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는 대한민국을 방문 중이다 – 제11탄
― 시간의 풍경
서울 종로의 오래된 한옥,
문지방을 밟지 않으려는 발끝 위로
할머니의 세월이 스르르 흘러나왔다
기억은 그렇게 틈에서 피어난다
경주의 석굴암 아래서
우리는 천년의 숨결을 마주했다
너는 돌을 만지며 말했다
“시간은 무겁지 않아, 가만히 남아 있을 뿐이야”
80년대 골목의 분식집
그날은 오뎅 국물 속에 담긴 유년이었고
우리는 그 추억을 한 모금씩 떠먹었다
뜨거웠지만 이상하게 따뜻했다
한강 철교 위를 달리는 기차
너는 창밖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지금 이 순간도, 곧 과거가 되겠지”
나는 그 말이 오래 가슴에 남았다
춘천의 폐역 옆,
녹슨 선로 위에서 발을 맞춰 걸으며
우리는 흘러간 시간에도
여전히 선율이 흐른다는 걸 들었다
청계천 복원 구간,
너는 맑게 흐르는 물을 가리키며
“과거를 다시 흐르게 만든 거야”
그 말에 나는, 이 도시가 참 다정해 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
너는 한 작품 앞에서 오래 멈췄다
색이 흐르고, 선이 부서지고,
그 틈에 지금의 우리가 들어앉았다
부산의 바다,
파도는 늘 새롭지만
그 반복 속에
기억이 다시 씻겨 내려온다는 걸 우리는 알았다
밤하늘의 별,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너는 별자리를 따라 손을 그었다
“시간도 길을 갖고 있어, 별빛처럼”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밖에 내리는 비를 함께 보며
우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온 시간, 머문 자리, 다 감사하다고
좋아요
댓글 달기
공유하기
첫댓글 시간의 모래 위에 남겨진
기억의 자국들
기억들이 시간의 풍경을
그려낸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
어제는 가도 오늘은 남고
옛날은 가도 추억은 남는 법
댓글이 한편의 시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귀한 이제 다시 못올 나의 시간이 갔습니다
즐겁게 못 지낸거 같아서 좀 그렇습니다 ㅎㅎ
지금부터라도 좋은 시간 많이 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