 완성이 되는 것 같아요. 더욱이 사랑스런 딸 혜인이랑 함께 다닌 여행의 추억이 맛갈스런 글과 사진으로 너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읽는 내내 행복했어요...
그동안 궁금하고 걱정되고 했었는데 밀린 숙제까지 다 해주시고 감사드립니다. 찰라님 여행기를 처음 접한 지가 벌써 13년이나 지났네요.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읽으며 부럽고 꿈꾸다가 이젠 저도 이런 여행기를 아주 가끔 쓰게 되니 감회가 새롭네요.
패잔병이 아니라 여행의 맛에 푹 빠진 개선장군이겠지요 ㅋㅋㅋ
청량리에서 영주로, 인천공항에서 포항으로 따로 따로 갈라지는 환상의 여행커플~
보라보! 또 얼른 여행을 떠나요!
또 작당을 꾸미고 싶어요.
@아녜스 김채경 그러 ㄴ작당은 아무리 모의해도 싫증이 나지 ㄹ 않지요 ㅋㅋ
모네의 수련 그림 원없이 보시고 아쉬운 유럽여행 마감한 모녀의 여행기 감동이였습니다.
다음 여행땐 바로 바로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