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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29일 날씨 맑음
친목모임 22명은 ○○역 근처에서 관광버스 뒷자석에 켭켭이 자전거 22대를 적제하고 11:00시경에 출발하여 잠실롯데마트 앞에 12경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주치의 외 3명은 잠실롯데마트 앞에서 합류하여 부산자갈치시장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수면을 취하기 위해 소등을 하고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하니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03:00시 경에 선산휴게소에서 화장실에 들른 후 휴식을 취한 후 03:15분 경에 부산을 향해 출발하여 05:00시에 부산지하철 자갈치시장역에 도착하여 투어바이크 김재웅 가이드님이 우리 일행을 맞이하고 합류하였다. 인근 식당에서 생선구이 정식으로 조식을 마치고 나니 날이 조금 밝아졌다.
27명(가이드님 포함) 일행은 용두산공원에 오르기로 하고 어둠발을 뚫고 10분쯤 걸어 오르니 이곳이 용두산 공원이다.
용두산공원은 부산의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용두산에 있는 공원으로 부산의 역사를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자 도시민의 휴식처다.
부산지하철 남포동역이나 광복동 극장가에서 건너다 보이는 용두산 쪽으로 10분정도 걸으면 지방 기념물 제25호인 용두산공원이 나온다.
예로부터 소나무가 울창하여 송현산으로 불렸다가 다시 지금의 용두산공원으로 불려지게 되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만평이 넘는 용두산공원 내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 백산 안희재 선생의 흉상, 팔각정, 꽃시계 등이 있고 매년 1월1일에 타종식을 거행하는 부산시민의 종이 있다.
또한 용두산공원의 명물인 높이 120m의 부산타워가 있는데 타워 내에는 전망대가 있어 부산시가지는 물론 맑은 날에는 대마도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개방시간 전이라 전망대에 오르지 못하고 용두산공원을 내려와 부산자갈치 어시장으로 이동하여 멍개, 조개, 민어, 숭어, 아구 등 이름모를 생선들이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주변 경관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도 하였다.
대마도행 배를 탑승하기 위해 부산국제여객터널로 이동하니 현대식 건물이 우뚝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은 해양도시 관문으로서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조성하기 위한 부산항(북항) 재개발의 핵심 시설이라 한다. 5층 복합식 건물로 크루즈여객선이 접안할 수 있도록 2012년7월 착공~2015년1월 준공하였다 한다.
몸풀기 라이딩을 여객터미널 주변에서 수신호에 따라 한줄 라이딩, 두줄 라이딩, 좌회전, 우회전, 멈춤 등을 약 30분 정도 즐겼다.
출국절차를 마치고 대마도 히타카츠항을 향해 오션풀라워호에 승선을 하였다. 09:30분에 배가 서서히 움식이기 시작하여 달려가기 시작하는데 매우 속도감이 느껴졌다. 물위에 떠서 달리는 배라서 승선감도 좋았다. 1시간 10분만에 히타카즈항에 도착하였으나 적은 직원으로 입국 절차가 까다롭고 지문까지 찍어야 하니 1시간 정도 소비하였다.
대마도는 일본 나가사키현에 속해 있는 면적 709.1㎢로 제주도가 1,847㎢이니까 제주도의 약 1/3 정도 되는 섬이다. 인구는 약 31,000여 명라고 하는데 인구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라고 한다. 부산에서 49.5㎞ 정도의 거리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곳이라 한다.
히타카츠항은 마치 우리나라 시골 읍내 버스터미널을 연상케하는 국제페리터미널이다.
히타카츠항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나가사키 짬뽕으로 점심식사를 하려 했으나 정기휴일이라 불발, 또한 일본은 철저한 예약제라 한다.
