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하나님을 감동시킨 자의 축복/삼하 7:1-9
성경본문 : 사무엘하 7:1-9
1.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3. 나단이 왕께 고하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4.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6.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7.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9.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
출 처| 양인순목사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고 있는 동계 올림픽 메달 소식에 온 국민이 기뻐하며, 감격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1988년 이후에 태어난 올림픽 세대의 젊은이들이 당당하게 세계적인 스타들과 겨루어서 승전보를 울리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메달을 따면 예외 없이 시상대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춥고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딴 메달이 너무 감격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올림픽 이후 세대는 풍요로움 속에 자란 세대입니다. 자기 개성을 표현하고, 자유분방한 세대입니다. 자기주장과 표현이 뚜렷한 세대입니다. 이들은 메달을 목에 걸고 환한 미소를 짓고, 춤을 추며,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약하고, 통제 불능의 세대라는 인식을 새롭게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외신들은 대한민국이 동계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선 것에 대해서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쇼트 트랙에서만 금메달을 땄는데 이번에는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예상치 못한 금메달 두 개와 은메달 두 개를 따서 온 국민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선수들이 당당하게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국제적인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가를 새삼 느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4-50년 전만 해도 먹고 살 걱정에 찌들었던 이 나라가 이제는 세계무대를 누비고 있는 모습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스포츠의 역사는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들이 서양의 스포츠를 우리나라에 소개했습니다.
선교사들이 무더운 여름 날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를 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삿갓을 쓴 양반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가엾은 양반들, 이 무더운 날 땀을 흘리며 고생하고 있네. 저 어려운 것을 아랫것들 시키면 되지 왠 고생을 저렇게 하고 있어”
100여년 전만 해도 이 나라는 이 정도로 무지한 나라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긋지긋하리만큼 가난과 질병의 포로상태였습니다. 그 원인에는 두 요인이 있습니다. 샤머니즘(무속종교)과 유교의 선비정신입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는 무속종교가 우리의 정신을 지배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사주팔자에 묶어 놓고 운명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과거를 보기 위해 출발하기 전에 세 명의 유생들이 복채를 들고 유명한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이번 과거 시험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이것저것 물어보던 점쟁이가 갑자기 방울을 흔들며 노기 띤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신이 내리신다. 여기를 봐라’ 하면서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습니다. 답답한 유생들이 도대체 손가락 하나가 무슨 의미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기를 누설할 수 없다며 유생들을 내좇았습니다.
옆에서 시중들던 사람이 궁금해서 아까 손가락 하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무당이 말하기를 ‘한 사람이 붙으면 두 사람이 떨어진다는 뜻이고, 두 사람이 붙으면 한 사람이 떨어진다는 의미지’ 라고 말했습니다. 코에 걸면 코거리, 귀에 걸면 귀고리 같은 말에 많은 사람들이 노예가 되어 살아왔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의 유교는 글을 읽는 선비만을 최고로 알았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거나 기술자들을 하층민으로 취급했습니다. 그 결과 이 나라는 가난과 무지와 질병 속에 신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게 된 계기가 바로 기독교 복음의 전파였습니다.
선교사들이 이 땅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병원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요즘 <제중원>이란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데 알렌 선교사가 1884년에 들어와 민비의 조카인 민영익을 치료해 준 것을 계기로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세워서 무지한 백성들을 계몽시켰습니다.
그 결과 이 땅에는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고, 오늘날과 같은 경제 강국, 스포츠 강국을 이루는 계기가 됐습니다. 의료기술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실력을 갖추었습니다. 그래서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앞을 다투어 한국을 임상실험의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이 민족 위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임을 믿습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동계 올림픽의 승전보를 통해 온 국민에게 감동을 주듯이 오늘 성경에는 하나님을 감동시킨 한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의 이름의 의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이름 그대로 다윗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의 삶이 복을 받은 인생은 아니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왕을 세우기 위해 다윗의 부모를 찾아 왔을 때 8명의 아들 가운데 7명만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양을 치던 목동인 다윗은 아버지의 눈에도 뜨이지 않을 만큼 비천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먼지에 빛이 비추면 반짝이듯 다윗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지기 시작했을 때 그의 인생은 완전히 역전됐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최고의 칭찬까지 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다윗이 그런 놀라운 축복을 받았을까요?
다윗은 오랫동안 피난생활하며 고난을 당하다가 사울 왕이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를 괴롭힐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윗은 잠시 동안이지만 궁전에서 평안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윗은 ‘하나님의 궤’ 즉 ‘법궤’가 생각이 났습니다.
