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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초연한지 딱 10년 만에 라이센스 공연으로 국내 상륙한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는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입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명문 기숙 남자 고등학교의 특별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이야기 입니다. 남자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입시 제도와 교육, 수업 방법, 수업에서 가르치는 내용, 아이들 개개인의 특징 등을 잡아 내며 교사와 남제자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죽은 시인의 사회]류의 구성이죠.
[죽은 시인의 사회]로 톰 슐만은 1990년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을 비롯하여 다수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톰 슐만 단독 각본으로 명시돼 있고 톰 슐만이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토대로 씌여진 소설은 세월이 흐르면서 문학이 됐죠. 이 책은 발간 당시엔 그저 영화 홍보과 연계된 판촉 기획물이었고 기대 이상으로 판매 부수가 올라갔을 때도 영화의 인기에 힘 입은 반짝 상품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장수할 줄은 몰랐던거죠. 일반적인 영상 소설들이 다 그러한 단계를 밟다가 마무리 됐으니까요. 그러나 기대를 깨고 이 작품의 영상소설은 영상소설임에도 20년 넘게 살아 남아 오늘 날엔 청소년 필독서로써의 문학적 가치를 인정 받고 있죠.
[죽은 시인의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데는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담당한 톰 슐만의 공이 크지만 이 작품의 완성도를 뒷받침 해준데는 감독을 맡은 피터 위어의 조력이 크게 보탬이 되었습니다. 피터 위어의 기여도를 무시 못하죠. 피터 위어가 감독으로 내정되면서 시나리오의 방향은 급격히 바뀌었고 그렇게 하여 오늘 날에 명장면으로 남아 있는 결말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작품의 제작 과정과 시나리오의 방향 선회 과정은 폭발적인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한 몫 잡으려는 국내 출판사가 졸속으로 편찬한 [속 죽은 시인의 사회]에 부록으로 실려 있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뒷 이야기를 그린 비공식 속편인데 내용의 절반은 [죽은 시인의 사회]의 후속 내용을 국내에서 멋대로 상상하여 그린것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톰 슐만이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권장할 만한 책도 아니고 지금은 절판 돼서 구할 수도 없지만 읽어볼만은 합니다. 톰 슐만의 시나리오대로 [죽은 시인의 사회]가 만들어졌다면 아마도 신파 학원물이 됐을거에요.
[죽은 시인의 사회]이전에 [들백합]같은 작품도 있었지만 1989년도에 [죽은 시인의 사회]가 나오면서 이 방면에 있어 역사를 만들었죠. [죽은 시인의 사회]는 그 뒤 나온 수많은 학원물의 길을 개척해준 기념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학원물의 모든 길은 [죽은 시인의 사회]와 연결 됐죠. 어느 작품도 [죽은 시인의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죽은 시인의 사회]의 아류라고 말하기도 쑥쓰러울 지경이 됐습니다. 국내에서 [공룡선생]이 나오고 해외에서 [위험한 아이들]이나 [모나리자 스마일][스쿨 타이]같은 작품이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죽은 시인의 사회]의 아류작이라고 폄하하기 쉬웠죠. 지금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하나의 장르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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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노작가 앨런 베넷의 후반기 작품인 [히스토리 보이즈]는 2003년 영국 런던의 국립극장 Lyttelton Theatre에서 초연을 가졌고 2006년엔 브로드웨이의 Broadhurst Theatre에서 미국 초연을 가졌습니다.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던 해에는 웨스트엔드 초연 당시의 배우들을 그대로 기용하여 동명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영화 연출을 맡은 니콜라스 하이트너는 이 작품이 영국에서 영화로 제작되기 이전에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의 초연 연출가였었고 그 당시 영국 국립극장의 예술 감독으로 활동했었습니다. [히스토리 보이즈]는 무대극의 영화화 간격이 짧았고 연출은 동일했으니 원작 무대극에 출연했던 배우들을 그대로 출연시킨건 자연스러운 연계 과정이었죠.
니콜라스 하이트너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접할 수 있게끔 영화를 통한 대체 실황물을 만든것인지도 모릅니다. 영미권에선 성공적이었지만 그 밖의 지역에선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히스토리 보이즈]였으니까요. 저는 연극의 국내 공연 소식을 접하고 관심이 생겨 작품 정보를 알아 보다가 영화의 존재를 알았는데 국내에선 dvd로만 출시됐죠. dvd출시된지 오래됐더군요. 이번 라이센스 연극은 원제를 따르고 있지만 연극 이전에 직통으로 들어온 dvd는 [굿바이 에이틴]이란 제목을 달고 출시 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들 [히스토리 보이즈]라고 부르고 있죠. 영화 자체가 별로 알려지질 않아서 [히스토리 보이즈]가 더 익숙해졌어요.
