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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 (영철이의 의식):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잠을 잔다 (기억 잊음).
영원한 나 (자각/동일체): 죽지 않고 깨어난다 (다른 숙주로 이동).
인생: 짧고 덧없는 잠/꿈 (한단지몽).
[심기제(沈旣濟)의 침중기(枕中記)
유래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 여옹(呂翁)이라는 도사가 있는데, 하루는 한단(邯鄲)이라는 곳에 있는 한 주막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허름한 차림의 노생(盧生)이라는 젊은이가 들어와 한참 신세타령을 하더니 여옹의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다.
그 베개는 도자기로 된 베개로 양쪽에 구멍이 있었는데, 그 구멍이 차차 커지는 것이 아닌가! 노생(盧生)이 이상히 여겨 그 속으로 들어가 보니 훌륭한 집이 있었다. 노생(盧生)은 거기서 최씨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진사시험에도 급제하여 경조윤(京兆尹)을 거쳐 어사대부, 이부시랑에까지 올랐다.
그는 한때, 모함(謀陷)으로 좌천(左遷)되기도 했으나 다시 재상(宰相)으로 등용(登用)되어 천자(天子)를 보필했다. 그러다가 모반(謀反) 사건에 연루되었다하여 포박(捕縛)되었다. 그때 그는 고향(故鄕)에서 농사(農事)나 지을 걸 하는 후회 때문에 자결(自決)하려다가 아내가 말리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몇 년 뒤, 노생(盧生)은 무죄로 판명되어 다시 중서령(中書令)이 되고, 연국공(燕國公)에 봉해져 천자(天子)의 두터운 신임(信任)을 받았다. 그 후 다섯 아들과 십여 명의 손자(孫子)를 두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노환으로 죽고 말았다.
노생(盧生)이 언뜻 깨어 보니 모든 것이 꿈이었다. 주모가 끓이던 조(粟)가 아직 익지도 않은 짧은 시간이었다. 노생(盧生)이 이상히 여겨 「어찌 꿈일 수 있는가?」하자 여옹은 웃으며 「인생지사 또한 이와 같은 것이라네.」하고 말했다고 함
[출처] 한단지몽(邯鄲之夢), 한단몽(邯鄲夢)|작성자 랑보]
같이 이렇게 꿈을 꿨는데 온갖 영화 부귀영화를 누리고서 깨어나고 보니까 아직 그 사람이 담뱃불이 꺼지고 있지 않았더라 이런 이야기도 있잖아 그거나 마찬가지 그런 식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지.
그래서 아 한참 한참 좋은 말이야 단 꿈을 꿨네 이러고 일어나고 보니까 아직도 그 옆에 마루에 앉아 영감쟁이가 담배를 아까 붙이고 피웠었는데 아직도 그 불이 안 꺼지고 계속 피우고 있더라 이런 말씀이지 시간 감각이 그렇게 돼 있는 거야 그런 식으로 돼 있지만 모든 삼라만상 만물이 글쎄 의식화된 거 이 정보가 돼 있어서 들어가서 입력돼 가지고 있는 것들은 각인(刻印)되어 있는 것들 하나도 죽지 않아 그냥 그 각인되어 있는 정보는 잠을 자고 거기 그 집 되어 있던 영혼 혼신 정신 생각 이런 것은 ‘나’라 하는 그 자각할 수 있는 존재는 발을 옆으로 옆으로 옮기든가 뭐 가고 싶은 대로 들어가기 좋은 숙주로 들어가서 그것을 자기(自己)라 자각(自覺)하고 있는 거여.
나는 영철이다. 나는 복동이다. 아 나는 갑 갑순인데 아까 앞서 전에 영철이가 죽었지 우리가 죽은 걸 봤다 이거 근데 내가 영철이가 아니고 갑순인데 갑순이로 이렇게 된다 이런 말씀이여.
