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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후 딱 3년 만의 재공연이죠. 연극계에서 숱하게 올라오고 사라지는 단기 초연 공연의 궁핍한 현실을 알기 때문에 지난 3년 동안 연극 [에이미]의 재공연을 기다리는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으론 재공연 됐으면 하는 일말의 희망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3년 전 초연에 대한 기억이 굉장히 강렬했기 때문에 또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가 아니라 3년 전 초연을 결국엔 못 보고 놓친것에 대해 지금까지 안달이 나 있었거든요. [에이미]는 그 당시 정말 보고 싶었던 연극이었어요. 공연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끌렸죠. 간단하게 올라온 소재와 내용은 제가 선호하는 극적 구성이었고 이런 류의 번역 가정극을 원체 좋아해요. 또한 한국 공연용 홍보 사진과 포스터에 대한 매력이 저에겐 자성처럼 당겨졌어요.
그런데 결국엔 지나 보내고 말았죠.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초연한 [에이미]는 당시 2주 조금 넘는 일정으로 공연이 진행됐으니 짧은 공연기간이긴 했어도 두번 이상의 주말과 평일을 골라가며 볼 수 있었어요. 작품을 접하려면 얼마든지 접할 수 있었죠. 그러나 당시 도무지 시간이 안 났고 맞추기가 힘들었어요. 무리하면 볼 수야 있었겠지만 그럴 만큼 공연을 관람해야 할 절박한 이유까진 없었죠. 그러나 공연 기간 내내 호평이 줄을 이었고 종연 후 수상 실적도 좋았으며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칭찬과 작품에 대한 호의적인 언급은 못 보고 지나친 아쉬움을 부채질 하는것이었습니다.
안달났는데 못 보고 지나쳐서 입맛 다시게 되는 작품들은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계속 그 작품에 대한것들로 머릿속이 지배당하기 마련이고 관련된 기사와 소식들이 유독 눈에 잘 들어오게 되죠. 이런 공연들일수록 주변에서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3년 전 [에이미]를 못 본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시간을 쪼개서 봤으면 어땠을까 하며 볼 수 있었을 상황을 가정하며 뒷북이나 치는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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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성 초연으로 끝나는 연극 작품이 많아서 언제고 재공연 됐으면 좋겠단 바람은 했지만 기대는 안 했는데 3년 만에 재공연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그것도 명동예술극장의 후광을 업고서요. 이번 공연은 다행인것이 김영민을 제외한 나머지 배역은 초연 때 출연진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재공연 기획입니다. 반가웠어요. 윤소정을 주축으로 초연 프러덕션이 거의 80프로 이상은 재공연에서 재현되는것이니까 초연 때의 완성도와 그 당시 관객들이 느꼈던 감흥이 재연에서 휘발될 위험은 낮았죠. 초연 때와 다르지 않거나 더 나은 작품을 보고 싶은것이지 초연 때와 비교당하며 단점을 드러내고야 마는 재공연 관람은 흥이 떨어집니다. 명동예술극장에선 [고곤의 선물] 재공연이 그러한 예였죠. 정동환이 빠지니 사방에서 불만 투성이였고 작품도 맹탕이 되어버렸다는게 중론이었습니다.
초연, 재연을 떠나서 윤소정 주연작이라는것에도 이번 공연은 희소가치가 있습니다. 윤소정은 올해 한국 나이로 일흔입니다. 과연 윤소정이 지금처럼 언제까지 연극 무대에 설 수 있을까요? 윤소정의 연극 무대를 접하는건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운 일이 됐어요.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윤소정의 무대극 출연 행보를 보면 그녀는 심히 과작이었습니다. 1~2년에 한편씩 소화하곤 했죠. 연극배우의 출연 회전 주기로 봤을 때 가뭄에 콩나듯 출연했던겁니다. 반면 t.v드라마 출연이나 영화 쪽은 연극 무대에 서는것보다 편수가 늘었습니다. 양쪽 겸업하는 이 나잇대 중견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방향이죠. 윤소정은 배우가 뿜어내는 원초적인 화려함과 원색적인 매력으로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노쇠한 배역이나 모성애를 강조하는 신파 어머니상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편의상 중견 배우라 하는것이지 이제는 노배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배역폭도 좁아지고 나이에 따른 한계도 있습니다.