2006년 브로드웨이 진출 당시 이 작품은 소재를 취하는 방식 때문에 또 한번 [죽은 시인의 사회]와 비교됐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를 뛰어 넘는다는 평가도 받으며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죠. 수상 실적은 영국에서보다더 미국에서 훨씬 좋습니다. 2006년 토니상에선 작품상을 비롯하여 6개 부문을 석권했으니까요.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뉴욕 매거진은 이 작품을 '[죽은 시인의 사회]는 위선이다!'라며 과장된 언사로 추켜세웠는데 그건 그만큼 작품이 좋다는것을 호들갑스럽게 표현한것 뿐입니다. 서양 언론들이 그렇죠 뭐. [히스토리 보이즈]가 매우 잘 만든 수작인건 사실이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같은 걸작 학원물을 깎아 내리는 방식으로 작품성을 우대해주고 싶진 않거든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이 방면의 원조다 보니 이런 류의 작품은 [죽은 시인의 사회]의 그늘에 갇혀 있으면서도 매번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의식하며 넘어서려고 도발을 하곤 하죠.
[히스토리 보이즈]도 도발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학원물인데 이 작품이 의도한 도드라진 면모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시도였고 그 덕에 의도적으로 삽입한 저돌적인 주제의식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연상되는 인물 배치도와 구성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결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눌리지 않는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의도했건 안 했건 [히스토리 보이즈]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오랫동안 구축시켜 놓은 교사와 제자간이 쌓은 신의를 전복적으로 뒤틀어 버리는 쾌감이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는 작품인데 소재를 다루는 내공이 상당해서 어떤 면에선 [죽은 시인의 사회]를 위축시킬 정도로 빼어날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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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보이즈]에 나오는 여덟명의 남학생들은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명문 기숙 학교 재학생들입니다. 저 마다의 개성이 돋보이는 이들은 다들 똑똑하고 공부도 잘 해서 학교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재들이죠. 학교는 대학 입시가 코 앞에 닥치자 이들을 특별반으로 구성하여 입시 준비를 시킵니다. 학교의 명예와 자신의 위신 살리는것이 급급한 깐깐하고 속물적인 교장은 소속 교사들이 학생들을 획일적인 교육 방식으로 가르치길 원합니다. 당연히 [죽은 시인의 사회]의 형제격인 작품답게 [히스토리 보이즈]에는 [히스토리 보이즈]만의 키팅 선생을 등장 시킵니다.
그 인물은 50대 남자 교사인 헥터죠. 바이크를 타고 출근하며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헥터는 교양과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불어로 수업을 진행시키는 괴짜 교사 입니다. 그는 학생들을 천편일률적인 입시 중심의 교육에서 탈피시키고 그만의 교육 방식으로 학생들과의 유대감을 형성하죠. 자유로운 수업을 원한다며 수업 땐 문을 걸어 잠그며 교장이 알면 기겁할만한 방식으로 학생들을 대하고 있습니다. 수업 진행 방식도 예사롭지가 않죠. 이런 작품의 괴짜 교사가 할만한 짓은 다 하고 있으며 공격적인 단어로 도배된 그의 문학 수업은 학생들의 호감을 삽니다.
그와 학생들은 비밀스러운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것이 들통 나면 헥터의 교사 인생도 끝이날것입니다. 헥터는 진정 참교육이 뭔지 아는 선구자적인 인물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소아성애 변태 증상이 있어서 학생들을 자신의 성적 욕구 충족 대상으로 착취하는것을 자행합니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호감을 느끼고 있는 학생을 뽑아서 바이크 뒷자리에 태운 뒤 시속 80km이상을 밟으며 발기된 학생의 성기를 조물락거리는것을 즐기죠.