다른 식당에서 밥으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미우다해수욕장으로 라이딩을 시작하여 오르락 내리락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미우다해수욕장은 1996년 일본의 해변 100선에 선정된 해수욕장이라 한다. 우리나라 부산에서 약 50㎞ 밖에 안되기 때문에 여름이면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보내러 오는 곳이라 한다. 바다 가운데에 있는 온천공에서 솟아나는 온천수 때문에 해파리가 많이 서식하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리아스식 해안이 포근히 감싸 안은 조그만 해수욕장으로 해수가 잔잔하고 주변 풍광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미우다해수욕장을 뒤로하고 한국전망대를 향해 라이딩을 하는데 조금 힘이드는 UP-HILL이 있었으나 짧아서 다행이었다.
한국전망대는 부산과의 거리가 50㎞도 되지 않아 날씨가 맑은 날은 부산시내가 그대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이다. 아쉽게도 시계가 좋지 않아 부산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전망대에 걸려있는 부산시내 야경 사진으로 대리 만족을 하였다.
전망대 건물은 1997년 5월 7일에 낙성식을 한 건물로 입구 정문은 부산 중앙동 구국제여객터미널 입구 정문을 모델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을 택한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대마도에 잡혀온 우리 선조들이 명절 때가 되면 이곳에 오르곤 했다고 한다.
바다 건너 저쪽에 바라다 보이는 고향땅을 향해 망향의 설움을 달래던 곳이기 때문에 부산이 보이는 언덕에 한국전망소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팔각정은 한국인에게 자문을 구하여 서울 탑골공원에 있는 팔각정을 모델로 하는 것이 가장 한국적이라는 건의를 받아드렸고 재료도 한국에서 공수하여 건축물을 완공한 후 그 이름도 한국전망소라 명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망대에 올라오기 전에 보이는 순국 추모비가 있는데 1703년 조선통신사 일행이 폭풍을 만나 대마도 앞바다에서 108명이 목숨을 잃은 것을 추모하는 비라고 하는데 당시 일본에서 한국의 조선통신사에 대한 의미가 컷기 때문에 이렇게 순국비를 세워주었나 보다.
한국전망소를 뒤로하고 숙소인 화해장(花海莊)에서 오늘의 라이딩 마침표를 찍었다.
화해장에서의 저녁 만찬은 아래와 같은 메뉴로 식사를 하고 꿈나라로 향하였다.
2016년 3월 30일 수요일 맑음
아침 일찍 일어나 화해장(花海莊) 후원을 걷다가 조식을 마치고 기념 촬영을 한 후 충분한 식수 보충을 하고 루루랄라 대열을 형성하여 화해장 호텔을 나와 라이딩이 장시간 이어진 끝에 UP-DOWN이 계속 이어지고 터널을 지나 동네 길가 한가운데에 있는 '긴의 장수 은행나무' 크긴 크지만 참 볼품없이 서있는 은행나무, 고난의 흔적이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다. 1798년 낙뢰를 맞고 가지가 꺾이고 나무 안이 타고 1950년 태풍 29호로 기둥 나무가 부서졌다고 하는데 나무가 죽지 않고 아직도 살아있는 은행나무라 한다.
보조물들로 겨우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는 은행나무는 1500년 전의 백제로부터 전해진 은행나무로써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긴의 장수 은행나무’ 높이가 23m 둘레가 12.5m라고 하니 죽지 않고 더 오래 살아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남기고 와타즈미 신사를 향해 라이딩을 계속하는데 비슷한 형태의 UP-DOWN이 계속되고 터널을 지나는 해안 굽이굽이 길이 재미를
더해주었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아라 하지 않았던가!
‘미네쵸 훼밀리 파크’ 뜰에 퍼질러 앉아 도시락으로 점심을 꿀맛 같은 입맛으로 품나게 한끼 때우고 휴식을 취한 후 와타즈미 신사로 향하였다.
와타즈미 신사는 쓰시마의 대표적인 해궁 신사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로서의 가치있는 곳이고, 우리나라에도 의미가 있는 곳이라 한다.
