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쓴 '미지(未知)의 신(神)에게'
니체는 그의 ‘즐거운 학문’(85절)에서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찬양한다. 그들은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선한 자, 위대한 자, 도취된 자, 기뻐하는 자, 행복한 자, 현명한 자로 느끼게 만든다고 알려진 모든 사물과 상태들을 찬양한다.’라고 시인의 역할을 정의하고 있으며, 그 자신도 말년에 이르기까지 시 쓰기를 중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그의 대표작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는 아름다운 산문시로 불립니다. 천재들의 재능은 일찍부터 발현되나 봅니다. 조지 오웰은 다섯 살 때 첫 시를 썼다고 합니다. 니체 또한 열네 살에 쓴 ‘나의 삶’이란 글에서 네 살 때 아버지의 장례식을 경험하면서 상실감과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1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줄어들기보다는 더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고 썼습니다. 그가 대학을 입학한 1864년 20세의 나이에 쓴 ‘미지의 신에게’는 그의 초기 작품 중 가장 훌륭한 시로 여겨집니다. 무신론자로 알려져 있고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그가 과연 이런 시를 쓸 수가 있었는지의 의문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진정 무신론자였을까요? 마치 이 땅에서 기독교가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모습과 같이, 혹 그는 19세기의 부패하고 타락한 유럽교회가 숭배하는 그런 신이 죽었다고 하지 않았을까요? 니체의 선조들은 17세기 초반부터 루터교 가문이었으며 그의 아버지,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도 모두 목사였고 어릴 때부터 경건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사실이 그 후 반종교적이 되었다는 논란도 있지만, 20세에 쓴 이 시는 어쩔 수 없이 신에게 다가가려고 몸부림치는 외로운 영혼의 고백을 엿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가 쓴 ‘나의 삶’에서 14살의 소년 같지 않게 놀라운 정도의 종교적 감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기쁨과 슬픔, 즐거운 일들과 슬픈 일들을. 하지만 이 모든 것 속에서 신은 아버지가 자신의 약하고 어린 아들을 인도하듯 안전하게 나를 이끌어 주셨다. 내 마음 속에서 영원히 그분의 종이 되겠다고 확고하게 결심했다. 주님께서 나의 이러한 뜻을 실행할 수 있는 강인함과 힘을 주시고 인생의 길 위에서 나를 보호해 주시기를! 어린아이와 같이 그분의 은혜를 믿는다. 그분은 우리 모두를 보호하사 어떠한 불행도 우리를 덮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대신 그분의 성스러움이 행해질 것이다! 그분이 주시는 모든 것을 나는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행복과 불행, 가난과 부귀를. 그리고 대담하게, 죽음조차도 정면으로 바라볼 것이다. 죽음은 언젠가 영원한 기쁨과 자복 속에서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 줄 것이다. 오! 주여, 당신의 얼굴이 우리를 영원히 비추게 하옵소서! 아멘!’ 어린 나이지만 이러한 니체의 고백은 그 당시 그를 둘러싼 종교적인 가정환경에서는 자연스러운 발로인지도 모릅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는 전도서기자의 말씀을 확인하는 듯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지의 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을까요? 세상이 너무 악해서일까요? 아니면 교회의 세속화가 걸림돌이 된 것일까요? 혹 세상이 선하고 정직하게 작동되면 교회의 성결회복이 자연스레 따를까요? 서구의 기독교가 무기력해진 것은 교회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답’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말은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쉽게 세속화되어왔기 때문입니다. 폴 존슨의 ‘기독교 역사’에 보면 3세기에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는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기독교성직자들에게 공적인 의무를 면제해주었고, 도시 지역이 아닌 곳에서는 세금을 면제해주었다. 이와 같은 정책은 국가, 즉 세속권력이 영적인 권력을 보증해주는 것을 의미했다. 국가가 성직자 계급에게 호의를 베풀기 시작하자 성직을 지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성직자신분은 순식간에 한층 높아졌다. 이에 비해 성직자들의 세속적인 욕심도 커져 탐욕에 불붙어 야망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주교직은 오랜 기간 동안 검증받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이들에게 주어져야한다는 공의회의 문서에도 불구하고 세례 받은 후 8일 만에 주교가 되고, 평신도에서 곧 바로 주교로 임명되기도 할 뿐 아니라 곧 바로 교황이 되기도 하였다. 4세기 후반에는 기독교성직자들이 부를 축적한 것과 교회건물의 화려한 모습에 대해 불평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기독교 사상가들은, 교회당 벽은 금으로 빛나고 있고 천장과 기둥머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탄식하였다.’ 이처럼 교회의 역사적인 세속화는 곧 성직자들의 타락을 의미합니다. 검증받고 존경받는 대상이 목사로 임명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며, 하나님으로부터의 인정받기보다는 세상권력에 줄서기를 즐겨하고 화려한 교회당을 세우는 탐욕스런 모습은 어느 목사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낙망하지 않는 것은 전도서기자가 한 다음 말이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
이제 대림절이 끝나가고 다음 주일이면 주님 오신 날이 다가옵니다. 이러한 때 저들은 우리 공동체에서 앞장선 분들에게 면직과 출교를 행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요한복음 9장22절에서 예수님에게 고침을 받은 맹인의 부모에게 바리새인들이 찾아와 예수가 누구인지를 다그쳐묻는 상황을 연상케 합니다. 즉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 함이러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서 진리를 말하고 시인하는 공동체를 저들은 두려운 모양입니다. 이는 기득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바리새인들의 두려운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이러한 교회들의 행태가 많은 불신자들이나 독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미지의 신’을 멀리하도록 만들지 않았는지 생각해봅니다. 이제 그의 시 ‘미지의 신에게’를 소개합니다. 하나님에 관심이 없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젊은 니체가 고백한 ‘구도자(求道者)의 고민’을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미지(未知)의 신(神)에게
-프리드리히 니체- 옮긴이 미상
발길 멀리 떼어놓기 전에
눈길 멀리 던지기 전에
다시 한 번 외로움에 몸 둘 바 몰라
두 손길 들어 당신께 비옵니다.
당신을 피함은 다가감이라
은밀히 마음 깊은 곳에 당신을 위한
축제의 제단을 마련합니다.
어느 때 일지라도
당신의 목소리가 나를 다시 부르게 될 때
거기 깊이 새겨진 말씀이 뜨겁습니다.
그 말뜻은 <미지(未知)의 신(神)에게>나
나는 그의 소유, 비록 내가 독신자(瀆神者)의 무리 손에
이 시간까지 섞여있을지라도
나는 그의 것, 나를 어쩔 수 없이 끌어당기는
덫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달아나려고 해도
꼼짝없이 그를 섬기게 만드는 올가미
당신을 알고 싶습니다, 미지의 당신
내 심경 속 깊숙이 파고든 당신을
내 목숨을 폭풍처럼 정처 없이 떠돌게 하는 당신
알 수 없는 당신, 그러면서도 가게 하는 나의 혈연!
당신을 알고 싶습니다.
몸으로 당신을 섬기고 싶습니다.
첫댓글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