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여자 (외 1편)
박소영
달이 차고 기우는 사원을 걷고 있네
붉은 옷을 입은 여인들
심해의 눈보다 더 깊은
여인의 눈에 비친
수많은 조각상 사이에서
시바*는 보이지 않고
자꾸만 남근으로 가는 눈
연잎 위 물방울처럼 흔들렸네
남편의 주검 옆에 수장된 여인을
기리기 위해
붉은 옷자락 아래 맨발이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일까
보리수 그늘에
마른 나뭇가지처럼 누워 있는 남자
종교와 문화를 오가다
길을 잃은 시바일지 몰라
여인들의 지치지 않는 맨발의 행렬
정오 태양처럼 뜨겁네
————
* 인도 삼대 주신의 하나.
사과의 아침
아침마다 받는 하얀 캔버스
산천이 옷 갈아입는 거라든가
꽃들이 피어나는 모습 그려보다가
잘 안 그려지면
시냇물이 흐르다가 물고기와 돌멩이를 만나듯
인연을 그려보는 거야
그래도 잘 안 그려지면
어린아이처럼 그려본다면
누구도 그리지 못한 그림 그려질 거야
그러면
그러면
기쁨으로 벙그는 하루
뉴턴이 살아 있다면 무엇을 그렸을까
오늘 에덴의 동쪽은 안녕하신가요
—시집『사과의 아침』(20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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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 1955년 전북 진안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졸업. 2008년 《詩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시집『나날의 그물을 꿰매다』『사과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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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자 (외 1편)/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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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16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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