황당한건 학생들도 헥터의 이상 행동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는겁니다. 오히려 헥터와 한 마음이 되어 성적으로 희롱당하는것을 즐기고 있죠. 헥터는 강제적으로 학생들을 희롱한적이 없습니다. 헥터에게 지목 받은 학생들은 당연하다는듯이 헥터의 바이크 뒷자리에 앉아 헥터의 손에 자신의 성기를 맡깁니다. 어떨 땐 누가 자신의 바이크에 탑승할거냐고 헥터가 물어보면 헥터 마음에 드는 누군가는 자진해서 헥터의 바이크를 이용하죠. 이들은 수치심같은건 내팽개치고 서로 날짜를 정해놓고 돌아가면서 헥터의 소아성애 변태 증세를 부추깁니다. 그래서 옥스브리지 입시 준비생들 여덟명은 전부 다 선생과 동성애 행위를 하고 있으며 선생들은 이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학생들도 전혀 진지하게 사건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죠.
대체 이들이 다니고 있는 영국 북부 지방의 쉐필드 공립 고등학교는 어떤 곳이길래 재학생 모두가 선생과 동성애 행위를 하고 있고 왜 아무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걸까요? 심지어 새로 부임한 인턴 교사도 동성애 기질을 숨기고 있습니다. 재학생들 중 가장 인기가 많은 데이킨은 젊은 역사학 교사인 어윈을 작정하고 유혹하기까지 하죠. 결국 교장 부인의 목격으로 헥터의 바이크 변태 행위는 발각되고 헥터의 교사 생활은 위태로워 집니다. 그는 자격 미달로 교장의 사직 권유를 받게 되고 그토록 자유권을 보장 받으려 했던 문학 수업도 어윈과 공동 수업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이 때 개방적이고 중립적이며 열려 있는것처럼 보였던 헥터의 교육적 가치관도 다른 이들의 수업처럼 독선과 아집에 쌓여 있다는것이 데이킨과의 대립으로 그려지기도 하죠. [모나리자 스마일]에서 캐서린 선생과 조안의 관계처럼요. 헥터 역시 남들을 교화시키려고만 하지 정작 누군가가 자신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헥터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이 발각되고 나서도 그의 변태 행위에 관련된 부분은 별로 진전되지 않습니다. 헥터는 그 때문에 약간 우울하고 학생들도 그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지만 그건 그거고 그들에게 남은 입시 준비를 위해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토론을 하며 지식을 쌓아가는 일은 변함없습니다. 헥터가 해고를 당한다 하더라도 이들의 옥스브리지 진학 준비는 계획대로 진행될것입니다. [히스토리 보이즈]는 극적 드라마로 확장시킬만한 사건들을 전부 피해가고 있죠. 드라마적 긴장감을 비껴간 대신 몰두하는건 수많은 인용을 통해 다양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수업 시간입니다. 특별반 입시 준비생들은 전부 옥스브리지에 합격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동창회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은 헥터를 하반신 마비가 된 어윈과 함께 추억하죠. 이들에게 쉐필드 재학 시절 헥터에게 몇 년 동안 당했던 동성애 트라우마같은건 없습니다. 그저 그 모든것이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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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만 들어보면 이 작품은 대단히 문제가 많습니다. 분명 사회적 문제가 되는 사안인데 반성하고 뉘우치고 깨닫는 부분이 전혀 없으니까요. 윤리적으로도 하자가 많고 상식 밖을 벗어난 인물들의 동성애 행위도 껄끄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보이는것이 전부는 아니죠. 3시간에 육박하는 이 작품은 동성애 소재가 전면에 부각되어 있지만 동성애 물은 아닙니다. 표면적으로 동성애를 중점있게 다루고 있긴 하지만 동성애 부분은 어디까지나 기능적 소재일 뿐이에요. 중요한건 동성애와 그에 따른 윤리적 문제가 아닙니다.
학생들 중 진짜 제대로 된 동성애자는 없습니다. 심지어 헥터도 진짜 동성애자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이 작품엔 총 12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그 중 교장과 유일한 여자 교사인 린톳을 제외하면 모두 동성애 행위를 일상적으로 즐깁니다. 이 작품에선 동성애를 즐긴단 표현이 적절하겠군요. 학생이나 선생들은 서로서로가 동성애 성향을 보이고 행위를 하는것에도 서슴치 않지만 이 때문에 다른 동성애 소재물처럼 그 때문에 좌절을 한다거나 고뇌에 빠지는 일은 없죠. 애초부터 동성애 행위란것을 깊이있게 생각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들에게 동성애는 하나의 놀이 수단일 뿐입니다. 어쩔 수 없는 정체성의 운명이 아니라 갑갑한 입시 제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매개이고 학교와 제도권을 겨냥한 반항의 도구죠.