신사라 하면 먼저 편견이 생길 수 있는데 일본 전역에 있는 약 8만 5천 개의 신사에서 모시는 주인공이 마한, 진한, 변한, 상고구려, 백제, 신라, 고구려, 가야, 고려, 조선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일가를 이룬 창시자로 약 90%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우리 조상으로 보면 된다고 하는데 와타즈미 신사 또한 금관가야 시조인 김수로왕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와타즈미 신사는 일본 천황가가 시작된 해궁전설이 있는데 신사 안에 와타즈미 설화가 있는 곳이라 한다.
축약해 보면 하늘의 형제 신들이 낚시를 하다가 낚시 바늘을 떨어뜨렸고 해신의 도움을 받기 위해 내려왔다가 용궁의 바다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되고 출산을 위해 마련한 곳이 바로 와타즈미 신사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도 공주는 나오지 않고 아이 울음소리만 들리자 안을 들여다 보니 웬 구렁이가 아이를 낳고 있었고 남편과 눈이 마주치자 아이를 두고 도망 갔다고 한다.
공주의 이모가 이 아이를 키우게 되고 공주의 이모와 이 아이가 자라서 눈이 맞아 아이를 낳게 되는데 그 아이가 바로 일본의 1대 천왕이라는 전설이라고 한다.
와타즈미 신사의 특징으로 5개의 도리이가 일직선으로 바다 아소만 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도 특징인데 5개의 도리이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이 있는 김해를 향하고 있는데 김수로의 자손이 대마도에 건너와 세웠다는 설이 신빙성이 더욱 가는 방증이기도 하다.
5개의 도리이는 인간의 세속 5욕으로부터 해탈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세속 5욕은 식욕, 재물욕, 수면욕, 성욕, 명예욕이라고 한다.
와타즈미 신사에서 약 2㎞ 산 정상에 ‘예보시타케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은 힘든 UP-HILL 코스로 숨이 턱밑까지 차오로도록 거친 콧바람을 내품으며 페달질하여 전망대에 오르니 무한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예보시타케 전망대는 쓰시마 내에서는 유일하게 360도 동서남북 사면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몇 겹의 산과 바다 위에 떠있는 크고 작은 섬들, 아소만이 보이는 바다 풍경, 우리나라 남해의 다도해를 보는 듯한 풍경, 마치 베트남의 하롱베이에 가 있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안 등 그 웅장한 자연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전망대에서 맑은 날에는 대한해협 너머로 한국의 산들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DOWN-HILL을 안전하게 내려와서 또 다시 라이딩은 계속되어 해안가를 굽이굽이 돌아 달려가는데 작은 어촌 마을에서 초등학교 3, 4학년 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니 우리 한국사람이 많이 살고있다는 것을 연상케하였다.
'만제키다리'가 있는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식수 보충을 하고 만제키다리 위에서 기념 촬영을 하였다.
만제키다리는 만제키 세도 위에 놓여서 상대마도와 하대마도를 연결하는 교량이다.
만제키 세토는 1900년 일본 해군이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해서 섬의 가장 좁은 곳을 뚫어 만든 인공 운하라고 한다. 대마도는 원래 이렇게 상, 하 두 섬으로 뚝 떨어져서 나뉘어진 섬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만제키 세토를 인공적으로 뚫으면서 상대마도와 하대마도로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다리는 3번째 바뀐 것으로 1996년에 건설된 다리라고 한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아소만의 풍경도 멋있지만 간조시에는 조류의 소용돌이가 생겨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야말로 절경이라고 하는데 우리 일행이 도착하여 봤을 때는 소용돌이고 뭐고 파도 한점 없이 잔잔해 보였다.
이곳에서 질 좋은 대마진주가 양식되어 생산된다고 한다.
만제키다리를 뒤로하고 완만한 UP-DOWN이 계속 이어지는 해안도로 주변의 어촌 마을들 평화롭게 느껴졌다. 마지막 터널 하나를 지나니 숙소가 있는 그랜드 호텔로 향하는 조그만 UP-HILL을 하고 나니 오늘의 종착지 그랜드 호텔이 반겨주었다. 이곳에서 자전거를 정리하고 버스로 약 10km 정도 되는 이즈하라로 향하였다. 이즈하라에는 대마번주종가묘소가 있다.