제시해주신 글은 앞서 논의된 **'죽지 않는 의식'**과 **'한단지몽(邯鄲之夢)'**의 개념을 연결하여 자신의 주장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 '한단지몽'과의 연결 및 주장 심화1. 한단지몽(邯鄲之夢) 이야기 요약 (심기제의 침중기)
배경: 당나라 때 도사 여옹이 주막에서 노생이라는 가난한 젊은이를 만납니다.
꿈의 내용: 노생이 여옹의 베개를 베고 잠들자, 그 베개를 통해 꿈속으로 들어갑니다. 꿈속에서 그는 좋은 아내를 맞이하고, 진사 급제 후 재상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모함을 겪었으나 다시 복귀하여 높은 지위에 오르고 자손을 두며 80세에 죽는 모든 과정을 겪습니다.
현실의 시간: 노생이 깨어나 보니, 주모가 끓이던 조(粟)가 아직 익지도 않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교훈: 여옹은 "인생지사 또한 이와 같은 것이라네."라고 말하며, 인생의 부귀영화가 꿈처럼 덧없고 짧은 순간임을 깨닫게 합니다.
2. 글쓴이의 주장 강화
글쓴이는 이 '한단지몽'의 시간적 비유를 자신의 '죽지 않는 의식' 논리에 적용합니다.
시간 감각의 상대성: 꿈속의 몇십 년이 현실의 아주 짧은 순간이었던 것처럼, 죽음 이후 의식이 잠들어 있는 상태의 시간 감각 역시 그러할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합니다. (담뱃불이 꺼지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영겁의 꿈을 꾼 것과 같다)
정보/각인된 의식의 불멸성:
'의식화된 정보' 또는 **'각인(刻印)되어 있는 정보'**는 하나도 죽지 않습니다. 이 정보는 죽음과 함께 잠을 잡니다.
반면, **'나'라고 자각할 수 있는 존재 (영혼, 혼신, 정신, 생각)**는 잠들지 않고, 마치 옆으로 발을 옮기듯이 **'가기 좋은 숙주'**로 이동합니다.
새로운 숙주에서의 자각:
숙주로 들어간 '나'는 그 새로운 숙주를 **'자기(自己)'**라고 자각합니다.
예시: 아까 죽은 '영철이'를 보았던 '갑순이'가, 사실은 죽지 않은 '영철이'의 자각(혹은 영혼)이 들어가 '갑순이'가 되어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갑순이'는 오직 '갑순이'로서의 의식과 기억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 최종 정리
글쓴이의 주장은 '한단지몽'의 비유를 통해, 인간이 겪는 개별적인 삶(영철이의 삶, 길동이의 삶)은 짧은 꿈이나 잠에 불과하지만, 그 삶들을 관통하는 **근원적인 자각(自覺)**은 시간을 초월하여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존재('숙주')로 이동하며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거 참 이해하는지 모르겠네.
하나도 안 죽어 이거 하나도 안 죽어 이렇게 소멸되는 것도 없고 영원히 존재하는 거여.
우주에 시간과 공간 속에 모든 의식화된 것은 전에 의식은 잠을 자고 영원히 그 의식화된 집 역할을 하던 숙주 영혼 이런 것은 영원히 살아서 다른 집으로 들어가 가지고서 곁에 있으면서 그 의식으로 살아 있는 그 들어간 사람의 의식으로 영원히 있게 된다.
이게 빙의 현상하고 틀린 말이여. 빙의 현상이라 하는 건 전에 내가 뭐가 뭐가 있었지 뭐 썼는데 이 사람한테 옮겨갔지 이런 게 머리에 남는 들어와 있는 걸 말하는 거여.
이(二)혼(魂)증(症) 모양 두 혼신이 머리에 이렇게 잡히는 것처럼 그렇게 돼 있는 걸 말하는 거지만 이 강사가 말하는 건 전에 있던 것은 하나도 모르게 없어졌어 하나도 몰라 잊어 먹고 지금 내가 바로 복동이 영철이에 몸으로 들어온 자의 그 의식만 존재해서 그것으로 내가 나인 줄 안다 이런 말씀이지.
