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컬럼이니 “마지막: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하면 너무 쌩뚱 맞을까? 어제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말씀하셨다.
“여러분, 죽음을 생각해보세요.”
필자는 아직 죽음을 적나라하게 느낄 나이는 아니었기에 사실 그 이야기를 듣고 멀뚱멀뚱 별 감흥이 없었다. 조금 뒤 목사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목사님 남편의 친구 이야기였는데, 미친듯이 돈을 위해 살다가 갑작스러운 암 말기 판정을 받고 “한달 안에 죽음을 준비하라”는 통보를 받으셨다고. 그때 절실하게 느꼈던 심경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죽으면?’
‘나는 좁디 좁은…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관속에 넣어지겠지. 관은 땅 속 깊이 들어가겠지. 가족들은 내 장례식장에 와서 엉엉엉 울겠지. 울다가, 울다가, 관 위에 꽃을 던져 주고 나에게 인사를 하겠지. 삽으로 흙을 떠서 관 위에 뿌리겠지. 그리고 장정들이 와서 끝까지 흙을 채우겠지. 그리고, 가족들은 집으로 가겠지. 그럼…그럼…나는? 나는?’
죽음의 공포를 어마어마하게 느껴 다 큰 아저씨가 꺼이꺼이 아기처럼 울었다는 애달픈 이야기로 설교는 시작되었다. 죽음은 워낙 중요한 화두이기에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지금 우리는 ‘한눈에 보여지게 말하는 것’이 화두이기에 여기에선 그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겠다.
죽음을 생각해보세요 Vs 좁디 좁은 관속에 넣어지겠지. 관은 땅 속 깊이 들어가겠지. 가족들은 내 장례식장에 와서 울겠지. 울다가 관 위에 꽃을 던져 주고 나에게 인사를 하겠지. 삽으로 흙을 떠서 관 위에 뿌리겠지. 그리고 끝까지 흙을 채우겠지. 가족들은 집으로 가겠지. 그럼… 나는?
첫 번째 ‘죽음’은 ‘감흥이 없는 단어’로 내게 왔지만, 두번째 ‘죽음’은 미친듯한 공포가 몰려오는 ‘실제적 단어’로 내게 다가왔다. 차이는 한눈에 그려지도록 이야기를 했느냐 안했느냐에 있다.
신영씨, 상상해보세요
‘어머, 내가 뭐에 홀렸었나봐’라고 느낄 때가 있다. 실컷 협의를 마치고 분명 “No”를 했어야 할 사안에 “Yes”를 하고 돌아와서 ‘어머, 내가 미쳤지. 바쁜데 왜 이렇게 무리해서 한다고 했지?’ 곱씹어보면 나를 그렇게 만든 분들의 공통점이 여럿 있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제안하신 것이 마치 실제 실현된듯 상상하게 만드는 스킬, 좀 더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면 뭐에 홀린 듯 그 말에 따라가도록 말하는 기술이다.
1971년 2.5g 아주 작은 탁구공 하나가 중국과 미국 사람들의 마음을 왔다갔다 하다가, 차디찬 그들의 마음 속 얼음을 깨고 하나되게 했던 ‘핑퐁 외교’를 기억하시는지? 핑퐁 외교처럼 음악으로 남북한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작지만 강한 음표들을 엮어 ‘남북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준비 중이신 원형준 대표님과 이야기할 때면 이것에 대해 자주 느끼게 된다.
남북 청소년 오케스트라 준비 차, 세계적인 거장 지휘자 마에스트로 샤를 뒤투아 오케스트라에 초대되어 갔을 때 연주를 보고 듣다가 문득, ‘아, 너무 당연해서 우리가 잊고 있는 게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뭐냐면 연주를 하든, 지휘를 하든, 당연히 다른 소리를 먼저 들어야 나의 소리를, ‘우리’의 소리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북한이 대화를 하더라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우리의 하나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을 터, 우리는 서로 내 이야기만 하느라 바빠 듣기는커녕 단절이 되었구나.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와 다른 소리를 먼저 듣고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가는 <We Listen First: 우리는 먼저 듣습니다> 의 자세가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남북한 오케스트라 Vs <We Listen First: 우리는 먼저 듣습니다>
이는 단순히 남북한 이야기뿐 아니라, 나와 너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 필요한 메시지일 수 있다. 예를 들어 -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해야 안심이 되는 남과 여, - 서로가 서로에게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 청소년과 어른, - 때론 같은 집에 살지만 같이 살 수 없는 부모와 자녀, - 같은 이불 속 맘이 통하지 않아 각자 외로운 아내와 남편, - 심지어 한 가족인데 60년 동안 이야기를 하지 않은 남과 북, - 때론 서로를 위해 존재하지만 서로 비판하기에 바쁜 시민과 국가, - 우리와 피부색만 다를 뿐인 다민족
<We Listen First: 우리는 먼저 듣습니다> 함께 살지만 함께 살지 않는 이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메시지,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대표님께 지금 만들어가시는 남북한 오케스트라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를 할 때 이 메시지를 필두로 다니시면 좋겠다고 권해드렸다. 이 메시지를 받고 영감을 받으신 대표님께서 말씀하셨다.