이곳은 역대 쓰시마 번주와 그 일족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일본 3대 묘지 중 한 곳이라고 한다.
반쇼인에는 크게 상, 중, 하로 구분된 묘역(御靈屋)이 있다. 상(上) 묘역에는 19대 소 요시토시(1568~1615)로 부터 32대 소 요시요이(1422~1494)까지의 역대 번주와 부인의 묘가 있다.
중(中)묘역 상단에는 제10대 소 사다쿠니의 묘지가 있고, 별도로 측실과 유아(幼兒)들의 묘지가 있다. 하(下)묘역에는 일족들의 묘지가 있다. 역대 영주 14명과 관계자 등이 묻혀있는 것이다.
반쇼인 묘역 중단에 덕혜옹주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소 오다케유키’가 재혼한 일본인 처의 무덤이 있다.
‘소 요시토시’의 무덤이 가장 먼저 이곳에 자리 잡은 조상임에도 그의 묘지가 가장 작다. 임진왜란 당시 대마도는 가장 궁핍하고 피폐한 상태였기 때문이란다.
일본 대마도 반쇼인(묘역) 스기나무(삼나무)
히쿠간기 맨 위에 올라서니 밑둥치보다 위쪽이 더 큰 거대한 스기나무가 서있다.
나가사키현에서 지정한 1200년 된 천연기념물 스기(衫)나무도 우뚝 세월의 두께를 대변하고 있다.
스기나무(삼나무)는 둘레가 7m 높이 40m의 거목으로 반쇼인 창건 이전부터 이미 있었던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라 한다. 고목이지만 나무는 튼실하고 아직도 푸른 잎이 무성하다. 스기나무가 반쇼인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일본서기의 ‘신대(神代 )’에 보면 ‘스시노오노마코토’라는 신이 있는데 ‘내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에 배가 없어서는 안될 일이다‘라고 하여 자신의 수염을 뽑아 흩어지게 하니 삼나무가 되었으며, 가슴의 털을 뽑아 흩으니 편백이 되었다.
이에 ‘삼나무는 배를 만드는데 쓰고 편백은 서궁(瑞宮)을 짓는 재료로 하라’고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한다.
삼나무는 아득한 옛날부터 일본의 개국신화에 나올 만큼 그들이 자랑해 마지않는 일본 나무라고 한다.
이처럼 그들의 시조 신(神 )이야기는 물론 히이쿠(俳句)를 비롯한 문학작품에까지 삼나무는 빠지지 않았다. 그만큼 일본에서는 흔한 나무이면서 동시에 나무로서 좋은 점은 다 가지고 있다고 한다.
줄기는 곧바로 집단으로 모여서 아름드리로 잘 자라며 없어서는 않될 만큼 쓰임새가 넓다고 한다. 삼나무는 섬나라인 일본에서 꼭 필요한 배 만들기를 비롯하여 집을 짓고 각종 생활도구를 만드는 신이 내린 축복의 나무란다. 삼나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련만 불공평하게도 하느님은 편백, 화백, 금송 등 좋은 나무를 또 보태어 일본열도에만 심어주었다고 한다.
다시 그랜드호텔 숙소로 돌아온 우리 일행은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만찬장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일본은 개인별 몫으로 반찬, 생선회 등이 따로 차려지는 일본문화를 위생상 배워야할 음식문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찬 후에 일본 전통의상 차림으로 단체 기념 촬영을 하고 속소로 돌아가 대중탕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꿈나라로 향하였다.
2016년 3월 31일 목요일 맑음
아침 일찍 기상한 회원들은 호텔 후원을 거닐며 활짝 만개한 벚꽃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07:30분에 조식은 밥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충분한 식수를 보충하고 무거운 짐과 큰 배낭은 버스편으로 보냈다.