‘법궤’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보낼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심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만들게 하신 상징적인 법궤입니다. 그 안에 율법의 두 돌판과 만나를 보존하는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함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윗의 마음속에 이 ‘하나님의 궤’가 생각났습니다. 사실 그가 블레셋에게 빼앗겼다가 어렵게 다시 찾아서 오벧에돔 집에 3개월 동안 보관하고 있던 법궤를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 옮겨놓은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오벳에돔 집에 보관하고 있던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속옷이 벗겨지고 속살이 보일 정도로 춤을 추며 좋아했습니다. 아내인 미갈이 왕이 체면 없이 무례한 행동을 한다고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삼하6:22). 다윗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 성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최고의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임시로 보관하기 위해 만든 천막 중앙에 법궤를 놓아두었습니다. 빼앗겼던 법궤를 다시 찾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이후 법궤를 그 상태로 방치해놓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다윗의 마음속에 이 ‘하나님의 법궤’가 생각이 났습니다. 다같이 1절과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자신은 당시 최고의 건축기술을 가진 두로의 목수와 석수들이 와서 건축한 백향목으로 만든 궁궐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궤는 천막 속에 아무렇게 방치되어있는 것이 너무나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에게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말하며, 회개했습니다.
아합 왕은 상아로 만든 궁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섬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아합 왕처럼 백향목 궁에 거하면서 하나님을 섬길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얼마든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른 왕들과 달랐습니다. 자기가 누려야 할 편안한 삶보다, 하나님의 궤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축복된 삶보다, 하나님을 일을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사실 우리들이 평안할 때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평안하고 많은 재물을 모으면 딴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더 크고 화려한 집을 원합니다. 더 큰 차를 원합니다. 더 편리하고 좋은 조건을 찾게 됩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다윗이 지금 성전을 짓겠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단순히 ’법궤는 천막 안에 방치되어 있는데, 나는 백향목으로 지어진 궁궐에 살고 있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아시고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자신의 평안한 삶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게 휘장 안에 거하고 계신 하나님의 궤를 더 좋은 곳으로 모셔야 겠다는 생각을 말한 것 뿐인데 하나님은 너무나 큰 감동을 받으십니다.
당시 하나님의 선지자였던 나단은 ‘왕의 마음에 있는대로 행하소서’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 나단에게 나타나셔서 다윗에게 할 말을 주십니다.
5-7절을 보시면 하나님은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출애굽 이후부터 지금까지 장막과 성막안에 거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언제 너희들에게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했다고 책망한 적이 있느냐‘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너무나 귀하게 받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요청하기 전에 스스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궤를 모실 생각을 했다는 점에 대해서 기특하게 여기시고 감동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사람을 감동시키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가정에서 아내를 감동시키면 저녁 반찬이 달라집니다. 남편을 감동시키면 직장에서 퇴근한 후 곧바로 집으로 달려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을 감동시키면 쉽게 용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업이 고객을 감동시키면 사업이 형통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감동시켜도 뭔가 일이 벌어지는데, 하물며 사람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다윗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을 주십니다.
다같이 9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아멘!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다윗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를 주권자로 삼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모든 원수를 멸해주고,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은 다윗의 명예를 높여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옛말에 ‘호사유피(虎死留皮) 인사유명(人死留名)’이란 말이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이름이 존귀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내 이름을 손바닥에 새겨 놓으시고 지금도 부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하는 이 시간에도 성령님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영광스런 보좌 앞에 우리의 이름을 불러 지금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나의 이름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내 이름을 기억만 하더라도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려고 할 때 가슴이 설레어야 합니다. 역사상 위대한 사람은 그 이름이 영광스러운 사람이요, 그 이름이 추한 사람은 그 인생이 추한 인생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기독교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지만 가장 영광스러운 이름은 다윗이라는 이름입니다. 성경에 수많은 사람이 나오지만 다윗의 이름이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보다도, 사도 바울 보다도, 심지어는 예수라는 이름보다도 다윗이라고 하는 이름이 더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메시야를 기억할 때에, 병 낫기를 사모할 때에, 주님 만나기를 사모할 때, 모든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부를 때에 그 이름 앞에 다윗의 자손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우리 주님 이 땅에 오실 때에도 재림의 주를 부르는 그 이름이 무엇일까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계3:7)”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다윗은 성경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존경 받는 유명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흔한 이름이 영어로 ‘David’입니다. 이스라엘의 국기에도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의 명예를 높여주십니다. 그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킴으로 기억되는 위대한 이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향유를 담은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입니다. 그녀 역시 예수님을 감동시킨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베다니의 문둥이 시몬의 집에 있을 때, 그녀는 옥합을 깨뜨려서 그 기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에 바르고 자기 머리털을 풀어서 예수님 발을 닦아드렸습니다.
그때 계산이 빠른 가룟 유다가 비난합니다. “어찌하여 값비싼 기름을 낭비하느냐? 차라리 이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막14:6~9).”