“신영씨, 전세계 돌아다니기 전에, 이런 거 어때요?”
신영씨, 상상해보세요!
2013년 10월 1일 판문점에서 60년 내내 서로 바라만보고 있는 군인들이 있는 그곳에서, 그 판문점 선에서 남한의 바이올리니스트 000, 북한의 첼로리스트 000, 베토벤 교향곡 0번을 서로 준비해오는 거죠. 둘은 한번도 연주를 맞춰본 적이 없지만 함께 연주를 하는 거예요. 어떻게 하느냐, 처음 만난 그 둘이 함께 연주하기 위해 필요한 건? We Listen First! 서로의 소리를 먼저 듣고 조율을 하고는! 연주를 시작하는거죠. 빰빰빰빰….”
이야기를 듣던 나는 침을 꼴깍. 하고 말았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음악이 울러 퍼지고 판문점에 서로 바라만보고 있던 군인들, 그 음악을 연주하는 두 분의 마음까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히려 나는 덧붙였다. “그리고 둘의 연주는 다음달에는 4중주로 확장되고, 그 다음년도에는 남북한 청소년 오케스트라 각각 41명씩 참여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이어지는 거예요!”
“2013년 10월 1일 판문점에서” 란 대표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의 머릿속에는 60년간 지워지지 않았던 줄이 그려졌고,
“60년 내내 서로 바라만 보고있는 군인들이 있는 그곳에서” 말씀을 들으면서 그 줄에 60년간 아무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 군인들이 마음 아프게 떠올랐다
“남한의 바이올리니스트 000, 북한의 첼로리스트 000…” 에선 처음 만났지만 먼저 서로의 소리를 듣고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가는 두 사람이 그려졌다.
심지어 내 맘 속에는 이 음악을 시작으로 핑퐁외교처럼, 마음 속의 줄을 지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지도가 그려 지기도 했다.
<We Listen First: 우리는 먼저 듣습니다> 서로 먼저 듣는다는 걸 가만히 곱씹다 보니, ‘아, 어쩌면 귀가 두 개인 이유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라는 거 아닐까? 사랑하는 마음은 귀 두 개로 만들어지는구나(Listening + Listening = Love)’를 깨닫게 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이란 그림을 잘 그려주는 사람, 안 그려줘도 머릿속에 들어있는 연결고리가 많아서 자기가 스스로 그리면서 들어주는 사람일 것이다. 물론 우리끼리만 OK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판문점을 지키고 계신 중립국 감독 위원회 스위스 대표 우르스 게르버 소장님께 이런 계획을 말씀 드렸더니 그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식탁 위에 젓가락으로 선을 그으며
"바로 이곳에서 남북한 평화 음악회를 열자." 제안 하셨다고. 그냥 하자는 것보다 이렇게 “식탁 위에 선을 그으며” 말씀하시는 것이 상대방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을 그리는 법. 매일경제 2013.09.12 신문에 <젓가락으로 식탁에 선 그으며 "여기서 평화음악회를 열까요"> 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났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아주 좋은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이 계획은 여러가지 상황으로 안타깝게도 남한, 북한 함께 하지 못하고 이번에는 남한측만 (피아니스트 김정권 부산대교수님과 바이올리니스트 원형준님, 첼리스트 강혜지님, 테너 김세일님) 함께 2013.10.01에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NNSC) 내 스위스클럽에서 열렸다. 계획 실패가 아니라, 작은 시작점, 씨앗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리하면, 한눈에 그림이 그려지는 말의 포인트는 “내가 기획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기획하여 “실행된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그리하여 상대방이 최대한 상상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핵심이다.
별 감흥없는 딱딱한 계획만 이야기하기보다 실제 실행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도록, 객관적인 요소들만 이야기하기보다 주관적인 상황을 상상할 수 있도록, 아, 물론, 이건 시간이 허락될때, 상사의 스타일이 허락할 때 지혜롭게 써먹으시길!
Parsons School of Design 졸업 Nailgun*, NY motion graphic design Nth degree, NY motion graphic design Enspire, 한국co-founder Lindsaykingdom 대표, motion/graphic/illust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