연극은 체력적으로 뒷받침이 돼야 하는 분야니 전처럼 무대 위주의 활동을 고수하긴 어려울거에요. 다행이 윤소정은 지난 10년 동안의 출연작들이 평균 이상은 해서 과작이란 느낌은 별로 안 들어요. 출연 목록을 보면 그때서야 실제로 출연한 작품이 적다는걸 알게 되죠. 작품 운은 무진장 좋지만 막상 결과물에선 별 볼일 없는 연기를 보여줘서 매 작품마다 푸념을 사고 있는 근래의 손숙과 달리 연기도 다 괜찮았고요. [블라인드 터치]같은 작품에선 정말 매력적이었죠. 그러나 나이가 나이다 보니 이제는 모처럼만에 출연하는 연극들이 마지막 무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누구처럼 은퇴, 고별 무대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진 않지만 윤소정도 본인의 나이를 의식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공표하진 않았지만 이번에 다시 한번 참여하는 [에이미]를 본인의 마지막 무대극이라 여기며 임하는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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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는 최근 윤소정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연극 출연작입니다. 이 작품은 작품성도 뛰어나지만 윤소정 연기의 진가를 확실히 드러내게 해주는 가정 드라마죠. 윤소정은 번역극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는 배우인데 [에이미]같은 작품에선 대본에 씌여진것 이상으로 배역의 질감을 풍부하게 바꿔 줍니다. 이 작품에서 윤소정의 필터를 거쳐서 나온 에스메는 그녀의 탁월한 배역 소화력 덕분에 대본 이상의 복잡미묘한 성격으로 구축됐습니다. 입체적이고 풍부하죠. 윤소정이 번역극에서 유독 기지를 발휘하는 본인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기도 했고 그 덕분에 [에이미]의 완성도에 밑거름이 돼줬습니다.
작품의 규모에 비하면 재공연지로 선택된 명동예술극장의 무대는 버겁지만 배우들의 꽉 찬 연기가 풍성하게 극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작품은 가정극을 표방하며 신구 세대의 갈등과 오해와 이해, 그리고 화해의 과정을 약 16년의 세월에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극에선 명시되지 않았지만 대략 1979년 부터 1995년 혹은 1996년 동안 일어나는 일이죠. 4막 짜리 연극입니다. 1막 4장 구성이 아닌 막 구분으로 분리돼서 전개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지만 이 작품의 내용은 연작 드라마처럼 내용이 연결되기 때문에 장의 구분으로 전개된다고 할 수는 없죠. 각 막 마다 배역의 심리 변화는 뚜렷하게 드러나고 각 막을 통해 전달되는 주제와 소재가 분명합니다.
[에이미]는 극 중 연극 무대를 고집하고 그것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에스메와 별 볼일 없는 영화 평론가였다가 서서히 상업주의에 물들어 방송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에스메의 사위 도미닉을 두 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각자 직업에 임하는 자세와 가치관의 대립이 화두로 내세워져 작품 전반을 날카롭게 지배하고 있죠. 둘은 자신이 속한 분야에 대한 고집이 세고 이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대척점에 놓여 있습니다. 에스메는 자신의 기준에서 예술이라 인정하지 않는 방송 분야에서 성공하는 도미닉이 못마땅하고 품위 없다고 여기고 있으며 도미닉은 이를 참을 수가 없죠. 도미닉은 자신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장모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공격하고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계급 사회가 명확히 구분된 서양에선 이 둘의 심리적 대립을 통해 귀족 계급의 몰락과 신진 세대의 부상을 작품 전반의 정서로 깔고자 했을겁니다. 그러나 국내 공연에선 그런 포괄적인 시선보단 한 가정을 소우주로 설정하여 신구세대의 갈등으로 좁혀 놓은 측면이 크죠. 그래서 이야기의 주제의식이 약화된 면이 있지만 가정 드라마로 봐도 이야기는 탄탄하고 배우들의 배역에 대한 이해는 충실해서 다각도의 분석은 여전히 열려있습니다.