학생과 교사들은 같은 공간에서 위안이 필요했던겁니다. 동성애는 객기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일 뿐이며 은유의 대상인거죠. 결국에 이들은 제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프레피들이고 옥스브리지에 진학하여 졸업 후 여피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며 금세 기성화되지만 정해진것이나 다름없는 삶에서 박제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서 금기시 되는 동성애 행위를 즐기는겁니다. 이들의 목적은 옥스브리지라는것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공부를 저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학생들은 특별히 학교에서 선별한 우등생들이고 이들은 옥스브리지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니까요. 옥스브리지에 진학하기 위해선 학교의 방식을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다른 [죽은 시인의 사회]계열의 학원물에 나오는 학생들처럼 돌출 행동같은건 하지도 않습니다. 제 시간에 수업에 참석하고 교육 과정을 성실히 이행하죠. 그러나 그 모든것들을 모범적으로 따르고 있으면서도 문제가 있다는것은 늘 느끼고 있으며 환기구가 필요 했던거죠. 그 안에서 애들이 환기구로 써먹을 수 있는게 뭘까요. 제도권의 답답한 교육 방식을 벗어나려면 수업에 대한 반항, 학교를 벗어나야지만 누릴 수 있는건데 옥스브리지가 고등학교 생활의 유일한 목표인 이 애들은 옥스브리지 진학을 포기할 생각 따윈 하지도 않죠. 그리고 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공간은 남고 기숙사 입니다. 동성애 행위는 학교와 사회에 대한 반항의 도구로 써먹기 쉬운 만만한 영역이었던거죠. 그래서 이들이 즐기는 동성애 행위는 순수함이 동반된 놀이일 뿐입니다. 깊이 같은건 없어요. [몽상가들]의 세 주인공들처럼 난잡한 성생활을 통해 잠시의 환각, 유아기의 순수함으로 회귀하면서 현실도피를 꿈꾸는겁니다.
이건 학생이나 교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모두 입시제도의 피해자들이고 이들에겐 탈출구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아무렇지 않게 묘사되는 동성애 부분은 윤리적으로 문제될게 없습니다. 동성애를 특정 목적의 대상으로 활용한것이기 때문에 행위 자체는 중요하지가 않은거죠. 학생과 교사들이 암묵적인 동의 하에 동성애 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면을 보면 제도권 교육의 허상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헥터와 반대되는 성격의 신임 교사 어윈이 후반부에 데이킨의 당돌한 제안에 당황하고 몸둘바를 모르는것은 진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커밍아웃을 말하는게 아니라 어윈도 진정한 참교육이 뭔지 알면서도 사회가 규정해 놓은 입시 제도에 얽매여 올곧게 인지하고 가르치는것을 스스로가 차단한거죠. 데이킨의 유혹은 어윈의 성적 성향을 일깨워주기 위한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어윈에게 내재된 불안과 두려움, 진실을 외면하려는 나약함을 드러내게 해주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어윈은 학교를 떠나서도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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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보이즈]는 한국 공연 소식이 올라왔을 때부터 관심을 가진 작품이었습니다. 해븐에서 파생된 극단 노네임씨어터에 대한 신뢰가 무엇보다 컸고 토니상 후광도 무시할 수가 없었죠. 노네임씨어터가 토니상 작품상 수상한 영국 작품을 연강홀 같은 때깔 나는 공연장에서 올린다면 기본 이상은 해줄거라 믿었습니다. 또한 제가 [죽은 시인의 사회]나 [스쿨 타이]같은 작품처럼 제복 입은 명문고 학생들이 등장하는 학원물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요. 작품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대사량도 엄청나고 상연 시간도 무진장 길었지만 엄청난 대사량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인용구와 열띤 토론을 따라가고 있다 보면 어느새 1막이 끝나고 2막이 마무리 됩니다. 긴 작품이지만 체감 시간은 짧아요.
이 작품에서 논하는 수많은 문제,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시각도 풍부한 텍스트로 살아 있죠. 작품에 쓰이는 역사학과 문학의 변주 방식과 그를 통한 논쟁을 듣고 있다 보면 작가의 배경지식에 감탄하게 됩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를 부대끼지 않게 소화해 내는 배우들의 개인별 연기도 좋지만 앙상블 효과도 근사합니다. 배우들이 극 내내 입고 나오는 교복 맵시가 하나같이 안 나서 이런 류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화보의 매력은 없었고 무대 활용 방식도 투박하기 그지없지만 대본의 힘은 번역극 형식에서도 유효하게 발현되고 있습니다. 화보 기능은 떨어져도 배우들의 기량은 전부 다 뛰어납니다. 처음엔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남학생들이 여덟명이나 나오고 다들 공연계에서 인지도가 약한 배우들이라 얼굴이나 배역 구분도 잘 안 가지만 각 배역의 성격이 선명하고 이야기의 기반이 탄탄해서 거듭 수업이 진행됨에 따라 배역에 대한 인지는 빠르게 흡수됩니다.