마리아는 주님을 감동시킴으로 ‘좋은 일을 했다’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디든지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그녀가 행한 일이 전해지고, 사람들이 그녀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의 명예를 높여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의 이름을 반드시 위대하게 만들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경상남도 시골에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6.25때 군에 입대했고,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습니다. 그는 27살의 나이에 별을 달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 어머니께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경찰서장을 대동하고 어머니 앞에 큰절을 올리고 별이 달린 모자를 그 앞에 놓고 “어머니, 어머니 곁을 떠났던 그 자식이 별을 달고 어머니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시큰둥해 하셨습니다. “그 별은 언젠가는 떨어질 똥별이다. 나는 네가 하늘의 별을 달기를 원한다. 네가 어느 지역에 가서 어떤 위치에 있든지 거기서 복음 전하는 일, 성전세우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아니될 게야.” 이 사람은 4성 장군이 되었고 제15대 국방부장관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김성은 국방부장관입니다.
그는 가는 곳곳마다 복음을 전했고, 군부대에 수많은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그가 전역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주셨던 모든 땅을 다 팔아서 약수동에 신일교회를 세웠습니다. 성전을 봉헌한 다음에 예배당 사진을 구석구석을 찍어서 어머니 앞에 찾아갔습니다.
“어머니 이 예배당을 저희들이 지어서 하나님 앞에 봉헌했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나는 네가 목사가 되기를 위해서 기도했다. 그런데 네가 목사는 되지 못했지만 이제야 네가 하늘의 별을 달았구나. 그 예배당을 통하여 뭇 심령들의 하늘의 별이 되어서 오르게 될 것이다. 뭇 영혼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이제야 네가 땅에서 썩을 별이 아니고, 떨어질 별이 아니고 하늘의 별을 달았구나.”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고 김성은 국방장군은 3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나의 잔은 넘치나이다’ 라는 회고록을 통해 그 이름은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한 주부가 쓴 “23년 만에 받은 칭찬”이라는 수기가 있습니다. 그 글에 의하면 이 사람은 음식 솜씨가 아주 좋아서 시집 식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동네 사람들까지도 칭찬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남편만은 한 번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결혼한 지 10여년이 지난 어느 날 해물탕을 끓였는데 남편이 너무 맛있게 먹고 또 분위기도 있고 해서 부인이 애교를 부렸습니다.
“여보, 해물탕 맛있게 먹었으면 칭찬 한 번 해줘요.” 그랬더니 그 무뚝뚝한 남편이 “야, 십년을 넘게 같이 살았으면서도 아직 내 성미를 모르니. 난 칭찬 안하는게 하는 거여” 하면서 도리어 핀잔을 주더랍니다.
이럴 때 아내들이 뭐라고 그러는지 아세요? 속으로 “그래 너 잘났다” 합니다.
그래서 남편으로부터 칭찬받는 것을 아주 단념하고 살았는데 결혼한 지 23년째 되는 해 여름 남편이 생선회를 먹고는 배탈이 아주 심하게 났습니다. 설사를 하고, 토하고 야단이 나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굶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을 꼬박 굶었습니다.
일주일 만에 의사 선생님이 죽을 한 그릇만 먹으라고 해서 아내가 정성껏 죽을 끓여서 물김치하고 갖다 바쳤더니 그 죽을 너무너무 맛있게 먹고는 조금 더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한 그릇 이상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서 한 그릇만 끓였다고 했더니 수저를 놓고는 그릇에 묻어있는 죽 찌꺼기를 핥으면서 “당신, 죽 한번 정말 맛있게 쑤었다. 죽 맛이 죽여준다.” 하더랍니다.
이럴 때 아내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무척 기분이 좋았을 것 같죠? 그 분이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23년 만에 칭찬을 받고 보니 기쁘기보다는 가슴 속에서 주먹만 한 불덩어리가 솟구쳐 올라왔다. 눈물이 핑 돌아서 속으로 이렇게 투덜거렸다.
야! 23년간 밥 먹고도 칭찬 안하던 인간이 죽 한 그릇 처먹고 이제 칭찬을 하냐?” 아내가 비록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마음이 한 없이 좋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남편이나 사람으로부터의 인정을 받는 것도 이렇게 좋은데 만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떤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다는 표현을 ‘하나님께 한판 찍히는 것’ 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한판 찍힌 일이 있는지요?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은 안동 시골에서 교회를 섬길 때 한 판 찍히셨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여름 철 장마 비가 내리는데 성전이 걱정 되서 잠이 안 오더랍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보니 흙으로 만든 지붕에 구멍이 뚫려서 비와 함께 흙이 강단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하나님의 성전이 비가 새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자기 등으로 흙을 밤새도록 받아냈습니다.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한 판 찍어두셨다가 설교 못한다고 쫓겨났던 목사를 지금 우리 통합 측에서 최고의 교회로 세우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존귀한 이름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경영학 이론에 “돈을 벌려면, 고객을 감동시켜라. 고객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감동하게 해라. 고객은 설득당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여기 ‘고객’이라는 단어에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감동시켜라.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감동하게 해라. 하나님은 설득당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설득 당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감동시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다윗에게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13:22).”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킴으로 우리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