에스메와 도미닉이 화해하는 지점은 에스메가 남자 친구 잘못 만나 부동산 사기를 당하여 재산을 몽땅 탕진하고 그래도 빚이 남아 있어 버는 족족 압류당하여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남루한 무대까지도 서야 하는 생계형 배우가 됐을 때입니다. 이 둘을 이어주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에스메의 딸은 도미닉과 이혼 후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도미닉은 생계형 배우가 된 장모의 무대 대기실을 찾아 화해를 요청하며 그녀를 보살피고자 하죠. 마지막 장면에선 기력이 쇠하고 가난해진 장모에게 저돌적이었던 옛 사위가 나타마 드디어 화해를 요청하며 모시게 될 따뜻한 가정 드라마로써의 질감도 부여하고 있지만 그보단 계급의 붕괴와 신구 세대의 갈등 해소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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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영국의 극작가 데이비드 헤어의 1997년작인데 작품이 설정한 시대적 정서가 중요한 작품이죠. 작가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는데 내용상으로 봤을 때 이 작품은 시대적 설정이나 배경이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작품 전반에 걸쳐 있는 긴장감과 대립되는 소재, 갈등 관계의 표면을 읽어보면 작가가 은은하게 깔아 놓은 시대적인 배경이 중요하다는걸 읽을 수 있습니다.
무대 예술을 진정한 예술적 가치로 생각하는 에스메과 영상매체의 중요성과 그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도미닉의 관계망은 작가가 정해 놓은 시대적 설정과 맞아 떨어지는 구성입니다. 내용만 봤을 땐 작품이 씌여진 1990년대 중반으로 이야기를 좁힐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 작품은 굳이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로 시간 순서를 넓게 배치했죠. 그 이유는 신구세대의 갈등과 화해의 지점이 작품이 정해 놓은 시기로 대입 했을 때 중첩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970년대 후반은 비디오 세대의 출몰로 영상 사업의 변혁이 전개되는 시점이었죠. 그 당시 MTV를 중심으로 새로운 영상 문화가 조성됐고 시대의 흐름에 맞는 세대가 중심이 되어 영상 사업을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런것들은 구세대가 느끼기엔 저급하고 정신없는 잡탕으로 여겨질 뿐이었죠.
도미닉이 별볼일 없는 영화 평론가로 근근히 먹고 살다가 방송 일로 진로를 변경해서 성공하는것은 아무리 부를 축적시켜 준다 하더라도 에스메의 이해를 돕는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도미닉은 자신이 투지하는 방송 영상 사업도 예술이라고 인정하는 신세대이지만 에스메는 사람들의 환호가 줄고 외면해도 진정한 예술적 가치는 무대에 있다고 판단하고 규정하는 구세대니까요. 이들은 1970년대 후반에 처음 만나 1980년대까지 내내 갈등하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화해를 합니다. 도미닉이 에스메에게 으르렁거리고 분노하는것은 자격지심 때문이죠. 나름 품위있게 잘 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에스메 앞에만 서면 근본도, 개념도 없는 상놈이 된것같은 기분이 드니까요. 그래서 에스메가 더 우아하게 격식을 차리고 예의를 가출수록 그는 참을 수가 없고 감정 조절에 실패합니다. 얼핏 보면 에스메가 싹수 노란 사위한테 매번 당하는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정반대입니다. 이런 식의 세대 갈등과 계급간의 충돌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같은 걸작에서도 잘 드러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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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닉이 에스메에게 화해를 요청했을 무렵엔 도미닉도 구세대가 되어 가고 있는 시점입니다. 도미닉이 신세대에서 구세대로 변하면서 그 자신이 고집스럽게 고수하던 자아를 꺾고 이해의 층이 생겨나면서 타협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하죠. 그래서 그는 외롭게 표류하며 빚 갚는것에 고달픈 장모를 찾아가는겁니다. 에스메 역시 노쇠해질대로 노쇠해져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예술적 자아와 허영심을 버리고 화해를 촉구합니다. 도미닉은 여전히 방송쪽에서 승승장구하고 에스메도 무대를 떠나지 못하고 있지만 이들은 이전과 달리 각자의 분야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죠. 이로써 신구세대의 갈등도 마무리가 되는것이고요.