출발전 호텔 밖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그랜드 호텔이여! 안녕하고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 가는데 만제키다리 조금 지나 우회전하여 해안도로 접어들어서니 비교적 UP-DOWN이 덜한 느낌이 드는 아기자기한 해안길을 따라 라이딩은 계속되었다.
09:00시경에 출발하여 2시간 30분 후에 ‘슈시 산림공원’ 10km 정도의 삼림길 '가이도코로(飼所)' 숲길 양쪽에 편백나무, 측백나무, 전나무가 빽빽히 들어서 공기가 아주 좋고 피톤피드가 풍부하여 나도 모르게 몸이 가뿐해짐을 느낄수 있었다.
대마도 북섬 ‘슈시 산림공원’은 100년간 조림된 울울창창한 삼나무, 편백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저 있는데 현재는 임업 간벌이 중단된 상태라 달리는 차를 거의 만날 수 없어서 질주 본능이 느껴졌으나 숲길을 빨리 달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길임을 느꼈다.
어느새 거대한 숲길에 빠져들었다. 키 큰 삼나무, 편백나무가 하늘을 뒤덮었다. 길이 어두컴컴할 정도다. 검붉은 몸피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워낙 빼곡하다보니 신령스런 느낌이 들 정도다. ‘가이도코로 임도’ 코 끝을 알싸하게 자극하는 특유의 향내를 즐기며 느릿느릿 페달을 저었다. 1시간도 넘게 숲길을 달렸지만 지나가는 차를 거의 맞닥뜨리지 못했다. 마주치거나 뒤따라오는 차량에 신경을 쏟거나, 짜증나는 경적을 들을 일이 없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여기서 하루종일 오르락 내리락 라이딩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모미지가이도(단풍길)'가 7km에 걸쳐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이 또한 장관을 이룬다고 하는데 우리가 라이딩하는 길은 가을 단풍길이 아니라서 단풍기의 진맛을 느낄 수는 없었다.
이렇게 해서 '가이도코로(飼所)' 숲길과 '모미지가이도(단풍길)' 약 17km의 슈비 산림공원 길을 내 일생 중에 또 다시 언제 라이딩할 수 있을까 정말 아쉬운 시간이 과거가 되어버렸다.
히타카츠항에 도착하여 인근에 있는 음식점에서 우동으로 식사를 마쳤으나 부족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제 휴일이었던 음식점으로 이동하여 먹어보지 못한 나가사키 짬뽕으로 점심식사를 포만감을 느끼도록 먹고 나왔다.
여행 중에 대마도는 일본 땅이면서 한국에 점령 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승합차 운전기사 한 분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말에 서울에서 왔다고 했더니 손을 흔들어 주며 반겨주었다.
대마도 관광객의 90%가 한국인이라 대마도에서 활기차게 다니는 사람은 모두 한국인이었고 대마도 재정에서 한국 관광객의 의존도는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대마도는 이미 우리나라 영토인 듯 느껴졌다.
귀국하기 위해 여객터미널 쪽으로 라이딩으로 이동하여 여권과 승선표를 받아들고 출국 절차 후 다시 오션플라워호에 승선을 마쳤다.
15:40분이 되니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여 부산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었다. 배가 물위에 떠서 가기 때문에 빠르고 요동이 없었다.
16:50분에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하여 입국 절차를 10여분만에 마치고 관광버스에 자전거를 올 때와 같은 방법으로 켭켭이 올려 적제하고 17:30분경에 부산을 출발였다
무엇보다 무사고로 즐겁게 라이딩을 마친 회원님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안전하게 가이드를 하신 ‘투어바이크 김재웅’ 가이드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모두 항상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시길 기원드립니다.
20016. 04. 02
주치의 씀
삭제된 댓글 입니다.
즐겁게 다녀온 곳 remind 하기 위해 정리해 본 글입니다.
마을 이름. 도로 이름 등을 모르는 제약 때문에 섬세하게 표현하지 못한 글 재미있었다 하니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