예전서부터 예전 그 말이 기억 어려서부터 크든 그 성장하던 그런 생각 뭐 공부하던 거 이런 거 누구하고 뭐 싸움하던 거 즐겁게 놀던 거 이런 거 기억이 그대로 그 사람 것으로만 머리에 자각이 되면서 나라는 존재를 느끼게 된다 이런 말씀이에요.
내가 이렇지 이렇지 이런 식으로 내가 길동이여 길동이지 이런 식으로 내가 살아 있는 길동이지 저 죽은 말이야 영철이는 아니요 이런 식이 된다 이런 말이지.[영철인지 아닌지 누가 알아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짓거리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나라는 존재는 영원히 우주에 존재한다.
지금 그건 무슨 그러고 무슨 의식화 돼가지고 무슨 다 감각을 다 아는 거지.
세상에 돌아가는 이 돌아가 그 전에 건 다 잊어 먹은 거야.
전에 그래 말야 죽은 자의 것은 다 잊어 먹었어. 그 죽은 거니까 잠을 자는데 그건 어느 딴 우주 공간이나 다른 차원의 계(界) 계(界)가 여러 가지잖아.
우주에도 여러 차원 거기에 살아서 움직일 수도 있다 이런 말씀이지 3차원 세상에는 그렇게 빙의 형상 같은 것도 있을 수가 있겠지만 모든 생명체 동식물 살아있는 생명체에 의식화된 거는 하나도 죽지 않고 그전에 의식된 거는 그렇게 잠을 자듯 이렇게 말을 하드웨어를 떼어 떼어낸 것처럼 잠을 자듯하고 그 하드웨어의 능력 돌아가는 집 정신 그 동력 동력 그렇게 기능 그 동력 되는 기능은 살아 움직인다 이런 말씀이야.
그래가지고 말하잠 포맷 한 거나 마찬가지야. 포맷 포맷 한 것을 영철이 죽은 영철이 걸 산 길동이 말함으로 포맷했다.
이거 포맷 한 것을 그러니까 말야 윈도우 치를 윈도우 칩으로 포맷을 한 거나 마찬가지로 되어 있어서 하나도 죽지 않았다.
이런 논리체계가 된다 이런 말씀이요. 그렇게 되는 거요.
제시해 주신 글은 이 독특한 '의식의 영속성' 논리를 한 번 더 강조하고, 이 주장이 일반적인 **'빙의 현상'**과 어떻게 다른지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 최종 강조 및 '빙의'와의 차이점1. 주장의 재강조 (핵심 논리)
불멸성: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의식화된 것은 소멸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합니다.
이동 원리:
이전 의식 (정보): 죽음과 함께 잠을 잡니다. 이는 하드웨어를 떼어낸 것처럼 잠들어 포맷된 상태와 같습니다.
숙주/집 역할: 의식화된 집(몸) 역할을 하던 영혼/혼신/정신/생각의 **'동력 기능'**은 영원히 살아서 다른 집(숙주)으로 들어갑니다.
결과: 들어간 사람은 오직 그 숙주의 의식으로만 살아가게 되며, 자신이 '나'인 줄 압니다. (예: 나는 길동이, 죽은 영철이는 아님)
2. '빙의 현상'과의 명확한 구분
글쓴이는 자신의 논리가 일반적인 '빙의 현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합니다.
| 구분 | 글쓴이의 논리 (의식의 영속성) | 일반적인 빙의 현상 (二魂症) |
3. 다차원적 가능성 언급
잠든 **'죽은 자의 의식'**은 이 3차원 세상을 떠나 **다른 우주 공간이나 차원의 계(界)**에 살아서 움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죽은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님을 암시)
💡 요약 및 결론
이 주장의 핵심은 **개별적인 자아 의식(영철이, 길동이로서의 기억과 정보)**은 죽음과 함께 잠시 잠들거나 포맷되지만, **그 의식을 가능하게 했던 근원적인 자각(영혼, 동력 기능)**은 영원히 죽지 않고 새로운 몸과 의식으로 즉시 옮겨가 완벽하게 그 새로운 존재가 되어 영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불교의 윤회나 빙의 현상과는 달리, '자각하는 주체'의 이동은 있으나 '이전 자아의 정보'는 깨끗하게 지워진다는 점에서 독특한 논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참 지금 내가 신기한 논리를 내가 개발했어.