무대 예술에서 영상 예술로 급변하는 시기에 걸쳐 한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신구세대의 갈등을 섬세하게 전개시킨 각본의 힘이 무엇보다 큰 작품입니다. 영상 언어가 발전하면서 무대는 죽었다고 단정하는곳이 많았지만 속단이었죠. 비슷한 예로 t.v매체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끝났다고 했지만 영화는 여전히 발전중입니다. 여전히 CD가 제작되고 LP도 제작됩니다. 전자책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종이책도 사랑 받고 있죠. 어떤 특정 분야가 발전하면 그 영향으로 잠식당하는것도 있지만 과도기를 거쳐 공존하기도 하죠. 에스메와 도미닉이 화해할 수 있었던것도 두 사람의 가치관이 공존할 수 있다는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문화 계통의 과도기와 한 가족의 가정사를 겹쳐 전개시키는 대본의 힘이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 하나하나가 새겨들을만해요. 딱딱한 번역극 대사를 입에 착착 감기게 표현하는 배우들의 대사 소화력도 일품이고요. 윤소정은 기대했던대로 잘 해주고 나머지 배우들도 도미닉 역을 맡은 정승길만 빼면 훌륭합니다. 정승길은 배역을 지나치게 경직되고 신경질적으로만 표현해서 보는 내내 거슬렸어요. 4막에선 변화된 배역을 보여준답시고 목소리를 엄청 깔고 연기하는데 지나치게 의식적으로 연기해서 국어책을 읽더군요.
윤소정이야 늘 잘 했으니 연기에 대한 부분은 두말 하면 입 아프고, 특히 좋았던건 서은경이었습니다. 예전엔 연기하는걸 보면 병든 닭처럼 맥아리 없고 발성도 답답했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발성과 호흡이 완전히 트였어요. 그 서은경이 이 서은경 맞나 싶었죠. 1막에서의 밝고 어린 에이미를 보여줄 때 서은경은 목소리를 변주하여 활달한 요소를 끌어 냅니다. 서은경의 발성 기교는 이후 어둡게 변해가는 배역의 대비 효과를 살려주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서은경과 윤소정은 이전에도 무대에서 모녀로 호흡을 맞춘적이 많고 [에이미]역시 같은 배역으로 다시 서는 무대라서 이 둘의 호흡도 자연스럽습니다. 각 막의 흐름이 일정치 않은데 길게 전개되는 3막에서 치매에 걸려 내내 의자에서 자는 연기를 해야 하는 백수련도 고충이 크겠다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야 하는것도 고역이죠. 윤소정의 각 막마다 바뀌는 의상과 머리 모양도 볼만합니다. [에이미]는 대사의 리듬감과 대사를 통해 전해지는 감정 전달이 중요한 작품인데 정승길을 제외한 나머지 배역이 초연 때와 동일해서 좀 더 극의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 명동예술극장엔 이제 음수대까지 있습니다. 정수기가 아닌 음수대요. 공연장은 복원해서 옛스럽고 고풍스러운데 내부 환경은 첨단이고 관객에 대한 배려로 넘치죠. 이전엔 그때그때마다 공연되고 있는 작품에 관련된 기사를 일일이 스크랩해서 전시물을 세워놨지만 이제는 터치스크린을 갖다 놔서 프로그램북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스마트폰처럼 손으로 누르면 공연 정보와 관련 기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첫댓글 후기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에이미란 연극을 봐서 댓글을 달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댓글도 달아봅니다. 사실 '신의아그네스'님의 후기는 예전에 읽었습니다. 그리고 제 의견과 다른 점이 있어서 댓글을 달려고 했으나 피일차일 미루다가 근로자의 날에 댓글을 답니다. 당시 읽었을 때는 여러가지에 대해서 피력할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뭘 피력할려고 했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어째든 크게 세 가지는 생각이 납니다. 대본에 대한 동의, 배우에 대한 異意, 그리고 엄청난 스포일러라는 생각ㅋㅋㅋ(물론 본 사람 입장에서만. 왜냐면 모든 장면이 다시 다 생각남. 안 본사람은 보고 싶겠죠?) 어째든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