처음엔 아이들에겐 참교육을 가르치면서 사생활에선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헥터의 성향과 성격을 보면서 [하프 넬슨]이나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같은 작품도 생각났고 문제가 많은 선생에게 당하면서도 유대감을 놓치 않는 학생들의 태도는 우리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의 결말도 연상됐는데 2막까지 다 보고 나니까 [히스토리 보이즈]는 그런 작품들과는 다른 선상에 놓고 봐야할 작품이더군요. [히스토리 보이즈]란 제목은 적절한 선택입니다. 이 작품에선 쉴새없이 역사를 재평가 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는데 쉽게 공통 분모를 찾기가 힘들죠. 입시를 위해서 하나의 답으로 응축시키지만 실제로 이들이 역사를 배우고 논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그에 대한 입장차는 개인별로 다릅니다. 왜냐하면 역사란것은 그렇게 하나로 요약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죠. 지금도 지난 역사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계속해서 수정되고 있습니다. 보는 이의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지난 역사에 대한 인식은 앞으로도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곧 사람의 삶입니다. 인간의 삶이라는것이 한가지 갈래도 압축된 영화나 소설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규정할 수 있는건 아니죠. 동시대적으로나 후대에서도 신뢰를 받는 역사의 이면을 파헤쳐 보면 완벽하게 구축되지만은 않았다는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세한것까지 일일이 끄집어 내어 성공하거나 실패한 역사에 대한 이중잣대를 들이밀진 않죠. 어떤 특정 사건과 역사적 기록을 평가할 때 우리는 중간지점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모순과 입장차를 정리하게 돼죠. 그렇게 하여 성공한 역사와 실패한 역사를 가려내고 올바르게 분류했다고 믿고 싶은겁니다. [히스토리 보이즈]에서 옥스브리지 입시 준비생들은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역사의 모순을 논하지만 결국엔 그 안에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찾고 균형을 맞추려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배우고 공유하고 토론하는 학생들의 삶도 곧 역사가 돼죠.
이런 이중구조 안에서 불경스럽고 부도덕한 행위를 일상적으로 즐겼던 헥터 선생에 대한 평가는 이들의 삶에 토양분을 제공한 부분이 더 많았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서도 추억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거죠. 헥터에 대한 묘사는 위대한 위인의 치부까지도 전부 담아낸 위인전기집을 읽는것같이 관객을 당황스럽게 만들지만 실체를 부정하거나 미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히스토리 보이즈]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같은 완전체를 본질적으로 거부하는 학원물이지만 진행 방식은 [죽은 시인의 사회]류의 학원물과 같은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은 더욱 혼란스럽고 복잡해졌죠.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소재를 취하면서도 극히 전형적인 방식으로 그 소재를 흡수했기 때문에 작품의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순적인 의미 전달은 도발적인 의미를 던지며 성공적으로 합치됐습니다.
- 공연장엔 [히스토리 보이즈]를 영화로 만든 [굿바이 에이틴]dvd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스페이스111에서 [백년, 바람의 동료들]이 재공연되고 있는데 이 작품은 배우들이 공연장 밖에까지 나와서 배웅 인사를 해주죠. 종연 시간이 [히스토리 보이즈]랑 겹쳐서 배웅 인사 하는 [백년, 바람의 동료들]출연진을 볼 수 있습니다. 인파에 섞이다 보면 [백년, 바람의 동료들]출연진들은 졸지에 [히스토리 보이즈]를 본 관객들에게까지도 배웅 인사를 해주게 돼죠.
첫댓글 이 작품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저도 학생의 시선에서 작품을 바라보고 배웠습니다. 3시간짜리 대학 강의 하나를 들은 기분이었달까요? 다만 2막의 후반부로 흘러갈수록 저는 갈증을 느꼈습니다. 1막은 80분이 30분처럼 느껴졌는데 말이죠.^^
신의 아그네스 님의 배경 지식은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저로서는 엄두도 못 낼 정도네요. 그래서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