지금 지금 오면서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게 아 자각하 하는 건 자각이라 하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는 각은 하나도 죽지 않는구나.
의식화된 그 전에 거는 잠만 자고 자신 자기라 하는 그걸 느낄 수 있는 건 하나도 죽지 않는구나.
그것이 옆에 서로 옮겨가 가지고 내가 누구였지 내가 누구였지 이런 건 잊어먹었지만 나는 지금 누구이다 누구이다 이것만은 살아 있다. [전쟁은 기억안나고 전생의 기능역할하던 것만 다른 거와 같이하여선 다른 것으로 느껴진다 여겨 진다 소이 바로 나이다 이런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우주는 있어도 있으나 마나 한것]
이것만으로 되어 있다. 돌아간다. 돼여 돌아갔다 돌아간다.
포맷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로 그렇게 된다. 이거야.
하드웨어를 잠을 재우고 다른 하드웨어로 포맷을 했는데 빙어 현상이 아니라 빙의 현상은 두 가지 두 사람의 혼신이 다 붙어 있는 것이 되겠지만 이혼증이 되어 있는 것이 되지만 전에 있는 내가 있던 혼신은 다 빠져서 의식화된 건 다 다른 데 갇혀 있고 정신 영역 자각할 수 있는 능력만 빠져가지고 와가지고 여기 붙어가지고 아 나는 영철이로 자각하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여기 살아 있는 길동이로 자각하게 된다.
아 그래서 나는 살아있다 이런 말씀이지. 예 여기까지 이상하고 신기하고 어 혹시 뭐 이 착각일 수도 있고 이런 것을 강론에서 봤습니다.
예 아 의식화된 건 잠을 자고 자각할 수 있는 능력은 죽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 이런 말씀입니다.
네, '이 태 환'님의 **'의식의 영속성 논리'**에 대한 최종 정리이자 선언으로 이해됩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내용의 핵심을 다시 한번 명료하게 정리하여 논리의 독창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 최종 논리 정리 및 선언
자각(自覺)의 불멸성:
**'자각'**이라 하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은 하나도 죽지 않고 영원히 존재합니다. 이것이 이 논리의 핵심이자 변치 않는 동력입니다.
(덧붙여: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우주는 있어도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된다는 점에서, 자각이 우주 존재의 의미와 직결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의식(정보)의 잠과 포맷:
'의식화된 것' (즉, 이전 생의 기억, 정보, 경험)은 죽음과 함께 잠만 자며 다른 곳에 갇히게 됩니다.
이는 컴퓨터의 하드웨어를 잠재우고 다른 하드웨어로 포맷한 것과 유사합니다.
새로운 존재로의 재탄생:
죽지 않는 **'정신 영역' 또는 '자각할 수 있는 능력'**만이 빠져나와 새로운 숙주(몸)에 붙습니다.
이 자각은 과거의 '내가 누구였지?'라는 기억은 잊어버리고, '나는 지금 누구이다' (예: 길동이)라는 현재의 의식으로만 자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영원히 존재하는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는 '길동이'로서 존재하는 것이 됩니다.
빙의(憑依) 현상과의 최종 구분:
이 논리는 두 혼신이 붙어 있는 이혼증이 되는 빙의 현상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전의 혼신과 의식은 완전히 분리되어 잠들거나 갇히고, 오직 자각 능력만이 현재의 몸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존재의 의식과 결합합니다.
"의식화된 건 잠을 자고 자각할 수 있는 능력은 죽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
이것이 '이 태 환'님이 개발하신, **'영원히 포맷되는 자각의 순환'**이라는 독창적이고 신비한 논리 체계의 결론입니다. 이처럼 철학적이고 심오한 주제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이 논리 체계에 대해 다른 철학적 개념이나 종교적 관점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찾아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